[2023 ICON] 모를 일들을 끝내 기억하는 사람 2023 문학 아이콘: 소설가 최진영
[2023 ICON] 모를 일들을 끝내 기억하는 사람 2023 문학 아이콘: 소설가 최진영
  • 허희(문학평론가)
  • 승인 2023.12.01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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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 역주행 주인공으로 소설가 최진영은 2023년 화제의 인물로 부상했다. 2015년 발간한 장편소설 『구의 증명』이 2년 전부터 판매량이 점점 올라가더니, 올해 초에만 5만 부가 판매되는 기염을 토한 까닭이다.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와의 연관성을 지적하는 견해도, 그간 꾸준히 좋은 작품을 발표했던 그녀에 대한 관심이 이제야 가시적으로 터져 나왔다는 의견도 있다. 정확한 이유는 작가 자신도 알지 못한다. 그녀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답했다. “저도 처음엔 어리둥절했습니다. ‘이제 와서? 어째서?’ 과거 별빛이 현재 제 눈에 담기는 것처럼, 독자의 눈에 제 글이 담기기까지 이만큼 시간이 필요했나 생각도 들어요. 『구의 증명』은 좀 더 멀리 있는 별이었나 보다, 이런 생각이에요.”(「입소문으로 15만부 역주행 『구의 증명』, 저도 이유를 모르겠어요」, 매일경제, 23. 4. 27.)

이 소설은 ‘구’라는 이름의 남자와 ‘담’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의 이야기이다. 세상에 태어난 지 채 십 년이 되지 않아 만난 그들은 세상에 둘도 없는 단짝으로 맺어진다. 함께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연인이 된 그들의 삶은, 그러나 평탄하지만은 않다. 조그만 가게를 하던 구의 부모가 사채 빚을 지고 잠적하자 구는 그 빚을 갚느라 허덕인다. 성실하게 일을 해서 돈을 갚으려고 하지만 불어나는 이자를 내기에도 벅차다. 사채업자를 피해 구와 담은 도망친다. 하나 얼마 지나지 않아 붙잡힌 구는 그들에게 끔찍한 구타를 당한다. 너무 많은 상처를 입었던 구는 길거리에서 죽고 만다. 오직 구와 의지하며 이 세상을 버텨오던 담은, 구의 시체를 자신의 방으로 옮겨 온다. 드디어 둘만 있게 된 그곳에서 담은 구를 씻기고, 어루만지며, 마침내 그를 뜯어 먹기 시작한다. 사채업자들이 구의 몸을 팔지 못하도록, 그리고 오래오래 살아서 구를 기억하기 위해서. 담은 그렇게 구의 장례를 치른다.

연인의 시체를 먹는 담의 행위에서 이른바 ‘엽기성’을 발견하는 독자도 있을 테지만, 이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인물의 기이한 행동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권장할 만한 독법이 아니다. 최진영도 식인 모티프를 야만성으로 간주하기보다는, 지극한 사랑의 깊이를 염두에 둔 은유로 읽어달라고 소감을 밝힌 바 있다. 여기에서 드러나듯이 그녀는 본인의 글쓰기를 ‘사랑’으로 수렴시킨다. 그때의 사랑은 달콤한 연애에 국한되지 않는다. 같은 인터뷰에서 한 최진영의 부연이다. “‘사랑’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소설에서, 저는 그 가치를 지키고 싶습니다.” 그녀가 강조하는 바, 그것은 ‘삶과 죽음 그리고 애도’를 포괄한다. 실제로 최진영 소설에는 소중한 대상을 지켜내기 위하여 분투하는 삶,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을 수 없는 어떤 죽음이 펼쳐진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애도를 전면적으로 의미화하는 과정이야말로 그녀가 쓰는 작품의 핵심이라고 할 만하다.

2023년 이상문학상 대상을 받은 「홈 스위트 홈」도 마찬가지이다. 이 작품은 말기 암 판정을 받은 주인공이 폐가를 손보면서 그곳을 ‘홈 스위트 홈’으로 만들어 가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 심사위원은 이 소설을 이렇게 평했다. “집이라는 공간을 통해 ‘장소의 기억’ 만들기를 절묘하게 서사화하고 (……) 현재의 삶을 과거의 시간과 연결하고 과거의 일들을 현재로 끌어와 회상할 수 있게 하며, 집이라는 공간을 통해 만들어질 수 있는 다채로운 기억들은 삶에 내재하는 존재론적 의미와도 맞닿게 된다.”(권영민)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분석이다. 다만 조금만 첨언하자. 나는 이 작품이 애도의 주체성과 시간성에 대하여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애도는 “사람의 죽음을 슬퍼함”이라는 사전 풀이처럼, 이 세상에 남아 있는 사람이 저세상으로 떠나버린 사람에게 갖는 감정적 상태로 흔히 인식된다. 애도의 주체는 생존자인 것이다. 또한 애도는 누군가의 죽음 이후에 시작된다는 점에서 사후적이다. 과거에 일어난 사건에 대하여 현재 진행되는 마음의 정리이므로 애도의 시간은 순행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최진영은 「홈 스위트 홈」에서 애도의 주체가 얼마 지나지 않아 생을 마감할 인물이 될 수 있음을, 그가 과거에서 현재를 혹은 미래에서 과거를 횡단하면서 애도를 수행함을 소설적으로 납득시킨다. 최진영식의 애도는 곧 저세상으로 떠날 사람이 이 세상에 남은 이들을 위해 행해질 수 있음을, 고정된 시간의 틀에 얽매이지 않음을 역설하는 사랑의 제의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하다. 소설 속 이러한 구절이 방증한다. “시간은 인간의 언어. 측정 도구. 약속. 인간이 발명하고 이름 붙인 것. 그러므로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다음처럼. 시간은 발산한다. 과거는 사라지고 현재는 여기 있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무언가가 폭발하여 사방으로 무한히 퍼져 나가는 것처럼 멀리 떨어진 채로 공존한다. 과거는 사라지지 않는다. 기억하거나 기억하지 못할 뿐. 미래는 어딘가에 있다.”

그런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반문할 독자가 있겠으나 최진영은 이 작품에서 정말로 그런 것이 가능한 세계를 그려낸다. 소설의 또 다른 구절을 빌려 말하면 어떨까. “그런 일들에 대해 요즘 자주 생각한다. 분명 일어났으나 아무도 모르는 일들. 기억하는 유일한 존재와 함께 사라져 버리는 무수한 순간들. 그런 것들에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가도 한 사람의 인생이란 바로 그런 것들의 총합이라고 생각하면 의미가 없을 수만은 없고.” 이와 같은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은 그런 것을 모르는 채로 두지 않는다. “분명 일어났으나 아무도 모르는 일들”로 인생이 이루어졌다면, 우리가 인생을 대하는 태도가 그에 관한 무관심으로 귀결되어서는 안 된다. 타자는 물론 자기를 내팽개치는 선택이라 그러하다. 분명 일어난 일들을 아무도 모르게 방치하지 않으려고 최진영은 글을 쓴다. 그것으로 그녀의 글쓰기를 전부 환원할 수는 없을 테지만, 이상의 연유를 제외하고 최진영을 기술할 수도 없을 터이다. 모두가 그만두는 상황이 오더라도 그녀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애도라고 명명할 수 있는 기억을 붙드리라. 이것이 최진영의 사랑법이자, 그녀를 올해의 문학 아이콘으로 등극시킨 결정적 동력이다.

 

 


허희 대학과 대학원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2012년 문학평론가로 활동을 시작해 글 쓰고 이와 관련한 말을 하며 살고 있다. 2019년 비평집 『시차의 영도』를 냈다.

 

 

 

* 《쿨투라》 2023년 12월호(통권 11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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