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르자국제도서전] 중동에서 만난 유재하의 팬: 2023 샤르자국제도서전 취재기
[샤르자국제도서전] 중동에서 만난 유재하의 팬: 2023 샤르자국제도서전 취재기
  • 송석주(영화평론가, 이투데이 문화부 기자)
  • 승인 2023.12.04 17: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랍에미리트UAE는 7개의 토후국으로 이뤄진 연방국가다. 샤르자는 두바이, 아부다비에 이어 세 번째로 큰 토후국인데, UAE의 ‘문화 수도’로 불린다. 샤르자는 유네스코로부터 2014년 ‘이슬람 문화 수도Capital of Islamic Culture’, 2019년 ‘세계 책의 수도World Book Capital’로 선정되는 등 아랍 문화의 중심지다.

1982년 셰이크 술탄 빈 모하메드 알 카시미 국왕에 의해 시작된 샤르자국제도서전은 아랍권 최대 도서전이다. 올해 한국은 샤르자국제도서전에 주빈국으로 참가했다. 지난 6월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의 주빈국이 샤르자였는데, 일종의 ‘답방’인 셈이다. 한국에서 14명의 기자들이 도서전 취재를 위해 UAE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샤르자국제도서전이 열린 ‘엑스포 센터 샤르자’ 내부 모습.
샤르자국제도서전이 열린 ‘엑스포 센터 샤르자’ 내부 모습.

도서청과 박물관청이 있는 나라, 샤르자

샤르자에서의 첫 일정은 지혜의 집House of Wisdom과 이슬람 문명 박물관 취재였다. 지혜의 집은 샤르자가 2019년 유네스코 선정 ‘세계 책의 수도’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다. 이번 도서전 기간에 한국문학번역원은 지혜의 집에 방문해 한국문학 및 번역서 39종을 기증하기도 했다.

이날 기증식에는 정호승, 김승희, 김언수 등 한국 작가들도 참석했다. 곽효환 번역원장은 “샤르자국제도서전의 주빈국 참가를 계기로 이후 아랍 권역에서 개최되는 다양한 국제도서전과 문학 축제에 참여할 예정”이라며 “이번 기증을 통해 아랍어권 독자층의 저변을 확대하고 한-아랍어권 국가 간 문화 교류가 활발해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지혜의 집은 샤르자에서 가장 유명한 도서관이다. 도서관에 방문한 한국 기자들에게 마르와 알 아크루비Marwa Al Aqroubi 관장은 “집, 직장, 학교 이외에 지역민들에게 중요한 제3의 공간을 제공한다는 콘셉트”라며 “단순한 도서관이 아니라 가족이 와서 함께 즐기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샤르자국제도서전 주빈국관 전경.

도서관은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중시하는 공간으로 디자인돼 있었다. 특히 도서관 내부에 있는 숲처럼 조성된 코치아르COTIAR라는 공간은 외부와 연결된 독특한 구조의 공간이었다. 바깥에 있는 새들이 코치아르로 들어와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아크루비 관장이 기자들에게 공간을 설명할 때도 새들의 평화로운 지저귐이 끊이지 않았다.

지혜의 집의 또 다른 특징은 ‘시끄러운 도서관’이라는 점이다. 샤르자 국민들의 ‘제3의 집’ 역할을 한다는 아크루비 관장의 말처럼, 지혜의 집에는 성인뿐만 아니라 아동·청소년을 위한 특별한 공간이 마련돼 있었다. 이곳에서 부모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기도 했는데, 일반적인 도서관과는 다른 모습에 놀랐다.

지혜의 집 내부 모습.

지혜의 집을 방문한 뒤 이슬람 문명 박물관으로 향했다. 경제에 방점을 찍은 아부다비와 두바이와는 달리 샤르자는 문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다른 토후국들에 비해 이슬람 문화가 잘 보존돼 있다. 도서청과 박물관청이 있을 정도다. 특히 이슬람 문명 박물관은 아랍의 역사와 문화를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지혜의 집과 함께 샤르자의 명소 가운데 하나다.

이슬람 문명 박물관에서도 ‘도서 강국’으로서의 샤르자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제본Bookbinding 기술이다. 제본이란 인쇄된 낱장 종이를 순서대로 추려서 책으로 만드는 일을 말한다. 박물관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샤르자에서는 이슬람 경전인 쿠란qur'ān을 잘 보관하기 위해 일찍이 제본 기술이 발전했다.

유재하 씨의 노래를 좋아한다는 웨즈 단 씨.

‘유재하의 팬’이라는 1999년생 샤르자인

출장 2일차인 11월 1일, 샤르자국제도서전 개막식이 열렸다. 윤철호 대한출판문화협회장은 개막식 축사에서 “이번 주빈국관 한국의 테마는 ‘무한한 상상력’이다. 1.4㎏의 작은 뇌를 통한 인간의 상상력은 우리 시대에 필요한 사회적 변화에 영감을 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이라고 말했다.

윤 회장의 말처럼 올해 주빈국관 주제는 ‘무한한 상상력Unlimited Imagination’이었다. 주빈국관에서는 도서 전시, 작가와의 대화, 출판인 학술대회 등을 포함해 공연, 요리, 전통문화 체험 등 다채로운 행사들이 열렸다. 정호승, 김애란, 손원평 등 작가 7명의 작품이 아랍어와 영어로 전시돼 눈길을 끌었다.

취재 중 주빈국관을 열심히 둘러보는 한 샤르자인을 만났다. 그의 이름은 웨즈 단. 영어로 인사를 건넸는데, 유창한 한국말을 구사해 깜짝 놀랐다. 1999년 샤르자에서 태어난 단 씨는 “유재하의 열렬한 팬”이라고 말했다. 방탄소년단BTS도, 블랙핑크도 아닌 낯선 중동 땅에서 유재하의 팬을 발견하게 될 줄은 몰랐다.

단 씨는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라는 노래를 가장 좋아한다”며 “리듬도 그렇지만 가사가 너무 좋아서 계속 듣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잔나비, 심규선의 노래도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한국어를 배우게 된 계기에 관해서 그는 “두바이에 한국 유학생들이 많다. 한국 친구들과 친해지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배우게 됐다”고 답했다.

단 씨 외에도 한국에서 예림당의 ‘Why? 시리즈’를 수입해 아랍어로 번역·출간하고 있는 압두르 하만 씨, 조아라 작가의 『로켓보이』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는 알라지아 할리파 씨 등 K-도서에 큰 관심을 보인 샤르자인들을 만났다. 그들은 K-도서의 강점으로 ‘재미’와 ‘정보’, ‘감동’을 모두 놓치지 않는 점을 꼽았다.

5박 6일의 출장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문화에는 국경이 없다’는 격언을 다시 한번 생각했다. 이 말은 오래됐을 뿐 낡지 않았다. 내 생에 유재하의 노래에 매료된 1999년생 아랍인을 만나게 될 줄 몰랐다. 단 씨와 메일 주소를 교환했는데, 그에게 샤르자 노래 한곡을 추천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곡 역시 내 취향일 것 같다.

 


송석주 제15회 쿨투라 신인상 영화평론 부문에 당선됐다. TBN 〈달리는 라디오〉 〈낭만이 있는 곳에〉 등 영화 코너에 고정 게스트로 출연했다. 한국기자협회 ‘2023 기자의 세상보기’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현재 이투데이 문화부 기자로 일하고 있다.

 

* 《쿨투라》 2023년 12월호(통권 114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