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삶에 대한 사유: 당신의 독자적인 슬픔을 존중해
[북리뷰] 삶에 대한 사유: 당신의 독자적인 슬픔을 존중해
  • 박재희 인턴기자
  • 승인 2023.12.05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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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희 『당신의 독자적인 슬픔을 존중해』

영문학사에 족적을 남긴 작가 E.M. 포스터는 장편소설 『하워즈 엔드』에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는 엄청난 노력과 용기를 기울여서 오지도 않을 위기에 대비한다. 가장 성공한 인생은 산이라도 옮길 만한 힘을 낭비한 인생일 것이다. 그리고 가장 성공하지 못한 인생은 준비 없이 기습당하는 인생이 아니라, 준비하고 있는데 기습이 닥치지 않은 인생이다.’ 예술은 인생을 기습한다. 따라서 예술가로 살기란 달리 보면 ‘산이라도 옮길 만한 힘을 낭비한 인생’일 것이다. E.M. 포스터는 이 편이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데 기습이 닥치지 않는 인생’보다 낫다고 평하며, 저자도 그의 통찰에 동의한다. 그 또한 준비 없이 예술에 기습당했으므로. 그는 늘 문학하는 마음으로 영화를 본다. 우리가 느끼는 모든 정서는 그 자체로 독자적이고 존중받아 마땅하며, 다름을 같음으로 환원하려는 폭력이 만연한 시대일수록 그 가치는 빛나기에.

우리는 예술을 탐식하는 과정에서 집요한 사고를 하게 된다. 예술은 복잡한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넓고 깊은 사유를 가능케 하는 것이야말로 예술의 순기능이 아닐까.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레 미제라블〉을 비롯해 201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 개봉한 국내외 영화들을 통해 독자들이 다양한 주제에 대해 깊은 사유를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저자가 풀어내는 영화에서의 문학하는 마음을 음미하며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는 순간, 예술에 빠져들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은 인생을 기습하므로.

모든 것을 의심한 끝에 사유하는 주체를 발견해 낸 데카르트와 다르게, 저자는 아직 아무것도 결론 내리지 못하였다. 심지어는 영영 결론 낼 수 없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그러나 출구 없는 미로에 엔딩은 없기에 오히려 일생을 예술과 동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기도 한다. 예술계에 한 획을 긋지 못한 채 잊히게 될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그와 상관없이 저자는 계속해서 예술을 논할 것이다. 예술이 선사한 근사한 언어를 씹어 삼켜 이에 담긴 창작자의 사유로 공글린 생각을 삶과 연결된 언어로 풀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여긴다. 예술에 관해 말하거나 쓰는 일이 삶의 전부가 될 정도로 삶과 일을 일치시켰기 때문이며, 다시 말해 저자에게는 예술을 평론하는 것이 곧 인생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저자가 독자의 감정을 살피고자 하는, ‘문학하는 마음’으로 써 내려간 수많은 영화의 메시지는 우리로 하여금 사유하게 한다.

그러나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그들의 관계는 그 안에서 변화한다. 사랑과 우정이 명확하게 구별되지 않는 사건도 생긴다. 시즈오가 제안한 캠핑이 그렇다. 사치코는 승낙. 반면 ‘나’는 거절한다. 시즈오와 사치코만 캠핑을 가도 괜찮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하는 순간 ‘나’의 마음이 어땠는지는 확언하기 어렵다. 유추해 볼 수는 있다. ‘나’와 사치코가 사귀기 시작할 무렵의 에피소드다. “질척거리는 사이는 싫어.” 사치코의 말에 ‘나’는 동의를 표했다. 실제로 ‘나’는 사치코에게 질척거리는 언행을 한 적이 없다. 그런데 이쯤에서 곰곰 물어야 할 점이 있다. 상대에게 연연하지 않는 태도, 최소한의 감정 소비가 그를 행복하게 했을까?
- 78쪽 「여름은 고독하고 찬란한 청춘」 중에서

똑같은 말과 행동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그것을 규정하는 용어가 달라진다. 이를테면 ‘폭동’과 ‘봉기’가 그렇다. 권력(자)의 입장에서는 자기에게 복종하지 않고 거리로 뛰쳐나온 사람들의 모습을 폭동이라 칭할 테고, 거리로 뛰쳐나온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권력(자)에 대항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봉기라 칭할 테다. 그러면 1967년 디트로이트에서 실제 있었던 흑인들의 집단행동은 뭐라고 불러야 할까. 사회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폭력 행위인 폭동인가? 아니면 부당한 지배(자)에 맞서 떼 지어 일어난 봉기인가? 영화 〈디트로이트〉는 관객으로 하여금 우선 이런 물음을 갖도록 한다.
- 180쪽 「달빛에 맞설 수는 없어」 중에서

허희 작가.

저자는 시를 읽는 마음으로 영화를 보았고, 시적 자아로 영상 언어를 탐식했다며 124편에 가까운 영화를 어떻게 읽어 내려갔는지 살펴볼 수 있게 한다. 테크니컬한 영화학적 시각이 아닌 영상 언어의 특질을 탐색하는 방식으로 영화에 접근함으로써 작품 수용의 범위를 확장시킨다. 그럼으로써 수많은 영화 가운데 양질의 추천작을 엄선하는 이유를 거론하는 큐레이션 기능을 겸한다. 소설가 보후밀 흐라발의 말처럼, 자기 자신으로 인해 발생하는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여타 평범한 고독과 다르게 조용한 법이 없다. 저자의 고독 한가운데에는 그동안 쌓인 언어들이 웅성댄다. 이 책은 고독을 탐색한 결과물이므로 감독과 영화를 설명하는 것에 그 목적을 두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저자 혼자만의 공상으로 그치지도 않는다. 언어행위는 무언가가 지금 여기에 없음을 자각함으로써 그것이 존재했고, 여전히 존재함을 증언하는 일이기에 독자가 느끼는 고유한 서정에 가닿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에는 이러한 저자의 고독과 함께 ‘문학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당신의 독자적인 슬픔을 존중한다는 메시지가 스며 있다.

스크린 속의 세상과 스크린 밖의 세상을 연결시키며 세계의 이면을 바라본 저자는 두 세계를 동시에 사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고 전한다. 그렇게 양쪽을 긍정치는 못해도 존중할 수는 있게 되었다며. 당신의 심연까지 닿길 바라는 이 책이 우리 삶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비춰주는 거울의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한다.

 


 

* 《쿨투라》 2023년 12월호(통권 11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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