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오펜하이머] "오펜하이머의 매력은 그의 발언이 행동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킬리언 머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에밀리 블런트, 루드비히 고란손, 엠마 토마스
[인터뷰 - 오펜하이머] "오펜하이머의 매력은 그의 발언이 행동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킬리언 머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에밀리 블런트, 루드비히 고란손, 엠마 토마스
  • 설재원 에디터
  • 승인 2024.04.01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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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펜하이머〉의 크리스토퍼 놀란, 킬리언 머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에밀리 블런트, 루드비히 고란손, 엠마 토마스

2023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지난 3월 10일 막을 내렸다. 지난해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오펜하이머〉였다.

〈오펜하이머〉는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5관왕(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음악상)을 차지한 데 이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크리스토퍼 놀란), 남우주연상(킬리언 머피), 남우조연상(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촬영상(호이트 반 호이테마), 편집상(제니퍼 레임), 음악상(루드비히 고란손)을 휩쓸며 무려 7관왕을 달성했다.

시상식 전 〈오펜하이머〉의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과 프로듀서 엠마 토마스, 음악감독 루드비히 고란손, 그리고 배우 킬리언 머피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에밀리 블런트와 만나 함께 나눈 이야기를 전한다.

먼저 감독님,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영화를 만들 때 핵물리학에 대한 조사를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작품을 마친 지금, 핵물리학에 대해 더 애정이 생겼나요?

 

크리스토퍼 놀란
제가 일반인 수준 이상으로 이해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양자물리학에 대한 흥미는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킵 손Kip Thorne과 함께 〈인터스텔라〉와 〈테넷〉에서 함께 작업한 경험을 토대로 가지고 있었고, 이게 작품의 시작점 중 하나였습니다. 왜냐하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이어 오펜하이머와 그의 동시대 사람들이 시도한 과학적 사고의 전환은 인류에 있어 가장 중요한 패러다임의 전환 중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카이 버드와 마틴 J. 셔윈이 쓴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각색할 때 이러한 부분에 대해 어느 정도는 이해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관객이 이 영화 하나 본다고 양자물리학자가 되어 나오진 않겠지만, 그래도 이 대전환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이로 인한 사고의 변화가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조금은 알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번에는 작품의 제작을 맡은 엠마 토마스 프로듀서에게 질문 드릴게요. PD님과 남편 놀란 감독님이 함께 만들어 내는 작품에는 무언가 특별함이 있습니다. 감독님께서 〈오펜하이머〉를 다음 작품으로 만들겠다고 했을 때 어땠나요?

 

엠마 토마스
크리스는 오펜하이머에 오랫동안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테넷〉에 오펜하이머에 대한 언급이 있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도 오펜하이머에 대한 크리스의 관심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저희의 영화 파트너인 찰스 로벤Charles Roven이 꼭 한번 봐야할 것 같다고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주었어요. 이 책은 정말 거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습니다. 두껍기도 하고요. 책을 읽기 시작하자마자 왜 크리스가 오펜하이머에 관심을 가졌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는 도대체 이 책을 어떻게 크고 재밌는 영화로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곧 이번 작업이 저희에게 가장 재미난 도전이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을 읽고 작업에 들어가면서 크리스도 본인이 무엇을 할 것인지 계속 이야기했고, 점차 비전이 명확해지면서 저도 무척이나 흥분했습니다. 특히나 크리스가 영화의 마지막 대사에서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 말했을 때 이 대사가, 그리고 작품이 지금의 관객에게 어떻게 전달될지 완전히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 언제나 그렇지만 모든 프로젝트의 시작 단계는 각본과 이야기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가득한 채로 미지의 세계로 뛰어드는 것과 같습니다.

그럼 감독님께 책을 시나리오로 만드는 이야기도 들어봐야겠어요.

 

크리스토퍼 놀란
이런 각색 작업의 장점은 카이 버드와 마틴 셔윈이 앞서 연구하여 700여 페이지 분량의 책으로 만들어 놓았다는 점입니다. 특히 마틴은 집필에 25년을 쏟았어요. 그 덕분에 당시 현장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의 연구와 일화가 아주 잘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이 책이 누군가에게는 그다지 영화적으로 보이지 않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저는 저를 크게 감동시킨 삶의 강렬한 순간을 포착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밑그림을 그릴 이 놀라운 자료가 있었고, 그 밖의 실제 조사를 한 건 루이스 스트로스의 인준 청문회처럼 책에 나온 자료를 더 깊이 들어갈 뿐이었어요.

그리고 나서 상원 기록실에 가서 속기록과 보안 청문회를 읽었습니다. 오펜하이머의 보안 청문회에서는 천 페이지에 이르는 스크립트를 구할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또 제가 열심히 했던 건 책을 읽은 후에 내용을 메모해 놓는 것이었어요. 예를 들어 저녁 파티나 작품을 판매하는 자리에서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지, 제 마음에 정말 와닿는 부분이 무엇인지를 정리하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런 다음에는 구조적인 접근법을 취해 플롯을 뒤섞는 작업이었습니다. 루이스 스트로스와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이야기, 두 개의 서로 다른 청문회 사이에 병렬적 구조를 갖추고 난 뒤에는 책에 들어 있는 세세한 사항과 복잡성이 큰 자산이 되었는데요, 제게 필요했던 모든 답이 책 속에 있었고 특히 책 뒤에 색인이 잘 되어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출판된 보안 청문회 자료에도 비슷하게 색인이 있어서 서로 다른 관점, 그러니까 레슬리 그로브스와 에드워드 텔러 같은 다른 인물의 말을 통해 교차 검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다음 초고를 쓰고 재교, 3교 등 리라이팅을 거치면 마치 제가 만든 것처럼 보이는 글이 완성됩니다. 그러니까 진정한 의미에서 작가의 글이 되는거죠. 그래야만 하고요. 이 단계에 이르면 다른 시나리오 작업과 비슷해지는 것 같습니다.

 

이제 출연진에게 질문드릴게요. 〈오펜하이머〉의 대본은 다층적이고 디테일하며 깊이 있는 캐릭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세 분 모두 연기한 캐릭터가 정말 매력적이었어요. 대본과 원작에 나온 것 외에 각자의 캐릭터에 대해 알게 된 점을 말씀해 주시겠어요?

 

킬리언 머피
정말 많은 게 있었죠. 제게 정말 유용했던 것은 영화에서는 전혀 다루지 않은 그의 어린 시절과 성장기에 대해 읽은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성인이 된 그의 모습을 연기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였어요. 조금 전 감독님이 말씀하신 캐스팅 디렉터 킵 손과도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킵 손은 어렸을 때 오펜하이머 강의하는 걸 직접 들은 적이 있어요. 그래서 오펜하이머가 강연할 때 어떻게 움직였는지, 파이프를 어떻게 잡았는지와 같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저는 그 모든 걸 전부 흡수했죠. 이게 준비 과정에서 정말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게는 직접적인 자료들이 유용했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특히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작업에 들어갈 때는 언제나 대본이 가장 중요한 자료가 되고, 제가 따로 준비한 것들은 가지고 있되 일종의 부차적인 게 되는 것 같아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제가 맡은 루이스 스트로스는 꽤나 훌륭한 삶을 살았고 평생 공직생활을 했습니다. 만약 오펜하이머와의 불화 없이 함께 잘 일할 수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 보면 조금은 불행한 면도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게 제가 고려해야 할 부분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캐릭터가 일종의 ‘악당bad guy’으로 존재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거기서도 제가 끌어낼 수 있는 게 많이 있었어요. 이러한 측면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준비를 많이 했습니다.

 

에밀리 블런트
키티는 겉으로 보기에는 거칠고 날카로운 면모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키티의 내면에는 로버트에게 안정감을 주는 훌륭한 점도 많이 보여요. 물론 스스로 망가지고 술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키티는 오펜하이머에게 중요한 지지자이자 무자비한 진실을 말해주는 사람입니다. 어쩌면 그래서 더 불안정하고 힘들었을지 모르지만 저는 그 헌신과 사랑을 보는 것만으로도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그리고 로스 앨러모스에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키티에 대한 인식을 살펴본 게 도움이 되었는데, 그녀가 남자든 여자든 모두의 마음을 어떻게 사로잡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영화를 만드는 데 57일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참 놀라웠습니다. 〈오펜하이머〉를 제작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요?

 

엠마 토마스
사실 그동안 만들어왔던 영화와 비교할 때 이번 영화는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인셉션〉의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는 도대체 이걸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지 훨씬 더 걱정했던 것 같아요. 이번 작업에서 가장 큰 도전은 여름에 개봉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가능한 한 많은 관객을 찾고 싶었는데 저희 영화는 아주 거창한 아이디어의 3시간짜리 R등급 영화였기 때문에 저희가 생각한 만큼 돈을 쓸 수는 없을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57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아주 숨가쁜 일정으로 촬영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저희 영화에는 정말 훌륭한 제작진이 함께 했기 때문에 이게 가능했습니다. 상황이 이러해서 최대한 빠르게 찍어야 한다고 말하자마자 모두가 빠르게 찍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여기에는 우리의 놀라운 배우들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배우들이 기꺼이 참여하지 않았다면 이 영화를 이렇게 빨리 촬영할 수는 없었을 거예요. 배우들은 대기실로 돌아가지도 않고 세트에 앉아 저희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렸어요. 이러한 모두의 노력이 없었다면 〈오펜하이머〉는 불가능했을 거예요.

 

그렇다면 이번 작업에 임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으로는 뭐가 있을까요?

 

에밀리 블런트
이번 작업에서는 특별히 힘들게 느껴진 게 없었습니다. 모든 과정을 너무 즐겼고, 저는 정말 매일 일하러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보통 영화에서 어려운 점은 캐릭터의 대사와 전개, 그리고 시나리오에 담긴 얽히고설킨 내러티브와 인터커팅을 잘 따라가는 건데, 이번 작품에서는 그런 부분을 잘 해낸 것 같아요.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감독님이 잘 한 것이기도 하죠. 그래서 정말 힘들었던 기억은 없고 모든 게 너무 좋았습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저한테는 역사적 중요성과 저희가 하는 일의 시의적절성이라는 무게감이 크게 느껴졌습니다. 이걸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영화 속 회의와 사건이 모두 연구소에서 실제 발생했던 일이기 때문에 이걸 제대로 하는 게 정말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역사적 무게를 존중하고 잘 해내기 위해 더 노력한 것 같아요.

 

킬리언 머피
솔직히 말하면 힘들었던 게 많은데, 그래도 가장 짜릿한 순간도 있었죠. 세상을 바꾼 아이콘인 이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건 큰 책임감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감독님과 함께였기 때문에 저는 최고의 팀을 만났다고 확신할 수 있었고, 저는 이러한 도전을 좋아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게 바로 이런 압박감이 느껴지는 작업입니다. 이번 작업도 제게 있어서 도전이었지만 딱 적당한 압박감이 느껴지는 정도였습니다. 아주 안전한 현장이었고 제가 호기심을 갖고 도전할 여지가 많은 작업이었습니다. 이런 점이 동기부여를 해주었고, 제가 계속 밀어붙이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루드비히 고란손 음악감독님은 〈오펜하이머〉가 놀란 감독님과의 두 번째 작업입니다. 두 분의 작업 방식과 〈오펜하이머〉의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루드비히 고란손
저는 이번 작업에 아주 일찍 참여한 편이라 시나리오를 가장 먼저 읽은 사람 중 한 명입니다. 시나리오를 읽고 음악과 영화 사운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는데 먼저 감독님께서 바이올린으로 오펜하이머의 성격을 묘사하자는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프렛이 없는 악기인 바이올린은 연주하기에 따라 비브라토를 살짝 바꿔서 신경증적이거나 끔찍한 소리를 낼 수도 있고, 아름다운 음색과 부드러운 비브라토를 낼 수도 있는 다재다능한 악기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바이올린으로 오펜하이머의 감정을 묘사하고, 그 감정 사이를 오가고 싶었습니다.

그런 다음에는 음악을 여럿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영화 촬영에 들어가기 전부터 음악을 많이 작곡해 두었습니다. 촬영이 시작되었을 때에는 이미 두세 시간 분량의 음악이 완성된 상태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영화를 촬영할 때 음악을 들으며 진행할 수도 있었죠. 첫 번째 편집을 시작할 때에는 이미 〈오펜하이머〉 사운드 월드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단계를 프로젝트에 맞춰 진행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오펜하이머가 지닌 양면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작품에서 우리는 오펜하이머가 누구인지, 그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건 감독님 작품에서 반복되는 주제입니다. 캐릭터의 양면성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음, 제가 느끼기에 저는 인간적이거나 결점이 있는 캐릭터가 중심이 되는 영화에 끌리는 것 같습니다. 제가 다른 어떤 슈퍼히어로보다 배트맨이라는 캐릭터를 더 편안하게 받아들였던 것은 그가 인간적이면서도 갈등을 겪는 캐릭터이기 때문입니다. 제 작품 속 주인공은 저마다 다른 면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중 제가 생각하는 오펜하이머의 매력은 그가 공개적으로 표현한 발언이 그의 내재된 행동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는 원자폭탄 사용에 대해 결코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변명도 하지 않았고요. 그는 이를 기술적 성공이라고 언급하며 자신의 역할을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1945년 이후 그의 모든 행동은 자신의 발명과 그 발명이 세상을 바꾼 방식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나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죄책감과 자각을 지닌 사람의 행동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가 영화의 중심에 두기 좋은 강력한 프로타고니스트라고 생각했고요.

 

그럼 배우 입장에서는 처음 시나리오를 읽고 로버트 오펜하이머라는 캐릭터를 맡는 데 망설임이라든지 그런 건 없었나요?

 

킬리언 머피
사실 전 시나리오를 읽기 전에 출연하겠다고 했어요. 항상 그렇지만 감독님이 제게 다시 역할을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로버트가 말한 것처럼 이 이야기는 인류와 역사에 매우 중요한 이야기이고 커리어에서 이런 역할을 맡을 기회는 자주 오지 않으니까요. 그러니 기회가 오면 그냥 뛰어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감독님과 함께 일할 때에는 촬영을 시작할 때까지 늘 촉박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기뻤던 순간은 잠깐이었고 바로 머릿 속은 일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바뀌었습니다. 망설임은 전혀 없었죠.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배우도 각본을 읽어 보기도 전에 이 작품을 하고 싶어 했다고 들었습니다. 각본을 읽은 뒤에는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감독님 댁에서 시나리오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는데, 제 역할이 제대로 펼쳐지기 전에 시작하는 몇 페이지만 읽고도 ‘와, 이건 정말 중요한 역할이고 나한테 온 게 큰 행운이구나’ 하는 생각이 연기하면서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감독님이 제가 이걸 할 수 있을 거라고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지금도 궁금해요. 그리고 이런 서로에 대한 믿음이 더 큰 역할을 해내는 힘이 되는 것 같기도 해요. 그래서 질문과는 조금 다르지만, 저는 감독님께 감사한 마음이 큰 것 같습니다. 이런 기회가 쉽게 찾아오는 건 아니니까요.

에밀리 블런트 배우는 조연이지만 아주 중요하고 복잡한 캐릭터를 연기했어요. 이번 작품을 앞두고 어떤 준비를 하셨나요?

 

에밀리 블런트
저도 방금 로버트가 말한 내용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감독님이 제가 그 역할을 맡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뭐랄까 날개를 단 것처럼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저는 작품을 준비하면서 키티에 대해 최대한 많은 정보를 찾아 읽으려고 했습니다. 저는 누군가의 삶의 그림자에 대해 호기심이 많은 편이라 때로는 다소 비호감으로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의 왜 저렇게 행동하는지 관심을 갖거든요.

그리고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가 정말 큰 도움이 되었어요. 책 속 키티는 아주 거칠지만 다채로웠고 그래서 제가 그 역할에 깊이 파고들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목소리도 중요했고, 일종의 스펙터클한 느낌도 중요했어요. 그런 면에서 그녀와 오펜하이머 모두 스스로를 신화화한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키티가 오펜하이머를 처음 만나는 파티에서 키티는 자신이 직접 만든 화려한 옷과 코르사지 차림이었다고 합니다. 과시욕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할 수 있죠. 키티가 오펜하이머를 만나기 전에는 일종의 불안감이 그녀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오펜하이머는 네 번째 남편이었고 저는 그러한 배경을 고려하여 키티의 특징을 담아내려고 노력했습니다.

 

〈오펜하이머〉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바로 놀라운 출연진입니다. 오늘 함께한 주연 배우들뿐만 아니라 작은 배역에도 모두 실력 있는 배우들이 출연했습니다. 오펜하이머의 캐스팅 과정이 궁금합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아주 중요했어요. 시나리오 단계에서 저는 캐스팅 감독인 존 팝시데라John Papsidera와 모든 작은 역할에도 독특한 얼굴과 캐릭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맨해튼 프로젝트에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했다는 점이 이 프로젝트의 중요한 점이고, 역사적으로도 아주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저희는 다양한 얼굴과 개성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존은 〈메멘토〉 때부터 저와 함께 일한 업계 최고의 캐스팅 디렉터입니다. 이번에도 존이 흥미로운 신인 배우들을 섭외해왔고, 리처드 파인만 같은 작은 역할에 잭 퀘이드를 데려오는 놀라운 일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리고 데이비드 크럼홀츠와 같은 배우들이 모든 장면에서 열연을 펼쳤습니다. 정말 멋진 배우들이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배우들이 연기하는 실제 인물에 대해 직접 연구할 수 있었고, 저보다 더 그 캐릭터에 대해 전문가가 되어 촬영 현장에 나타났습니다. 그런 배우들과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은 감독으로서 정말 기쁘고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루이스 스트로스가 의장을 맡은 GAC 회의처럼 과학자들이 많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즉흥적으로 진행된 게 많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냥 배우들에게 알아서 하라고 했고, 그래서 배우들도 자유롭게 논쟁하고 아무 말이나 던질 수 있었죠. 데인 드한이 테이블에서 물건을 가져오는 장면도 그렇고 조쉬 하트넷도 그렇고 아무튼 좋은 배우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어서 정말 영광이었고 너무 즐거웠습니다.

다시 음악감독님께 묻겠습니다. 사운드 편집과 사운드 믹싱도 음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알고 있는데요, 사운드 팀과의 협업은 어땠나요?

 

루드비히 고란손
사실 이 부분이 시나리오에서 정말 놀라웠던 점 중 하나입니다.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발자국 소리나 트리니티 실험에서 폭탄이 터진 후 몇 초 동안의 침묵과 같은 여러 디테일이 처음부터 담겨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사운드 팀의 리처드 킹Richard King(사운드 에디터)은 세트장에서 발로 밟는 소리를 미리 녹음해서 보내줬어요. 덕분에 음악 작곡에도 활용할 수 있었죠.
음향 디자인과 영화음악의 사용, 그리고 이 두 세계를 효과적으로 조합하는 것은 아주 흥미로운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에서는 음악이 아주 음조적이고 음악적인 것에서 완전히 무미건조한 음향 소리로 완전히 변화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폭탄을 처음 볼 때까지는 모든 것이 이론처럼 음조적으로 보이고 들립니다. 그런데 실제로 폭탄을 볼 때, 음악은 완전히 변화하여 오케스트라 음악에서 똑딱거리는 시계나 심장 박동 소리, 원자로 소리와 같이 매우 불길하고 음향적인 사운드로 완전히 바뀝니다.

 

마지막으로 감독님께 하나만 더 묻겠습니다. 아직도 개봉하지 못한 국가들이 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일본관객은 그동안 〈오펜하이머〉를 볼 수 없었는데요, 드디어 3월 29일 일본에서 개봉이 확정되었습니다. 일본 개봉까지 꽤나 오래 걸렸는데요. 느낌이 어떠신가요?
 

크리스토퍼 놀란
영화를 기다렸던 일본관객과 드디어 만날 수 있어 너무 기쁩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현지 배급사인 비터스 엔드와 함께 개봉까지 아주 신중하게 접근했고 작품이 다루고 있는 주제가 가지고 있는 현지의 민감성을 잘 고려하고 있다는 점도 저로서는 다행인 일입니다. 〈오펜하이머〉는 전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일본에서도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저희 작품에 관심을 주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본뿐만 아니라 아직 〈오펜하이머〉가 개봉하지 않은 다른 국가에서도 곧 작품을 만날 기회가 생길 것 같습니다.

 

 


 

* 《쿨투라》 2024년 4월호(통권 11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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