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탐방] 숨은 소나무, 꽃 피우다: 서울 송은미술관
[미술관 탐방] 숨은 소나무, 꽃 피우다: 서울 송은미술관
  • 김명해(화가, 객원기자)
  • 승인 2024.02.28 14: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무역과 금융, 벤처, 첨단 산업의 요새 테헤란로. 패션과 예술, 영상, 유통의 거리 압구정·청담동. 갤러리와 예술품, 유명가구 특화 거리 삼성동·논현동. 대단위 아파트단지와 빌라 등의 공동주택 거주 비중이 높고, 대형 백화점과 문화시설, 녹지대가 균형 있게 조화된 이 지역은 서울 강남이다.1 강남은 우리나라 최고의 주거지이자 교육·문화의 중심지, 경제 활동 중심지로 각광받고 있는 곳으로, 이번 「미술관 탐방」은 강남구 청담동 도산대로에 들어선 미술관 ‘송은’으로 발길을 옮겨본다.

미술관 송은은 故 유성연(1917-1999) 전이사장이 1989년에 송은문화재단을 설립하여 대치동에 소재한 ‘송은 아트큐브(구 송은갤러리)’ 운영을 시작으로 맥을 이어오고 있다. 2010년 11월 강남구 청담동에 ‘송은아트스페이스’를 개관·운영하였으며, 2021년 8월에 신사옥 ‘ST송은빌딩’을 완공하고 9월에 전시공간인 ‘송은’을 개관했다.

뾰족한 삼각형이 58m 높이로 뻗은 독특한 외관이 특징인 송은빌딩은 지상 11층, 지하 5층 구조의 기하학적이고 획기적인 디자인으로 인상적이다. 건물의 높은 정면이 도산대로를 향해 있고, 정원이 있는 낮은 뒷면은 주변과 어우러지는 이 건물은 최대한의 바닥 면적과 토지 이용 규제 등의 설계 조건 안에서 가능한 조각적 형태를 도출하는 과정을 통해 나왔다. 또한 입면에는 노출콘크리트의 거대한 매스감과 유리만으로 재료 사용을 최소화하였고 거푸집 터짐 없이 칼 같은 모서리와 소나무 결의 디테일한 표현이 특징이다. 건물 정면 두 개의 긴 창문을 통해 저층의 전시 공간 외에도 고층에 위치한 사무실 공간을 확인할 수 있다.

송은 건물 외관. ⓒJihyun Jung

ST송은빌딩은 스위스의 건축 듀오인 자크 헤르조그와 피에르 드 뫼롱Jacques Herzog & Pierre de Meuron(이하 HdM)2이 설계한 국내 첫 프로젝트 건물이다.

“우리가 현대미술관을 설계할 때 주목해온 것은 ‘어떻게 예술과 사람들을 함께하게 할 것인가’였습니다. 예술과 예술가, 대중과 컬렉터 모두에게 유효한 공간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요? 모두를 위한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그곳을 둘러싼 다양한 요구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도시 생활의 새로운 요지로 자리 잡을 수 있습니다. … 송은문화재단의 새로운 공간이 서울의 다양성과 문화적 지형에 소중한 보탬이 되기를 바랍니다.”

HdM은 건축 디자인에 있어 지역적인 맥락과 문화 및 환경에서 많은 건축적 영감을 받으며 미니멀한 요소들로 건축디자인을 선보였고, 기본 건축디자인을 바탕으로 현장에서 이뤄지는 작업을 통해 재료와 재질, 공간과 자연에서 오는 아름다움을 시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고 한다.

송은문화재단은 설립자의 호인 ‘송은松隱’처럼 숨어있는 소나무와 같이 미술계 젊고 유망한 작가를 찾아 육성하는 취지로 2001년부터 《송은미술대상》 공모전을 제정하여 매년 영아티스트를 발굴하여 시상하고 전시회 개최 및 안정적인 작업 활동을 지원해 주고 있다. 벌써 23회째를 맞이하는 《송은미술대상전》에는 본선에 오른 작가 20인의 신작이 회화, 조각, 설치, 영상, 사운드 등 여러 매체를 아우르는 동시대 한국 미술의 다양한 모습으로 현재 전시중이다.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면 둥근 라운딩의 로비와 위층으로 오르는 곡선의 계단, 사각형의 전시실, 영상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오디토리움, 지하의 원형 천장 등 독특한 건축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 송은의 공간을 만날 수 있다.

1층 로비.

1층 로비로 들어서면 황문정(b. 1990)의 〈송은미술대상전을 위한 표본〉 작품이 홀로 전시되어 있다. 이 작품은 송은 신사옥을 도심에 놓인 삼각형 형태의 조각으로 인식하고 지상 3층부터 지하 2층까지의 전시 공간을 조망할 수 있는 건축물 모형과 작은 비인간 조각들을 통해 하나의 ‘비인간’으로서 건물의 공간적 특성을 파악하고자 공간과 작품 간의 연결 지점을 모색하는 과정을 제시한다.

2층 곡선계단에는 신화적인 과거와 예상된 미래의 내러티브에 바탕을 둔 게임화 된 다큐멘터리 정서희(b.1987)의 〈LUCA〉미디어 작품이 상영되고 있다. 인류가 파괴되어 생태적으로 붕괴한 시대에 모든 생명체의 공통 조상인 털복숭이 루카를 둘러싼 환경과 인간 사이에 기묘하게 얽힌 스토리를 구축해가는 내용으로 공존의 가능성을 모색하게 한다.

2층 전시실은 반듯한 네모구조이다. 이곳에는 공상적인 세계관 안에서는 당연하게 숭배되어온 믿음이나 신념이 유머러스하게 전복된 남진우(b. 1985)의 〈괴물들의 서사시〉, 형광색과 원색 등 과감한 색채 사용과 회화의 구상과 비구상적인 형식을 한 화면 안에 담아낸 이세준(b. 1984)의 〈Beyondscape〉와 〈Painted Painting〉이 각 4점의 캔버스로 이루어진 대형회화가 있다.

다국적의 사람들과 훠궈Hot Pot를 앞에 두고 낯설고 불완전한 소통을 이어갔던 경험을 재구성한 신작 2점을 선보인 이우성(b. 1983)의 작품과 주변 기물에서 비롯한 조각적 풍경을 통해 각자의 곡선을 다듬어 사물과 조각의 유기적인 관계를 모색한 전장연(b. 1982)의 〈곡선 연습〉도 있다.

박웅규.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사진: CJY ART STUDIO

2층 라운지에는 통유리로 조성된 긴 복도공간으로 뒤쪽 정원과 밖이 훤히 보이는 곳이다. 소조의 방법론을 견지하며 사물의 정체성과 사물이 구성하는 경험을 조각적으로 탐구하고 상상한 문이삭(b. 1986)의 〈Bust-바람길〉 설치작품과 일상의 풍경을 관찰하고 이를 회화의 어법으로 재구축한 박형진(b. 1986)의 〈호두나무〉가 서로 조화를 이루며 전시되어 있다.

3층 전시실도 사각공간으로 캔버스 안의 패턴에서 연장된 시트지 설치 작품인 정진(b. 1984)의 〈퍼즐 그림〉이 평면 회화와 어우러져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며 관람객을 맞이한다. 퍼즐 그림과 마주하는 곳에는 ‘여성적 주체성’을 주제로 기괴하면서도 관능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통해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부정적이고 수동적인 존재로 인식되던 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의 ‘여성상’을 제시해 온 장파(b. 1981)의 〈여성/형상: 할망〉이 우스꽝스러운 거인 할머니 ‘설문대 할망’의 이미지로 희화화되어 있다. 또한 실재했으나 사라지고, 이면에 감춰지거나 잊혀진 것들에 대한 생각과 이미지를 드로잉, 도자, 입체, 영상 등을 통해 구현해 온 이은영(b. 1982)의 〈유령의 나이〉 설치작품도 볼 수 있다.

3층 숨어있는 공간에는 설치 및 미디어 작품이 있다. 현재의 모바일 환경에서 쪽지라는 아날로그적인 도구를 재검토하여 리서치와 아카이빙을 기반으로 한 백종관(b. 1982)의 〈더 베리 메타버스〉와 현대의 기술과 자연의 상호작용을 탐구하고 실천에 관한 방법을 오디오 비주얼, 제너러티브 코딩, 전자회로, 인공지능을 포함한 설치, 음악 등의 작업을 선보여 온 황선정(b. 1989)의 〈땅과 몸 소리의 레시피: 시냅틱 오디세이〉가 현대사회의 모순을 제시한다. 또한 아시아 국가 경계를 넘나들며 형성된 대만계 한국 화교의 혼종적 정체성과 이동에 관한 고찰을 그린 신미정(b. 1983)의 〈타이완, 타향 그리고 타자〉는 이데올로기 대립의 갈림길에서 마주한 거시적 사건들을 조망하고 그러한 과정에서 마주한 존재들을 일기를 기록하듯 담담하게 스크린위에 정착시킨 영상이다.

이은영.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사진: CJY ART STUDIO

3층 전시실에서 지하2층 전시실로의 이동은 엘리베이트를 타야 한다. 이곳 전시실은 중앙 타원형 돔을 네 개의 둥근 기둥이 지지하고 있는 둥근 라운딩으로 구성된 전시공간이다. 타원형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1층 로비의 노출콘크리트 천장에 부딪혀 원형 실린더를 통해 지하 2층으로 유입되어 사방으로 흩어져 마치 유서 깊은 유럽식 성당 같은 착각을 들게 한다.

물의 이동을 주제로 급진적이고 유동적으로 변해가는 환경에서 퇴적되어가는 존재들을 다룬 허연화(b. 1988)의 〈사이클〉 설치 작업. 대상과 캔버스 그리고 작가 사이에 존재하는 미시적 거리와 서사에 초점을 맞춰 익숙한 대상이 낯설게 느껴지는 지점을 캔버스에 담아내는 임노식(b. 1989)의 〈작업실05〉. 버림받아 사라져가는 섬과 인간이 떠나간 후의 생태 환경을 교차시켜 동시대의 사회와 경제 문제를 사운드, 비디오, 텍스트, 퍼포먼스 등을 넘나들며 재고한 신제현(b. 1982)은 〈물의 소리〉. ‘부정성’을 서로 다른 조형 언어로 구축하는 작업을 선보인 박웅규(b. 1987)는 〈더미Dummy〉 연작. 조형 요소들이 부유하거나 충돌해 발생하는 긴장을 포착하고 드로잉, 회화, 조각 등의 매체를 넘나들며 불균형한 생동감을 축조한 백경호(b. 1984)의 〈천사〉 등의 작품이 전시되어 지하공간을 더 돋보이게 한다.

마지막으로 이번 《송은미술대상》에서 전시 기간 중 최종 심사를 거쳐 대상에 선정된 유화수(b. 1979)의 작품이 있다. 유화수는 기술의 발달이 인간의 노동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며, 기술의 환경과 개인, 기계와 인간의 관계 그리고 이러한 관계로 인해 만들어지는 사회적 현상에 집중해 온 작가이다. 대상작품인 〈재배의 몸짓〉에서 작가는 기술과 정보가 발달하고 정교해질수록 자연과 환경에 대한 감각은 단조롭고 무감각해지는 현상에 주목하고 인간의 필요에 의해 고안된 첨단기술인 스마트팜Smart farm으로 죽은 나무에 기생하는 비식용 버섯의 생태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유지 보수하는 돌봄의 역할로 작품을 선보인다.

정서희.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사진: CJY ART STUDIO

《송은미술대상》을 추진하고 있는 송은문화재단은 대상 수상자에게 상금 2,000만 원을 수여하고, 향후 개인전 개최 지원 및 작품 2점을 소장품으로 매입하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과 협력하여 레지던시 프로그램인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1년 입주기회를 제공하는 등 개편을 통해 강화된 혜택으로 작가의 꾸준한 작업 활동 및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이처럼 미술관 송은에 전시된 젊은 작가들의 작품은 다양한 형태와 매체로 표현되어 관람객과의 소통에 수용적이며 적극적으로 다가간다. 송은이라는 특정 전시공간에 짜 맞춘 듯 구성된 작품들은 작품의 존재 이유뿐만 아니라 시각예술작품으로서 가져야 할 시각적 예술성과 동시대 현대미술의 현장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서울에서 가장 번화한 지역 중 한곳인 청담동 중심부에 위치한 송은은 전시 공간, 사무실, 공공장소가 혼합되어 동시대 미술에 접촉할 수 있는 실험적인 복합예술 공간이자 세계적인 작가들과 더불어 국제적 미술을 조명하는 문화예술의 중심지가 될 것이다.

 

 


 1 강남구청 홈페이지 참고함.

2 Herzog & de Meuron이 1978년 스위스 바젤에 설립한 건축설계 사무소. 런던 테이트 모던, 도쿄 프라다 아오야마,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 등의 건축 프로젝트의 설계를 맡아왔음.


참고자료
송은 https://songeun.or.kr/
《제23회 송은미술대상전》 카탈로그 참고

 

 

* 《쿨투라》 2024년 3월호(통권 117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