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오늘의 드라마]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죽음’이 들어왔다: 〈이재, 곧 죽습니다〉
[2024 오늘의 드라마]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죽음’이 들어왔다: 〈이재, 곧 죽습니다〉
  • 김민정(드라마평론가, 중앙대 교수)
  • 승인 2024.02.2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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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새해 시작과 함께 하늘 아래 인간계를 떠들썩하게 한 드라마가 있다. 바로 〈이재, 곧 죽습니다〉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남자가 ‘죽음’이란 신적 존재로부터 12번 죽어야 하는 형벌을 받고 환생(빙의)을 반복하는 이야기. 공개 직후 71개 국가에서 TOP 10에 랭크되었고 전 세계 240여 개국에서 시청 가능하다고 하니, 12번이 아니라 1,200번을 죽고 또 죽은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주인공 최이재를 연기한 배우 서인국이 2021년 드라마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에서 ‘사라지는 모든 것의 이유가 되는 존재, 멸망’을 연기했다는 것이다. 죽음의 이웃사촌 격인 멸망. 이것은 잔혹한 인과응보인가, 다정한 역지사지인가. 〈이재, 곧 죽습니다〉에서 배우 서인국은 계속되는 취업 실패와 친한 친구의 배신으로 전 재산까지 잃고 연인과도 이별하면서 삶을 포기하는 비극적인 인물로 나온다.

극 중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최이재는 절규한다. 사는 게 지옥 같아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다시 살라고 하는 거냐면서. 이때 ‘죽음’은 차갑게 응수한다. “아직도 죽음이 끝이라고 생각해? 이제 시작이야.” 그리고는 최이재에게 진짜 지옥을 보여준다. 카메라는 그 지옥이 아니라 그 지옥을 보는 최이재의 얼굴, 두려움과 공포로 겁에 질린 그 얼굴을 보여준다. 그곳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할 수 있도록, 무엇을 상상하든 그곳이 최악의 지옥이란 걸 우리가 알아챌 수 있도록 말이다.

‘죽음’은 절망에 빠진 최이재에게 한 줌의 희망을 남겨준다. (희망인지 희망고문인지 헷갈리지만) 12번의 죽음에서 예정된 죽음을 피할 수 있다면 그 몸으로 남은 인생을 살 수 있다. 그러나 12번의 죽음을 경험하는 동안 끝까지 살아남지 못하면 지옥으로 그대로 끌려가게 되고, 만약 중간에 자살을 할 경우 지옥보다 더 큰 벌을 받게 될 거라고. 기회는 12번. 인간과 신적 존재의 게임이 시작된 것이다. 이름하여 ‘죽음’과의 데스 게임.

죽음과의 ‘데스 게임’

처음에는 조금 유치한 설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고 그런 진부한 환생과 빙의. 드라마 몰아보기한 지 2시간쯤 지났을 때 직감했다. 이건 ‘찐’이다. 흔히 매력적인 글쓰기에 대해 ‘매혹의 기술’이라고 표현을 많이 하는데, 나는 거기에 살짝 설탕 한 스푼을 더 뿌리고 싶다. ‘달콤한 밀당’의 기술.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너. 니꺼인 듯 니꺼 아닌 니꺼 같은 나~” (BGM~ 가수 소유와 정기고가 부릅니다. 〈썸〉) 드라마 스토리는 시청자의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아야 한다.

12번의 죽음. 그것은 12번의 삶과 같다. 어떤 삶을 어떤 순서로 배치하는 것이 효과적일까. 첫 번째 삶은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삶이 좋다. 만약 누군가의 삶으로 살 수 있다면 당신은 누굴 선택하겠는가. 우리 모두의 염원. 바로 재벌이다.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드넓은 하늘을 누비는 젊은 재벌의 화려한 인생.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삶이 나왔다면 그다음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이 나올 차례다. 이런 직업이 있다는 걸 드라마를 통해 나는 처음 알았다. 8천 미터 상공에서 낙하산 없이 뛰어내리는 익사이팅 스포츠 선수.

상반된 매력의 1번과 2번의 삶이 후다닥 지나가고, 서로 다른 결이 가진 3번과 4번의 삶이 연이어 등장한다. 세 번째 삶은 최근 드라마 주요 모티프인 학폭 피해자 고등학생, 네 번째는 싸움을 잘하는 폭력 조직 소속 해결사다. 하이퍼리얼리즘 다큐멘터리가 지나간 자리에 화려한 액션신과 함께 홍콩 누아르 영화가 나온다.

A-B-A-B. 어느 정도 환생과 빙의의 룰에 익숙해진 최이재가 생존을 향한 의지를 불태우며 자기만의 전략을 세우려고 할 때 그에게 주어진 6번째 인생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작고 연약한 ‘갓난아기’다. 주인공과 시청자, 모두의 예상이 벗어난 곳에서 가장 무력한 죽음을 맞이한 그는 살아남으려고 쓸데없이 발악했다고 절규한다. 그때 ‘죽음’은 최이재 앞에 나타나 죽음의 고통이 더 커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런 기회가 아니라 벌이야. 죽음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느끼게 할.” 죽음 승勝!

‘드라마 작가’와의 데스 게임

12번의 삶과 죽음이 이어지는 동안 드라마 스토리는 점점 복잡하게 얽히고 시청자들의 마음은 점점 어지러워진다. 〈재벌집 막내아들〉과 같은 사이다맛 장르물인 줄 알았는데, 이게 뭐지. 〈이재, 곧 죽습니다〉는 5번째 최이재의 삶에서 슬슬 본색을 드러낸다. 진짜 데스 게임은 이제 ‘곧’ 시작이라는 듯.

5회차 삶에서 최이재는 돈을 받고 다른 사람 대신 교도소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때 그 교도소에서 만난 사람이 3회차 학폭 가해자다. 교도소에서 출소하고 나서는 4회에 나왔던 해결사가 숨겨둔 돈을 찾으러 간다. 전혀 연결고리가 없을 것으로 보였던 각각의 인생이 서로 정교하게 연결되고, 그 안에서 사소한 일이 반전의 계기로 작동하고, 그 반전의 반전이 발생하면서 극적 긴장도가 높아지고….

12번의 인생이 정교하게 교차하는 완벽한 플롯. 드라마 작가가 심어둔 단서들이 스스로 연결되어가며 세계관 대통합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드라마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드디어 정체를 드러낸다. “쉽게 스쳐 지나갔던 하루하루가 모여 인생이 되고….” 과연 12번의 ‘죽음’이 향하는 마지막 목적지는 어떤 모습일까. 12번의 삶과 죽음을 지나오는 동안 액션, 스릴러, 로맨스, 휴먼 등 장르를 넘나드는 다채로운 이야깃거리가 넘쳐난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다. 작가 승勝!

 

 

사진제공 티빙

 

 


김민정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연두빛 캠퍼스물과 회색빛 오피스물 사이를 분주히 오가고 있다. 언젠가는 내 인생이 장르가 판타지로맨스코미디홈드라마가 될 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 2022년 중앙대학교 교육상과 제4회 르몽드 문화평론가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쿨투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크리티크 M》 편집위원과 KBS World Radio 〈김형중의 음악세상〉 고정 게스트로 활동하며 자발적 드라마 홍보대사로 열일하고 있다. 저서로 드라마 캐릭터 비평집 『드라마에 내 얼굴이 있다』 외 여러 권의 책이 있다.

 

 

* 《쿨투라》 2024년 3월호(통권 11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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