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IT와 무속신앙, 현실과 픽션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북리뷰] IT와 무속신앙, 현실과 픽션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 박재희 인턴기자
  • 승인 2024.02.28 17: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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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쿠만 장편소설 『신들린 게임과 개발자들』

김쿠만 작가의 첫 번째 장편소설 『신들린 게임과 개발자들』(네오픽션)이 〈네온사인〉의 여섯 번째 책으로 출간되었다.

소설은 신입 사원 ‘대호’의 게임 회사 취업기로 시작된다. 그는 취업하자마자 호러 게임의 귀신 캐릭터 설정을 ‘맛깔나게’ 만드는 일을 맡는다. 여느 신입 사원이그렇듯, 그가 할 줄 아는 일은 많지 않음에도 말이다. 게임이 출시되기까지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업무와 안하무인 상사들 그리고 개발실에 나타난 귀신들까지. 『신들린 게임과 개발자들』은 직장인의 ‘현실 업무일지’와 SF적 상상력이 적절히 혼합되어 색다른 장르소설을 원한 독자라면 누구든 매력을 느낄 수 있을 작품이다. 실제로 게임을 처음 실행할 때 전개되는 순서인 Tutorial튜토리얼, 〈Project G〉, DLC확장판로 구성된 목차는 게임 회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임을 여실히 드러낸다. 보통의 소설이 본문 전후로 독자에게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사용하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라는 용어 대신, Tutorial과 DLC라는 용어로 치환하여 소설의 게임적 면모를 확실히 각인시킨다.

저자는 튜토리얼에서부터 이 소설이 자신의 취업 체험담에 가깝다고 고백한다. 게임 회사 출신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소설인 것이다. 이 고백으로 우리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픽션인지 가늠할 수 없게 된다. 저자는 이 소설이 자신의 경험담이라는 사실을 과감히 털어놓음으로써 독자가 이를 사실이라고 믿게 만들고자 했다. 저자는 튜토리얼에서 이 소설의 배경은 2033년이며, 혹여나 잘 알지 못하는 게임 관련 정보가 있을 경우 ‘나무위키’에 검색하는 것을 권한다. 밑도 끝도 없이 웬 나무위키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면, 튜토리얼은 확실히 ‘프롤로그’보다 적합한 명칭이었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튜토리얼에 남겨두었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에 의하면 나무위키는 일종의 게임 공략집이다. 그렇기에 이 소설을 읽고 이해하는 데 사용한다면, 나무위키는 이 소설의 공략집이 되는 것이다. 공략집이 있는 소설이라니, 제법 멋질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나무위키에 검색하는 것을 권장하는 작가는 본 적이 없다. 그가 얼마나 독창적인 자신만의 세계를 가졌는지 아주 조금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의 독창적인 세계는 소설을 읽을수록 그 존재감을 과시한다. 2033년이라는 근미래를 배경으로 쓰여 2024년 현재의 시대상을 담고 있으면서도 현실과 묘한 괴리감이 있다. 3D 프린터로 안드로이드를 인쇄하고, 그 안드로이드와 직접 대화하며 캐릭터의 비어 있는 설정을 채워 넣는다는 세계관은 다소 현실성이 없다. 3D 프린터로 출력한 결과물이 자유의지로 현실에서 움직이는 세상이라니. 사전에 짜서 입력해 둔 설정대로라곤 해도 현실에서 물리적 형체를 가지고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는 아직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다. 여기서부터 생겨나는 괴리감은 독자가 소설의 배경이 2033년이라는 사실을 믿도록 만드는 열쇠이다. 보통은 괴리감이 현실과 픽션의 경계를 명확히 하는 구분선의 역할을 하지만, 『신들린 게임과 개발자들』의 설정에서 오는 괴리감은 근미래 배경의 소설이 미묘한 신빙성을 가지게 한다. ‘어쩌면 2033년에는 정말로 이럴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독자의 ‘혹시?’는 이러한 괴리감이 제대로 작용했음을 시사한다.

김쿠만 작가

어떠한 경력도, 스펙도 없는 소설가(지망생)가 게임회사에 취업하게 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딱 하나 가지고 있는 특이사항, ‘등단 경력’은 주인공인 대호의 취업과 업무 수행에 필요했던 단 하나의 조건이었다. VR 호러게임 〈Project G〉를 제작하는 게임 회사에 취업한 대호는 원화의 바탕이 되는 캐릭터의 설정을 짜는 업무를 맡는다. 본문에서 설정을 ‘맛깔나게’ 만드는 업무를 맡았다고 서술하지만, 어차피 높으신 분(이 소설에서는 본부장으로 대표되는)의 입맛대로 변경될 수 있으므로 그냥 ‘캐릭터 원화 설정 짜기’ 정도가 적절할 듯싶다.

〈Project G〉는 무당이 하는 ‘굿’에서 이름이 유래되었으며, 그 이름에 걸맞게 무당이 주인공인 오픈 월드 퇴마 게임이다. 그런데 이제 퇴마가 굿이나 부적을 통한 무속신앙 스타일의 오컬트적 퇴마가 아닌 무력을 사용한 물리적 퇴마라는 점. 3D 프린터로 인쇄된 캐릭터는 짧은 현실 생활을 거쳐 부족한 설정을 보완하고 게임에 커밋(업로드)된다. 〈Project G〉의 캐릭터들이 전부 귀신이라는 점을 참작했을 때, 회사 내(혹은 테크노밸리)에 귀신(의 외형을 한 캐릭터들)이 돌아다니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닌 것이다. 귀신 비슷한 무언가들이 내 뒤에서 돌아다녀도 아무런 감흥 없이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을 상상하면 이 또한 기괴하다는 점에서 공포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오랜 대화 끝에 나는 녀석의 출신지가 어딘지 파악할 수 있었다. 전혀 그렇게 생기진 않았지만 귀신은 저멀리 아스가르드, 그러니까 북유럽 출신 귀신이었다. 북유럽 귀신이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런 곳까지 흘러 들어올 수 있는지는 몰라도 친절한 구글 번역기 덕분에 나는 대강의 사정을 알 수 있었다.

이 아저씨는 자신이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브라기’라는 신이라고 했다. 어쩌다 보니 대한민국에 떨어지게 됐고, 또 어쩌다 보니 테크노밸리를 배회하게 됐다고도 털어놓았다. 그 사정에서 내가 유추할 수 있는건 두 가지뿐이었다. 첫 번째 추측은 오백만 원짜리 부적을 팔아먹었던 그 무당은 아무래도 돌팔이 무당이 맞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 추측은 다음과 같았다.

“아무래도 북유럽 MMORPG 따위를 개발하던 회사의 캐릭터가 우리 개발실 프린터로 굴러들어온 것 같아요.”

- 본문 67-68쪽

 

피부가 가무잡잡한 서른두 살 남자 낚시꾼 귀신은 퇴근하기 직전 3D 프린터에서 뽑혀 나왔다. 실장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낚시꾼 귀신을 바라보며 단역으로 쓰기 아까운 캐릭터라고 중얼거렸는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가끔 한 줄짜리 설정에서도 귀한 것들이 튀어나오는 경우가 있긴 하죠.”

“그런가요?”

“네, 저희는 그럴 때마다 신이 내렸다고 말해요.”

- 본문 112-113쪽


회사에 귀신이 나타나자 본부장은 대처 방안으로 무당을 부른다. 테크노밸리에 자리 잡은 게임 회사에 무당이 등장해 부적을 쓰고, 굿을 하고, 쌀알로 점을 친다(무꾸리). 부적은 한 장에 500만 원, 굿은 한 번에 2,000만 원, 쌀알은 스물여덟 알에 100만 원. 이 일들이 두려운 이유는 이 모든 비용이 게임 개발 비용으로 책정되었다는 사실이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음에도 대호를 비롯한 〈Project G〉의 개발팀원들은 한데 모여 머리를 맞대고 이런 지출 내역을 어떻게 개발 비용으로 끼워 넣을지 고민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본부장의 의사가 그러했기 때문에. 소설에 자세히 서술되지 않듯, 대호와 다른 개발팀원들이 그 선택에 얼마나 동의하는지는 중요치 않다. 크런치 기간(신작 출시를 앞두고 출시 기한을 맞추기 위해 시행하는 강도 높은 마무리 근무 체제)에 먼저 퇴근 준비를 하는 본부장에게 대호가 묻는다. “야근수당 있나요?” 이에 돌아오는 본부장의 답. “우리 포괄이야.” 직장 생활을 조금이라도 겪어봤다면 이 말이 주는 공포감을 익히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귀신, 굿, 게임.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세 단어의 조합이 직장 생활에 존재한다면 어떨까. 무당이 회사에 자연스럽게 출입하고, 야근하더라도 포괄임금제 때문에 야근수당을 받을 수 없다. 열심히 짠 설정은 상사의 말 한마디에 미처 저장하지 못한 채 오류로 꺼져버린 프로그램처럼 백지가 되는 그런 직장 생활. 혹자에게는 일상일 수도, 혹자에게는 상상조차 못 할 끔찍한 직장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누구에게도 긍정적인 직장 생활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직장 생활을 대호는 매일같이 겪고 있다는 점에서 『신들린 게임과 개발자들』이 어디선가 겪어본 듯한 경험을 바탕으로 기묘한 섬찟함을 주는 소설이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어쩌면 귀신보다 더욱 두려운, 가장 현실적인 공포감을 담고 있는 소설이 아닐까.

『신들린 게임과 개발자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넷이다. 취업, 게임, 가상현실, 귀신. 넷 모두 실재하지 않는다. 게임은 현실에 존재할 것 같아도 모니터 등의 출력 장치를 거쳐야만 눈앞에 가시화되므로 실재하지 않는 것에 가깝다. 실재하지 않음에도 실재하는 듯한 네 가지의 키워드는 우리의 삶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어 가장 긴밀한 공포를 선사하는지도 모른다. “어떤 망령은 게임 캐릭터였고 어떤 망령은 게임 개발자였다”, “망령들은 회사에서 회사로 발을 움직였다”는 본문으로 짐작하건대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직장 생활로 게임 회사에 재직하는 직장인들마저 망령처럼 변해버렸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의 손으로 빚어내는 게임 캐릭터와 별반 다를 것 없이 변한 것이다. ‘망령’이 가득해진 사회는 결국 이 시대 우리의 모습을, 사회상을 비추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소설가가 되고 싶었던 대호는 돈을 벌기 위해 다시 게임 회사로 취업하게 된다. 특정 게임을 찬양하는 본부장, ‘맛깔나게’ 설정을 짜는 업무까지, 기시감을 느끼는 것은 『신들린 게임과 개발자들』의 마지막 장을 넘기고 있는 독자들만이 아니었다. 예전에 했던 일과 비슷한 것 같다는 대호의 말에 이어지는 면접관의 말, “게임 회사 일이 다 그렇죠 뭐.” 이를 계기로 대호는 자신이 다른 망령들과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다. 자신이 다른 망령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앞장서고 있음을 알아챈다. 한없이 배회하고 있으나 배회가 언제 끝날지는 알 수 없다. “망령은 더 이상 내일을 기약할 수 없기에.”

김쿠만 작가의 장편소설 『신들린 게임과 개발자들』은 게임 회사 출신인 저자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탄생하여 직장인들에게 깊은 공감을 끌어내며, 이러한 사실은 독자의 몰입을 돕는다. 근미래 배경의 반현실적 소설로서 현실적 공포에 대해 길지 않은 분량과 가벼운 말장난으로 절묘히 담아낸, 가히 ‘신들린’ 소설이다.

 

 


 

 

* 《쿨투라》 2024년 3월호(통권 11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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