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대하사극부터 팩츄얼 드라마까지, 안방을 지배한 이순신 드라마
[이순신] 대하사극부터 팩츄얼 드라마까지, 안방을 지배한 이순신 드라마
  • 정권영(시나리오 작가)
  • 승인 2024.01.02 12: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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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의 매력이 무엇이냐? 결과를 알고 봐도 재미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순신 장군이 한산도와 명량에서 일본군을 크게 이겼고, 노량에서 장렬하게 전사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순신이 나오는 드라마와 영화를 보기 위해 TV 앞에 앉고, 극장에 간다. 이번에 필자와 함께 만나볼 콘텐츠는 바로 이순신이 등장하는 TV 사극 드라마다. 긴 호흡과 다음 회차를 기다리는 재미는 드라마를 통해서만 느낄 수 있다! 그럼 지금부터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임진왜란과 이순신을 재창조한 드라마 네 작품을 만나보겠다.

조선왕조 오백년 「임진왜란편」
Not Old But Classic

〈조선왕조 500년〉은 1983년부터 1990년까지 방영된 대하사극으로, 8년이라는 방영 기간 동안 조선 역사 500년을 전부 아우른다. 요즘 시리즈물로 비유하자면 「임진왜란」편은 시즌 5에 해당한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38년 전에 방영된 작품이다. 그런데 촌스럽지 않고 고전적이다. 당대에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부은 제작진의 노력이 뼛속까지 느껴진다. 고증은 당연하고, 볼거리는 더 훌륭하다. 제작진은 이 작품이 조일전쟁을 다뤘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특수 촬영 연구소에 도움을 구했다. 양국의 기술협업으로 탄생한 미니어처 거북선 해상 전투신은 진심 눈이 시원해질 정도로 청량하고 세련됐다. 뿐만 아니다. 폭탄이 팡팡 터지는 순수 아날로그 육상 전투신은 크리스토퍼 놀란 영화를 방불케 한다. 사극의 거장 이병훈 감독의 손때가 묻은 이 명작을 감상하실 독자분들께 당부드릴 게 한 가지 있다. 지나치게 설명적이라 조선왕조실록을 읽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부디 그때 그 시절의 라떼맛은 감안하고 봐주시길 바란다. OTT플랫폼 wavve에는 〈조선왕조 500년〉 「한중록」편이 서비스되고 있다. 곧 「임진왜란」편도 감상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니 조금만 기다려보자.

불멸의 이순신
온 국민이 이순신 장군이었다.

〈불멸의 이순신〉은 이순신 장군의 유년부터 말년까지 다룬 대하사극이다. 필자에게 이 드라마를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하늘에만 존재했던 이순신 장군을 땅으로 끌어내린 작품이라고. 비단 배우 김명민의 연기력 때문만은 아니다. 〈불멸의 이순신〉은 여타 다른 사극과는 달리 두 가지 소설 작품을 기반으로 쓰였다. 하나는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 다른 하나는 김탁환 작가의 『불멸』이다. 극의 서사는 『불멸』을 따라간다. 『칼의 노래』는 전쟁에 임하는 이순신 장군의 심경을 다룬 작품인 만큼 서사보다는 캐릭터의 내면 흐름을 담당한다. 제작진은 두 가지 원작을 선정함으로써 역사와 허구가 조합된 극의 재미와 입체적인 주인공을 창출했다. 드라마 속 이순신은 보기 힘들 정도로 원리원칙주의자다. 군율을 어긴 장졸들을 가차 없이 벤다. 상관의 명이 원칙과 이치에 어긋나면 대들기를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남몰래 운다. 아끼는 장졸들을 잃었을 때, 어머니와 막내아들을 잃었을 때, 자신의 명을 받고 명나라 장수를 구명하다 전사한 사촌형을 잃었을 때, 그는 혼자 뒷산이나 바닷가에 숨어 눈물을 흘린다. 한국인들이 상상해왔던 하늘이 내린 지장이 아니다. 사람을 아끼고 패전을 죽기보다 두려워하는 장수일 뿐이다. 시청자들은 인간 이순신을 따라가며 울고, 웃고, 승리의 전율을 느꼈다. 모두가 이순신이 되는 순간이었다.

징비록
국난을 책임지려는 재상 VS 국난을 피하려는 왕

국보 제132호로 지정된 『징비록』은 조선 선조 시기의 재상 류성룡이 벼슬에서 물러난 뒤 7년 전쟁의 전황을 기록한 책으로, 여기서 “징비懲毖”란 ‘지난 잘못을 경계하여 앞으로의 일을 다스린다’는 뜻이다. 『징비록』을 바탕으로 제작한 이 드라마는 여타 왜란과 이순신을 다룬 콘텐츠와는 궤를 달리한다. 주요 갈등축이 조선 대 일본이 아닌, 재상과 임금이다. 배우 김상중과 김태우가 열연한 류성룡과 선조가 주인공이다. 위기를 극복하고자 동분서주하는 재상은 위기를 피하려고만 하는 왕을 다그치고 혼낸다. 왕은 말을 안 듣고 땡깡 부리다가 전황을 더 악화시킨다. 이게 두 캐릭터의 케미이자 드라마 〈징비록〉을 보는 재미이다. 작품은 조선 조정의 무능한 대응과 재상 류성룡을 비롯한 관군·의병들의 활약을 포괄적으로 담아낸다. 극의 주요 동선이 류성룡과 선조, 육전 전황을 중심으로 향하기 때문에 이순신과 수군의 활약에 대한 분량은 상당히 적다. 〈징비록〉 속의 이순신은 명백한 조연으로 소모되기에 이순신을 기대한 시청자들에게 다소 아쉬움을 줄 수는 있다. 마지막으로 드라마 〈징비록〉은 위정자들이 국난을 극복하는 데 있어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는지 짚어주는 작품이다. 생각할 거리를 많이 제공하니 꼭 한 번 감상해보시길 권한다. 정치인들은 더더욱.

임진왜란 1592
선택과 집중, 연출자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

〈임진왜란 1592〉는 〈KBS스페셜〉이라는 시사교양프로그램으로 편성된 작품이다. “팩츄얼 드라마”를 표방하며 다큐멘터리와 드라마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를 동시에 추구한 듯하다. 그런데 우리 독자들께 한 가지 일러둘 게 있다. “팩츄얼”이라는 단어에 속아 사실적이고 화려한 해상전투신을 기대한다면 실망이 클 것이다. 한층 진보된 CG와 VFX기술을 활용해 만든 전투신이지만 앞서 소개한 〈조선왕조 오백년〉보다 올드하다. 적은 예산과 5회차라는 짧은 회차, 연출자는 당연히 타이틀처럼 “임진왜란” 전체를 포괄할 수 없다. 연출자는 철저히 하고 싶은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건 바로 거북선과 격군들의 이야기이다. 적진에 단독으로 돌격하는 거북선 돌격장과 격군들이 느끼는 긴장과 공포, 두려움을 매우 실감 나게 담아낸다. 드라마 5회차 중 2회차가 이들에게 할애되며 그 가치는 충분하다. 그 외에도 우리가 기존의 왜란을 다룬 콘텐츠에서 보기 힘들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생애와 명나라군의 활약상, 그리고 전쟁을 맞닥뜨리는 일본 백성들의 심경까지 보여준다. 현명한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작품은 흥행에 성공했다. 아! 이 작품은 배우 최수종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자칫하면 교육 홍보 영상으로 전락할 수 있는 “팩츄얼 드라마”를 ‘최순신’이 드라마로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서사는 끊임없이 변주하고, 우리는 앞으로 더 많은 이순신 장군과 만나게 될 것이다. 북방에서 활약한 이순신도 나올 수 있고, 퇴마사 이순신도 나올 수 있다. 또 모르지 않나?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에서 우주선을 지휘하는 이순신도 나올지!

 

 


정권영 서강대학교 영상대학원 MFA 석사. 2019년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시나리오공모전 우수상 수상. 2019년 충주무예시나리오공모전 대상 수상.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 정회원

 

 

* 《쿨투라》 2024년 1월호(통권 11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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