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황금종려상 수상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황금종려상 수상
  • 윤성은(본지 편집위원)
  • 승인 2019.06.01 04: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19년, 칸 기행의 쓴맛, 그리고 참으로 단맛

 완전히 실패였다. 작년보다 100만원이나 더 주고 얻은 에어비앤비 숙소는 처음부터 내 전투력을 떨어뜨렸다. 조용하고 아늑한 곳,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 두 가지 조건만 만족시키면 되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건가. 삭막하고 산만한 분위기, 불쾌한 냄새는 그렇다 치고 벽이 어찌나 얇은지 옆방에서 나는 소리가 날 것 그대로 들렸는데, 낮밤 없이 원고를 써야 하는 내게는 최악의 환경이었다. 심지어 현실에서 한번도 들어 본 적 없는 끔찍한 소리도 여러차례 들어야 했다. 그게 무엇이었는지는 차마. 다소 외진데 위치해 있어 밤늦게 들어올 때 마음을 졸이게 된다는 건 그 다음 문제였다. 숙소에 대한 불만과 실망은 올해 칸 기간 내내 나를 놓아주지 못했다. 역시 여행의 만족도는 숙소에서 나오는 것 같다. 다른 즐거움을 누릴 시간이 거의 없는 워크 트립work trip의 경우라면 더욱.

 그러나 나를 정말 지치게 만든 것은 올해 초청작들의 수준이었다. 경쟁작들이 발표되었을 당시, 거장들의 귀환이라며 얼마나 떠들어댔던가.분명 영화팬들이라면 설레지 않을 수 없는 프로그래밍이었다. 그러나 악몽은 개막작이었던 짐 자무시의 <더 데드 돈 다이The Dead Don’t Die>부터 시작되었다. 이 좀비영화는 감독의 이름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웃으며 볼 수 있는 영화인지 몰라도 칸영화제에 참석한 이들에게는 비웃음을 사야 했다. 칸의 총아이자 프랑스가 사랑하는 젊은 감독, 자비에 돌란의 <마티아스 앤드 막심Mathias et Maxime>도 90년대 청춘 영화의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작품이었다. 공식 상영 전에는 레드카펫을 밟는 그에게 많은 이들이 환호성을 보냈지만, 영화가 끝나자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가기도 전에 관객들이 극장을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25년 만에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노리는 쿠엔틴 타란티노는 브래드 피트, 레오나드로 디카프리오라는 세기의 배우들(그리고 그의 어린 아내 ‘다니엘라 픽’)을 데리고 입성해 영화제 내내 화제를 모았으나 영화 자체는 실망스러웠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Once Upon a Time… in Hollywood>는 사이비 집단의 교주이자 살인마였던 찰스 맨슨 실화를 1969년 당시 할리우드의 상황과 접목시키고 나름대로 비꼬아 놓은 작품인데, 전반적으로 스토리의 응집력이 약하다. 의외성과 통쾌함이 있는 마지막 신 외에는 타란티노의 전작들만큼 흥미롭지 않은 영화다. 그러나 잘못된 셀렉션의 정점은 압둘라티프 케시시의 세 시간 반짜리 영화였다. 여배우들의 엉덩이를 보여주는데 3시간 이상을 할애한 <메크툽, 마이 러브: 인터메조Mektoub, My Love: Intermezzo>는 그렇고 그런 이번 영화제 경쟁작들의 모든 허물을 완전히 덮어 버릴 만큼의 망작이었다. 그 어떤 거장이라도 포르노그라피를 만들고자 한다면 막을 수 없을 것이며, 그것이 아무리 흉측해도 누구에게나 가능한 실수로 치부해 버릴 수있을 것이다. 그러나 왜 칸은 이런 작품을 경쟁부문에 초청했을까. 새로운 감독들을 발굴하기에 앞서 선정 위원들의 쇄신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좋은 영화를 본다는 기쁨 하나를 바라고 자비를 들여서 칸을 찾는 프리랜서 평론가에게 이 영화는 꽤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다.

 이런 상황에서 나에게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다. 모든 초청작 중에 단연 돋보이는 영화였으며,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 작품이라 애초에 황금종려상 수상의 희망을 품게 만들었다. 공식 상영 중에는 봉준호 특유의 유머와 디테일에 여러 번 박수가 터졌는데, 이러한 반응은 한 해에 두어 차례 있을까 말까한 것이다. 다음 날, 인디와이어, 버라이어티 등에서는 봉감독 최고의 작품이라고 평가하는 등 찬사가 쏟아졌다. <기생충>은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 등 네 명의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두 가정을 앞세워 경제적 불균형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다. 배경인 언덕위의 저택, 반지하, 그리고 지하라는 공간은 <설국열차>(2013)에서 수평선의 극과 극에 놓여 있던 머리칸과 꼬리칸을 수직적 변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어떤 면에서 계급차를 묘사하는 가장 직설적이고 오래된 방식임에도 봉준호 감독 특유의 유머감각과 디테일이 얹어져 참신하게 다가온다. 기택네와 박사장네가 집에서 창을 통해 바라보는 상반된 풍경도 인상적이다. 경제력이 만들어내는 시야의 차이와 냄새의 차이, 그리고 성격의 차이는 이 영화에서 한 번 더 주목해야할 부분이다.
 
 현지의 반응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수많은 변수가 작용하는 수상작 리스트에서 <기생충>이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무난하게 황금종려상을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은 이 영화가 전 세계 관객 누구나 취향을 떠나 공감하며 볼 수 있는 작품이라는데 있다. 기택네 가정이 반지하에 살고 있다는 설정, 박사장네 아이들의 고액과외를 하게 된다는 설정 등은 한국적 풍경에 기반해 있지만, <기생충>이 궁극적으로 건드리는 것은 국경을 초월해 존재하는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현실과 그 현실이 만들어내는 대칭적인 삶의 모습이다. 칸의 관람객들이 이 영화에 찬사를 보냈던 것 역시 바로 이 지점에서라고 할 수 있다. <기생충>은 호평과 입소문에 힘입어 칸영화제 기간 중 전 세계 192개국에 판매되었다. 이는 종전<아가씨>(감독 박찬욱)가 갖고 있었던 기록을 넘어선 것이다.

 잠시 잊고 있었다. 22일 미드나잇 스크리닝에서는 <악인전>(감독 이원태)이 상영되었다. 질적으로만 보자면 역대 미드나잇 스크리닝 초청작 중에서나 요즘 한국 상업영화 중에서나 가장 두드러지는 작품이라고 할 수 없지만, 비장르 영화의 향연 중 다소 피로함을 느끼고 있었던 칸 관객들의 머리를 식히기에는 적합한 영화였다. 작년, 같은 부문 초청작이었던 <공작>(감독 윤종빈)이 무겁고 느리고 진지한 웰 메이드 스파이물이었다면 형사, 조폭, 악마의 삼각관계가 콘셉트인 <악인전>은 유쾌한 범죄액션으로 또 다른 맛을 선사했다.

 내년에도 최소 열흘간의 고달픈 영화제 기행을 다시 하게 될까. <기생충>을 제외한다면 모든 것이 끔찍했던 올해의 경험은 벌써부터 나를 만류한다. 게다가 현지에 있을 때 한국영화가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는 기쁨까지 누렸으니 이제 여한도 없다! 그러나 영화에 대한 갈증이 있는 한 언젠가는 또 다시 칸을 찾을 것이다. 때로 당황스런 초청작들에 실망하기는 해도, 영화에 대한 리스펙트가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있을 곳이 칸이라는 것은 자명하므로. 

 

 

* 《쿨투라》 2019년 6월호(통권 60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