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호 감독] 이장호 영화 인생의 최대 분기점 〈무릎과 무릎 사이〉 그리고 〈어우동〉
[이장호 감독] 이장호 영화 인생의 최대 분기점 〈무릎과 무릎 사이〉 그리고 〈어우동〉
  • 오동진(영화평론가)
  • 승인 2024.04.01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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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흥영화사 제공.
태흥영화사 제공.

1945년 ‘해방둥이’인 이장호 감독은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중반에 있어, 한국의 진정한 앙팡테리블enfants terrible이었다. 그는 시대와 세상을 향해 온 힘을 다해 영화로 저항했다. 그 꼭짓점에 있는 작품이 바로 〈무릎과 무릎 사이〉 그리고 〈어우동〉이다.

감독이 세상을 향해 저항하는 방식은 두 가지이다. 섹스와 폭력이다. 영화 감독들이 주기적으로 과도한 성적 묘사에 탐닉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거꾸로 보면 세상이 자꾸 금기의 줄과 선을 사람들 사이에 그어 놓고, 차단하기 때문이다. 영화감독은 섹스 신, 성기 노출까지 감행하는 누드 장면 등을 통해 영화의 예술적 표현의 자유를 우회적으로 주장하려 한다. ‘자꾸 우리들 입을 틀어 막을 거야? 내가 진짜 센 거 보여 줄게’라는 식이다. 한편으로 박찬욱의 ‘복수 3부작’처럼 감독들은 끔찍한 느낌의 폭력을 즐겨 보여주기도 한다. 대체로 국가 폭력의 문제가 제기되거나 그런 문제가 올바로 해소되지 않은 사회 분위기일 때가 그렇다. ‘너희들이 그렇게 세? 그럼 이거 한번 봐’ 식이다. 〈무릎과 무릎 사이〉와 〈어우동〉은 섹스라는 기관단총을 들고 전두환 시대와 전투를 벌인 이장호의 전사戰史와 같은 작품이다.

태흥영화사 제공.
태흥영화사 제공.

〈무릎과 무릎 사이〉가 나온 것은 1984년이었다. 전두환 시대 초기, 광주 학살의 공포가 아직 채 가시지 않았을 때였고 사회가 급격하게 얼어붙어 있을 때였다. 전두환 시대의 억압은 영화 속 주인공 자영(이보희 분)의 어머니(태현실 분)로 대체, 상징된다. 자영이 어릴 때 과외선생에게 성추행을 당하자 어머니는 딸을 수녀처럼 키운다. 강한 성적 억압으로 딸을 가둔다. 문제는 자영이 여성성이 자연스럽게 발화된 상태라는 것이고, 그(런 자유의지)건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자영의 성감대는 특이하게도 무릎이다. 남자들은 그녀의 무릎과 무릎 사이로 파고 드려고 안간힘을쓴다. 근데 이때의 남성들 욕구는 강제적이다. 그들은 자영을 강간한다. 시대는 군사정권에 의해 유린됐다. 이장호가 우회한 메시지는 그것이다.

정작 이 영화가 드러낸 것은 무릎 사이가 아니라 여배우의 가슴 노출, 그것도 유두 노출이라는 파격이었다. 80년대의 세상은 이 영화 한편으로 난리가 났다. 이장호 감독은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감춘 채 뒤에서 ‘씨익’ 웃는 모습이었지만 이 영화가 전두환 시대의 3S 정책(섹스, 스포츠, 스크린)의 일환에 맞춰 제작됐다는 점은 진정한 아이러니 중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어쨌든 당시 군사정권은 이 영화에 몰린 대중들을 보다 우민화시킬 요량으로 이 영화의 2편, 3편까지의 제작을 허가했다. 모두 이장호와는 상관없는 포르노급의 B무비였다.

영화에서 자영의 동생 보영(이혜영 분)의 존재도 이색적이었다. 보영은 80년대를 지나 90년대의 X세대로 가는 길목의 존재이다. 그녀는 마이클 잭슨을 듣고 미국(의 정치문화)적 가치와 일찌감치 손을 잡는다. 시대의 변화를 젊은이들이 주도하고, 외부세계와 손을 잡으려 하고 있음(개방)을 보여주지만 그에 대한 시선은 다소, 이중적이라기 보다는 양가적兩價的이다.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서서히 반미민족주의 정서가 퍼지고 있을 때였다.

태흥영화사 제공.
태흥영화사 제공.

이장호는 〈무릎과 무릎 사이〉의 대중적 흥행에 힘입어, 이후 한국 현대영화사에서 굴지의 제작자가 된 태흥영화사의 이태원 프로듀서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둘은 〈어우동〉을 만들며 한국 사회를 다시 한번 흥분시키고 달궈내는 데 성공한다. 군사 정권은 이를 다시 역이용한다. 영화 〈어우동〉의 인기 이후 한국 이태원과 강남 등지에는 ‘어우동쇼’라는 ‘핍 쇼’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사회는 급격하게 외설화 된다. 기이하게도 그건 반항아 이장호와 독재 정권의 목표가 합치된 것이었다. 이장호는 사회를 무너뜨릴 요량이었지만 정권은 자신들의 치부를 덮을 생각이었다. 목적은 달랐지만 수단은 공유하는 기이한 역설을 발생시킨 작품이 바로 〈어우동〉이다.

 

 

본 기사의 전문은 추후 공개됩니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현 들꽃영화상 운영위원장.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집행위원장,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필름콘텐츠마켓 운영위원장 역임.

 

 

 

* 《쿨투라》 2024년 4월호(통권 11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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