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회 도쿄국제영화제] 거인의 어깨 위에 서서
[제36회 도쿄국제영화제] 거인의 어깨 위에 서서
  • 설재원 에디터
  • 승인 2023.12.04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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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회 도쿄국제영화제가 11월 1일(수) 폐막을 끝으로 열흘간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재도약 원년을 선언하며 야심차게 시작했던 올해의 도쿄영화제는 최종 75,000여 명의 관객을 불러모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이는 지난해에 비해 15,000여 명이나 증가한 수치이다. 이치야마 쇼조 수석프로그래머는 “2년 전 재부임한 후부터 안도 히로야스 집행위원장과 노력했는데, 팬데믹 때문에 사람을 불러 모을 수가 없었다”며 “올해 많은 이들이 영화제를 찾아줘서 기쁘고, 2023년을 기점으로 더 많은 이들이 도쿄를 찾을 수 있도록 발벗고 뛰겠다”는 뜻을 전했다.

거인의 어깨:
오즈 야스지로 탄생 120주년 특별 프로그램

올해는 일본영화의 ‘거인’ 오즈 야스지로의 탄생 120주년이자 세상을 떠난 지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를 기념하여 ‘거인의 어깨The Shoulders of the Giants’라는 이름으로 오즈를 추억하는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먼저 현존하는 오즈의 영화 대부분을 4K로 복원하여 특별전으로 묶었다. 특히 이번 특별전에서는 〈못 말리는 꼬마〉(1929)의 21분 버전이 일본 최초로 공개됐다. 츠키야마 히데오 컬렉션에서 발견한 16mm 필름을 복원한 〈못 말리는 꼬마〉는 기존의 14분 버전에 없던 소년과 납치범 사이의 대화나 추격 장면 등이 포함되어 있다.

특별전과 함께 영화계의 주요 명사들이 참여한 특별 프로그램도 펼쳐졌다. 먼저 〈나가야 신사록〉(1947) 상영 뒤에는 칸영화제에서 영화부문을 담당하는 크리스티앙 죈 위원장과 베를린영화제 카를로 샤트리안 집행위원장의 토크 세션이 이어졌다. 이번 여름에 1946년과 1947년 칸 초청작을 전부 다시 봤다는 크리스티앙 죈은 “미국과 달리 유럽과 일본은 모두 전쟁의 파괴가 실재했는데, 로셀리니 등의 유럽영화 속 파괴된 도시에는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지만 〈나가야 신사록〉에 그려진 일본에는 전쟁의 잔혹함 속에 희망의 싹이 보이는 게 아주 인상적이다”고 밝혔다.

카를로 샤트리안 역시 “이탈리아 사람으로서 자연스럽게 로셀리니나 데시카 같은 네오리얼리즘을 떠올리게 된다”면서도 “작품에서 어린 아이가 중요하지만 스토리를 풀어가는 중심은 아닌 점이 (아이가 등장하는) 네오리얼리즘과의 가장 큰 차이인 것 같다”고 말한다. 또한 “네오리얼리즘은 배우부터 장소까지 모든 게 정돈되지 않은 상태인 것과 달리 오즈의 작품은 모든 게 정교하고 세밀하게 짜여 있다”며 “그의 스타일과 스토리는 지금 세대에게도 소구하는 바가 큰 것 같다”는 생각을 전했다.

〈안녕하세요〉(1959) 상영 뒤에는 일본과 미국, 중국을 대표하는 구로사와 기요시, 켈리 라이카트, 지아장커 세 감독의 토크 세션이 진행되었다. 〈안녕하세요〉는 영화제의 심사위원장이자 개막작 〈퍼펙트 데이즈〉의 감독인 빔 벤더스가 가장 좋아하는 오즈 영화이며, 세 감독과의 특별 프로그램을 진행할 작품으로 그가 직접 골랐다고 한다. 그는 상영에 앞서 등장하여 관객에게 짧은 인사말을 건네기도 했다

〈나가야 신사록〉 
크리스티앙 죈(좌)과 카를로 샤트리안(우).

〈안녕하세요〉는 오즈의 두 번째 컬러영화로, 그의 초기작인 〈태어나기는 했지만〉(1932)을 리메이크한 코미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는 날씨 얘기를 하거나 안부를 묻기만 하는 어른과의 공허한 대화에 염증을 느끼는 소년들의 모습이 나온다. 이들은 주변 이웃들을 침묵으로 대하며 가족과도 갈등을 일으키는데, 이러한 마찰을 코믹한 방식으로 그려냈다.

이치야마 쇼조 프로그래머는 “오즈는 초기작에서 어린이에 깊은 관심을 보여주었는데, 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한동안 일본 내 부유층의 모습을 조명하는 데 집중한다. 그러다 다시 어린이를 다룬 작품이 〈안녕하세요〉이고, 이 작품은 오즈의 필모그래피에서 중요한 기점”이라고 말한다.

〈안녕하세요〉©1959/2013 Shochiku Co., Ltd.

작품이 끝나고 세 감독이 무대에 올라 영화에 대한 감상과 자신이 좋아하는 오즈의 작품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먼저 구로사와 기요시는 “작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액션에 놀랐다”며 “이번 4K 복원이 오즈 스타일의 모든 특징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고 코믹한 분위기를 더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독일의 더글라스 서크가 떠올랐다는 켈리 라이카트는 “영웅이 없는 일상의 드라마 속 사소한 일들을 그려낸 〈안녕하세요〉의 완벽한 구성과 그림 같은 프레임이 놀랍다”고 감탄했다. 지아장커는 “작품 속 두 형제가 부모님에게 TV를 사라고 잔소리하는 것처럼, 자신 또한 어린 시절 텔레비전이 너무 갖고 싶었다”고 너스레를 떨며, “지금 같은 AI 시대에 오즈가 살아있다면 아마 로봇을 원하는 아이로 이야기를 설정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무네카타 자매들〉©1950 TOHO CO., LTD.

세 감독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오즈의 작품을 언급하고 이에 대한 대화를 이어갔다. 〈무네카타 자매들〉(1950)을 고른 구로사와 기요시는 이 작품이 일본 전통 가족의 해체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 특히 이 작품은 당대의 다른 작품에서는 볼 수 없는 어두운 면을 보여주는데, “관계가 단절된 여동생 부부가 이혼을 마주했을 때 벌어지는 폭력과 희열이 뒤섞인 순간은 오즈의 억제되지 않은 욕망이 엿보인다”고 강조하며 전쟁을 잊을 수 없는 모두의 내면에는 여전히 폭력이 내재함을 언급한다.

〈만춘〉©1949/2015Shochiku Co., Ltd.

지아장커는 오즈 야스지로의 ‘착한 딸/며느리’의 표상인 하라 세츠코가 출연한 첫 작품 〈만춘〉(1949)을 골랐다. 그는 오즈가 작품 속에 일본 경제의 변화상을 그려낸 점을 주목한다. “일본의 급속한 산업화는 가족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데, 본질적으로 이러한 변화는 실망과 슬픔 등 부정적인 감정을 통해 개인적으로 표현된다”며 “가족의 따뜻함만으로는 이겨내기 어려운 현대의 삶을 강렬한 정서로 그려냈다”고 말한다. 또한 “그의 작품은 언어를 뛰어넘는 힘이 있으며, 후세대 감독들에게 문학과 구분되는 영화의 힘을 보여주었다”며 존경심을 표했다.

〈동경이야기〉©1953/2017Shochiku Co., Ltd.

이번에 처음으로 일본을 찾은 켈리 라이카트는 “항상 오즈의 렌즈로 일본을 상상해 왔다”며 가장 좋아하는 오즈의 작품으로 〈동경이야기〉를 선택했다. 그는 “미국의 로드무비가 자신을 억누르는 요소들을 뿌리치고 진정한 자아에 대한 실존적 발견을 찾아 떠난다면, 오즈의 로드무비는 새로운 정체성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항상 가지고 있던 정체성을 확인시켜 준다는 데 특별함이 있다”고 말한다. 또한 “같은 종류의 숏과 같은 배우들이 바닥에 앉아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데도 그는 정말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며 미니멀리스트로서의 면모에 찬사를 보냈다.

왼쪽부터 구로사와 기요시, 켈리 라이카트, 지아장커.
〈쉬리〉 GV에 참여한 강제규 감독과 이치야마 쇼조 프로그래머.

한일 문화수교 25주년 특별 프로그램
〈쉬리〉와 〈러브레터〉

도쿄국제영화제는 한일 문화수교 25주년을 맞아 특별상영을 선보였다. 강제규 감독의 〈쉬리〉와 이와이 슌지의 〈러브레터〉가 그 주인공이다. 〈쉬리〉와 〈러브레터〉 모두 문화수교가 시작되던 무렵 양국에서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이치야마 쇼조 프로그래머는 “〈쉬리〉 이전에 일본에 알려진 한국영화는 임권택 감독으로 대표되는 예술영화들이었다”면서, “〈쉬리〉가 개봉되고 일본 전역에서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면서 한국영화에 대한 일본관객의 인식 자체가 바뀌었고 2000년대 초반 일본 영화산업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이번 특별 상영을 위해 강제규 감독 측의 협조를 얻고 한국영상자료원에서 DCP를 대여받아 간신히 상영을 확정할 수 있었다는 후문이다.

27일 이른 아침부터 〈쉬리〉가 상영되는 도호 시네마즈 샹테는 관객이 가득 찼다. 20여 년 전 극장에서 〈쉬리〉를 관람했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관람객은 물론, 한국영화에 관심 있는 젊은 층의 관객이나 고전영화 전문가들도 군데군데 보였다. 강제규 감독은 “2000년 개봉 이후 23년이 지난 오늘 일본극장의 스크린을 통해 〈쉬리〉를 여러분과 함께 보게 되어 가슴이 먹먹하다”며 상영 후 소감을 전했다. 그는 “저작권을 가지고 있던 삼성영상사업단이 폐업을 하면서 한국과 일본은 물론 전 세계 어디에서도 〈쉬리〉를 볼 수 없었는데 최근에 극적으로 저작권 문제를 해결했다”며 “내년부터는 다시 합법적인 방법으로 〈쉬리〉를 볼 수 있다”며, 독자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했다. 또한 GV 시간에는 올해 개봉한 〈1947 보스톤〉에 대한 관심과 질문도 이어졌다. 이에 “한국의 역사적인 소재를 다룬 작품을 해외에서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다”며 “결국 우린 이 이야기를 역사 그 자체보다는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보기 때문인 것 같다”는 답을 하기도 했다.

상영이 끝나고 극장 밖까지 팬미팅이 이어졌다. 상영작인 〈쉬리〉는 물론, 〈은행나무 침대〉와 〈태극기 휘날리며〉의 포스터를 들고 온 팬들은 사인을 받기 위해 히비야 스퀘어 한편에 길게 줄을 섰다. 강제규 감독의 인기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쉬리〉가 일본에서 개봉한지 23년, 〈태극기 휘날리며〉가 개봉한지 19년이 지났지만, 일본관객은 여전히 그를 잊지 않고 있었다.

〈너클걸〉©2023 AMAZON CONTENT SERVICES LLC or its Affiliates

한편 이번 영화제에서는 창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한일 합작영화 〈너클걸〉 상영을 계기로, ‘한일 영화제작의 미래’라는 이름으로 심포지엄이 열리기도 했다. 국내 제작사 크로스픽쳐스와 아마존 재팬이 손을 잡은 〈너클걸〉은 일본에서 한국웹툰을 영화화한 첫 사례이다. 작품 상영 후에는 ‘한일 영화 합작의 미래’를 주제로 제국호텔에서 심포지엄이 열렸다. 패널로는 창 감독과 촬영을 맡은 이시자카 타쿠로, 주연 배우 미요시 아야카와 크로스픽쳐스 김현우 대표가 참여했다.

〈2046〉 상영 후 양조위의 마스터클래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마스터클래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마스터클래스.

안도 히로야스 집행위원장은 “영화제에서 좋은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것만큼 전 세계 영화인들이 함께 대화하고 협력을 논의할 자리를 만드는 것을 핵심 목표로 설정”했으며, “특히 올해는 아시아 영화 산업에 집중하여 이와 같이 아시아 영화인들의 교류를 장려하는 자리나 마스터클래스 등을 여럿 준비했다”고 첨언했다. 올해에는 장이머우, 양조위, 쩐아인훙(베트남계 프랑스인) 등 아시아계 감독의 마스터클래스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이중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중국, 홍콩, 태국, 일본 등 아시아에서 영화를 공부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마스터클래스를 선보였다. 안도 히로야스 위원장은 “유럽영화를 보면 요즘에는 합작인 영화가 정말 많은데, 아시아영화는 그렇지 않다”며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하면 더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아시아 국가간의 공동작업은 더욱 장려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펼쳤다.

왼쪽부터 미즈카와 아사미, 배두나, 와시오 가요.
왼쪽부터 미즈카와 아사미, 배두나, 와시오 가요.

위먼 인 모션: 아시아 여성 영화인들의 대화

‘위먼 인 모션Women In Motion’은 문화와 예술 분야 내의 성인식 개선과 성평등을 위해 시작된 프로그램으로, 칸영화제 등 주요 영화제와 제휴하여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한다. 타츠타 아츠코 평론가의 모더레이팅으로 진행된 도쿄에서의 토크 세션은 한국과 일본의 배우 배두나와 미즈카와 아사미, 그리고 일본 프로듀서 와시오 가요가 참여하여 ‘한국과 일본의 영화 산업에서의 여성’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본격적인 세 사람의 대화는 “영화계의 주요 여성 이슈들을 다루는 ‘위먼 인 모션’이 도쿄영화제의 공식 프로그램으로 들어왔다는 게 큰 진일보인 것 같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인사말과 함께 시작했다. 이어 한일 양국은 물론 미국에서도 배우 활동을 한 경험이 있는 배두나 배우는 “정재은 감독님과 〈고양이를 부탁해〉를 찍을 때만 해도 한국에 여성 감독님이 정말 드물었고, 현장에서 남성 감독님이었으면 발생하지 않았을 마찰이 여성 감독님께는 종종 발생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고 입을 열었다. “요즘은 의식이 개선되어 성별보다는 직급을 중요시 한다”며 “최근 정주리 감독님과 여성 스태프가 많은 두 작품을 찍었는데, 정말 많이 발전했고 예전에 제가 느꼈던 걸 그 어떤 현장에서도 요즘은 느낄 수 없다”고 전했다. 또한 워쇼스키 자매와의 미국에서의 작업에 대해서는 “유교 문화권에서 살아온 제게 큰 공부가 되었다”며 “어떤 편견도 없고 모두가 평등했던 열린 분위기의 현장이었고 미국에서는 일하는 데 성별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미투운동에 대한 질문에는 “권력을 이용하여 누군가의 생계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정상이 아니고 불의를 당하면 목소리를 높여 이야기해야 한다”며 응원의 뜻을 전했다. 동시에 “반대로 예술작품에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을 과도하게 의식하여 정치적 올바름을 너무 강조하는 것도 지금이 과도기인 것 같다”고 언급하며 영화계가 계속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랐다.

미투운동이 한창일 때 미국에 있었던 와시오 가요 프로듀서는 “사실 오랫동안 저는 능력에 기반한 채용이라면 그 결과가 백인 남성으로만 구성되든 흑인 여성으로만 구성되든 상관 없다고 생각했다”고 고백한다. 이 문제에 대해 미국에서 대화를 나누며 충격을 받았다는 그는 자신의 생각을 바꿔준 한마디를 언급한다.

“오랫동안 백인 남성이 주요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소수 민족과 여성은 출발 선에 서지도 못했고, 오늘날까지 과거의 유산을 안고 있는 백인 남성과 이들을 비교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따라서 이제 여성과 소수 민족에게도 기회의 시간이 주어져야 하며, 그렇게 할 때 모두가 같은 출발선에서 만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는 이 말에 크게 공감을 받았으며 이 말대로 빠르게 변화하는 미국 산업에 놀랐다고 한다. 일본은 변화를 받아들이는 데 취약하다며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미국의 진정한 강점이고 요즘은 가까운 한국 영화산업에서도 배울 게 많기 때문에 지금 우리영화 산업은 다른 나라의 장점을 섞어서 배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극적인 변화를 수용하지 않는 게 일본인의 특징인 것 같다”는 미즈카와 아사미는 미투운동 이후에 일본의 영화 산업이 변화한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일본은 기준을 좀 더 높게 잡을 필요가 있다”며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더 듣고 이들이 원하는 환경이 조성될 때 미투운동 그 이상의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미즈카와 아사미는 올해 처음으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경험을 전하기도 했다. 미즈카와 아사미는 Q&A 때 한국관객의 질문 수준에 놀랐다며 “한국 관객은 기본적으로 영화에 요구하는 기준이 일본보다 높고, 영화를 깊게 이해한다”고 말한다. 이에 배두나 배우는 “한국에서는 영화관을 가는 게 일상화 되어 있고, 특히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영화를 특별히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한국 관객이) 영화를 많이 보니까 영화를 많이 알고, 한국 관객 수준이 점점 더 높아지는 만큼 만드는 저희도 그 수준에 맞게 만들려다 보니 좋은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것 같다”고 답했다.

〈고지라-1.0〉
〈고지라-1.0〉©2023 TOHO CO., LTD.

폐막작 〈고지라-1.0〉와 그랑프리 〈설표〉

열흘간의 축제를 마무리하는 작품은 야마자키 타카시의 〈고지라-1.0〉이다. 고지라 탄생 70주년 기념작이자 시리즈의 30번째 실사영화인 이번 작품은 전쟁이 끝난 뒤 모든 것이 제로가 된 일본에 고지라가 나타나 더 큰 절망을 안겨준다는 의미로 ‘마이너스 원’이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야마자키 타카시가 연출을 맡은 만큼 수준 높은 CG로 무서운 고지라를 만들어 냈으며, 반전反戰의 메시지를 담고 있어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벌어지는 지금 큰 감동을 안겼다.

〈설표〉
〈설표〉

한편 폐막식에서는 〈설표雪豹, Snow Leopard〉가 최고상인 그랑프리의 영예를 안았다. 심사위원장인 빔 벤더스는 그랑프리뿐만 아니라 여섯 개 부문 모두 만장일치로 수상 결과가 정해졌다고 밝혔다. 올해 베니스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에서 첫 선을 보인 〈설표〉는 지난 5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티베트 감독 페마 체덴(완마 차이단)의 마지막 작품이다. 〈설표〉는 아홉마리의 양을 죽인 하얀 표범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갈등을 다룬다. 암울한 환경을 배경으로 사랑과 낙관주의를 보여주는 이 작품은 승려와 표범을 통해 인간과 동물의 공생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며 티베트 사람들의 삶과 사고방식을 보여준다.

심사위원특별상은 베니스영화제 호라이즌 섹션에서 프리미어 상영을 한 기 나티브와 자흐라 아미르가 공동 연출한 〈다다미Tatami〉가 차지했다. 〈다다미〉는 지난해 〈성스러운 거미〉로 칸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자흐라 아미르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기며 2관왕을 달성했다. 이란의 국가대표 유도 선수가 이스라엘 선수와의 대결을 피하기 위해 정부로부터 기권 명령을 받는 이야기를 다룬 〈다다미〉는 이스라엘감독(기 나티브)과 이란감독(자흐라 아미르)이 공동연출한 최초의 장편영화이다.

감독상은 경쟁부문에 이름을 올린 세 명의 일본 감독 중 한 명인 〈정욕正欲, (Ab)normal Desire〉의 기시 요시유키가 차지했다. 아사이 료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관객상도 받았다. 남우주연상은 〈록산나Roxanna〉의 야스나 미르타마스브가, 예술공헌상은 가오 펭의 〈롱 샷A Long Shot〉이 받았고, 지난해 부활한 구로사와아키라상은 젊은 감독인 중국의 구 샤오강과 인도네시아의 몰리 수리아에게 주어졌다.

안도 히로야스 집행위원장.
안도 히로야스 집행위원장.

이치야마 쇼조 수석프로그래머는 도쿄영화제는 젊은 감독들을 지원하는 역할에 집중하려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도쿄영화제가 더욱 집중하고 있는 것은 영화제의 지원이 필요한 젊은 감독들의 좋은 영화를 발굴하는 것”이며 “예를 들어 올해 경쟁부문에 이름을 올린 일본의 세 작품은 해외에 잘 알려지지 않은 감독들의 작품인데, 도쿄를 발판으로 세계 다른 영화제에 많이 소개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몇 년 동안 벼르고 있던 포스트팬데믹의 첫 도쿄영화제는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사실 팬데믹 이전에도 도쿄영화제는 한동안 침체기에 빠져 있었다. 도쿄영화제는 팬데믹이 잦아든 지금을 기회로 반전을 꾀했고, 오랜만에 활기를 되찾았다. 이번 영화제는 영화 프로그램과 부대행사, 관객 참여 등 여러 면에서 좋은 성적표를 받았는데, 이중 가장 큰 수확은 수치로는 설명할 수 없는 ‘축제다운’ 분위기를 형성한 점이다.

영화제 기간 중 안도 히로야스 집행위원장은 한국에서 온 내게 도쿄영화제가 부산처럼 많은 영화인들에게 만남의 장소로 활용되면 좋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의 염원이 모두에게 전달되었는지 올해는 확실히 예년에 비해 더욱 친근한 분위기 속에서 많은 이들이 서로 교류하며 축제를 즐겼다. 그의 바람대로 앞으로 도쿄영화제가 아시아 영화인들이 서로 교류하고 작품을 세계에 알리는 좋은 소통 창구 역할을 하길 기대해 본다.

 


사진 제공 도쿄국제영화제 2023

 

* 《쿨투라》 2023년 12월호(통권 11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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