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에세이] 프라하는 안단테: 카프카의 체취가 스민 곳
[기행에세이] 프라하는 안단테: 카프카의 체취가 스민 곳
  • 이성숙(시인, 수필가)
  • 승인 2024.04.03 1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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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 중앙역이다. 역내가 여느 연주장만큼이나 널찍한데 한 켠에서 음악이 들려온다. 출구를 찾으면서 한편은 피아노 소리를 더듬으면서 걷는 중이다. 출구 앞, 수염이 덥수룩한 초로의 남자가 피아노를 치고 있다. 벌써부터 감동하면 안 되는데…, 작은 심장이 터져 버리면 큰일인데…. 그는 수준 높은 클래식 곡들을 쉬지 않고 연주한다. 피아노엔 무거워 보이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고 건반 끝에 종이컵이 놓여 있다. 사슬 묶인 피아노, 초라한 연주자,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음악. 야릇한 부조화 속 평화다. 프라하는 내게 그렇게 다가왔다. 짙은 유화물감처럼 묵직한 색깔로, 원색에 검정을 덧칠한 느낌으로.

고대사를 제외한 현대 도시 중 프라하만큼 이야기가 많은 곳도 드물다. ‘프라하의 봄’으로 대표되는 민주화 운동이 뜨거웠던 곳이고 문학과 철학이 성장한 도시이며, 나치학살의 아픔을 겪은 도시다. 흰 종이컵에 지폐를 넣고 한참이나 서서 그의 연주를 듣다 밖으로 나온다. 택시를 잡아 숙소로 향한다.

프라하에서 내가 할 일은 프라하 느끼기, 카프카 찾아내기다.

프라하 중앙역 출입구 앞의 피아노와 피아노 치는 남자. 이동을 방지할 목적인지, 피아노 발에 사슬이 감겨 있다.

숙소 주변 스케치

게스트하우스 로열로이드 아파트에 별점 5개를 준다. 고풍스러운 외관과 널찍한 방, 높은 천장, 밝은 조명, 조리할 수 있는 싱크대, 엘리베이터와 구도심 중앙이라는 좋은 위치, 가격 장점까지 만족스러운 숙소다. 게스트하우스라기보다 아파트형 호텔 정도로 불러야 할 곳이다. (내가 경험한 게스트하우스는 예외 없이 심각한 결함을 한 가지씩 갖고 있었다!)

카를로바 거리 20번지의 아파트 앞은 작은 광장이다. 아래층에 스타벅스가 있고 아파트 맞은편에는 굴뚝아이스크림 집이 있다. 굴뚝아이스크림은 프라하의 명물 디저트! 굴뚝처럼 구운 빵 위에 아이스크림을 올려준다. 토핑을 추가하면 어찌나 큰지, 한 끼 식사 분량이다.

작은 광장 중앙에는 아이리시 맥주 바가 있어 언제든지 내려가서 한잔할 수도 있다. 집을 나와 왼쪽으로 돌면 카를교, 오른쪽으로는 골목 끝까지 상점이 늘어서 있다. 기념품점과 작은 식료품점, 유리 공예품점, 러시아 인형을 파는 가게, 바느질로 앞치마 아기 옷 등을 만들어 파는 수제 옷 가게가 나란히 늘어서 있는데 따스하고 사랑스러운 분위기다. 가게들은 밤에도 불을 환하게 밝히고 있어 한겨울 골목을 온기로 북적이게 한다.

200미터 정도 되는 오른쪽 골목 끝에 또 다른 크지 않은 광장이 펼쳐진다. 광장 끝에 국립도서관과 오페라 극장이 있다. 공연이 없는 날의 광장은 한산하다. 잘게 쪼갠 대리석으로 도포된 바닥 위로 겨울비가 내리면 바둑알이 부딪는 듯한 정겨운 소리가 난다. 자르륵 자르륵.

빈을 일컬어 음악 도시라 하는데, 음악과 문학과 예술적 영감이 도시 전체를 휘감고 있는 프라하를 무엇으로 명명해야 할지 난감하다. 한 마디로 나는 프라하에 취해버렸다. 공산정권 치하, 나치의 악마적 통치를 거쳐 오늘에 이른 프라하다. 짙고 깊은 프라하의 하늘, 사람들은 유순하고 조심스럽다. 좁은 골목 잠깐의 부딪힘에도 몸을 크게 조아려 사과하는 프라하 사람들이다. 당신, 더 이상 상처받아서는 안 된다는 듯이.

골목마다 있는 굴뚝 아이스크림 가게.

레넌 벽 가는 길

20분쯤 걸어 레넌 벽에 도착, 사진을 찍느라 왁자한 사람들 틈에 끼어 있다가 자리를 뜬다. 시멘트가 거칠게 발린 길을 내려와 왼쪽으로 언덕을 오르면 프라하성과 마주친다. 나는 다시 카페 사보이 앞으로 와서 택시를 잡는다. 좀 더 걷자와 택시를 타자 사이에서 갈등한 후다. 프라하성까지 또 20분 넘게 걸어야 하는데 비를 맞으며 광장 곳곳을 쏘다닌 터라 산길을 걷고 나면 하루를 여기서 닫아야 할지 모른다. 겁먹은 달팽이처럼(언제나처럼) 실리적 선택을 한 것이다. 프라하성은 건물 하나가 아니라 9세기부터 건축하기 시작한 거대한 성채 단지다.

공산국 체코 시절, 자유를 갈구하는 체코 청년들이 이 벽에 존 레넌의 노래 가사를 적었던 것으로부터 레넌 벽의 역사가 시작된다. 그의 노래 마인드 게임즈Mind Games(Make Love, Not War)와 이매진Imagine의 가사는 자유와 평화를 담고 있다. 이후 많은 사람이 공산정권에 반대하는 그림과 낙서를 하기 시작하면서 레넌 벽은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체코 민주화 운동의 한 상징이다.

 

황제 성으로 불리는 프라하 성채 단지와 비투스 대성당

1000년 넘는 세월을 살아남는 동안 프라하성의 옥쇄는 공작들, 왕들, 대통령들, 찬탈자의 손까지 두루 거친다. 통치자들은 그때마다 성에 자신들의 표적을 남겨 놓았다. 두 명의 호위병이 지키고 있는 명예의 궁은 여황제 마리아 테레지아와 아들 요셉 2세의 모노그램이 새겨진 성문을 통해 들어간다. 1614년 황제 마티아스 1세에 의해 마무리된 마티아스의 문은 프라하 바로크의 상징이 된다. 요셉 플레츠니크의 가늘고 긴 국기대는 첫 체코 공화국 시절에서 유래한다. 성 내부는 공개되지 않아 건물 외관만 보며 걷는다.

근위병이 서 있는 성 안쪽으로 들어가면 프라하성 뒤쪽의 성 비투스 대성당과 이어진다. 건물이 완성되기까지 700년이 더 걸린 비투스 대성당은 다양한 정면 양식을 보여준다. 르네상스 성탑 위에 고딕 성단, 바로크 양식의 탑 지붕, 네오고딕의 서쪽 건물까지. 성당을 돌아 나오면 황금소로와 이어진다. 프라하의 슬픔이 응집된 곳이다. (황금소로는 아래 ‘카프카를 만나다’에서 다루기로 한다)

카페 아르코 바깥 벽에 걸린 카프카 사진.

카프카를 만나다

택시를 잡아 광장으로 돌아온다. 카프카, 그를 만나야하기 때문이다.

천문시계가 있는 구시가 광장은 체코에서 가장 오래된 광장이다. 이 구시가 광장을 중심으로 카프카의 일생이 펼쳐진다.

독일어 학교에 다니고 독일어를 쓴 까닭에 카프카를 독일 작가로 아는 사람이 많지만 카프카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유대계 소설가다. 그의 부친이 그를 프라하의 약 10% 상류층이 다니는 독일어 학교에 보낸 것이다.

카프카가 나고 자라고 사망하기까지 생을 바친 곳이 프라하다. 이곳에서 그의 흔적을 찾는 일은 암울한 시대 한 지식인의 삶을 더듬는 일이다. 나치 점령 시절, 그는 유대인이었으나 유대 사회에 속하지 못하고(독일어를 쓴다는 이유로), 독일 지식인층에서는 유대인이라고 배척당한다. 그가 사랑하는 세 누이는 나치에 의해 희생당한다. 어느 날 아침 벌레로 변해버린 그레고르 잠자(소설 『변신』의 주인공), 이 황당한 주인공은 카프카 자신이 아니었을까. 갑자기 알 수 없는 일로 생일 아침 체포되어 피의자 신분이 되어버린 은행원 요제프 K(소설 『심판』의 주인공)의 고독은 카프카의 심장이 아니었을까.

그가 숨 쉬었던 곳을 연대기 순으로 더듬어 본다.

카프카가 태어난 집. 올드타운 광장의 유 레드니스 5번지.

카프카가 태어난 집

올드타운 광장의 유 레드니스 5번지U. Radnice 5, Old town, 1883년 3월 카프카는 이곳에서 태어난다. 성 니콜라스 성당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노란색 4층짜리 건물이다. 1층에 식당이 영업 중이다. 과거에는 카프카 얼굴 부조가 벽에 붙어 있었나 본데, 누가 떼어 갔는지 카프카 생가라는 표식이 어디에도 없어 찾느라 애를 먹었다. 다시 광장으로 나온다.

천문시계 바로 옆 올드타운 2번지 집.

독일어 문법학교와 올드타운 2번지 집

광장 중앙에 쌍둥이 뾰족탑을 가진 틴 마리아 성당이 보인다. 틴 마리아 성당 왼쪽, 분홍색 킹스키 궁전 뒤쪽으로 카프카가 다녔던 독일어 문법학교가 있었다 한다. 1890년 카프카가 이 학교에 다녔다는 기록을 믿고 킹스키 궁 뒤편 골목을 걷고 또 걸었으나 학교를 찾지 못했다.

다시 광장을 오른쪽으로 가로질러 천문시계 앞이다. 천문시계 바로 옆 올드타운 2번지, 르네상스 스타일의 U Minuty 앞에 발을 멈춘다.

올드타운 광장 5번지. 결핵을 앓던 말년에 살던 집.

올드타운 광장 5번지

결핵을 앓던 말년에 그가 살던 올드타운 광장 5번지. 쇠문이 달린 아파트다.

카프카가 자주 가던 아인쉬타인 스퀘어 카페. 카프카와 아인쉬타인 등 당대 석학들이 매주 화요일 이곳에서 토론을 벌였다.

아인슈타인 스퀘어 카페

킹스키 궁전과 천문 시계탑 사이에 그가 자주 가던 아인슈타인 스퀘어 카페가 있다. 올드타운 17번지 집이다. 베르타 판토바 부인이 운영하던 이곳 살롱에서 화요일마다 철학 모임이 열렸다. 1911년 프라하의 카를 대학교에서 강의한 아인슈타인 등 유명 인사가 이 모임에 정기적으로 참여했다. 카프카와 아인슈타인은 이 카페에서 자주 만나 철학적 담론을 펼쳤다고 한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자와 문학가가 매주 만나 담소를 나누고 철학적 견해를 펼쳤다니 상상만으로도 가슴 뛰는 장면이다. 나는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주문하고 해질녘까지 앉아 있었다. 테이블이 많지 않은 좁은 실내다. 판토바 부인이 매력적이었을까, 카페는 특이점 없이 평범하기만 하다.

1900년대 카프카가 자주 가던 카페 루브르.

카페 루브르

나로드니 가 20번지. 1900년대 카프카가 자주 가던 카페다.

1902년부터 같은 자리에서 영업하고 있는 카페 루브르. 100년이 훨씬 넘은 카페 내부는 시대적 느낌의 벽지와 역사적 기록을 담은 액자들로 장식되어 있다. 입구에는 아침부터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선다. 카프카, 아인슈타인 등 당대 유명 지식인이 자주 들르던 곳이다.

1900년대 카프카가 자주 가던 카페 루브르.
카페 루브르의 눈꽃 케이크.

카페 아르코

카프카의 절친, 그의 유작을 불태우라는 유언을 받았으나 카프카 작품을 출판한 막스 브로트가 사랑한 카페다. 죽은 자의 유언은 힘이 없나 보다. 카페 외벽은 카프카와 그 시절 추억의 사진들로 장식되어 있다.

카페 아르코. 카프카 작품을 출판한 절친 막스 브로트가 사랑한 카페다.

웬세스라스 거리

올드타운에서 웬세스라스 거리를 따라 20분 걸으면 바츨라프 광장이 나온다. 역사박물관인 듯한 건물과 동상이 있는데, 동상 옆 광장 모퉁이에 진드리스스카라는 보험회사가 있었다. 카프카는 이곳에서 1906-1907년까지 보험법률직원으로 일했다.

말라 스트라나 거리의 카프카 박물관.

카프카 박물관

카프카 박물관은 두 군데에 나뉘어 있다. 다소 무거운 음향으로 전시되고 있는 월드 오브 카프카의 눈World of Kafka’s eyes에서는 카프카가 경험한 세계를 비디오로 전시하고 있는데 두 바퀴를 돌았지만, 나로서는 난해하다.

다른 한 곳은 말라 스트라나 거리의 카프카 박물관. 안경, 여행 가방 등 카프카의 개인 소지품과 세계 각국어로 번역된 그의 작품들, 그의 일생을 그린 비디오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카프카의 친필 원본 원고와 편지 모음, 카프카의 일기장 등이 전시되어 있고 벽에 걸린 전화기를 통해 녹음된 카프카 작품을 들어볼 수도 있다. 나치에게 학살당한 프란츠 카프카의 세 여동생 발레리, 가브리엘레, 오틸리에 사진이 있다. 그 옆의 고문당하는 장면 조형물은 작은 크기임에도 강렬한 섬뜩함을 준다.

박물관 뜰에는 체코 출신 설치 미술가 데이비드 체르니의 오줌싸개 분수 조각상이 있어 박물관에서 안고 나온 무거움을 덜어 준다.

황금소로에서 내려다본 프라하의 붉은 지붕.

황금소로와 카프카 누이의 집

고딕양식 프라하 성벽에 붙은 작은 집들이 있는 골목이 황금소로다. 16세기부터 루돌프 2세의 경비대 숙소로 사용하던 곳이지만 16세기 후반에 들어 금은세공업자들이 거주하게 되면서 황금소로라는 이름이 붙는 다.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대장장이 마을 정도 되겠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다. 평화롭던 이곳은 공산정권과 나치 점령 시절 온갖 고문이 자행되었던 곳이다.

이 골목 22번지, 하늘색 대문 집에 카프카의 누이가 살았다. 이곳에 다락까지 있었다니 믿기지 않지만, 이곳 다락방에서 카프카는 1916-1917년 사이 몇 달을 이곳에 살면서 단편소설 「시골 의사」를 위한 에피소드와 그의 마지막 장편소설 『성』을 집필한다. 그는 고독의 3부작이라 불리는 세 편의 미완성 장편소설을 남기는데 『성』은 그중 하나다. 고독의 3부작은 『성』 외에 『실종자』와 『소송』이다. 지금 이 집은 서점으로 사용 중이다.

조금 떨어진 12번지는 소설과 시나리오 작가인 지리 마라 네크의 집으로 이곳에서 시인과 소설가, 예술가들이 자주 모였다. 14번지 예언가의 집. 마담 드 테베라는 1차 대전 때 아들을 잃은 예언가가 있었는데 그는 크리스마스 때마다 예언 한 가지씩을 발표한다. 그러나, 2차 대전 중 나치의 패배를 예언하여 죽임을 당한다. 그밖에 서쪽에 흰 탑이 있는데 여기에 지하감옥과 고문실이 있다. 연금술사 에드워드 켈리도 이곳에 수감되었다 사망한다. 마지막 죄수가 1743년 탑을 떠난다.

고문 도구들과 상상도 못 했던 갖가지 고문 방법을 보면서 나는 걸음이 빨라진다. 어서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생각뿐이다. 좁은 통 안에 꼼짝없이 서 있도록 고안된 좁다란 쇠 통, 못이 박힌 고문 의자…. 역겹고 슬픈 통제사회 그림자다. 구토가 날 듯하다.

황금소로를 빠져나와 프라하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전망대로 향한다. 프라하성 아래로 블타바강과 프라하의 붉은 지붕들을 바라보며 나는 참았던 숨을 토한다. 눈앞에 떠 있는, 황금소로에서 보았던 장면들을 지우고 싶다.

붉은 지붕의 도시 프라하. 원색의 도드라짐이 프라하의 과거와 대비되어 유난히 선명하다. 아름답게 바라봐야 할 풍경은 사슬 묶인 피아노 선율처럼 꺼이꺼이 심장을 적시고…. 블타바의 물결이 시야에 들어올 때까지 나는 성벽에 몸을 기댄 채 한참을 기다린다. 느리게 회복되는 도시 풍경. 프라하는 안단테다. 내려오는 언덕길에 아주머니가 그림을 판다. 블타바강과 카를교를 그린 수채화 한 점을 산다. 겨우 마음이 진정된다.

스타로나바 유대교회당.

스타로나바 유대교회당과 유대인 마을

스타로나바 교회당은 신 구 회당이 있는데 본당 서쪽 벽에 두 개의 전구가 박힌 유리판이 있다. 누군가의 사망기념일에 전구에 불이 들어온다. 그중 하나가 카프카 전구다. 이곳 다락방에 골렘이 살았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전해진다. 내가 갔던 날은 티켓 부스가 잠겨 있어 안으로 들어가 보지 못했다. 어딜 가나 예약하고 계획 짜서 다니는 성미가 아니다 보니 이렇게 낭패를 종종 겪는다.

 

유대인 묘지 지구

구시청사에서 걸어서 6, 7분 거리에 유대인 묘지 지구가 있다. 이곳 21지구에 카프카와 그의 가족이 묻혀 있다. 나치에 의해 학살된 카프카 누이들 이름과 함께 약 12,000개 묘비가 빡빡하게 자리 잡고 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잡지에 ‘세계 10대 공동묘지’로 소개되기도 했다. 묘석인 줄 모르고 보면 가히 장관이다. 묘역은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채 비교적 잘 관리되어 있다.

작정하고 카프카의 흔적을 찾아 걸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나는 카프카나 밀란 쿤데라의 작품을 대할 때마다 체코라는 나라에 뭔지 모를 유대감을 느끼곤 했다. (민음사에서 간행하는 밀란 쿤데라 작품 번역본은 책이 나오기 무섭게 내 서가에 꽂힌다. 쿤데라 전집을 소장한 셈이다) 체코 민주화 운동은 내 조국 한국의 현대사를 떠올리게 하고, 그늘감과 깊이가 느껴지는 체코인의 정서는 태생적 한을 지닌 한국인의 그것과 닮았다. 오늘 나의 업적은 상상 속 슬픔과 연민을 구체적으로 확인했다는 점이다. 동선 정리를 못해 광장을 이리저리 누빈 기억, 천문대 앞은 몇 번이나 지났던 것인지 그곳에서 사진을 찍은 사람이 있다면 내 얼굴은 스무 번도 더 찍혔으리라.

 

 


이성숙 시인, 수필가. 2015년 《미주기독문학》으로 등단하였으며, 산문집 『고인 물도 일렁인다』 『보라와 탱고를』 『인식의 깊이, 삶의 너비』 『길 위에 길을 내다』(공저) 등이 있다. 《미주크리스천헤럴드》 편집장 역임하였으며, 미주한국일보, 미주중앙일보, 대구일보 등에 칼럼을 연재하기도 했다. 사람과 여행을 사랑하며, 디지털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쿨투라》 2024년 4월호(통권 11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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