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Theme] 히키코모리가 히키코모리를 만나는 유일한 방법 - 〈도쿄!〉 중 〈흔들리는 도쿄〉
[7월 Theme] 히키코모리가 히키코모리를 만나는 유일한 방법 - 〈도쿄!〉 중 〈흔들리는 도쿄〉
  • 윤성은(영화평론가)
  • 승인 2019.06.26 15: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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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정리된 집안에 십 분, 열 시간, 열흘, 열 달의 시간이 크게 다르지 않은 히키코 모리가 살고 있다. 하루 종일 햇빛도, 초침도 부지런히 움직이지만 그에게는 변화가 없다. 한 때 샐러 리맨으로 평범하게 살아가던 주인공(이하 ‘남자’, 카 가와 테루유키)은 사람들과도, 햇볕과도 닿는 것이 싫어 집 밖을 나가지 않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11년간 그는 아버지가 부쳐오는 돈으로 집 안에서만 생활하고 있다. 생존을 위한 활동과 정리, 독서, 사색이 일상의 전부지만 그는 나름대로 부족함 없이 삶을 지속해 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랑만큼은 혼자서 할 수 없다.

  <흔들리는 도쿄>(2008, 이하 <도쿄>)는 세 명의 감독들이 도쿄에 관한 단편을 만드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봉준호 감독이 <괴물>(2006)과 <마더>(2009) 사이에 내놓은 작품이다. <도쿄!>는 미셸 공드리(<아 키라와 히로코>), 레오 까락스(<광인>) 등 굴지의 작가들이 함께 참여해 61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 선에 초청된 바 있다. 서양 감독들의 다소 관념적 인 도쿄에 비해 봉준호의 도쿄는 감독 특유의 독특한 아이디어로 가득 찬 낯설면서도 직관적인 공간이다. 30분 남짓한 러닝 타임도 봉준호에게는 대중적인 서사와 간결한 메시지를 버무려내는데 충분한 시간임을 느끼게 한다.

  봉준호는 <옥자>(2017)를 자신의 첫 번째 사랑 영화라고 소개한 적 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장편’이라는 전제하에서일 것이다. 단편을 포함한 그의 필모그래피 중 <흔들리는 도쿄>만큼 로맨틱한 작품은 없다. 한껏 높인 노출, 농도 짙은 빛, 감각적인 편집,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내레이션 등은 봉 준호의 다른 작품들에서 거의, 혹은 전혀 볼 수 없는 것들이다. ‘도쿄’는 이 도시에서 연상되는 두 가지 키워드, ‘히키코모리’와 ‘지진’이라는 기둥 위에 로맨스를 지붕으로 얹고, 다양한 소재와 디자인으로 실내를 장식함으로써 미학적이면서도 실용적인 건축물을 만들어냈다.

  ‘도쿄’에서 ‘지진’은 히키코모리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사랑의 감정 및 행위를 유발시키는 유일한 방법이다. 오랫동안 타인의 눈을 쳐다본 적 없던 남자는 피자배달원(이하 ‘여자’, 아오이 유우)의 가터 벨트를 보고 무의식 중에 얼굴을 든다. 그렇게 두 사람이 눈을 마주친 직후, 지진이 시작된다. 남자 의 마음에 타인이 들어오는 순간의 흔들리는 감정을 도쿄의 지형학적 특성과 연결시킨 이 장면은 어떤 러브 스토리의 시작보다 강렬하다. 며칠 후, 남자는 역시 집 밖을 나오지 않기로 결심한 여자를 만나기 위해 11년만의 외출을 감행한다. 초반부에 1 분 20초간 하나의 숏으로 남자의 일상과 실내를 유 영하던 카메라는 이제 집 밖으로 나가 도쿄의 거리를 탐색한다. 놀랍게도 남자는 유령 도시에 들어서 있다. 스스로 창조해낸 비현실적 공간에 있던 주인공이 용기를 내 문을 열었을 때, 현실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미지의 세계에 와 있음을 발견하는 것은 봉감독의 영화가 끊임없이 추구해온 장르적 변주, 의외성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차도 사람도 없는 도로, 피자 배달 로봇, 스스로를 격리시킨 사람들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데서 영화는 잠시 미스터리로 전환된다. 꽁꽁 숨은 사람들을 만나게 하는 것은 다시 한 번, 지진일 수밖에 없다. <도쿄>의 서사 안에서 지진은 재해가 아니라 경직되고 고립된 인간의 마음과 몸을 흔들어 타인과 만나게 하는 희망적 메타포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면은 다시 남자와 여자 사이에 강한 전류가 흐르는 멜로로 전환된다. 하얀 얼굴, 까만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가진 여자는 처음으로 남자를 향해 미소를 짓는다. 봉준호가 여배우의 얼굴을 이렇듯 아름답게 포착한 적이 있었던가. 봉준호는 이 클로즈 업을 늙은 어머니가 기괴한 표정으로 춤을 추는 <마더>의 첫 장면과 대조시키려 했는지 모른다. <괴물>의 결말부에서 괴물을 죽인 ‘강두’(송강호)의 손에 남아 있던 동그란 쇳자국을 <도쿄> 첫 장면에서 남자의 손에 새겨 넣은 것처럼. <도쿄> 작업을 통해 외국어로 영화를 만드는데 자신감을 얻은 봉준호는 5년 후, <설국열차>를 내놓는다. 이처럼 봉준호 월드의 매력이 농축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을 확장시켜준 작품으로서 <도쿄>의 의의는 크다. 언젠가는 봉준호가 만든 120분짜리 멜로드라마를 볼 수 있기를, 그 전까지는 주기적으로 <도쿄>를 꺼내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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