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랄 바이다로프 감독] 찰나의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방법: 〈새를 향한 설교〉의 감독 힐랄 바이다로프
[힐랄 바이다로프 감독] 찰나의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방법: 〈새를 향한 설교〉의 감독 힐랄 바이다로프
  • 설재원 에디터
  • 승인 2023.12.01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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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도쿄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이름을 올린 감독 중 가장 유명한 이는 아마 아제르바이잔에서 온 힐랄 바이다로프Hilal Baydarov일 것이다. 〈인 비트윈 다잉〉(2020)으로 제77회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기도 한 그는 로카르노, 사라예보, 니옹, 도쿄 등 유수의 국제영화제에서 여러 작품으로 상을 받았고,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전쟁 3부작의 첫 작품인 〈물고기를 향한 설교Sermon to the Fish〉가 상영되기도 했다.

도쿄에서 첫 선을 보인 〈새를 향한 설교Sermon to the Birds〉는 이름에서도 드러나듯 전작에서 이어지는 전쟁 3부작의 두 번째 작품이다. 전쟁 3부작은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사이의 전쟁이 시작될 무렵 작업에 들어갔다. 할아버지가 2차대전에 참전한 그는 어렸을 적부터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접해왔고, 이러한 이야기들을 한번쯤 작품으로 다루고 싶었다고 한다. 그가 전쟁과 이야기에서 얻은 몇 가지 아이디어를 이미지화해 내놓은 것이 지금의 전쟁 3부작이다.

모든 장면에는 가장 적합한 단 하나의 앵글이 있다며 그 ‘답’을 찾기 위해 고민한다는 힐랄 바이다로프를 만나 이번 〈새를 향한 설교〉를 만드는 여정에 대해 들어보았다.

 

수학에서 영화로

만나서 반갑습니다. 한국에서는 감독님의 작품을 보는 게 쉽지 않기 때문에 저희 독자들에게 조금은 생소하기도 합니다. 간단하게 감독님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1987년에 태어나 수학과 컴퓨터공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는 전국수학경시대회에서 2년 연속(2004-2005) 우승하는 수재였다.)
고등학교 때는 피아노학교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기도 했어요. 그러다 영화로 넘어와 사라예보에서 공부했습니다. 이번 작품은 제 10번째 영화이고, 이곳 도쿄에서 처음 상영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예술에 관심이 많으셨군요. 가족 중에 영화나 다른 예술 분야에 몸담고 계신 분이 있나요?

영화도 그렇고 아마 저희 가족 중에 예술을 전공한 사람은 제가 처음인 것 같아요. 저희 Baydarov 집안에서 제 이전에 예술에 종사한 사람은 없습니다. (웃음)
수학이나 컴퓨터공학을 공부할 때나 음악을 공부할 때, 그리고 지금 영화를 할 때도 저는 달라진 게 없습니다. 항상 같은 마음가짐으로 모든 일에 임하고 있어요. 지금은 영화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그래서 10년 넘게 영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시적인 프레임: 영화 이미지를 감싸는 문학적인 상상력

이번 작품 〈새를 향한 설교〉는 아제르바이잔의 시와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은 것 같습니다. 어떻게 작품이 탄생했는지 듣고 싶습니다.

영화에 나오는 시는 오래된 시인데 비문도 많고 모호하게 쓰여 있어서 아제르바이잔 사람들도 저게 무슨 말이냐고 묻더라고요. (웃음) 시 쪽으로 기울게 된 건, 제가 의식적으로 결정한 것은 아니에요. 저라는 사람의 본성이고 제가 카메라 렌즈로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입니다. 사람들이 제 작품을 보고 ‘느림의 미학’이라고 불러주면 저도 듣기 좋아요. 그런데 제 스스로가 그렇게 표현하기는 좀 그렇습니다. 시는 제 영감의 원천인 것이고, 그 결과물이 이른바 ‘시적’으로 나온 거라 할 수 있겠죠.
제가 뭘 일부러 그렇게 만든 건 아닙니다. 그냥 제 성격이 그래요. 제가 만약 좀 더 재미난 성격이었으면 작품에 그런 부분이 반영될 수도 있었겠지만 저는 그렇지가 않아요. 제 작품은 그냥 저라는 사람과 같습니다.

작품에 문학적이라 할 만한 특징이 군데군데 보입니다. 꼭 시가 들어 있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고, 관객을 독특한 세계로 끌어들이는 문학적인 힘이 있어요. 작품을 보고 있으면 작품 속에 광활한 공간을 만든 뒤 다양한 아이디어로 채우는 신화적 상상력이 돋보인다고 할까요?

유기적으로 일어나는 것 같아요. 신화적이거나 상징적인 무언가를 만들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시작한 것은 정말 아니에요. 영화를 만들면서 이러한 요소들을 발견하는 거죠. 뭐랄까 영화의 부분보다는 작품 전반을 통해 제가 전달하고자 하는 느낌에 대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들어가는 것과 비슷합니다.
촬영을 며칠 해보면 제게 영감을 주는 것들이 눈에 들어와요. 이런 게 신화나 상징과 닮아 있을 때도 있죠. 제 영화 중에는 좀 더 경험적이고 구체적인 작품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작품을 할 때는 이런 요소들이 촬영 중에 더 보인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의상만 하더라도 이번 작품에서는 튀니지 사람들이 입는 옷을 사용했습니다. 친구들에게 튀니지 현지인처럼 입어달라고 부탁했죠. 노란 옷을 입은 사냥꾼이요. 제가 처음부터 이런 의상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에요. 작업을 하다 보니 그냥 이 캐릭터에 이게 어울린다고 느꼈습니다.

자연의 웅장함과 인간의 연결

그래서 이번 작품이 정말 감독님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웃음) 영화의 배경인 산이 코카서스 출신인 감독님께는 아주 특별하다고 들었습니다. 산을 핵심 요소로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고 감독님께 산이 어떠한 의미인지 듣고 싶습니다.

산에 대한 깊은 애정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산은 신비로운 느낌을 줘요. 산을 마주하고 있으면 인간이 작고 나약한 존재라는 점을 느끼게 됩니다. 자연 속에서는 자연이 인간을 압도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죠. 그럼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닫고 겸손해집니다.
반대로 도시에서는 인간이 도시를 만들어 냈다는 생각 때문인지 인간 스스로 강인함을 느끼게 돼요. 그래서 도시에 대한 소유 의식을 갖게 되고 도시 환경을 통제하려 합니다.
다시 눈을 돌려 산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 그 안의 크고 작은 관계를 바라보면 제 마음이 울컥해져요. 이게 제가 간직하고 있는 영화적인 느낌입니다. 저는 인간을 자연의 웅장함 속에 있는 작은 존재로 보려고 해요. 인간은 자연의 지배자가 아니라 자연의 일부니까요.

영화에 그러한 생각이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작품에는 서로 단절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던 요소들을 모두 하나의 연결된 흐름으로 융화시키는 놀라운 힘이 있어요.
감독님께서는 영화보다 미술을 좋아한다고 자주 말씀하셨는데, 그래서인지 화면 구성에 공들이신 게 느껴집니다. 시간이 있었으면 컬러나 구도를 하나하나 뜯어보고 싶었어요. 화면을 구성할 때 특히 신경 쓰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또 관객이 작품을 감상할 때 주의 깊게 봤으면 하는 부분이 있나요?

질문 감사합니다. 저는 영화감독보다는 화가나 음악인들에게 더 많이 배웠습니다. 저는 예술, 특히 화가와 작곡가에게서 영감을 많이 받아요. 그래서 저는 신을 여러 숏으로 나누기 보다는 그대로 길게 보여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작품을 보면 클로즈업 장면은 많지 않고 대부분 와이드숏입니다. 안목 있는 관객분들은 그 뉘앙스를 느낄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제가 모든 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저는 제가 인식하는 대로 이미지를 통해 캐릭터를 표현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관객분들께는 영화를 깊이 느끼시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건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여행이니까요. 제가 그림을 보면서 받았던 깊은 울림을 작품을 보는 관객도 함께 경험하길 바랍니다.

말씀대로 작품에 그런 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작품에서 와이드샷은 자연의 웅장함을 더 증폭시키고 있어요. 여기에 나무의 수직 이미지와 포근하게 감싸 안는 산의 곡선이 마음에 듭니다.

맞아요. 이건 제가 의도한 거죠. 영화를 시네마스코프로 선택한 것은 제 결정이었습니다. 3부작으로 이어지는 차기작은 세로 화면비가 특징입니다. 화면비는 미학과 캐릭터의 감정에 아주 중요해요.

작품을 보면서 사람이든 나무든 대상을 프레임 중앙에 배치한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화면을 구성하면 평면적으로 느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작품은 입체적인 느낌을 주면서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안에 있는 인간의 본성과 밖에 있는 자연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자연을 인물과 같은 특징을 가진 것으로 묘사하려고 합니다. 저는 이러한 패턴을 계속 추구하고 있어요. 단순하게 그림 같은 생생한 이미지를 담으려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와 공명하는 자연의 모습을 찾아내려고 합니다. 이런 제 철학은 사운드에도 드러나는데, 저는 소리와 음악을 포함한 모든 것들이 개성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러한 특징들 사이의 공통점이나 조화를 찾아내려고 노력합니다. 인물 초상화를 볼 때 어떤 사람은 비슷하고, 또 어떤 사람은 다른 것과 비슷합니다. 제 작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캐릭터는 자연의 특정 측면과 조화를 이루고, 또 다른 캐릭터는 자연의 다른 측면과 조화를 이루는 거죠. 저는 이러한 연결에 신경씁니다.

이런 게 감독님 지역의 영화 전통 같은 건가요? 인간과 자연 등의 관계를 강조하는 그런…?

네 맞아요.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것이 저희 문화권에서 추구하는 본질이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감독님의 개인적인 삶을 반영한 것이기도 한가요?

처음부터 그걸 염두에 두고 시작한 것은 아닌데 작업을 하다 보니 이렇게 나왔습니다. 영화를 만들면서 인물 면면이 중요한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끌고가게 되었습니다.

인물들은 하늘을 바라보며 산을 오르고, 이들을 둘러싼 큰 나무들은 인간의 상승 욕구를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암울한 끝을 맞이하죠. 영화를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나 주제 의식이 궁금합니다.

사실 의도한 것은 전혀 없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여러 가지 결정을 내립니다. 하지만 어느 곳을 바라보게 할지 따로 정한 건 아니에요. 그저 순간의 아름다움을 포착했을 뿐입니다. 저는 거의 100시간에 달하는 분량을 찍었어요. 제가 이걸 드리면 누구나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거예요. (웃음)
이전에 〈크레인 랜턴〉이라는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때 2년 동안 촬영한 게 테라바이트 단위로 쌓였어요. 작업에 임할 때 명확한 초기 컨셉이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항상 제 직관을 따랐고, 편집 과정을 통해 답을 찾았죠. 제 작업 방식은 역동적입니다. 촬영 중에 최종 결과물에 대해 생각하는 것 보다 그 순간의 본질을 포착하는 것이 제게는 중요합니다.

독특한 사운드 작업 방식

작업할 때 우선 촬영을 다 마치고 촬영한 것들을 보며 여기에 맞는 사운드를 넣는다고 들었습니다. 흥미로운 접근 방식이에요.

기본적으로 저는 작곡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제 목표는 음악을 만드는 것이었는데, 이러한 방법이 제게는 소리를 만드는 방법이었던 거죠. 제가 머릿속에서 구상하는 소리는 실제 현실의 소리와 다릅니다. 현실에는 대화 소리, 교통 소음과 같은 여러 종류의 산만한 소리가 있어요. 제 영화도 이랬지만, 저는 자동차나 기차 소음 너머의 어떤 느낌, 그러니까 제가 안고 가고 싶은 느낌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촬영한 이미지에 맞는 사운드를 직접 만들게 되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꼭 있어야 하는 사운드인 거죠.
저는 제가 인지하는 것과 같은 사운드를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어떤 사운드는 특정 장면에 자연스럽게 속해 있어요. 인물의 목소리나 새가 지저귀는 소리도 그렇고 모든 소리가 다 그렇습니다. 음악도 그래요. 음악을 직접 만들고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곳에 배치했습니다. 예를 들어 새 소리를 만들 때도 제가 생각할 때 이 장면에서는 왼쪽에, 다음 장면에서는 중앙에, 또 다른 시퀀스에서는 오른쪽에 있어야 하는 거죠. 사운드는 제 영화 제작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고, 저는 처음 촬영에 임할 때 아예 녹음 자체를 하지 않습니다.

영화를 직접 편집하는 이유를 알겠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편집을 맡기면 엄청 힘들어 하겠어요. (웃음)

네. 그래서 제가 혼자 합니다. 남들이 제가 생각하는 걸 이해하기 어려울 테니까요.

삶과 닿아있는 영화 만들기

작품에 대사가 많지 않은데도 상당히 감정적인 영화입니다. 감독님은 배우 경력도 있으신데 배우들에게 어떻게 디렉팅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작품에 등장한 모든 배우는 제 실제 친구들입니다. 저희는 서로 이야기를 많이 해요. 촬영장 내내 같은 집에 함께 살았어요. 같이 자고 같이 일어나고 같이 먹고. 그래서 따로 무언가를 ‘연기’하라고 할 필요가 없었어요. 제가 무엇을 원하는지, 제가 무엇을 느끼는지, 우리가 어떤 느낌을 찾고 있는지 모두가 다 알고 있었으니까요. 배우들이 다 알고 있죠.
그래서 이런 배우들과 함께 일하는 것은 아주 쉬웠습니다. 이전에도 인터뷰에서 말한 적 있는데 저희 작업은 삶에 대한 겁니다. 저희는 단순히 촬영한 게 아니라 함께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감독, 각본, 촬영, 제작 등 다양한 역할을 맡으셨습니다. 이렇게 모두 다 직접 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이렇게 만들려고 선택하진 않았어요. 그냥 운명처럼 이 길이 펼쳐진 것 같습니다.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물고기를 향한 설교〉가 초청되었는데 아쉽게도 감독님께서는 부산에 오시지 못했습니다. 이번 작품도 한국 극장에서 만날 수 있을까요? 이번에는 감독님도 함께 오셔야죠.

영화제마다 요건과 정책에 따라 운영되기 때문에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예를 들어 제 영화가 도쿄에서 개봉하면 부산에서는 상영하기 어렵습니다. 부산은 아시아 프리미어 작품을 찾으니까요. 내년에 제 작품은 너무 오래돼 상영이 어려울 수 있어요. 하지만 다른 영화제에서도 상영될 수 있지만 이건 전적으로 그 영화제의 재량에 달려 있습니다. 영화제 쪽에서 상영을 결정하면 기꺼이 참석할 의향이 있습니다.
제 영화에서 사운드는 정말 중요하기 때문에 저도 사람들한테 “제발 모니터로 보지 말아주세요”라고 자주 말하곤 합니다. 저는 극장 상영을 전제로 모든 사운드를 설계했고 극장에서 보셔야 더 좋은 영화적 경험을 함께하실 수 있습니다.

 

 


사진 제공 도쿄국제영화제 2023

 

 

* 《쿨투라》 2023년 12월호(통권 11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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