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 에세이] 테크놀로지와 몸의 예술(1)
[무용 에세이] 테크놀로지와 몸의 예술(1)
  • 임수진(무용칼럼니스트)
  • 승인 2019.06.01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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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미국 최대의 음악 축제인<코첼라 밸리 뮤직 앤 츠 페스티벌Coachella Valley Music and Arts Festival>의 관객들을 가장 열광에 빠뜨린 순간은 바로 홀로그램으로 부활한 래퍼 투팍Tupac의 무대였다. 1996년 총격으로 사망한 그가 16년 만에 무대에 다시 등장한 그 순간, 관객들은 열광했고 그는 생전 모습 그대로 완벽한 무대를 선사했다. 축제가 기획한 래퍼들의 스페셜 무대로 닥터 드레Dr.Dre, 에미넴Eminem 등의 대형 힙합 스타들의 무대가 연이어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9만여 명의 관객들을 한순간에 압도한 것은 홀로그램으로 부활한 투팍이었다.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부활한 그가 아직 살아있는 스눕 독Snoop Dogg과 함께한 듀엣 무대로, 말 그대로 산 자와 죽은 자의 합동 무대였다. 출력 디스플레이가 그대로 노출되는 2D 스크린을 통한 영상 미디어와는 달리 매개를 인식할 수 없는 3D 홀로그래피를 통해 투팍의 환영성을 극대화하고 죽음을 넘어서는 현존감을 제시한 순간이었다.

  이처럼 오늘날의 과학기술은 스크린 속의 SF영화뿐 만 아니라 물질적인 실존을 전제로 하는 공연예술의 시간성 및 공간성의 제약마저 붕괴한다. 국내에서도 故김광석의 홀로그램 공연을 비롯해 싸이, 빅뱅 등의 K-POP스타들의 홀로그램 콘서트가 개최된 바 있는 만큼, 기술력을 필두로 한 여러 실험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몸을 주요 매개로 하는 무용예술은 과학 기술의 발전을 어떻게 받아들여 왔을까?

  20세기 초 과학기술은 예술가들의 아방가르드적 실험의 주요 매체였다. 당시 그들은 기계 문명의 도래에 따라 변화하는 인간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던지곤 했다.

  1922년 바우하우스Bauhaus 스테이지워크숍의 초빙 교수였던 오스카 슐레머Oskar Schlemmer가 선보인 <피규럴 캐비넷Figure Cabinet>은 금속인형들이 걷고, 뛰고, 미끄러지고, 뒹구는 움직임을 선보이는 퍼포먼스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작되었다. 이 작품이 반영한 기계적 요소들과 회화적 디자인은 당시 바우하우스 가 추구하는 방향성과 정확히 일치하며 큰 방향을 일으켰고, 슐레머의 본격적인 합류를 기점으로 이 교육기관은 독일 퍼포먼스 예술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슐레머는 의상을 통해 인간의 몸을 기계적인 대상으로 전환시키는 실험들을 했는데, 특히 정밀한 수학적 법칙에 기반해 스스로 움직이는 마리오네트에 매료된 그는 수학적 체계를 기반으로 인간을 기계적인 형상으로 전환시킨 <3개조 발레Triadic Ballet>(1922)를 발표했다. 무용수들은 모두 의상과 가면을 착용하고 와이어를 이용해 무대의 공간을 재빠르게 움직였는데, 그 모습은 마치 로봇 또는 마리오네트와 같았다. 기계적 장치들을 이용해 무용수의 몸을 제한하거나 변형하고자 했던 슐레머의 실험들은 당시 본격적인 기술의 발전에 앞서 인간의 몸을 중심으로 한 예술의 가능성을 무한히 확장시키는 것이었다.

  테크놀로지와 무용의 결합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아방가르드 무용가 로이 풀러Louis Fuller는 그동안 무용수의 몸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형상과 고난도 테크닉 위주의 무용 예술을 거부하고, 보다 자유롭고 개성있는 신체 표현을 시도했다. 특히 그의 작품에서 두드러졌던 것이 바로 전기 조명의 사용인데, 아주 길고 넓은 치마를 펼쳐 흔들며 여러 가지 빛을 비추었고, 이로써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고자 했다. 아름다운 무용수의 춤을 거부하고 과학 기술을 활용한 그녀의 실험은 당시 예술계에는 큰 충격과 파장을 일으켰지만, 동시에 대중적인 성공을 이뤘고 이러한 자유로운 정신은 이사도라 던컨에게 영향을 끼치며 이후 현대무용이라는 장르를 완성하기도 했다. 바우하우스를 포함한 1920년대 초 아방가르드들이 과학 기술을 토대로 한 다양한 예술적 스타일을 실험하고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면, 오늘날 디지털 퍼포먼스의 근본적인 개념과 철학적 논의를 다진 것은 바로 미래주의자들이었다. 1909년 미래주의 선언 이후 1917년 마리네티Filippo Tommaso Marinetti는 ‘미래주의 무용 선언’을 발표한다. 무용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간의 몸과 근육의 가능성을 초월하는 것이라고 밝히는 그의 선언은 로봇과 같은 기계적 모습을 연상시키는 의상을 사용하거나, 무용수들 없이 기계 장치와 조명으로만 구성된 무용 작품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이러한 미래주의와 아방가르드들의 진취적인 예술 실험들은 당시 세계 경제위기와 사회주의적 움직임 에 의해 침체되기 시작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거의 사라졌다. 테크놀로지 퍼포먼스를 비롯한 예술적 실험은 주춤하며 무용예술은 전통적인 형식으로 회귀하는 듯했다. (다음호에 계속)

 

 

* 《쿨투라》 2019년 6월호(통권 6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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