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월평] 제발 혼자 시청하셨으면 좋겠어요: 〈LTNS〉, 〈미나씨, 또 프사 바뀌었네요?〉
[드라마 월평] 제발 혼자 시청하셨으면 좋겠어요: 〈LTNS〉, 〈미나씨, 또 프사 바뀌었네요?〉
  • 김민정(드라마평론가, 중앙대 교수)
  • 승인 2024.04.03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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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0일은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일이다. 선거의 결과가 어떠할지, 그리고 그 결과가 우리 사회에 미칠 파장이 어떠할지, 그리고 그 파장이 우리 삶에 끼칠 영향이 어떠할지, 그리고 그 영향이 드라마를 보는 우리의 태도에 어떠한 변화를 일으킬지 참으로 궁금하다. 그래서 준비했다. 모든 것이 아리송송 감추어진 듯한 ‘은밀한’ 4월에 보기 딱 좋은 드라마 두 편. 〈LTNS〉와 〈미나씨, 또 프사 바뀌었네요?〉다.

TVING 제공

섹스의 ‘은밀한’ 사생활

제목부터 보는 사람을 당혹스럽게 하는 드라마가 바로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LTNS〉다. 이걸 도대체 어떻게 읽어야 한단 말인가. 제목을 읽고 나서도 당혹스러운 건 마찬가지다. 학창 시절 영어 회화 시간에 주고받던 다정한 안부 인사 ‘Long Time No See’. 이 문장에서 살짝 알파벳 하나 바꾸었을 뿐인데, 이토록 흥미진진한 의미가 될 줄이야. Long Time No Sex. 〈LTNS〉는 한국 드라마 최초로 섹스리스 부부의 섹스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운다. 섹스 없는 섹스리스 부부가 섹스만 있는 불륜 남녀의 뒤를 쫓으며 돈을 ‘쟁취’해내는 ‘예측불허 고자극 불륜 추적 활극’이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다. 드라마가 공개되고 나서 주인공을 맡은 배우 안재홍과 이솜의 은퇴설이 돌았다. 배우 안재홍은 최근 들어 새 작품이 나올 때마다 은퇴설이 나온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마스크걸〉에서 너무나 실감 나는 ‘변태 오타쿠’ 연기 탓에 연기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그는 이번에 다시 한번 ‘19금 메소드연기’를 선보이며 OTT계의 ‘국민배우’로 등극하는 중이다.

극 중 부부인 사무엘과 그의 아내 우진이 등장하는 에피소드의 수위가 상당히 높다. 두 사람의 연애 시절을 보여주는 첫 회에서 두 사람의 키스신은 뜨겁다. 두 사람이 나누는 키스의 농도가 남다르다. 강도나 밀도가 아니라 농도다. 농도. 농익다, 농염하다, 이럴 때 쓰는 그 ‘농’. 배우 안재홍은 “농도 짙은 신들은 액션처럼 합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그래서 액션 영화를 찍는 듯한 엄청난 체력도 요구되고, 여기에 강인한 정신력까지 추가로 필요하다고 했다는데, 그의 직업의식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역시 그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

‘배우의 은퇴작’이라는 대중의 리뷰를 ‘칭찬’으로 듣는 또 한 명의 프로가 바로 배우 이솜이다. 〈LTNS〉가 배우 안재홍의 메소드연기를 ‘재확인’하는 자리였다면 배우 이솜에게는 ‘재발견’의 시간이다. 수위가 높은 말과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배우 이솜의 연기는 선정적이거나 자극적이기보다는 웃기다. 너무 현실적이어서 현실성이 없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웃기다. 저런 행동을 드라마에서 보다니, 저런 말을 드라마에서 듣다니, 이렇게 자꾸 놀라면서 드라마를 보고 또 본다. 특히 부부가 서로 각자 욕구를 해결하는 장면이 있는데, 너무 진지해서 웃기다. 자세히 설명해드릴 수 없음을 양해 바란다.

TVING 제공

나 홀로 시청

‘합법적인’ 두 부부의 수위가 높은 만큼 드라마에 등장하는 불륜 커플의 수위는 더 높을 수밖에 없다. 드라마를 공동연출한 임대형, 전고운 감독은 각별히 ‘나 홀로 시청’을 부탁했다고 전해진다. 물론, 모든 베드신에는 다 이유가 있다. 이유가 있는 농도 짙음이다. 매회 각기 다른 불륜 커플이 등장하고 그 커플들의 베드신은 그들의 성격과 그들의 이야기의 결과 딱딱 맞아떨어진다. 베드신이 그냥 베드신이 아니고, 일종의 썸네일이다. 시청자의 흥미를 끌기 위한 미끼 상품인 동시에 에피소드의 핵심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농도 짙은’ 베드신은 드라마와 드라마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준다. 베드신이 오히려 드라마의 작품성을 높인다는 호평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한 마디로, 필수 불가결한 농도 짙음이다. 어깨를 당당하게 쫙 펴고 ‘나 홀로 시청’하길 바란다.

TVING 제공

〈LTNS〉는 불륜을 빗댄 다양한 비유와 은유가 담긴 19금 명대사로도 유명하다. 허무맹랑한 말장난 같으면서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오묘한 의미가 담겨 있어 뒷골이 서늘해진다. 극 중 주인공 부부의 친구가 외도를 하는데, 그때 그 외도 상대가 외도를 또 한다. 바람의 바람이랄까.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이 펼쳐지는 가운데 불륜의 불륜 상대가 진지하게 바람의 바람이 가진 정당성을 설파한다. “진정한 야구팬이라면 두 팀 다 응원할 수 있는 거야.” 그렇다. 특정 ‘야구 팀’의 팬이 아니라 ‘야구’의 팬이라면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 ‘섹스’의 진정한 팬이라면 그 상대가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누구든 같이 잘 수 있는 거지. 음, 농도 짙은 가스라이팅의 향기가 난다.

드라마를 보다 보면 여러모로 생각이 점점 복잡해진다. 아니, 우리 생각의 농도가 점점 짙어진다. 드라마에는 그동안 우리 시선의 사각지대에 머물렀던 동성 커플이나 노년 커플도 나와 다양한 가치와 신념의 파노라마를 보여준다. 불륜의 선정성이나 폭력성에 주목하는 기존의 막장드라마와 달리, 불륜 그 자체에 주목하여 성찰할 지점들을 ‘농도 짙게’ 짚어준다. 〈LTNS〉는 인생 경험에 따라 드라마에 대한 이해도와 몰입도가 많이 다르다. 인생 공부하듯 〈LTNS〉를 보길 권장한다. 인생이란 모름지기 다 19금이다. 가까이에서 보면 모두 다 야하다. 그런 의미에서 〈LTNS〉는 우리의 피와 살이 되는 ‘농도 짙은’ 드라마다.

왓챠 제공

함께 읽는 ‘은밀한’ 나의 일기장

왓챠 오리지널 시리즈 〈미나씨, 또 프사 바뀌었네요?〉(이하 〈미나씨〉)는 특별한 주인공도 없고 특별한 사건도 없는데, 특별한 느낌을 주는, 평범해서 특별한 드라마다. 한 마디로 ‘은밀한 사생활’ 전체관람가 버전이다. 은밀하지 않아서 더욱 은밀하게 느껴지는 마성의 드라마랄까.

〈미나씨〉는 국내 웹드라마 최초로 칸국제시리즈페스티벌에 초청된 시즌제 드라마 〈좋소 좋소 좋소기업〉의 스핀오프다. 냉소적이고 매사 심드렁한 지금의 ‘좋좋소’ 이미나 대리가 되어가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를 그려낸다. 지난 연애들이 어떻게 이미나의 20대를 만들었는지, 남자친구가 달라질 때마다 모바일 메신저 프로필 사진(프사)를 바꾸던 이미나의 지난 연애사를 바둑 복기하듯 보여준다.

한 편의 픽션 드라마가 아니라 실존 인물 이미나의 일기장을 남몰래 훔쳐보는 느낌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어느 순간 그 일기장이 나의 일기장이 되어 평온하던 나의 일상을 흔들어대기 시작한다. 분명 드라마에 나온 건 이미나의 20대, 이미나의 청춘인데, 내 마음속 깊숙이 넣어둔 그때 그 시절의 추억이 두둥실 떠오르는 건 뭐람. 자꾸만 모니터 너머의 먼 산을 바라보게 되는 건 또 뭐람. 나만의 지난 연애사가 7부작으로 펼쳐지면서 나의 20대, 나의 청춘, 그때 그 시절 슬픔과 아픔이 지금 나의 일부가 되었음을 고해성사하는 심정으로 드라마를 보게 된다. 그렇게 드라마 보는 동안 이미나와 함께 나이가 들어간다. 이것은 드라마 월평인가 나의 일기인가.

왓챠 제공

〈미나씨〉는 진지하지만 유쾌하고, 재밌지만 여운이 길게 남는다. 사랑의 빛과 그림자 가운데서 적절한 균형을 잘 맞춘다. 너무 가볍거나 너무 무겁지 않게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삶의 무게만큼만 드라마에 ‘적당히’ 담아낸다. 일반적으로 ‘적당히’란 단어는 부정적인 어감을 주는데, 이번만큼은 아니다. 〈미나씨〉는 덜도 더도 아닌 딱 적당한 만큼의 ‘적당히’를 담아내며 그 균형이 얼마나 엄청난 내공이 요구되는 고난이도 작업인지를 증명해낸다.

극 중 그녀의 엄마는 딸의 이름을 대충 지어서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것 같다며 이름을 바꾸라고 권한다. 하지만 그녀는 “나 이름 안 바꿔. 나 이미나 좋아”라며 ‘적당히’ 웃어넘긴다. 그렇게 사회적 평가와 내 인생의 가치 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두며 자기 자신을 온전히 지켜낸다. “직원 다섯 명 중소기업 3년차, 연봉 3천 120만원. 내 인생도 회사처럼 영세하고 좁고 칙칙해지고 있다. 하지만 직장이 곧 내 삶은 아니다. 회사는 회사, 내 인생은 내 인생이니까.” 음, 대충 지은 이름이라면 ‘김민정’이란 이름만 한 게 또 있을까. 대한민국에서만 수십만 명의 김민정이 살고 있는 듯한 느낌적 느낌. 민정씨, 또 프사 바뀌었네요? 나에게도 내 안의 희로애락과 ‘적당히’ 거리 두기가 필요할 듯싶다.

왓챠 제공

 

 


김민정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연두빛 캠퍼스물과 회색빛 오피스물 사이를 분주히 오가고 있다. 언젠가는 내 인생이 장르가 판타지로맨스코미디홈드라마가 될 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 2022년 중앙대학교 교육상과 제4회 르몽드 문화평론가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쿨투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크리티크 M》 편집위원과 KBS World Radio 〈김형중의 음악세상〉 고정 게스트로 활동하며 자발적 드라마 홍보대사로 열일하고 있다. 저서로 드라마 캐릭터 비평집 『드라마에 내 얼굴이 있다』 외 여러 권의 책이 있다.

 

* 《쿨투라》 2024년 4월호(통권 11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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