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오늘의 드라마] 사회 진보적 가치개념의 공론장: 〈아씨두리안〉
[2024 오늘의 드라마] 사회 진보적 가치개념의 공론장: 〈아씨두리안〉
  • 정재형(영화평론가)
  • 승인 2024.02.2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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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막장 드라마’라는 말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존재하는 악성 루머다. 드라마엔 이런 말이 있다. 시청자들은 뭐가 어떻고 실컨 욕을 하면서도 매회 눈에 불을 켜고 시청한다. 악성 드라마란 말은 어쩌면 노이즈 마켓팅으로 오해 받을 정도로 작가나 방송국엔 더 유리한 닉네임일지 모른다.

임성한 혹은 〈아씨두리안〉을 논의하기 위해, 이런 부정적인 시각을 일단 부정하고 들어가고자 한다. 그런 악성 가십에 의해 드라마의 진정성 혹은 예술성이 흐려지기 때문이다. 물론 대중예술이 갖는 당연한 오명이니 달게 받아들여야할 덕목이긴 하다. 천하고 세속적인 드라마. 이 말은 대중 드라마엔 거의 운명처럼 박혀있는 불문율이다. 그것을 거스르며 존재할 수 없고 존재할 이유도 없다. 대중 속에서 살아야 하는게 드라마만의 운명이니까. 하지만 평론은 다르다. 그 이면의 예술성을 분석하고 밝혀내야 할 책무가 있다. 그래야 힘들게 창조해낸 작가 및 제작진들의 예술적 시도가 역사적 자리매김을 하니까.

자유의 쾌락

〈아씨두리안〉을 지배하는 서사코드는 억압과 자유다. 이 드라마에서 중심인물은 크게 백도이-주남, 두리안-단치감, 김소저-단등명 커플들이다. 억압과 자유를 설명하기 위해 〈아씨두리안〉은 요즘 유행하는 환생과 시간이동의 공식을 활용한다. 과거에 양반가의 억압적인 시어머니 백도이와 남편 단치정은 며느리 두리안과 하인 단치감을 철저히 유린한다. 현세에 두리안과 단치감은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해 백도이와 단치정에게 복수하듯 자유를 만끽한다.

과거에 비극적이었던 김소저와 단등명은 현재로 와서 행복하게 사랑하는 사이로 변화한다.

사랑은 이 드라마의 핵심주제다. 억압과 자유의 지향점은 바로 사랑을 향해 달려가고 다양한 사랑의 색깔을 보여주는 게 이 드라마의 개성이다.

작가는 두리안-단치감, 김소저-단등명 두 커플의 사랑을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펼쳐보였다. 이 사랑들이 전통적인 사랑의 모습이었던 데 반해, 백도이-주남-장세미를 통해서는 두 가지 특별한 사랑의 가치를 보여준다. 백도이는 돈과 권세 뭐하나 부러울 것 없는 여자지만 나이를 먹고 외롭게 죽어가는 자신이 한심해 보인다. 그녀의 내면 한가운데에는 젊어지고 싶고 사랑하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 우연히 스무 살도 더 아래인 연하 주남을 만나고 서로 사랑하면서 새로운 인생을 향유한다. 다 성장한 아들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랑에 몰두하는 모습은 정상과 상식을 일탈해 있다. 드라마는 시청자들에게 정상과 상식이 무엇인가를 본질적으로 질문한다. 주체와 타자의 시선을 바꿔보는 것은 가장 중요한 철학적 질문이기 때문이다. 장애인이 비장애인이고, 비장애인이 장애인인 경지를 이 드라마는 질문하고 성찰하게 하는 것이다.

백도이의 큰 며느리 장세미는 시어머니 백도이를 사랑하며 남편 단치강을 놀라게 한다. 백도이는 장세미의 구애를 받아들일 대상이 아니라서 장세미의 일방적인 사랑의 표현은 백도이와 아들들, 이를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의 비웃음거리가 된다. 그럼에도 아랑곳 하지 않는 장세미는 계속 백도이에게 사랑의 마음을 전하며 백도이를 불편하게 만든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 이상으로 우리 사회에 퍼져있는 동성애에 대한 편견과 안 좋은 시선은 〈아씨두리안〉에서 일상의 소재로 등장했다. 시청자들 역시 불편하고 우스꽝스런 시선으로 바라볼 것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 등장한 동성애는 그 개념을 사회에서 추방시키고자 악의적 의도를 가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오히려 토론의 장으로 끌어들이는 의도였다고 보고 싶다.

나이를 초월한 사랑과 성을 초월한 사랑이 보여주는 색깔의 중심개념은 사랑의 자유다. 그 맥락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그것은 부정이 아닌 긍정의 의미로 해석된다. 나이를 초월한 것이든, 젠더 이데올로기를 초월한 것이든, 초월에 방점이 놓여지고 자유에 강조점이 주어진 것이 분명하다.

백도이, 장세미 두 여성의 공통점은 과거의 관습적인 세계 속에 자신의 반생이 희생된 것에서 앞으로 반생 동안 새로운 인생으로 자신을 변화시켜 보겠다는 의지를 보인다는 점이다. 이 주제는 현 사회의 중년들이 대다수 공감할 만한 가치관이기 때문에 흥미롭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계급 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두리안-단치감의 사랑 같은 것은 식상한 주제로 밀려나고, 대신 백도이-주남-장세미의 도발적이며 파격적인 사랑이 훨씬 더 매력적이고 보편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대중사회에서 환상적 드라마의 가치는 무엇인가

〈아씨두리안〉은 로맨스장르에 속하고, 사랑을 추구하되 그 사랑의 유형은 여러 색깔로 나타난다. 이성애, 동성애, 나이를 초월한 사랑 등으로 다양하다. 더 나아가서는 시대를 초월한 사랑까지도, 운명적 사랑까지도 긍정한다. 이러한 낭만적 사랑이 이 드라마가 추구하는 사랑의 주제다.

드라마는 사회의 모든 가치가 충돌하며 자유롭게 토론하는 공론장이다.

〈아씨두리안〉이 갖고 있는 파격성은 단지 막장드라마라는 말로 거둬들일 수 있는 단순한 차원이 아니다. 드라마는 만화(웹툰) 등과 더불어 오락성이 강하고 파격성도 강하다. 그건 경직된 리얼리즘이라는 미학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환상성이 강한 만큼 사회비판적 요소와 규범위반적, 관습이탈적 요소가 풍부하다. 그것은 환영적 리얼리즘이 관제적이고 도덕적이고 전통적, 보수성을 고수하는 데 비해 반대적 성격을 띤다.

오락성을 추구하는 대중문화에서 환상성의 미학은 환영적 리얼리즘의 권력적이고 보수적인 이데올로기를 위반하고 균열을 내는 아방가르드 예술성의 기능과 흡사하다. 〈아씨두리안〉과 같은 탈환영주의적 미학의 드라마는 사회가 변화·발전하는 데 있어 보수적인 가치관을 부수고 균열점을 만들어내, 미래적 가치와 정체성을 보다 분명히 탐구하는 데 중요한 기능을 한다.

 

 

사진제공 TV조선

 

 


정재형 현 동국대 명예교수, 전 한국영화학회회장,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국제영화비평가연맹한국지부회장, 한국문화예술교육학회회장, 한국영상문화학회회장 역임

 

 

* 《쿨투라》 2024년 3월호(통권 11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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