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신중현 1] 프롤로그 - 기적 앞에서, 음악 앞에서, 신중현 앞에서
[아티스트 신중현 1] 프롤로그 - 기적 앞에서, 음악 앞에서, 신중현 앞에서
  • 장석원(시인·광운대 교수)
  • 승인 2019.09.0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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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기타의 아름다움에 깊게 빠져들었다. 데이빗 길모어David Gilmour의 2016년 폼페이Pompeii 라이브 버전 <Comfortably Numb>을 접한 후, 기타를 수식하는 말로 ‘숭고하다’가 가능하다는 것을 깨 달았다. 연주가 끝나고 극한으로 치닫던 감정이 붕괴되고 말았을 때, 나는 시의 무력함을 실감했다. 재발견한 다른 아름다움도 있었다. 마음의 통증 때문에 일상생활이 마비되었을 때, 근처의 엘피 바LP Bar에서 신청했던 로이 뷰캐넌Roy Buchanan의 <Down By The Rivers>는 처벌이기도 했고 치유이기도 했다. 냉혹한 그의 기타는 영적靈的 아우라로 나를 감염시켰다. 곡명이 아니라 밴드명 ‘퍼플 레인’을 그 즈음 만났다. 방송사 JTBC의 경연 프로그램 ‘슈퍼밴드’를 즐겁게 지켜봤다. 여섯 팀의 결선 밴드 중에서 퍼플 레인에 매혹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세상을 떠난 프린스Prince의 절망적으로 아름다운 작품 제목 <퍼플 레인Purple Rain>을 밴드 이름으로 결정했다는 사실에서 그들의 음악을 추측할 수 있었다. 그들은 정통 락 밴드다. 팬의 심정으로 문자 투표 실행. 남들의 예측대로, 그들은 우승하지 못했다.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슈퍼밴드 서울 공연 티켓을 구매했다. 밴드 퍼플 레인의 보컬리스트 채보훈의 성량과 음색이 선사한 파워 샤워power shower. 몸이 쪼개지는 것 같았다. 건반주자 이나우의 웅장하고 진취적인 키보드 사운드의 방류와 폭포 같은 장쾌함. 가슴이 저릿했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실력이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BTS만이 아니라 이제는 락 음악, 락 밴드도 당당한 ‘한류’로 퍼져나갈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아재와 꼰대의 연합체가 된 지 오래되었지만 나이들수록 헤비 락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점증적으로 새로운 메탈 세계로 진입하는 중이다. 오랜 시간 연구 또는 수행을 요구하는 프로그레시브 메탈 progressive metal. ‘진보적인’이라는 수식어의 범주를 초월해버린 밴드 ‘툴TOOL’의 다섯 번째 정규 앨범이 8월 말에 발매되었다. 13년을 기다렸다. 앨범 출시 전이었지만, 유튜브에서 그들의 신곡 <Invincible> 과 <Fear Inoculum>을 반복 감상했다. 주관적 판단이지만 현존 최고의 ‘시간분할체=리듬’을 실현하고 있는 밴드가 툴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의 새 앨범 발매를 기다리면서 정교하게 다시 듣기를 하다가 ‘킹 크림슨King Crimson’의 후기 음악 요소를 발견했다. 툴이 그 특징을 강력하게 수용한 밴드 ‘크림슨 왕’은 올해로 결성 50년이 되었다. 1969년에 그들의 첫 앨범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 이 비틀즈The Beatles를 누르고 영국 차트 1위에 올랐을 때, 그 음악 앞에 ‘아트art’나 ‘프로그레시브’ 같은 수식어를 부여할 수밖에 없었을 때, 우리는 그 순간, 현재의 어떤 사건이 역사의 결정적 결절점이 될 것이라는 점을 파악하지 못한 채 살고 있는 것처럼, 그것이 대중음악을 단번에 예술의 경지로 끌어 올린, ‘혁명적인’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어떻게 50년 전에 ‘그런 음악’이 출현할 수 있었을까.

1960년대 말부터 70년대 중반까지 음악은 무엇을 이루었는가. 우리가 인지하지 못했어도 ‘고전 classic’ 음악이 탄생하고 있었다. 나의 순진한 판단이다. ‘어떻게’ 그 모든 것들이, 그들이 20대일 때, 그 시대에, 가능했을까. 갓 스물을 넘긴 애송이 미국 청년 셋은, 그랜드 펑크 레일로드Grand Funk Railroad 를 부설(1969)한 후, 기타-베이스-드럼으로 이루어진 미니멀 구성만으로, 락 밴드의 3인조 원형 시스템만으로, 단순하지만 직선적이고 성글지만 강한 <Inside Looking Out>에서, 저 청춘의 심장 박동을 폭발시켰다. 1970년 독일, 신디사이저로 불리는 낯선 키보드를 밴드의 악기로 편제하여 건축한 ‘크라 프트베르크Kraftwerk(발전소)’는 롱한 기계음만으로 음악을 조적組積하여, 이후, ‘테크노techno’ 또는 ‘ 일렉트로닉electronic’으로 집약되는, 전자음악의 시초를 선보였다. 올맨 브러더즈Allman Brothers 밴드는, 1971년 뉴욕 필모어 이스트 극장(《At Fillmore East》) 에서, 기타가 불사조의 검은 날개를 펼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절한 라이브로 실현했다. 같은 해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는, 앨범 《Meddle》에서, 데이빗 길모어가 스물다섯이었을 때, 천둥 같은 메탈과 파열 후의 침묵을 정교하게 배치한 23분 31초짜리 대곡 <Echoes>를 선보였다. 그리고 1974년, 킹 크림슨은, 광기와 착란과 평정과 서정을 하나로 융합하여 향후 자신들의 예술적 지향을 노정한 전율적인 작품 《Red》를, 로버트 프립Robert Fripp이 스물여덟일 때, 세계에 투척한다. 그 시대에 그 이후의 모든 음악이 존재했다. 기적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우리에게도, 동일한, 기적이 있었다. 신중현이다. 그의 노래, 그가 작곡한 작품들 그리고 그의 기타. 그를 감상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 음악이라는 실체가 부여한 시간의 양. 순정한 순례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첫 걸음을 떼어야 한다.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예술가 신중현이 이룩한 음악의 산맥을 먼 곳에서 바라본다. 광야를 휘달리는 선율 같은 능선이 보인다. “찬란하게 빛나는 붉은 태양이 비추고 하얀 물결 넘치는 저 바다와 함께 있네 그 얼마나 좋은가 우리 사는 이곳에”(<아름다운 강산>) 그가 있으니, 그의 음악이 있으니. 행복과 찬탄과 사랑과 광휘에 온몸을 내던질 준비, 되었는가.

기억을 더듬는다. 시점始點을 찾는다. 뚜렷하지 않다. 언제던가, 신중현을 만났던 때. 국민학생이었을 때, 누나나 형이 흥얼거렸을까.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서 흘러나왔을까. 이선희의 <아름다운 강산>이었을까. 김완선의 <리듬 속에 그 춤을>이었을까. 1987년 무렵의 <미인>이었을까. 시간을 확정할 수가 없다. 곁에 있었어도 인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까지 알지 못해서 지나쳤을 것이다. 이선희보다 김완선을 사랑했으므로, 아마도, 신중현이 작곡하고 김완선이 부른 그 노래가 처음이었을 것 같다. 아니다. 꼬마였을 때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를 따라 불렀던 것 같다. 1969년에 세상에 나온 작품이니, 예닐곱 무렵의 내가 무심코 접촉했을 수도 있다. 종잡을 수 없는 기억의 창문을 닫아건다. 뚜렷한 대상을 찾았다. 김추자의 <꽃잎>이다. 영화를 통해서 처음 입맞춤한 노래, 신중현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그 마력의 방사선이 더욱 찬란해진 노래 <꽃잎>. 배우 이정현의 앳된 얼굴과 가수 김추자의 목소리가 겹쳐진다. 내가 <金秋子에게 보내는 戀書>(《아나키스트》)를 썼던 대학원 박사과정 시절, 그때가, 고유명사 신중현을 분명하게 인식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이제 나는 그를 만난다. 함께 먼 길을 떠나려 한다. 신중현 이전에 우리가 먼저 만날 사람이 둘 있다. 김정미와 김추자. 뮤즈들의 독창적인 음악 앞에서 가슴이 쿵쾅거린다.

나는 음악을 문학으로 번역하고 싶다. 소리를, 음악 안의 소리가 지속되는 순수한 시간을, 언어로 바꾸는 일, 그 끝에서, 새로운 이미지가 발생하면 좋겠다. 형체 없는 감정과 느낌의 원한 현재형 사건인 음악에 언어를 부여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의 공간에 고정하여, 음악이 무한성을 얻을 수 있다면…… 문학의 눈으로 음악을 이해하는 과정─가사에서 시를 발굴하기─을 바탕으로 두겠지만, 온전히, 나의 이 음악에 대한 사랑 고백이 되기를 바란다. 시와 음악은 리듬을 공유하지만 시의 리듬과 음악의 리듬은, 절대로, 같지, 않다. 시는 언어 예술이다. 언어는, 읽고 듣고 말하고 쓰는, 네 과정이 상호 작동할 때, 의미를 포섭한다. 언어와 시의 의미는 고정되지 않는다. 언제나 가변적이다. 음악은 소리라는 물리 현상을 기반으로 삼는 청각 예술이다. 가사(언어)가 없을 때, 음악에는 의미가 존재하지 않는다. 가사가 있다 해도, 시와 다르게, 그 작품의 의미는 언어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음악 위에 떠다니는 언어가 가사이다. 그것은─읽기도 하지만─듣는 것이다. 읽는 가사와 듣는 가사를 같다고 할 수는 없다. 시의 리듬은 분명히 거기에 있지만 그것을 언어로 표현하여 객관화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음악의 리듬은 악보로─수학적 개념으로─표현할 수 있다. 시의 리듬을 공식으로, 규칙으로, 시각적으로 도해할 수는 없다. 시의 리듬은, 수용과 감상 단계에서, 독자들의 수만큼, 무한한, 가변 영역에 놓여 있다. 시와 음악이 지니는 차이와 유사점 사이에서 나는 두리번거리고 있다. 그 머뭇거림을 시작한다. 나는 김추자에게 “‘가장’이라는 최상급 부사는, 그렇다. 그대에게만 해당된다. 아름다움이라는 단어는 그대만이 독점한다”고 헌사했다. 1년 후에, 이 문장의 ‘그대’가 신중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 《쿨투라》 2019년 9월호(통권 6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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