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2023 오늘의 문화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북리뷰] 2023 오늘의 문화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 손희 에디터
  • 승인 2024.01.02 1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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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 문화의 흐름을 제시하는 『2023 오늘의 시, 영화, 드라마』

쿨투라 어워즈는 지난 한 해 동안 펼쳐졌던 우리 문화의 동향을 개괄적으로 점검하고, 또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작품들을 큰 틀에서 검토함으로써, 현재 우리 문화를 성찰해보는 자리이다.

올해도 설문을 통해 작년 한 해 동안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고 기억에 남았던 좋은 시와 영화, 드라마를 모아 『2023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 영화, 드라마』 (이하 『2023 오늘의 시, 영화, 드라마』)를 출간하였다. 『2023 오늘의 시』 기획위원으로는 유성호(한양대 교수), 홍용희(경희사이버대 교수), 허희(문화평론가) 문학평론가가, 『2023 오늘의 영화』 기획위원으로는 강유정(강남대 교수), 유지나(동국대 교수), 전찬일(경기영상위원장) 영화평론가가, 『2023 오늘의 드라마』 기획위원으로는 김민정 드라마평론가(중앙대 교수), 주찬옥 드라마작가, 설재원 쿨투라 편집장(골든글로브시상식 투표단)이 참여했다.

지난 3년간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한국 문화는 전세계적으로 한류 붐을 일으키며 많은 성취가 있었다. 올해도 ‘쿨투라 어워즈’ 설문을 통해 기획한 『2023 오늘의 시, 영화, 드라마』의 선정작을 살펴보면, 오늘의 한국문화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그 흐름을 짐작할 수 있다.

‘2023 오늘의 시’ 수상자는 「숨」의 박소란 시인!
시인, 동료문화예술인 100명이 선정한 시 44편 수록

우리는 『2023 오늘의 시』를 통해 우리 시단에서 최근 거두어낸 그러한 성취들을 일별함으로써 여전히 심미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우리 시대의 균질적이고 지속적인 서정적 흐름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이 책에서 우리가 강렬하게 경험한 서정의 실례들은, 시를 왜 쓰는가, 이 폐허의 땅에 언어는 무엇인가, ‘시적인 것’의 전위성은 어떻게 확보되는가 하는 등의 연쇄적 질문을 지속적으로 수행해가고 있다. 그때서야 비로소 보편 언어에 대한 복고적 향수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닌, 자신만의 독자적인 언어가 철저하게 주변화된 방식으로 발화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그분들의 고민이자 실천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자각을 통해 바로 시의 존재 조건과 발화 방식을 사유하는 것이 ‘시적인 것’의 존재론을 제고하는 태도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특별히 시인들은 시 쓰기에 대한 자의식 회복을 통해 이러한 태도를 한껏 제고해가고 있다. 이행기적 속성을 현저하게 지닌 시대일수록 시를 쓰는 작업에 대해 밀도 있는 자의식이 있어야 하고, 또한 시인의 존재 방식에 대한 모색이 뒤따라야 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흐름은 매우 중요한 시정신의 바탕 자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시대의 이러한 ‘시적인 것’의 주변성과 주체들의 다양한 욕망 사이에 개재하는 자의식 회복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다는 요청에 대한 응답의 결실들이 책에 많이 실렸다고 보면 좋을 것이다.

좋은 시를 선정하기 위해 『2023 오늘의 시』는 100명의 시인, 문화예술인을 추천위원으로 추대, 좋은 시 44편(시조 15편 포함)을 선정하였다, 설문 조사 결과, 지난 한 해 동안 발표된 근작 가운데 박소란의 「숨」이 가장 많은 추천을 받았다. 이 작품은 삶의 층위와 윤리의 층위를 밀착시키면서 역설적 희망에 대한 믿음을 놓치지 않은 가편으로 많은 동료들의 평가를 받았다.

유성호 평론가는 박소란의 시는 “공동체의 기억과 그 안에 잔잔하게 침전된 사랑과 슬픔의 노래”이며, “「숨」은 특별히 ‘겨울의 한 모퉁이’에 서서 무언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마음의 은유”라고 말한다. ‘숨’을 택해, 일상의 한복판을 관통해가는, 버릴 수 없는 것들, 가만히 바라보아야 하는 것들, “어째서 이런 게 생겨났을까 알 수 없는/하나의 이야기”를 침묵음으로 들려주고, “모든 슬픔 있는 것들을 내면화하는 조용한 숨결이 그 안에서 우리 시대를 따뜻하게 위안하고” 있다고 평한다. 그리고 박소란 시인은 이 시를 쓰게 된 배경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김명순의 소설 「나는 사랑한다」에 이런 대사가 나와요. “사람은 언제든지 자기를 믿고 사는 것입니다. 외롭고 갈데 없는 사람일수록 자유를 구하는 마음은 더욱 커지는 것입니다.” 자꾸 김명순 이야기를 해서 그렇습니다만(웃음), 되짚어 보면 이와 비슷한 마음으로 쓴 시가 아닌가 싶어요. 결국은 자기 자신, 그 오롯한 혼자에 대해…….아무리 삶이 척박해도 결국은 나라는 혼자가 있으니까 그로써 견딜 수 있다 하는 마음이랄까요. 세상에는 대단한 것이 수두룩하지만, 그럼에도 가장 귀하고 신비한 것은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는 ‘나’ 자신일테지요. 이토록 당연한 사실이 불현듯 또렷이 확인되는 때가 있고, 그때를 기적처럼 간직하는 것으로 우리는 또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거창하다면 거창한 이런 마음을 되도록 작게, 소박하게, 가장 일상적인 언어로 이야기해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 「숨」의 박소란 시인 인터뷰」(최지은 시인) 중에서, 본문 122-123쪽

이 책의 말미에 붙인 박소란 시인 시평과 인터뷰는 ‘2023 오늘의 시’ 수상작 박소란 시인의 시 「숨」에 대한 매혹적인 해석을 선사한다.

허희 평론가는 “그녀(박소란 시인)는 섬세하게 생각하되 차갑지 않고, 상대를 존중하되 비굴하지 않다”며 “이는 정확하게 박소란 시와 조응한다”고 말한다. 이 시의 제목인 ‘숨’은 살아 있음의 증표로, “추천위원들이 이 작품을 올해 쿨투라 어워즈 시 부문 수상작 ‘오늘의 시’로 뽑은 공통점”은 “이 작품이 고단한 생활의 층위와 윤리적 서정의 거리를 밀착시켰다는 사실과 결부된다”고 평한다.

최지은 시인은 박소란 시인과의 인터뷰에서 수상작 「숨」에 대해서 이야기 이어간다. “겨울의 한 모퉁이에 서 있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이 시는 “시린 발을 구르며, 버스를 기다리며, 버스가 아닌 다른 무엇이라도 기다리며 서 있는 화자를 떠올리다가 이내 아주 멀리까지 나아가는 기분”이 들었다고 말한다. “허공에 피어나듯 하얀 숨이 터지고, 박동하듯 숨이 부풀고, 그길로 아주 멀리 번져가는 숨을 그리게” 되며, “한낱 한 호흡의 숨이라는 의미의 차원에서 벗어나 존재의 숨결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앞으로 우리 시단은 시에 대한 믿음으로 2023년 이후의 풍경을 꿈꾸게 될 것이다. 근자의 성과들은 이러한 과제에 확연하고도 분명한 미학적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했지만, 탄탄한 미적 완결성을 두루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모쪼록 이 책이 우리 시대의 이러한 과제들에 대해 유추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자료가 되기를 바란다.

‘2023 오늘의 영화’ 수상자는 〈헤어질 결심〉의 박찬욱 감독!
영화평론가·문화예술인 100명이 선정한 한국·외국영화 12편

『2023 오늘의 영화』는 영화계의 간절한 기대가 담긴, 2022년의 단어일 듯싶다. 무려 3년에 가까운 팬데믹 기간 동안 가장 먼저 얼어붙어 가장 격렬히 고통스러웠던 곳 중 하나가 영화계였다.

2022년 한국영화의 주목할 만한 성과는 〈브로커〉의 배우 송강호가 칸영화제에서 남우 주연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이다. 박찬욱 감독의 성숙한 연애담 〈헤어질 결심〉의 감독상 수상도 기억해야 한다. 두 소식은 영화의 회복을 알리는 칸 영화제가 제 궤도로 복귀하는 시점이었기에 더 선언적이었다. 그런 점에서 『2023 오늘의 영화』는 매우 의미 있는 한 시점의 기록일 수밖에 없다. 긴 팬데믹 이후 회복기로 들어선 한국 영화, 전쟁과 질병, 플랫폼의 변화 속에서도 건재한 영화적 질문, 그에 대한 우리의 응답이기 때문이다.

좋은 영화를 선정하기 위해 『2023 오늘의 영화』는 100명의 영화평론가, 문화예술인을 추천위원으로 추대하여 설문을 진행하였으며, 영화의 운명과 가치에 대한 고민과 사유를 담아, 고심 어린 선택의 결과들을 선보인다.

최종 선정된 좋은 영화는 〈헤어질 결심〉(박찬욱)을 비롯하여 〈브로커〉(고레에다 히로카즈), 〈소설가의 영화〉(홍상수), 〈오마주〉(신수원), 〈올빼미〉(안태진), 〈한산: 용의 출현〉(김한민), 〈헌트〉(이정재), 〈본즈 앤 올〉(루카 구아다니노), 〈아바타〉(제임스 카메론),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다니엘 콴), 〈우연과 상상〉(하마구치 류스케), 〈탑건〉(조셉 코신스키) 등 12편(한국영화 7편, 외국영화 5편)이다. “2022년을 돌아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선택”으로 어느 한편도 놓칠 수 없는 중요한 영화요, 영화평론이다.

이 중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 압도적인 추천을 받아 ‘2023 오늘의 영화’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기획위원 전찬일 평론가는 “황금종려상을 받아 마땅했던 올 칸 감독상 수상작 〈헤어질 결심〉은 박찬욱 전작은 말할 것 없고 한국영화사, 나아가 세계영화사에서도 길이 빛날 역대급 걸작으로 손색없다”고 평했다. 〈헤어질 결심〉은 산 정상에서 추락한 한 남자의 변사 사건을 마주한 담당 형사 ‘해준’(박해일)이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를 신문, 잠복수사를 하며, 싹터가는 사랑의 감정을 다룬다. 탕웨이와 박해일이라는 배우의 결합이 만들어 낸 “모호하고 애매하기에 더 매혹적인” 작품이다.

이광호 문학평론가는 “이 영화는 박찬욱 영화의 형식미를 대변하는 현란한 매치컷과 시점 숏 이외에도 높이와 깊이, 수직과 수평의 프레임을 둘러싼 정교한 양식적 아름다움”을 보여준다고 평하며, “붕괴 이후의 사랑”을 새롭게 해석한다. “노을이 들이닥치는 해변의 점점 거칠어지는 파도 소리는 그 두려운 사랑의 침묵을 대신”하고, “사랑은 이 무서운 붕괴의 연안으로 나아가는 일”이다. “그 바다는 사랑의 붕괴가, 그리고 붕괴 이후의 사랑이 재등장하는 서래의 바다”이며, “서래의 바다는 새로운 붕괴와 죽음이 ‘마침내’ 시작되는 바다”라고 언급한다.

설문에 참여한 추천위원들은 〈헤어질 결심〉 선정 이유에 대해 “시가 된 영화, 마침내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정취”라며, “영화는 극장을 떠났으나 아직 관객의 마음에 작은 파문을 만들며 여운을 남기고 있다”(곽영진)고 평했다, 그리고 “박찬욱 버전의 〈현기증〉”으로 일축하며, “이에 더해 김수용의 〈안개〉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한국영화사에 제대로 안착”(한상훈)한다고 언급했다. 또한 “짙은 안개 속에서 미묘한 감각을 활용해 극을 끌고가는 섬세함”은 박찬욱의 새로운 발견이며, “마지막 순간 휘몰아치는 감정의 폭풍은 또다른 차원의 강렬한 영화적 경험”(설재원)을 선사한다고 해석했다.

책의 뒤에 붙인 인터뷰에서 박찬욱 감독은 “어른스러운 사랑 영화라고 말할 때 이런 것도 아마 언급하고 싶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이 인터뷰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에 대한 이해를 한층 더 폭넓게 해줄 것이다.

제가 어른스러운 사랑 영화라고 말할 때 이런 것도 아마 언급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마술적인 하나의 순간, 아주 드라마틱한 전환이 있기보다는 좀 ‘차근차근 작은 것들로 쌓아가는 그런 발전이 더 현실적이고 더 우리의 삶에 가깝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작은 거, 그런 표정이나 예를 들면 그냥 잠을 재워준다, 어떤 알 수 없는 이상한 근거 없는 기법을 가지고 그냥 뭐라고 뭐라고 중얼중얼하는데 심지어는 그게 중국어로 바뀌어서 내용도 모르는 어떤 그냥 소리로 전환되고 그런 것만으로도 꿀잠을 재울 수 있다 하는 식의 그런 작은 것들. 첫 만남에서도 ‘마침내’라는 단어를 듣고 그것을 음미하면서, 그리고 가만히 빤히 보면서 ‘저 사람의 패턴을 알고 싶다’라는 그런 호기심. 이런 식의 것들로 차근차근 쌓아 올라가는 거죠. 그래서 초밥을 먹고 같이 상을 치운다, 이런 작은 행위들. 제가 그전에 만들었던 영화에서의 아주 극적인 전환의 마법도 좋지만 또 이런 것도 좋은 것 같습니다.

- 「〈헤어질 결심〉의 박찬욱 감독 인터뷰」(강유정) 중에서, 본문 130쪽

인터뷰를 진행한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2022년은 “〈헤어질 결심〉의 해”였으며, “〈헤어질 결심〉을 보고 난 이후, 인생 최고의 로맨스 미스터리 영화를 히치콕의 〈현기증〉에서 〈헤어질 결심〉으로 바꾸었다”고 말한다. “박찬욱의 영화 〈헤어질 결심〉을 봄으로써 우리 삶은 모호하고 애매하기에 더 매혹적일 수밖에 없는 삶과 사랑의 본질을 조금 더 가까이 만지고 돌아보며 질문하게 되었고 그것으로 충분”했다는 것이다. “〈헤어질 결심〉에 감상의 가이드를 붙일 수 있다면 말러 교향곡 5번 4악장의 주문처럼 그렇게 충분히, 천천히, 느리게 경유하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2023 오늘의 드라마’ 수상자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문지원 작가!
평론가·문화예술인이 선정한 오늘의 드라마 10편

『2023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드라마』(이하 『2023 오늘의 드라마』)는 2022년 방영한 드라마 중에서 추천위원들의 호평을 받은 드라마를 선정, 그 선정 드라마에 평론들을 덧붙였다.

『오늘의 드라마』 시리즈가 가지는 의미는 한 권의 책 그 이상이다. 2023년 ‘오늘의 드라마’에 선정된 10편의 드라마는 한국 배우가 출연하고 한국 제작진이 만든 ‘한국 드라마’이다. 또한 전 세계인의 사랑과 관심을 받은 ‘세계 드라마’이다. 한국이 세계이고 세계가 곧 한국이다. 이것이 바로 K-드라마 월드이다.

최근 한국 드라마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코로나 팬데믹 이후 영화감독과 시나리오 작가들이 드라마 제작에 많이 참여했다. 세계적인 성공신화를 쓴 〈오징어게임〉의 황동혁 감독 이후 영화감독과 시나리오 작가가 참여한 드라마가 부쩍 많아졌다. 영화 〈왕의 남자〉의 이준익 감독, 영화 〈범죄도시〉의 강윤성 감독, 영화 〈범죄와의 전쟁〉의 윤종빈 감독, 영화 〈헤어질 결심〉의 정서경 작가…. 2021년 이후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OTT 시리즈를 위한 온스크린 섹션이 운영되고 있다. 굉장히 상징적인 사건이 아닐까 싶다. 해를 품은 달이랄까.

두 번째 특징은 소재의 다양화이다. 넷플릭스를 시작으로 국내외 OTT가 많이 들어오면서 경쟁이 치열해졌다. 그만큼 구독자를 유인하기 위한 노력이 눈에 띈다. 가장 시선을 사로잡는 건 역시나 새로운 소재를 다룬 드라마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화제를 모았던 드라마들을 열거해보면 우리가 지난 한 해 동안 얼마나 다채로운 드라마를 즐겼었는지 알 수 있다.

『2023년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드라마』에는 총 10편의 드라마 비평이 수록되었다. 학계와 산업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는 100분의 추천위원을 통해 다양한 작품세계를 가진 10편의 드라마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문지원)를 비롯하여 〈나의 해방일지〉(박해영), 〈술꾼도시여자들〉(위소영), 〈슈룹〉(박바라), 〈시맨틱 에러〉(제이선), 〈안나〉(이주영), 〈우리들의 블루스〉(노희경), 〈재벌집 막내아들〉(김태희), 〈지금 우리 학교는〉(천성일), 〈파친코〉(허수진)이다. 그중 가장 많은 지지를 얻은 드라마는 문지원 작가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다. 이 드라마가 뽑히지 않았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지난 한해 큰 화제를 모았다.

김민정 평론가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장애가 있는 여성이 원톱으로 등장하는 최초의 한국 드라마로, 장애와 소수자에 대한 공론장을 여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작품”이라고 평했다. 드라마의 사회문화적 영향력을 보여준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을 넘어 전 세계의 사랑을 받는 지금 여기의 K-드라마는 그에 합당한 사회적 책임과 소명감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창작적인 면에서도 눈여겨볼 점이 있다. 그동안 ‘여성 장애인’이 주인공인 드라마가 없었던 건 그만큼 대중적으로 풀어내기 어려운 소재이기 때문이다. 문지원 작가는 에피소드를 전략적으로 배치해 대중성과 작품성 사이에서 세련된 서사를 구사한다. 극 초반에 우영우라는 캐릭터의 판타지성을 부각시켜서 대중성을 높여 시청자들의 시선을 모으고, 그다음에 다른 유형의 자폐인과 지적 장애인을 등장시켜 극적 사실감을 높여 현실과 판타지의 균형감을 맞춘다. 등장인물의 감정선 뿐 아니라 시청자들의 감정선까지 고려한 정교한 서사 전략으로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슬기롭게 담아낸다. 한 마디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재미와 의미,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보기 드문 웰메이드 드라마이다.

서곡숙 문화평론가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차별에 저항한 콘텐츠로서 차별에 대한 의미를 되짚어보게” 만들며,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 여성 변호사 우영우를 통해 절망에 저항하고 희망에 도전하는 메시지”를 전한다고 평했다.

설문에 참여한 추천위원들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선정 이유에 대해 “장애여성, 동성애자, 탈북민, 동물권 등 우리 사회에서 비주류적인 것으로 취급해왔던 문제들을 전면화” 했으며, “소외된 것을 끌어안는 따뜻한 시선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김세연)고 평했다, 그리고 “변호사가 주인공인 드라마 가운데 가장 참신하고 감동적인 스토리텔링을 선사”(김시무)하며 “비장애인이 꿈꾸는 장애인, 비장애인과 무리없이 융화되며 사회에 적응하는 장애인이 등장하는 가장 완전한 판타지 서사”(이지혜)라고 언급했다.

책의 뒤에 붙인 문지원 작가 인터뷰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대한 드라마 창작법은 물론 작품을 보다 깊게 이해하고 들어다볼 수 있게 할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에게 〈우영우〉는 어떤 작품이었을까. 문지원 작가는 “다른 사람이 재미있게 봐준다는 것이 얼마나 이루기 어려운 기적같은 일인지를 잘 알고 있다”면서 〈우영우〉는 자신에게 “격려이자 용기를 준 작품”이라고 말했다.

이번 작품이 제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시청자 분들도 재미있게 여긴다는 것을 확인시켜준 자체만으로 저에게 큰 격려였어요. 앞으로도 ‘시청자 및 관객이 재미있게 여긴다고 알려진 것’이 아닌, ‘제가 진짜로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이러한 용기가 생겼다는 사실이 〈우영우〉의 성공으로 인해 가장 달라진 점입니다.

-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문지원 작가 인터뷰」(이은주) 중에서, 본문 124쪽

인터뷰를 진행한 이은주 기자(서울신문)는 “자폐인이 주인공인 드라마는 이전에도 있었고, 법정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는 그보다 더 많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우영우에게 열광했던 이유는 우영우라는 캐릭터가 우리 사회에 ‘다름의 가치’에 대해 일깨우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라고 평했다.

지금 여기의 독자들은 새롭게 시작하는 신작뿐 아니라 ‘알신’의 간택을 받아 부활하게 될 드라마를 향한 기대도 무척 크다. 아, 오늘은 무슨 드라마를 보면 좋을까. ‘2023년 오늘의 드라마’로 선정된 10편을 ‘다시보기’해보는 건 어떨까. 그들의 매력을 꼼꼼하게 짚어낸 전문가의 비평을 읽으면서 말이다.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처럼 오늘도 내일도 K-드라마의 무한루프에 풍덩 빠져보시기를 바란다.

『2023 오늘의 시, 영화, 드라마』는 단순한 앤솔러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문학과 문화를 아끼고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과 연대하여 ‘문화예술운동’의 실천적 차원을 의도하고 있다. 이 작은 시도가 동시대 문화의 중핵과 조우함으로써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 내고, 여린 물줄기들이 꾸준히 연대해 나가 언젠가 세계문화사에 〈한국 문화〉라는 사조가 만들어지리라 믿는다.

 

 


 

 

* 《쿨투라》 2024년 1월호(통권 11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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