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 에세이] 어느 '박정현 팬'의 이야기
[사회문화 에세이] 어느 '박정현 팬'의 이야기
  • 설규주(경인교대 교수)
  • 승인 2019.09.0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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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만의 ‘데뷔’

2004년 4월 어느 밤이었다. <윤도현의 러브레터> 100회 특집방송을 하는 날이었다. 평소에도 라이브에 강한 가수들이 많이 출연하는데다 김제동이 맡은 코너는 당시 개콘 못지않게 재미있어서 매번은 아니어도 종종 챙겨보던 프로그램이었다. 그날은 더욱 기대감이 컸다. 김동률과 이적이 객석을 한바탕 뜨겁게 만들어주고 나서 새로운 가수가 무대를 이어받았다. <생활의 발견>이라는 노래 제목과 함께 경쾌한 피아노 전주가 흐르는 동안 자그마한 그 가수는 무대에 덩그러니 서 있었다. 그때만 해도 <생활의 발견>이라면 홍 상수 감독의 영화로만 알고 있었지 그런 제목의 노래가 있는지도 몰랐다. 어린 시절 똑순이 캐릭터로 유명했던 배우 김민희를 닮은 듯한 얼굴의 그 가수는 <생활의 발견>이라는 노래를 (나중에 알게 됐지만) 특유의 손짓, 특유의 표정과 함께 또박또박 불러 나갔다. 그 가수의 이름은 박정현이었다. 노래 도중에 랩을 하기 위해 관객의 커다란 환호와 함께 김진표가 등장했다. 김진표야 패닉으로 워낙 잘 알려져 있으니 금방 알아보았지만 박정현은 당시 나에겐 신인 가수나 마찬가지였다. 흥겹게 랩을 구사하는 김진표 옆에서 마음껏 자신의 노래와 리듬에 취해 있던 박정현이 뿜어낸 노래 솜씨는 짧지만 강렬했다.

방송이 끝나고 검색을 해보았다. 박정현은 신인가수가 아니라 이미 당시 4장의 앨범을 낸 데뷔 6년차 가수였다. 그저 내가 박정현을 몰랐을 뿐이다. 그래서 그날이 적어도 나에겐 6년차 가수 박정현의 ‘데뷔 무대’였던 셈이다. <생활의 발견>이라는 노래도 이미 2002년에 발매된 4집 앨범 속에 들어 있었다. 공교롭게도 영화 <생활의 발견>도 2002년에 개봉했는데, 신기한 인연이다. 그때까지 나온 4장의 앨범을 하나하나 사서 들어 보았다. 박정현의 대표곡이 뭔지, 각 앨범의 메인이 어느 곡인지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그냥 들었다. 좋아하는 곡, 익숙한 곡 이런 것 없이 그냥 순서대로 듣고 또 들었는데, 버릴 곡이 없었다. 내겐 그랬다. 정규 앨범 이후에는 라이브 공연 앨범을 모았고 이후에는 컴필레이션 앨범도 구매했다.

1년만의 ‘대면’

2005년 3월,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 박정현이 왔다. 당시는 우리 대학이 새로운 캠퍼스를 하나 만들어 막 개교한 시점이었다. 지역사회 주민과 함께 개교를 축하하는 의미에서 MBC의 간판 음악 프로그램을 우리 학교에서 녹화하기로 했는데 거기에 박정현이 출연한 것이다. 박정현을 알게 된지 약 1년 만에 일종의 ‘대면’을 하게 되었다. 거리가 좀 있긴 했지만… 신지와 MC몽이 사회를 보았고 배치기, 조성모, 이승환 등도 차례대로 무대에 섰다. 박정현은 신규 앨범 5집에 실린 <달>을 불렀다. 노래를 부르는 동안 나는 무대 앞쪽으로 자리를 옮겨서 80만 화소짜리 카메라폰의 셔터를 연신 눌러댔다. CD로만 듣다가 라이브로는 처음 접해본 건데 오히려 아쉬움이 컸다. 무언가를 채우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 얼마 있다가 인터넷에서 박정현 콘서트 광고를 보았다. 같은 해 9월 세종문화회관에서 ‘가을을 기다림’ 이라는 제목의 공연을 한다는 소식이었다. 주저 없이 예매를 했다. 2시간 30분 동안 대강당은 박정현의 노래와 팬들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6개월 전의 아쉬움을 달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나는 5년 동안 매해 박정현 콘서트에 갔다.

 

2년만의 ‘대화’

2007년 12월말 연세대 100주년기념관에서 열린 콘서트에도 갔다. 박정현이 관객에게 물었다. “여러분은 새해에 하고 싶은 일이 뭐에요?” 누군가는 손을 들고 영어 공부를 하겠다고 했고, 누군가는 운동을, 또 누군가는 연애를 하겠다고 했다. 나도 손을 들었다. 박정현은 나를 지명했다. 나는 평범하게 대답하고 싶지는 않아서 이렇게 말했다. “박정현 콘서트에 다시 오겠습니다.” 객석에서 상당히 큰 환호성 이 들렸다. 누구를 향한 환호성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 날 박정현과 일종의 ‘대화’를 했다고 믿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마침내 박정현과 대화를 나눴다고 우겼다. 박정현 콘서트에 처음 간지 대략 2년의 시간이 지난 시점에서 얻은 ‘성과물’에 나홀로 커다란 의미를 부여했다.

 

3년만의 ‘변화’

그로부터 대략 3년이 지난 2011년 3월 <나는 가수다>가 화제를 몰고 왔다. 당시 유행이던 노래 오디션 프로그램과는 달리 현직 가수들의 경연이라는 점에서 확연히 차별화된 기획이었다. 시작부터 김건모 예우 논란으로 시끄러웠고 PD가 교체되기까지 했다. 여기에 박정현이 출연했다. 이건 박정현에겐 커다란 전환점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TV 음악 프로그램에는 간헐적으로 등장하는 정도였고, 주로 콘서트를 통해 대중보다는 확실한 자기 팬들을 주로 만나오던 박정현이 주말 예능 프로그램의 고정 멤버가 되다니. 이 상황은 내게 좀 낯설었다. 시청자로서의 나와 박정현 사이의 거리는 성큼 가까워졌지만, 팬으로서의 나와 박정현 사이는 좀 미묘해졌다. 박정현이라는 가수 자체에 무슨 변화가 있었던 건 아니다. 박정현의 노래 솜씨는 그대로였고 가사나 멜로디를 소화하는 능력도 내가 보기엔 여전히 빙상 위의 김연아 급이었다. 달라진 것은 박정현의 위상이었다. <나가수> 출연과 함께 박정현의 대중성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높아졌다. <윤도현의 러브레터>에서처럼 게스트로서가 아니라 주인공으로서, 그것도 고정으로 서는 기회가 더욱 많아졌고, 단지 TV 화면이나 대강당 정도가 아니라 유럽 어느 도시 전체를 노래로 가득 메우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었다. 박정현은 점점 더 큰 무대로 뻗어 나갔고 나는 이전처럼 박정현을 따라 가지 못했다. 대신, 훨씬 더 많은 대중과 미디어에 의해 박정현은 더 많이 소비되었다. 그게 서운하다거나 그래서 박정현이 내게서 멀어졌다거나 하는 건 전혀 아니다. 더 많이 알려지고 더 많은 인기를 누리는 것은 박정현의 달라진 몫이지만, 박정현 의 신규 팬이 많아졌다고 해서 기존 팬으로서 내 몫이 줄어드는 건 없다.

 

14년째 ‘고정’

박정현을 알게 된 지 어느덧 14년이 되었다. 나는 여전히 가수 박정현을 좋아한다. 박정현의 노래도 여전히 내게는 포근하다. 박정현의 노래를 예전만큼 자주 듣지는 못하지만, 나는 변함없는 박정현의 팬이다. 박정현의 노래는 내게 비평의 대상이 아니다. 감상의 대상도 아니다. 그보다는, 가끔 전화해도 오랜만에 전화해도 어제 통화한 것처럼 어색하지 않고 편한 친구 같은 존재다. 그래서 박정현도 내가 팬으로서 충성을 바쳐야 할 THE Singer가 아니라, 함께 나이 먹어 가며 세상살이에 충실한 비슷한 또래의 중년으로서 무언가 연대감 같은 것을 느끼게 되는 그런 존재다. 참고로, 내 연구실문에 붙어 있는 대형 포스터 사진 속 인물은 14년째 똑같다. 앨범 포스터에서 콘서트 포스터로, 그리고 다시 앨범 포스터로 바뀌긴 했지만, 사진 속 주인공 자체는 ‘고정’되어 있다. 박정현이다.

 

 

* 《쿨투라》 2019년 9월호(통권 6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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