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생명 사상의 창발적 진화
[북리뷰] 생명 사상의 창발적 진화
  • 김혜원 인턴기자
  • 승인 2024.01.02 1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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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복 비평집 『김지하가 생명이다』

한양대 교수의 저서 「김지하가 생명이다」가 도서출판 b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김지하와의 인연과 그의 죽음이 남긴 의미에 대한 성찰에서 출발하고 있다. 저자는 그것을 ‘몸 공부길에서 만난 인연’으로 표현하고 있다. 김지하를 통해 저자는 ‘동학’은 물론 「천부경」, 「삼일신고」, 「정역」, ‘풍류도’ 같은 우리 고대 사상과 「시경」, 「주역」, 「노자」, 「장자」, 「회남자」, 「황제내경」 등의 동아시아 경전 그리고 장일순, 윤노빈, 프리초프 카프라, 제임스 러브록, 에리히 얀치, 테야르 드샤르뎅 같은 동서의 사상가, 철학자, 과학자 등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저자는 김지하의 생명 사상이 우리 문명사의 전회轉回를 가능하게 할 마지막 사상임을 자각하게 되었고, 그가 「생명과 자치」(1996)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생명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예술 등으로의 적용과 실천은 그 전회의 구체적인 모습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자신의 몸 사상도 김지하가 추구한 생명 사상과 그 지향점이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몸은 생명을 구현하는 실질적인 통로이자 매개이며, 생명은 추상적인 개념이고 그것을 생생하게 살아 있는 구체적인 것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생명의 위기를 몸의 존재 형태를 통해 느끼고 인지하고 있지만, 인간의 몸을 그것도 눈에 보이는 것만 볼 뿐 전체로서의 몸인 지구 혹은 우주의 몸을 보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그 결과 지구는 고통받고 있지만, 우리 인간은 그 지구의 몸이 죽으면 우리의 몸도 죽는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을 저자는 「김지하가 생명이다」를 통해 밝히고 있다.

이 책은 모두 3부로 되어 있다. 1부는 ‘김지하의 생명 사상과 미학 사상’이 지니는 세계 문명사적 의미를 밝힌 글이고, 2부는 그러한 지하의 생명 사상과 미학 사상이 어떻게 저자의 몸 사상을 통해 창발적으로 해석되고 또 계승되는지를 밝힌 글이다. 그리고 3부는 2006년 김지하가 ‘생명과 평화의 길 이사장’으로 있을 때 일산 자택에서 생명론의 발생과 그것이 지니는 ‘지금, 여기’에서의 의미와 전망에 대해 저자와 나눈 대담이다.

이 각각의 글과 대담은 지하의 생명 사상과 미학 사상을 이해하는 데 일정한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저자는 2부에 많은 관심과 애정이 있었음을 피력한다. 그것은 김지하 사상의 생명력과 깊이 관계되어 있기 때문인데, 저자에 의하면 김지하의 사상은 김지하에게서 멈추어서는 안 된다. 이는 우주 생명이 변화를 통해 순환하듯 끊임없이 후대인들의 몸을 통해 새롭게 창발적으로 되살아나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는 김지하의 사상을 자신의 몸 사상의 관점에서 해석하면서 김지하가 미처 다루지 않은 비트bit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digital 문명(「에코토피아와 디지털 토피아」), 생명학의 계보(「‘그늘’의 발생론적 기원과 동아시아적 사유의 탄생」), 신명(「놀이, 신명, 몸」, 「욕, 카타르시스를 넘어 신명으로」) 등을 해석의 기반으로 삼는다. 이러한 해석은 김지하의 생명론에 통시성과 공시성을 제공함으로써 김지하의 사상을 외연적으로 넓히고 심화하는 계기를 제시하고 있다. 특히 비트를 기반으로한 디지털 문명에 대한 성찰은 김지하의 생명 사상과 저자의 몸 사상이 수렴하고 포괄해야 할, 결코 피해 갈 수 없는 주제라고 말한다.

이재복 교수

저자는 지금 우리 인류는 자연으로부터 너무 멀리 와 있으며, 자연에 대한 망각의 정도가 깊어지면 우리는 그것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잃게 됨을 강조해서 들려준다. 더 나아가 요즘 자신의 몸 공부는 우리 문명사의 전회를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일에 맞추어져 있다고 하면서 자신의 목표는 21세기의 새로운 윤리를 정립하는 것임을 밝힌다. 저자는 그것을 ‘몸의 에티카’라고 명명한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는 김지하가 추구한 생명의 윤리가 곧 자신의 몸의 윤리이고, 자신의 몸의 윤리가 곧 김지하의 생명의 윤리임을 힘주어 강조하고 있다.

근대 이후 내발성의 차원에서 우리 사상을 들여다보면 서구의 체계화되고 잘 정립된 여러 사상 속에서도 단절되지 않고 면면히 이어져 온 하나의 사상을 발견할 수 있다. …(중략)… 생명에 대한 규정과 해석으로부터 새로운 사상이 탄생한 것이다. 동학이 기반이 된 이 생명 사상은 내발성을 강하게 드러내면서 한국적 사유 체계의 탐색이나 대중에 기반을 둔 사회 변혁적인 운동의 형태로 계승되기에 이른다. 이런 점에서 생명 사상은 우리 민중의 집단적이고 역사화 된 의식의 내발성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생명에 대한 지극함을 드러내고 있는 불교, 도교, 유교와 같은 우리의 전통적인 사상은 물론 서구의 신과학운동을 포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생명 사상의 계보와 문명사적 전회」 중에서

김지하는 시대의 중심에 서서 치열하게 그 힘을 느끼고 예감했던 사람이다. 그는 늘 앞서갔고 우리는 그렇지 못했다. 우리의 둔감함이 그를 다시 감옥에 가두었고, 그 속에서 그는 외로움의 면벽증面壁症을 앓았다. 그는 갔지만 그의 혼령은 천지에 가득하다. 지구가 아프고 우주가 짙은 어둠의 그림자를 드리우는 날이면 그의 혼령은 시퍼렇게 되살아온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의 숨결로만 느낄 수 있는 그 귀신이 바로 생명이다. 우리는 이 생명의 존재를 망각해서는 안된다. 망각은 곧 죽음이다. 이것이 바로 김지하가 생명인 이유이다.

 

 


 

 

* 《쿨투라》 2024년 1월호(통권 11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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