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Theme] 봉준호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 : 봉테일의 빅 픽처 Big Picture
[7월의 Theme] 봉준호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 : 봉테일의 빅 픽처 Big Picture
  • 김시무(영화평론가)
  • 승인 2019.07.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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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준호 감독이 지난 2000년에 만든 장편 데뷔작인 <플란다스의 개>의 영문 제목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짖는 개는 절대 물지 않는다Barking Dogs Never Bite’ 이다. 따라서 문자 그대로 <플란다스의 개A Dog Of Flanders>를 생각했다면, 이는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다. 관객은 제목에서 주는 이미지에 사로잡혀 영화의 내용을 앞서 가려는 경향이 있는데, 봉감독의 노림수도 바로 그것이었으니까.

  한적한 중산층 아파트가 주요 무대다. 이 영화의 주된 스토리는 직업전선에서 뛰고 있는 아내의 수입에 의존하는 시간강사 고윤주(이성재)가 뇌물을 이용해 결국 대학교수가 된다는 얘기다. 연상의 아내 배은실(김호정)은 매사 남편을 하대下待하는 듯 하지만, 퇴직금을 몽땅 털어 남편을 뒷바라지 할 정도로 헌신적인 여자다. 만삭의 은실은 호두로 끼니를 때울 만큼 호두 마니아인데, 그 때문에 윤주는 허구헌 날 호두까기에 바쁘다. 이처럼 아내의 속내를 몰랐던 윤주는 앞날에 대한 불안과 경제적 압박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데, 조용하던 아파트 단지에서 난데없이 개 짖는 소리가 들리자 미칠 지경이 된다.

  개짖는 소리의 출처를 찾던 윤주는 그 문제의 강아지를 발견하고 납치하지만, 차마 죽이지는 못하고 아파트 지하실에 버려진 장롱 속에 가둬버린다. 다음날 한 초등학생이 잃어버린 강아지를 찾아달라는 전단지를 들고 관리사무실로 찾아온다. 경리로 근무하는 박현남(배두나)은 꼬마의 처지를 딱하게 여겨 적극 돕기로 하지만, 강아지는 불행하게도 아파트 경비원인 변씨(변희봉)에 의해 식용으로 처리된 상태였다.

  짖는 강아지를 유기함으로써 방해물을 제거했다고 믿는 윤주는 어느 날 또 다른 강아지를 발견하고 경악한다. ‘개혐’까지 품게 된 그는 이번에는 보다 적극적인 방법으로 그 강아지를 유기하여 옥상에서 던져버리는 만행을 저지른다. 한편 우연히 이 광경을 목격하게 된 현남은 윤주를 잡으려고 필사적으로 추적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만다. 현남은 개의 사체나마 묻어주려고 경비원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그 강아지 역시 변씨의 식용으로 처리되고 만다. 이야기가 이쯤 되면 인간과 동물의 진한 교감을 바탕에 깔고 있는 감동적인 동화 『플란다스의 개A Dog Of Flanders』를 연상했던 관객들은 배신감을 넘어 허탈함을 느낄 지경이 된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흥행에 참패를 하고 말았다.

ⓒ씨네마서비스

  하지만 반전이 남아있었다. 윤주는 어느 날 아내 은실이 푸들 한 마리를 안고 들어오자 기겁을 한다. 40만원이나 주고 산 비싼 품종이었다. 윤주는 이의를 제기하지만, 돈을 버는 쪽은 결국 아내였던지라 울며 겨자 먹기로 개를 돌볼 수밖에 없다. 순자라고 불리는 강아지를 먹이고 산책시키는 것은 오로지 윤주의 몫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순자가 실종되면서 윤주는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는다. 아내가 퇴직금을 털어 남편의 비자금으로 건네주고 남은 돈으로 산 애완견이 없어진 것이니까 말이다. 그리하여 짖는 강아지들을 제거하던 일을 무슨 사명처럼 여겼던 윤주는 이제 밤새도록 전단지를 돌리며 순자를 찾아야만 하는 딱한 처지가 된다.

  이 영화에는 사실 전체 맥락과는 좀 동떨어진 시퀀스가 하나 있다. 단편으로 따로 재구성해도 될법한 그 장면은 다름 아닌 ‘보일러 김씨’에 대하여 변씨가 장광설을 늘어놓는 대목이다. 변씨가 여느 때 지하실에서 보신탕을 끓여 먹으려 하는데, 마침 점검을 돌던 주임이 합석을 하게 된다. 변씨의 얘기는 이렇다. “88년도 때 아파트건축 붐이 일었고, 그 때 날림공사가 성행했었지유. 이 아파트도 그때 지어진 것인데, 중앙보일러가 고장이 나서 광주에서 30년간 보일러 수리를 해온 전설 김씨를 불러오게 되었지라. 그가 손을 본 보일러는 곧장 가동이 되는데, 그럴 때면 김씨는 순 전라도 사투리로 ‘보일러 돈다이, 보일러 돌아볼제’하며 만족해한다는 것 이었지라. 수리를 마친 김씨는 아파트 건설 관련자들에게 부품설비비 착복을 문제 삼았지유. 아! 근데 이에 격분한 저들이 김씨를 밀치고 하는 과정에서 그만 돌출된 못에 찍혀 직사를 했다 이거유. 당황한 그들은 지하실 한쪽 벽에 김씨의 시신을 넣고 그대로 시멘트질을 했다 이거유. 그래서 그때부터 낮에는 ‘웅웅’대며 돌던 보일러가 밤만 되면 ‘잉잉’하는 소리를 낸다는 것이쥬.” 요컨대 ‘보일러 돈다이’ 할 때 그 이가 ‘잉잉’으로 들린다는 것이다.

  이상이 윤주가 강아지를 찾으러 왔다가 엉겁결에 장롱 속에 숨어들었다가 주워들은 이야기의 전모다. 한편의 영화 속에서 한 캐릭터에 의해서 이토록 황당하면서도 섬뜩한 이야기를 듣게 될 줄이야! 봉감독은 어째서 이처럼 뜬금없는 장면을 삽입했을까? 놀랍게도 우리는 봉감독의 차기작인 <살인의 추억>(2003)에서 변씨가 말했던 그 ‘보일러 김씨’의 모습을 확인하게 된다. 영화의 중반쯤, 경찰서 지하 취조실이다. 유력한 용의자 조병순이 속옷 차림으로 가혹행위를 당하며 심문을 받는데, 강압에 못 이겨 각본대로 자백을 한다. 이때 공구박스를 든 보일러 김씨가 계단을 통해 내려와 한쪽 구석에서 작업을 마치고 유유히 사라진다. 작업 중 취조과정을 흘끗흘끗 훔쳐보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변씨 말 대로 유령이 등장한 것일까? 암튼 엔딩 크레딧에 보일러 수리공 김씨라고 나와 있다.

  봉준호 감독은 자신의 장편 데뷔작을 만들면서 단순히 통과의례로 <플란다스의 개>를 선택한 것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그가 앞으로 만들 작품들의 커다란 밑그림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일종의 빅 픽처Big Picture라고 할까?

ⓒ씨네마서비스

  한 가지 예를 더 들어보자. 박현남과 친구 뚱녀(고수희)가 술 한 잔 하고 귀가하면서 길에 주차돼 있던 한 자동차의 백미러를 두발당수로 걷어차는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알다시피 백미러는 자동차를 운전할 때 차량 뒤쪽의 상황을 확인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자동차 용품의 하나다. 왜 하필이면 백미러인가? 현남은 일종의 차량파손 행위를 통해 얻은 전리품인 백미러를 매우 소중히 여겨 간직하고 다니면서 마치 손거울처럼 사용하기도 한다. 영화의 라스트 신은 아주 인상적인데, 뚱녀와 산행을 하던 현남이 배낭에서 꺼낸 백미러를 햇빛에 반사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된다. 이건 또 무슨 시츄에이션인가? 아파트에서 벌어진 ‘살견殺犬의 추억’을 반추해 보자는 의미일까? 백미러 모티브는 봉감독의 그 다음 작품인 <마더>(2009)에서 다시 한 번 반복된다. 도준(원빈)과 그의 친구 진태(진구)가 주차장에 세워둔 고급 승용차의 백미러를 역시 두발당수로 깨부수는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재미 들린 건가?

  <플란다스의 개>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노숙자 최씨(김뢰하)의 존재의미다. 아파트 지하실 한 쪽 켠 재활용품 옷가지들이 쌓여있는 구석에서 기식寄食하는 최씨는 이따금 변씨가 끓여놓은 보신탕으로 영양보충을 하기도 한다. 최씨는 영화에서 사라지는 세 마리 강아지들 가운데 한 마리인 순자의 납치법이기도 한데, 그가 옥상에서 순자를 BBQ 대상으로 삼으려는 순간 현남이 나타난 순자를 극적으로 구해준다. 현남이 그 시각 옥상에 나타난 것은 희생된 치와와 견주인 할머니의 유언에 따라서 옥상에 말려둔 무말랭이를 거두기 위함이었다. 암튼 현남은 극의 초반 사력을 다해서 납치범 윤주를 추적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죽을힘을 다해 순자를 안고 최씨의 마수로부터 도망치는 데 성공을 한다. 복도식 아파트의 추격장면은 봉감독의 천재적 연출력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결국 최씨가 경찰에 연행됨으로써 미제로 남을 뻔 했던 강아지 실종사건은 종말을 고하게 된다. 그리하여 문제가 다 깔끔하게 해결된 것일까? 사실 최씨가 강아지 살해범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나마 순자 건은 미수에 그쳤기에 살해라고 할 수도 없다. 살견의 당사자는 부정한 방법으로 대학 교수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치고,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영화는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죄罪와 벌罰의 공식, 즉 권선징악勸善懲惡의 공식을 봉감독은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그의 차후 작품에서도 계속 견지되고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 만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최씨의 캐릭터가 봉감독의 최신작인 <기생충>에서 근세의 모습으로 다시 등장을 한다는 점이다. 부잣집 지하밀실에서 4년간을 기식寄食하면서 결국 끔찍한 살인까지 저지르는 근세의 아키타입이 다름 아닌 최씨였던 것이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사실 <플란다스의 개>의 원형은 따로 있었다, 봉감독이 1994년 한국영화 아카데미 재학 때 만든 <프레임속의 기억들>(The Memories In My frame, 1994)이 바로 그것이다. 상영시간 6분인 이 단편은 한 소년이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 방울이가 실종되자 꿈에서까지 찾으려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살인의 추억>의 영어제목이 ‘살인의 기억들Memories of Murder’임은 우연이 아니었다.

 

 

* 《쿨투라》 2019년 7월호(통권 6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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