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만난 별 Ⅱ 배우 남궁원] 아들이고 남편이며 아버지였다
[시로 만난 별 Ⅱ 배우 남궁원] 아들이고 남편이며 아버지였다
  • 장재선(시인)
  • 승인 2024.02.28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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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작 영화 〈화녀〉에서의 남궁원 배우. 한국영상자료원 소장.

아들이고 남편이며 아버지였다
- 고 남궁원 배우

 

먼 남쪽의 궁전을 그리는
그 이름처럼
눈요기의 안개 속에서
흐릿하게 자리해도 됐을 것이다

동쪽 땅에선
한 세대 쯤 일찍 태어난 귀골
하늘의 별로만
아득히 빛나도 됐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모든 별의 시간은
땅의 사람들과
시작과 끝을 함께 했다

어머니와 아내,
딸과 아들, 그리고
딸의 딸 곁에서
스스로 환하게 빛났다.


 


시작노트
역시 신수가 훤하구나! 남궁원(본명 홍경일) 배우를 봤을 때, 나도 모르게 감탄을 흘렸다. 지난 2012년 서울 종로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원로배우 ‘신우회’에서였다. 황정순, 최은희, 신영균, 태현실 등 한국 영화계를 빛낸 스타들이 모여 우정을 다지는 자리였다. 남궁원 배우는 모임에 입장한 후 제자리에 앉아 있다가 다시 선 채로 일행의 담소를 느긋한 표정으로 지켜봤다. 그 때 그의 나이가 78세였다. 참 근사하게 늙어가는 초로의 신사라는 느낌을 줬다. 이번에 그가 90세로 타계했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그 모습이 뚜렷이 떠올랐다.

그가 젊은 시절 영화계에 데뷔한 계기가 어머니의 병원비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의 타계 후 부고 기사들에서 그게 강조되면서 아내 병구완, 자식들 교육 뒷바라지도 새삼 조명받았다. 그 세대의 남자들이 세간의 출세를 빌미로 가정을 등한시하는 것을 자랑거리로 여길 때, 그는 달랐던 것이다.

그의 생애를 논할 때 꼭 짚어야 할 것은, 동년배 스타들이 정치세계에 자의반 타의반 발을 들여놓은 것과 달리 배우 외길을 지켰다는 것이다. 권력의 들러리 노릇을 하지 않겠다는 자존이 그에게 있었다.

그의 아들 홍정욱 올가니카 회장을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이사회에서 만난 적이 있다. 위원회 감사를 맡은 그의 자신감이 배어나면서도 절제 있는 언행이 인상적이었다. 아버지의 후광이 아들에게 힘이 될지, 짐이 될지는 모를 일이다. 분명한 것은, 선대의 충실한 삶이 가장 소중한 유산이라는 것이다.

 

 


장재선 시인. 시집 『기울지 않는 길』, 시·산문집 『시로 만난 별들』, 산문집 『영화로 보는 세상』 등 출간. 한국가톨릭문학상 등 수상. 문화일보 대중문화팀장, 문화부장 등 거쳐 현재 전임기자.

 

 

* 《쿨투라》 2024년 3월호(통권 11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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