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 100주년 연재 4] 나운규에서 이병헌까지... 한국영화 남자배우 10인
[한국 영화 100주년 연재 4] 나운규에서 이병헌까지... 한국영화 남자배우 10인
  • 전찬일(영화평론가/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회장)
  • 승인 2019.06.0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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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영화 베스트 10, 영화감독 10인에 이어 한국 영화사를 빛낸 10명의 남성 스타들을 뽑아보면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까? 고심 끝에 선택한 최후의 별들은 나운규, 김승호, 김진규, 신영균, 신성일, 안성기 & 박중훈, 한석규, 송강호, 최민식, 이병헌이다. 총 11인으로 이뤄진 10인인바, 1980년대를 기준으로 그 이전의 인물들이 반이고 그 이후의 인물들이 나머지 반이다. 그렇다면 한국 영화 100년의 자화상을, 스타를 넘어 시대의 얼굴을 담은 남성 배우들, 이란 관점에서 꼽으면 어떨까? 흥미롭게도 전적으로 상기 남성 스타 11인과 동일한 그림이 나온다. 그 출발점은 춘사 나운규다.

  이 10(11)인의 스타-연기자들은 주 활동기의 시대적 상황이나, 그 산출량, 질감 등에서 크고 작은 차이를 보인다. 나운규는 일제식민기라는 특수 상황이 아니라면 지금과 같은 신화적 스타성을 누리는 것은 불가능했을 터. 더욱이 그는 단명했다. 김승호는 다양한 캐릭터에도 불구하고 우리네 현대사의 서민적 아버지로, 김진규는 지적 풍모의 멜로적 신사·서민 이미지로, 신영균은 지적 이미지와는 무관하게 특유의 카리스마 넘치는 육체적 이미지로 우리들의 뇌리·심상에 굳 건히 자리하고 있다. 그에 반해 신성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불세출의 외모 덕에, 시간을 조롱하는 듯한 청춘 이미지로 독보적 위상을 누렸다. 사정은 선배 세대와 후배 배우들 간의 가교 격인 안성기나, 이병헌에 이르는 모든 젊은 스타들 또한 마찬가지다. 이들은 개인적 재능을 무기 삼아 시대의 요구에 적절히 부응하면서, 혹자는 길게 또 다른 혹자는 상대적으로 짧게 나름의 스타성을 발휘하며, 스타-연기자로서의 길을 걸었고, 걷고 있는 중이다.

1. 나운규(羅雲奎, 1902∼1937), 한국영화사의 신화적 출발점

감독 편에서 그랬듯, 춘사에 대해서는 간단한 언급만 하고 넘어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아리랑>(1926)과 <임자 없는 나룻배>(1932) 등을 통해 입증된 그의 영화사적 위상·의의가 워낙 절대적이기 때문. 비록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순 없어도 말이다. 굳이 출처를 밝히지 않더라도, 암흑 같은 식민시기 와중에 나운규가 조선 관객들을 실컷 울고 웃게 만들었으리라는 것쯤은 두 말할 나위 없을 듯. 그의 영화들 근저에는 조국의 독립을 향한 열망과 실천이 깔려 있었을 게 틀림없다. 그가 없었다면 우리들의 지날 날이 그만큼 더 초라했지 않았을까. 당대 조선 관객들은 나운규의 재능과, 여느 조선 영화들과는 다른 〈아리랑〉 의 영화적 수준에 열광했었다고. 감독 이규환은 <임자 없는 나룻배>가 “보다 차분한 리얼리즘의 영상 미학으로 1930년대 한국의 분위기를 그려 냈고, 나룻배 사공 춘삼을 통해서 일제하에 사는 겨레의 빼앗긴 설움과 생 현실의 어려움과 분노를 묘파했다”고 평했단다. 이쯤이면 춘사의 영화사적 위용이 충분히 상상되지 않을까.

2. 김승호 (金勝鎬, 1918~1968), 한국영화의 영원한 아버지 상像

김승호는 춘사 나운규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 한국영화사의 절대적·전설적 배우요 스타-연기자였다. 3633 편에 달하는 영화 필모그래피 중 국회의원, 교수, 사장, 사기꾼, 샐러리맨, 바보, 농부, 마부 등 다채로울대로 다채로운 배역들을 두루 설득력 있게 소화해냈건만, 생전이나 사후 60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줄곧 한국영화사의 영원한 아버지, 그것도 긍·부정의 함의를 동시에 지닌 극히 서민적 향취의 아버지를 대표하는 지존적 배우로 간주·평가돼 왔다. 시대가 낳은 김승호의 ‘아버지 상 Father Figure’은 그만큼 절대적·신화적인 것.

김승호는 <시집가는 날>(이병일, 1957)의 맹진사로 그 존재감을 널리 알리게 되는 30대 말부터 전성기인 40대 중반까지, 여느 아버지보다는 10년쯤은 어린 40대 초반의 나이에 5, 6년간 집중적으로 한국의 아버지 상을 구축했다. 그만의 남다른 피와 땀만으로 그런 성취가 가능하진 않았을 터. 시대적 상황이 가부장적 서사를 요구했으며, 김승호가 연기했던 아버지 상이 그 상황에 적절히 부응했기 때문 아니었을까.

3. 김진규(金振奎, 1922~1998), 아버지 김승호를 넘어선 독보적 아들

<피아골>(이강천, 1955), <하녀>(김기영, 1960), <박서방>(강대진, 1960), <오발탄>(유현목, 1961),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신상옥, 1961), <잉여인간>(1964, 유현목), <벙어리 삼룡>(신상옥, 1964), <마의 계단 >(1964, 이만희), <귀로>(1967, 이만희>, <삼포가는 길>(이만희, 1975)… 한국영화사의 빛나는 문제적 걸·수작들이다. 이 10편의 공통점은 무엇일 까? 정답은, 김진규 주연작이란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자. 당시의 작품성을 대변하는 화제작들에 주역을 ‘도맡아왔다는’ 점에서 김진규에 필적할 한국의 스타-연기자가 있는가? 336편에 달하는 ‘다작 스타’로 치명적 매력의 남성성을 자랑하면서도 대다수 평자가 진단하듯 “지적”이라든지, “진중한 이미지”에 “부드럽고 섬세”하며 “우수 어린 푸근함과 비애감”에 이르는 등의, 그런 평가를 받은 배우가 이 땅에 존재하는가? 영화 구력 50년, 영화 스터디 37년, 영화 평론 26년의 비평적 관점에서, 내가 아는 한 없다! 김진규가 신영균, 신성일 등과 함께 ‘김승호의 아들들’임엔 틀림없으나, “아버지 김승호를 넘어선 독보적인 아들”이라고 규정한 것은 그래서다.

4. 신영균(申榮均, 1928~ ), 한국영화의 남성 아이콘

신영균, 하면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단어가 ‘카리스마’다. “선이 굵다”거나 “남자답다” 등도 으레 따라붙는 수식어들. 적잖은 평자들이 그를 규정할 때 ‘아이콘’이라는 육중한 어휘를 동원하곤 한다. 나 또한 예외가 아니다. 부산국제영화제BIFF 한국영화 담당 프로그래머로 2012년 한국영상자료원과 공동으로 한국영화 회고전을 진행하며, 회고전 책자 제목을 『신영균, 한국영화의 남성 아이콘 : 머슴에서 왕까지』로 달은 것도 그런 연장 선상에서였다. 그 규정은 그로부터 6년여가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한국영화의 남성 아이콘”으로 신영균 그 말고 과연 누구를 앞세울 수 있겠는가. 주유신은 상기 책자 「신영균, 한국적인 남성미로 캐릭터 연기의 금자탑을 세우다」 편에서 “‘개인의 얼굴’에서 ‘시대의 얼굴’로” 나아갔다며, 신영균이 “하드 바디와 소프트 마인드를, 역사와 개인을 결합시켜냄으로 써 낭만적 연인과 초월적 영웅을 동시에 연기해낼 수 있었고, 영화를 통한 역사 쓰기의 전범을 일구어”냈다고 진단한다. 그 진단을 적잖은 평자들이 공유하고 있다.

5. 신성일(申星一. 1937∼2018), 비교 불가의 대한민국 대표 스타 아이콘

‘아이콘적’이기는 김승호의 또 다른 아들 신성일도 매한가지다. 우선 영화 편수에서부터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출연 영화 524편, 감독 4편, 제작 6편, 기획 1편 총 5,354 편의 필모그래피를 ‘자랑’(?)한다. 『배우 신성일』 의 필자 김종원(「신성일의 연기와 작품세계」)이 적시했듯, “세계영화사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기록이 아닐 수 없다.” 남용, 오용 등으로 스타의 의미가 무의미해진 이 시대에도, 신성일은 종종 스타/덤Star/dom의 의미를 환기시키고 곱씹게 하곤 한다. 이미지·기호로서 스타는 말할 것 없고 ‘문화자본’, ‘사회적 현상’ 등으로서 스타에 신성일 만큼 완벽히 부응하는 인물은 없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바야흐로 세계적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BTS/방탄소년단까지 포함해서도. 스타의 속성 중 하나가 그 단명성이라고 할 때, 대한민국 역사에서 신성일에 견줄 스타는 부재해왔다. 김종원의 단언이 아니어도, 한국영화사상 신성일만큼 장기간 스타 지위를 누린 배우는 없었다. 앞으로도 그럴 듯싶고.  

6. 안성기(安聖基, 1952∼ ) & 박중훈(朴重勳, 1966∼ ) : ‘보통 사람의 얼굴’을 지닌, 환상적 스타 -연기자 명콤비

안성기가 없다면 한국영화계는 얼마나 쓸쓸할까? 특히 전두환 정권의 3S(Sex, Sports, Screen) 정책에 의거해 <애마부인>이나 <매춘> 유의 성애물이 범람했던 1980년대 우리 영화계는 얼마나 더 삭막했을까? 이장호 감독의 걸작 <바람불어 좋은 날>부터 이명세의 <개그맨>(1989)에 이르기까지 그 면면이 장난이 아니다. 결국 1980년대 한국영화계는 안성기의 시대였고, 안성기는 1980년대 한국영화의 아이콘인 것이다. 박중훈 그에게는 한국영화의 1990년대를 연 두 걸작 <우묵배미의 사랑>(장선우, 1990)과 <그들도 우리처럼>(박광수, 1990) 등이 있다. 그리고 안성기와 공동 주연을 맡은 4편은 지난 30여년의 한국영화사를 빛낸 문제 작들이다. <칠수와 만수>(1988)를 필두로 <투캅스>(강우석, 1993), <인정 사정 볼 것 없다(이명세, 1999), <라디오스타>(이준익, 2006)다. 그들 두 명 콤비의 ‘케미’는 액면 그대로 환상적이었다. 그들은 김승호와, 그의 최적자 신영균을 뒤잇고, 한석규 송강호 최민식 김윤석 등으로 나아가는 가교다.

7. 한석규(韓石圭, 1964∼ ), 1990년대 한국영화의 페르소나

<닥터봉>(이광훈, 1995), <은행나무 침대>(강제규, 1996), <초록 물고기>(이창동, 1997), <넘버 3>(송능한, 1997), <접속>(장윤현, 1997), <8월의 크리스마스>(허진호, 1998), <쉬리>(강제규, 1999)…예외 없이 한 석규가 주연한, 1990년대 한국영화사의 수·걸작들이다. 어찌 그를 일컬어 “1990년대 한국영화의 페르소나”라고 일컫지 않겠는가. 1980년대 한국영화의 페르소나가 안성기였듯이. 생명력의 지속성에서는 안성기에 견줄 수 없어도, 여로 모로 한석규는 안성기의 직계 후배였다. 꽃미남 아닌 수수한 외모부터 폭넓은 캐릭터 소화력, 선한 서민적 이미지, 악역을 맡아도 미워할 수 없는 친근한 정감에 이르기까지 두루. 시선을 영화를 넘어 TV로까지 확대시키면 그 활동성은 선배를 압도한다. 시종 영화에 천착해온 안성기와는 달리 한석규는 인기 TV 드라마를 통해서도 그 아니면 불가능했을 캐릭터와 연기를 선사한 것. SBS 24부작 <뿌리깊은 나무>(2011.10.05~12.22)와 SBS 20부작 <낭만닥터 김사부> (2016.11.07~2017.1.16) 등이다.

8. 송강호(宋康昊, 1967∼ ): 천의무봉天衣無縫, “전혀 다른 세 모습의 남자”

한석규를 가리켜 “여로 모로 안성기의 직계 후배”라고 했으나, 생명력 이란 측면에서 그 위치는 당장 송강호로 넘어간다. 조연으로 주연 못잖은 주목을 끌었던 <넘버 3>와 <쉬리> 등을 지나 단독 주연으로 그 존재감을 유감없이 증명한 <반칙왕>(김지운, 2000) 이후 <기생충>(봉준호, 2019)에 이르는 20년 가까이를, 한국영화계의 ‘절대 강자’이자 ‘우리 시대 최고 배우’의 위상을 지켜오고 있는 천의무봉의 배우. 일찍이 나는 송강호의 연기를, 그 색깔 및 성격을 토대로 편의상 세 가지로 분류한 바 있다. 변증법을 동원해, “감성적 측면을 상대적으로 더 중시한다는 측면에서” <괴물>(봉준호, 2006)의 강두를 ‘정’의 연기로, “이성·지성적 측면을 더 중시한다는 측면에서” <밀양>(이창동, 2007)의 종찬을 ‘반’의 연기로, <살인의 추억>(봉준호, 2003)의 두만을 정+반=‘합’의 연기로. 그의 출연작 전체를 그런 기준으로 분류하면 어떤 그림이 도출될까? 당장은 독자의 판단에 맡기련다. 내가 기억하는 한 송강호 같은 입체 적·복합적 스타-연기자는 한국영화사에 없었고, 지금도 없지 않을까.

9. 최민식(崔岷植, 1962∼ ), 신영균의 최적자

최민식은 목하 고투 중이다. 한국영화사의 역대 흥행 1위작인 <명량>(김한민, 2014) 이후, 흥행적으로나 비평적으로나 몇 년째, 내세울 만한 성공작을 선보이지 못하고 있다. 최근작 <침묵>(정지우, 2017)부터 <특별 시민>(박인제, 2016), <대호>(박훈정, 2015) 등 화제작들이 상대적으로 부진한 성과를 거두는데 그쳤다. 뤽 베송 감독에 스칼렛 요한슨, 모건 프리먼 등 세계적 스타들과 호흡을 맞춘 <루시>(2014) 역시 매한가지였다. 하지만 이 영화들의 수준이 형편없거나, 최민식의 연기가 별로인 것은 아니다. 빈말이 아니라 그들은 나름 볼 만하고, 최민식의 연기도 여전하다. 수준을 논하지 말자. 캐릭터 및 영화의 다채성, 해외 영화제에서 거둔 성취 등에서 최민식이 송강호를 앞선다. <올드 보이>(2004) 이후 <명량>에 이르기까지, 최민식의 행보는 가히 눈부셨다. 부진의 몇 년을 보내고는 있으나 최민식 그는, 연기 스펙트럼, 캐릭터의 변신·임팩트 등에서 당대의 모든 배우들을 압도한다. 그 점에서 송강호도 예외는 아니다. 최민식이야말로 다름 아닌 ‘신영균의 최적자’인 것이다.

10. 이병헌(李炳憲, 1970∼ ), 국제성을 겸비한 국내 유일의 월드 스타-연기자

시대의 변천 속에 한국영화 100년을 빛낸 남성 배우 10(11)인을 선정하며 그 마지막 인물로 이병헌을 선정한 것은 과욕 아닐까, 싶기도 하다. <누가 나를 미치게 하는가>(구임서, 1995)부터 <그것만이 내 세상>(최성현, 2018) 에 이르기까지 40편에 달하는 필모그래피의 수준들이, 다른 스타-연기자 들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빈약한 탓이다. 그러나 시선을 <미스터 션샤인> (2018)과 <아이리스 시즌 1>(2017), <올인>(2003) 같은 수준급 인기 TV 드라마들에까지 확장하거나, 그만의 국제적 감각 및 실력, 배우로서의 능력에 눈길을 던지는 순간, 상황은 급변한다. 국내 유일의 월드 스타로 비상하는 것! 이 땅의 배우가 브루스 윌리스나 에단 호크, 조쉬 하트넷 같은 할리우드 특급 스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영어 연기를 펼칠 수 있으리라 상상조차 했겠는가. 그 함의에서 BTS를 선취하고 있다고 한들 과언만은 아닐 듯. 뿐만 아니다. 그는 김진규의 지적 풍모, 신영균의 남성다운 육체성, 신성일과 최무룡의 아이콘적 외모, 안성기의 육중한 연기력, 심지어 장동휘, 박노식, 허장강 등의 액션파워까지 두루 겸비한, 대체 불가의 스타-연기자라 인정하지 않을 길 없다.

 

 

* 《쿨투라》 2019년 6월호(통권 6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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