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Theme] 나는 어떻게 조용필에 매료됐는가
[8월 Theme] 나는 어떻게 조용필에 매료됐는가
  • 한현우(조선일보 논설위원)
  • 승인 2019.08.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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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 기자로 조용필과 만나 친해졌던 2000년대 초, 그와 자주 술을 마셨다. 그는 주로 일요일 저녁에 연락해 집으로 오라고 했다. 당시 신혼이었던 나는 월요일 출근이 걱정되면서도 조용필과 가까워진다는 즐거움과 우쭐함 같은 기분이 뒤섞인 채 한번도 사양하지 않고 그의 집으로 향했다.

   처음 조용필의 전화를 받은 일요일 저녁, 아내는 덩달아 들떠서 “정말 조용필이 오래? 부럽다, 조용필하고 술도 마시고”라고 말했다. 그 다음주 일요일에도 어김없이 전화가 왔다. 아내는 “어떡해, 조용필이 부르는데. 갔다 와.”라고 했다. 그 다음 일요일에는 이렇게 말했다. “조용필 왜 그래? 친구 없어?”

  단언컨대 내가 조용필과 가까워진 것은 음악 기사를 쓰는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물론 지금도 아들·딸 뻘 기자들을 깍듯하게 대하지만, 그런 이유로는 조용필과 친해질 수 없다.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 그와 가까워진 것은, 조용필에게 음악 이야기를 스스럼 없이 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조용필 주변에는 당연히 음악에 대한 애호와 능력을 갖춘 사람이 무궁무진하다. 밴드 ‘위대한 탄생’ 멤버들을 비롯해 공연 스태프들 수준도 최고다. 그러나 그들은 조용필에게 자기 주장을 하거나 논쟁하려 하지 않았다. 조용필이 보스요, 왕이기 때문이다. 조용필이 시키는 대로 하면 최고의 음악과 공연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그 앞에서 무슨 새로운 주장을 했다가 뒷감당할 자신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하룻강아지 음악 기자가 나타나 이건 어떤 것 같다, 저건 좀 아니지 않느냐, 이런 음악 들어봤느냐 같은 말들을 쏟아내니 호랑이가 볼 때 귀엽고 재미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조용필과 나는 1960~70년대 록 음악을 좋아한다는 중요한  통점이 있다. 조용필이 가장 좋아하는 밴드는 미국의 스틱스Styx인데, 나 역시 스틱스 전 앨범을 갖고 있다. 조용필은 집에서나 사무실에서 특정 음반을 듣지 않는다면 KBS 1FM 또는 AFN을 듣고, TV는 〈동물의 왕국〉만 보는 습관이 있는데 이것 역시 나와 똑같다.

  조용필에게는 명망있는 친구들도 많다. 하나같이 조용필의 팬들이다. 이들 중엔 기업가도 있고 교수도 있고 예술가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조용필만큼 음악을 사랑하지는 않는다. 조용필은 음악과 골프 말고는 별다른 화제가 없는 사람이다. 그러니 이들 친구와는 골프 이야기는 무한정 할 수 있을지 모르나 음악 이야기를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조용필은 나에게 집요하리 만큼 골프 배울 것을 종용했는데, 어쩌면 나와 골프 이야기도 하고 싶어서 그랬을 것이다. 아내 말대로 조용필에겐 정말 친구가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조용필을 처음 만나 인터뷰하던 날, 저녁 7시에 음식점에서 시작한 인터뷰는 그의 집으로 장소를 옮겨 새벽 3시가 돼서야 끝났다. 조용필 집에 있던 소주가 모두 동이 났고, 빈 맥주캔은 40개 가량 쌓였다. 알려진 대로 조용필은 대단한 주량의 소유자 였다(지금은 거의 마시지 않을 만큼 절주하고 있다). 그러나 그 날 마신 술의 양보다 놀라운 것은 그 8시간 동안 조용필이 오로지 음악 이야기만 했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음악 이야기로 시작해 공연 이야기, 악기 이야기, 녹음 장비 이야기, 무대 이야기, 조명 이야기… 그리고 자신이 좋아했던 음악과 현재 듣고 있는 음악 이야기로 끊임없이 이어졌다. 경험상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렇게 밤새 음악 이야기 하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음악 평론가들과 술을 마시며 이야기하다 보면 한도 끝도 없이 음악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꽤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조용필도 어떤 음악 평론가 못지 않게 음악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나 역시 그렇게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하물며 그 사람이 조용필임에랴.

  문화부 기자로 오랫동안 일하면서 만난 예술가들의 특징은 자기가 자기 분야 최고의 예술가이며 자기 작품도 최고라고 굳게 믿는다는 점이다. 이것은 그 사람이 겸손해서 겉으로는 그렇지 않은 척 해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믿지 않는다면 어떻게 작품을 발표할 수 있을까. 그런 면에서 이해가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조용필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의 음악에 대한 자부심이 그 어떤 음악가보다 크고 단단하다. 또 그 자부심을 유지하기 위해 음악에 대해서 만큼은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완벽주의자다. 이 자부심과 완벽주의는 조용필이라는 거대한 마차를 굴러 가게 하는 두 개의 바퀴다. 자부심 없고 완벽을 기하지 않는 예술가가 어디 있겠느냐마는, 조용필의 그것은 지독하고 대단하다. 그렇기에 실수나 흠을 발견하기 어렵다.

ⓒYPC 프로덕션

  조용필은 어떤 노래든 한 번 들으면 바로 악보로 그리는 재능을 갖고 있다. 또 어떤 악보든 한 번 보면 바로 노래할 수 있다. 공연기획사 서울기획 이태현 사장의 증언이다. “일본에 처음 진출했을 때였어요. 외국 가수가 NHK에 출연하려면 일본 노래도 한 곡 부르는 게 관례였습니다. 일본인 PD가 조용필씨가 부를 노래 악보와 카세트테이프를 가져왔는데 조용필씨가 테이프로 노래를 딱 한 번 듣더니 ‘이건 필요 없다’며 테이프를 돌려주는 거예요. 그때 PD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어요. 저 사람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인가 하는 표정, 과연 한 번만 듣고 노래를 잘 부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뒤섞인 얼굴이었습니다. 물론 그 노래는 기가 막히게 잘 불렀죠.”

  비틀스 멤버 전원은 악보를 읽지도 쓰지도 못했다. 폴 매카트니는 지금도 다른 사람에게 악보를 그리게 한다. 조용필은 언젠가 “초견에 악보를 읽지 못하고 초청에 악보를 쓰지 못하면 뮤지션이 아니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을 때 “그렇지는 않지만, 비틀스가 악보를 읽고 쓸 수 있었다면 더 훌륭한 음악을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한다”고 답했다. 나는 그때 조용필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직감했다. 그는 비틀스 아니라 모차르트라 해도 악보를 읽고 쓰지 못하면 자기보다 한 수 아래로 보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만이 조용필이 될 자격이 있다. 조용필은 종이에 건반을 그려넣은 종이 피아노로 화성학을 공부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조용필이 되기 위해 필요한 물건은 종이와 연필이면 된다. 그러나 상상할 수 없는 크기의 자부심이 없다면 황금 피아노를 가졌다 해도 결코 조용필이 될 수 없다. 2013년 조용필이 <바운스>와 <헬로>로 대한민국을 뒤흔들었을 때, 그 음반 코러스는 모두 조용필이 불러 녹음했다. 멜로디를 조용필이 부르고 화음도 조용필이 넣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가수들이 흔히 쓰는 것이지만, 조용필은 자신의 목소리 코러스를 50채널이나 쓰기도 했다. 이 말은 조용필이 멜로디를 부르고 조용필로만 이뤄진 50인조 합창단이 화음을 넣었다는 뜻이다. 조용필은 “잘 들어보면 코러스가 아주 굵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왜 이런 작업을 할까? 정답은 없다. 그런 방법을 생각해 냈고 그것이 옳다고 믿으면 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아는 뮤지션 중에는 서태지가 조용필보다 이런 테크닉 방면으로 더 지독한 사람이고 그 다음이 신해철이다. 그러나 1968년 데뷔해 50년 넘게 활동하고 있는 조용필이 해내는 작업이라고 생각하면 그 어마어마한 상상력과 실행력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뮤지션 한대수는 분명히 이렇게 말할 것이다. “팝송 녹음하는 데 뭘 그렇게 오래 걸려? 하루면 되지.” 실제로 한대수 는 음반 녹음을 하루 또는 길어야 이틀에 끝내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를 잘 모르는 사람이 음반 제작을 하면 속이 새카맣게 탄다. 녹음 당일까지 악보라곤 달랑 멜로디만 그려진 것 한 장 뿐이다. 편곡도 안 돼 있고 가사도 없다. 그런 상태로 한대수가 녹음실에 나타나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가사 쪽지를 꺼내 들고 녹음을 한다. 신곡을 딱 한 번 부르고 스튜디오에서 나오면 제작자는 “신곡인데 연습 좀 더 하시지 그러냐”고 묻는다. 한대수가 대답한다. “연습은 무슨. 방금 부른 거 좋네. 이걸로 판 냅시다.” 조용필과 한대수는 똑같이 위대한 뮤지션이지만, 결코 서로의 음악을 부러워하거나 탐내지 않을 것이다.

  나는 10여 년 전 뉴욕에서 기타리스트 레스 폴의 공연을 봤다. 그는 당시 91세였고 왼손가락 중 세 개가 마비 상태였다. 그는 자신에게 헌정된 깁슨 레스 폴 기타를 들 힘조차 없었다. 두 사람의 부축을 받아 무대에 나왔고 기타는 다른 사람이 가져다 메줬다. 왼손가락 두 개로 지판을 짚어 기타를 연주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예술이 어떤 경지에 오르면 종교를 능가하는 수준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조용필이 레스 폴처럼 올림픽 주경기장이나 체조경기장 같은 큰 무대가 아니더라도, 객석 1000석짜리 중극장, 아니 100석짜리 소극장 무대에서라도 90세 넘어서까지 공연해주길 바란다. 그리고 조용필에게도 여러 차례 그렇게 말했다. 그렇지만 나는 안다. 그는 그런 무대, 자신의 노래를 어쿠스틱으로 편곡해 소소하게 들려줘야만 어울리는 무대에는 서지 않을 것이다. 조용필에게 그것은 예술을 포기하고 공연이란 상품을 생산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조용필의 공연을 볼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서운하고 아쉬운 일이지만, 그래서 또 조용필이 자랑스럽고 뿌듯하다. 처음 만난 날 나를 완전히 매료시켰고 그 뒤로도 끊임없이 빠져들게 만든 예술가, 조용필의 퇴장은 그러해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 《쿨투라》 2019년 8월호(통권 6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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