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민 감독] “10년 작업 마무리 안도… 모든 역량 쏟아부었다”
[김한민 감독] “10년 작업 마무리 안도… 모든 역량 쏟아부었다”
  • 라제기(한국일보 영화전문기자)
  • 승인 2024.01.02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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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2014)은 기념비적인 영화다. 1,760만 명이 극장에서 봤다. 역대 최고 기록이다. 국민 영화라는 수식이 붙어도 무방하다. 후속작인 〈한산: 용의 출현〉(2022)이 8년 만에 선보여 극장 관객 726만 명을 기록했다. 코로나19 여파로 극장 관객이 쪼그라든 상황에서 나온 흥행 성적표다. 1,000만 영화라 다름 없다는 말이 영화계에서 나왔다. 지난 12월 20일 개봉한 〈노량: 죽음의 바다〉는 이순신 3부작의 마침표를 찍는 작품이다. 관객 수로는 〈명량〉을 뛰어넘기 힘들지라도 완성도는 〈명량〉 이상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이순신 3부작’의 연출자는 김한민 감독이다. 한 감독이 역사적 한 인물을 영화 3편에 걸쳐 묘사한 것은 한국 영화사에 유례가 없다. 〈명량〉 촬영이 시작된 2013년부터 계산하면 10년이라는 시간이 꼬박 걸렸다. 김 감독은 다큐멘터리 영화 〈명량: 회오리 바다를 향하여〉(2015)를 연출한 거 이외에는 3부작의 메가폰만 잡았다. 김 감독에게는 인생을 건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개봉을 앞두고 12월 19일 오후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김 감독을 만났다. 그는 “〈노량〉 촬영 당시 코로나19 대유행이 가장 큰 고비였다”며 “3부작을 완성하고 무사히 개봉까지 할 수 있게 돼 안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노량〉은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전투이자 임진왜란(1592-1598) 최후의 싸움인 노량 해전(1598년 12월 16일)을 담고 있다. 영화는 153분 중 100분을 전투 장면에 할애하며 왜선 450척 가량이 격파된 425년 전 남해 겨울 밤바다의 승전을 온전히 전하려 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음으로 철군을 결정한 왜군의 상황, 전쟁이 끝났다는 판단에 병력 손실 없이 퇴로를 열어주려는 명나라의 입장, 재침략을 막기 위해선 왜군을 섬멸해야 한다고 여기는 이순신(김윤석 분) 장군의 신념을 보여주며 당시 정세를 전달하기도 한다.

〈명량〉에선 최민식이, 〈한산〉에선 박해일이 각각 이순신 장군을 연기했고, 〈노량〉에선 김윤석이 이순신 장군 역을 맡았다. 어떤 차이점을 보여주고 싶었나.

“〈명량〉의 이순신 장군은 용장(용맹한 장수)이고, 〈한산〉의 이순신 장군은 지장(지혜로운 장수)이다. 〈노량〉에선 현장(현명한 장수) 이순신 장군을 보여주고 싶었다. 명나라의 협조를 구하면서도 자신의 입장을 관철해야 하고, 아들 면(여진구 분)이 왜군에 죽임 당하고도 복수심을 누르려는, 장군의 현명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김윤석은 아들을 잃고도 전쟁 종결에 집중하려는 장군의 고뇌를 잘 표현해낼 배우라 여겼다.”

이순신장군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 같다. 10년 가량 시간을 들여 3부작에 매달린 이유는 무엇인가. 〈노량〉은 이전 2편과 달리 전투 장면이 유난히 길다.

“내가 어떤 막 불굴의 의지로 이순신 장군에 천착한 건 아니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이순신 장군이 치른 각 해전은 각각 의미가 있어 따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흔들린 적은 없고 어떻게 돌파해 나가야 할까 생각만 있었던 것 같다. 〈노량〉이 특별했던 건 해전 장면이 100분이나 된다. 이순신 장군은 다들 끝난 전쟁이라고 하는 마당에 왜 그렇게 치열하고 집요하게 마지막 전투에 임했나가 내겐 큰 화두였다. 해전 장면에서 답을 꼭 얻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노량〉을 만드는 의미가 있다고 봤다. 장군님 어록과 여러 기록을 살펴보고 100분 해전을 설계했고, 그 해전을 어떻게든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구체적으로 이순신 장군의 어떤 면모에 사로잡혔나. 이순신 장군하면 애국심을 떠올리게 되는데, 이 시대 그를 새삼 돌아봐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조선은 500년 동안 유교 사회였다. 500년이라는 긴 시간 인간의 품성에 천착하고 집중했던 지역이나 민족은 전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어렵다. 조선은 이상적인 군자상을 추구하고 자기수행과 완성에 노력했던 사회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이상을 구현한 것은 문인이 아니라 무인 이순신 장군이었다. 장군이 보여줬던 실천적인 군자의 면모는 참 귀한 거라 생각한다. 이순신 장군을 구국의 영웅으로 볼 수 있으나 조선사회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인물상이기도 하다. 나는 처음엔 역사와 전쟁사 속 이순신 장군을 보다가 조선 유교라는 측면에서 장군을 보기 시작했다. 이순신 장군 같은 인물을 통해 우리가 대동단결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이 또 애국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서울의 봄〉이 크게 흥행하고 있고, TV에서는 〈고려 거란 전쟁〉이 방영 중이다. 영화와 방송 양쪽에서 시대물 열풍이 불고 있다. 이를 보는 마음이 좀 남다를 듯하다.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서울의 봄〉에서는 옛날 무인이라고 할 군인들이 비굴하고 비겁한 모습을 보인다. 수백 년 전 나라를 위해 헌신한 이순신 장군을 떠올려 보면 참 아이러니하다. 〈서울의 봄>을 보며 생긴 괴로운 감정, 울분을 〈노량〉을 보며 조금이라도 푸는 것도 좋은 관람 방법이라 본다.”

해전 장면 100분은 〈노량〉의 압권이다. 군선 1,000여 척이 진을 나눠 해전에 나서는 장면, 함대와 함대가 부딪히는 모습, 거북선이 적진을 교란하는 대목, 배 안에서 펼쳐지는 백병전 등이 시선을 빼앗는다. 이전 한국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스펙터클이다.

"노량해전을 재현하기 위해 평창동계올림픽이 열렸던 강원 강릉시 강릉빙상경기장에 세트를 짓고 〈노량〉을 촬영했다. 실제 판옥선 크기의 배를 만들어놓고 전투 장면을 빚어냈다. 영화 속 바다는 거의 모두 컴퓨터그래픽CG으로 만들어졌다. 물 위에 배를 띄우지 않아 여러 장비들을 활용해 안정적으로 촬영을 할 수 있었다. 노량해전은 이순신 장군이 유일하게 밤에 치른 전투다. 밤과 낮 장면을 수시로 전환하며 촬영을 하기 위해선 넓은 실내공간이 필요했다. 강릉빙상경기장은 〈노량〉 촬영을 위한 최적의 장소였다. 〈한산〉의 해전 역시 이곳에서 만들어졌다."

〈명량〉 제작 당시 기술적인 문제로 만들지 못했던 장면을 〈노량〉에서 보여주는 대목이 있는가. 〈명량〉 촬영 때와 비교하면 어떤 점이 기술적으로 진보했는가.

“〈노량〉에서 풀어낸 모든 액션이 〈명량〉 촬영 때는 불가능했다고 보시면 된다. 특히 밤에 벌어지는 해전 액션 장면은 〈명량〉 때는 도저히 찍을 수 없었다. 함대와 함대가 엃기고설키면서 부딪히는 장면 역시 〈명량〉 만들 때는 불가능했다. 기술적으로도 부족했고 자본적으로도 부족했고 또 그걸 풀어내는 노하우로도 부족했다. 〈명량〉과 〈한산〉을 거치면서 〈노량〉에서 비로소 가능해진 점이 매우 많았다. 〈명량〉 때는 LED조명을 많이 쓸 수 없었다. 하지만 〈노량〉 촬영 때는 LED조명을 대거 사용해 낮 장면과 밤 장면을 1분이면 바꿔 찍을 수 있었다. 물에 대한 CG는 지난 10년 사이 장곡의 발전을 했다. 물에 세트를 짓지 않아도 촬영할 수 있는 기술은 우리 팀이 아마 최고일 거다. 그 기술력을 〈노량〉에서 원 없이 보여드릴 수 있었다.”

차기작으로 드라마 〈7년의 전쟁〉 준비 중이다.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

“이순신 3부작은 전쟁 액션이라는 장르로 임진왜란을 다룬다. 하지만 〈7년의 전쟁〉은 정치·외교사적 입장에서 임진왜란을 살펴보려 한다. 이순신 장군이 등장하기는 하나 주인공은 아니다. 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한 이덕형이 주인공이다.”

‘이순신 3부작’에 이어 또 임진왜란을 다룬다. 드라마까지 만들 만큼 임진왜란의 역사적 의미는 무엇이라 보나.

“왜군에게 침탈 당한 임진왜란의 역사가 무섭지만 5년 동안 이어진 강화협상의 내용 역시 굉장이 무섭다. 조선의 입장은 배제되고 명나라와 왜국 사이 이뤄진 강화 협상의 핵심은 조선을 두 동강내 서로 나눠 가지는 ‘할지割地’였다. 경기이북은 명나라 세력권으로 들어가고, 경기이남 흔히 삼남지방이라 불리던 곳은 왜의 지배하에 놓일 수 있었다. 이순신 장군의 무력과 이덕형의 기지가 없었다면 아마 양쪽 협상 내용이 그대로 관철됐을 수 있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점이다. 우리가 배제된 세력싸움이 한반도에서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이순신 장군은 (우리 힘에 의한) 전쟁의 완전한 종결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고 이를 수행하려다 돌아가셨다. 〈노량〉에서 이 점을 꼭 말하고 싶었다.”

 


라제기 1999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편집부와 사회부, 국제부, 문화부 등에서 일했다. 엔터테인먼트팀장과 문화부장, 신문에디터를 거쳐 영화전문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영국 서식스대학 대학원에서 영화학을 공부했다. 번역서 『할리우드 전복자들』을 냈고, 『질문하는 영화들』과 『말을 거는 영화들』을 저술했다.

 

 

* 《쿨투라》 2024년 1월호(통권 11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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