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남과 북의 영화, 무엇을 담아내어야 하는가
[북리뷰] 남과 북의 영화, 무엇을 담아내어야 하는가
  • 김치성 기자
  • 승인 2024.04.03 17: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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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진 『코리안 시네마: 남과 북, 경계를 넘어』

이향진Hyangjin Lee 작가가 2018년 일본 미스즈 출판사みすず書房에서 출간한 도서 『코리안 시네마: 북한·한국·트랜스내셔널』이 한국어 번역본 『코리안 시네마: 남과 북, 경계를 넘어』(연세대학교 출판문화원, 이하 『코리안 시네마』)로 지난 10월 출간되었다.

지금껏 다른 언어권·문화권의 영화가 국내 박스오피스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던 것에 반해, 북한영화에 대해서는 접근조차 하기 어렵다. 일반인이 흔히 접할 수 있는 북한 소식은 전쟁 관련 뉴스나 미디어가 조명하는 탈북자들의 이야기뿐이다. 대중이 마주하는 북한의 정보가 한정적인 까닭에 이에 관한 호기심은 쉽게 해소되지 못한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익숙한 한국영화와 생소한 북한영화를 엮어서 설명하는 방식으로 독자들이 평소 가졌을 북한에 관한 궁금증에 친절히 답해준다.

책의 1부는 2000년 영어로 출판된 『현대 코리안 시네마: 문화, 이데올로기, 정치Contemporary Korean Cinema: Culture, Identity, and Politics』(이하 『현대 코리안 시네마』)의 내용을 담고 있다. 2부는 『현대 코리안 시네마』 이후 쓴 5편의 논문을 다룬다. 2000년대 이후 작품을 중심으로 경계를 넘어 글로벌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트랜스내셔널 코리안 시네마의 가능성을 짚어보고, 남북한 영화의 최근 동향에 대한 논의로 책을 마무리하였다. 보통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일대일’ 번역이 일반적이지만, 1부는 영어, 2부는 일본어로 되어 있는 원자료를 번역하여 한 권으로 펴냈다는 점에서 이 책의 특별함을 찾아볼 수 있다.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한국 영화의 해외 진출이 본격화되면서 서구에서 한국 영화에 관한 비평적, 학술적 관심이 일기 시작했다. 그러나 관심에 비해 이를 소개할 수 있는 학술서적은 없다시피 했다. 당시 서양에서 아시아영화와 관련해서 구할 수 있는 서적은 일본, 중국, 홍콩, 인도 영화를 다룬 학술서적이나 팬들을 타겟으로 한 대중적 취향의 비평서 정도였다. 전문적인 한국영화 서적의 부재는 남북한 영화 비교를 주제로 한 이향진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이 출간되며 해소되었다.

영국 맨체스터Manchester대학교 출판부에서 출간된 『현대 코리안 시네마』는 외국 출판사에서 나온 한국영화에 관한 최초의 학술서적이었다. 저자는 남북한 영화에 프랑스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Louis Pierre Althusser의 이데올로기 개념을 적용해 둘을 비교·연구한다. 한국인들이 식민 지배와 분단의 아픈 기억을 영화에 투영한 방식과 더불어 어떻게 민족의식과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했는지에 대해 논한다.

1부에서는 배타적인 민족 영화를 고집하던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들을 살펴본다. 일례로, 창작된 이래로 판소리가 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온 〈춘향전〉은 이를 토대로 오페라, 창극 등 다양한 성격을 띠는 동명의 작품들이 창작되었다. 1960-70년대에 이르러서는 영화로 제작되기도 하였는데,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한국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남북한의 경제적·문화적 차이가 크지 않았던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여주인공 ‘춘향’의 성격을 매우 다르게 설정하고 해석하였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에 대해 전쟁의 여파가 강하게 남아있는 시기였으므로 정치영화나 프로파간다적 성격이 강한 영화가 활발히 제작되었다고 설명한다. 양국이 각각 추구했던 이데올로기를 영화에 담아 노골적으로 강조하였기 때문에 같은 작품을 원작으로 했더라도 상반되는 결과물이 나왔다는 것이다.

1980-90년대 이후, 남북한은 기존의 민족주의적, 정치적인 이념성에서 탈피하여 보다 세분화되고 실험적인 주제로 영화를 제작한다. 이로 인해 초국가적transnational, 국제적global 성격을 가진 영화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2부에서는 2000년대 이후 작품을 중심으로 경계를 넘어 글로벌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트랜스내셔널 코리안 시네마의 가능성을 짚어본다. 2000년 다시 제작된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춘향뎐〉은 익숙한 이야기에 인간 문화재 조상현 명창의 판소리를 내레이션으로 사용하는 방식으로 신선한 이야기 전개방식을 보인다. 이 영화는 한국 영화 최초로 53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기도 했다. 한국인들에게 친근한 소재를 활용한 것에 전통예술을 더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작품으로 변모한 것이다. 또한, 남북한 영화의 비교분석을 통해 아시안 누아르와 한국 조폭영화, 한국 공포영화와 원혼의 관계, 위안부 소재 영화의 기억 계승에 대해서도 논한다. 마지막으로 내셔널과 트랜스내셔널 시네마에 관한 이향진 교수의 새로운 연구성과를 담아내며 남북한 영화의 최근 동향에 대한 논의로 끝을 맺는다.

지난 3월 21일, 저자 이향진 교수와 역자 강승혜 교수가 참여한 『코리안 시네마』 출간기념 세미나가 연세대학교 연세·삼성 학술정보관에서 간담회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평소에 접하기 어려운 북한영화와 한국영화의 공통점 및 차이점, 한국영화의 맥락에서 보는 한류현상 등을 중심으로 작가와 역자의 생각을 직접 들어볼 수 있는 자리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 남한과 북한의 영화를 비교·분석하여 논하는 『코리안 시네마: 남과 북, 경계를 넘어』가 그동안 미지의 세계로 여겨지던 북한의 영화 세계를 개척하는 ‘작지만 위대한 첫 걸음’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 《쿨투라》 2024년 4월호(통권 11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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