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Theme] 성녀와 창녀 사이
[10월 Theme] 성녀와 창녀 사이
  • 안진용(문화일보 문화부 기자)
  • 승인 2019.10.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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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서비스

‘왜 다들 그렇게 전도연을 못살게 군 것일까?’ 21세기 최고의 여배우로 선정된 전도연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 위해 그의 필모그래피를 찬찬히 훑어보다가 든 생각이다. 뭐 하나, 쉬운 선택이 없었다. 전도연은 대다수의 작품에서 숨도 고르지 못하고 달렸다. “이쪽 골대 찍고 저쪽 골대 찍고 온다, 10회 반복!"이라는 군대의 얼차려를 받듯, 접점조차 찾기 힘든 양극단의 감정을 쉼없이 오갔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가장 유력한 ‘증거 1호’는 단연 그에게 ‘칸의 여왕’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준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이다. 아이를 잃은 엄마가 “신 앞에서 회개했다”며 스스로를 용서하려는 유괴범을 마주한 후, 신을 향해 분노를 표출하는 이 영화에서 전도연은 인간 감정의 밑바닥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연기를 온몸으로 웅변한다.

<밀양>의 메이킹 영상을 보면 전도연이 길바닥에서 엉엉 울고 있는 모습이 포착된다. 연기가 아니다. 전도연은 진짜 목놓아 울었다. 그러면서 이창동 감독에게 외친다. “감독님 저한테 왜 이러세요.”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에 허우적대는 전도연에게 연신 “큐”를 외치며 카메라를 다시 돌리는 이 감독은 원망스럽고 버겁운 존재였으리라. 아마도 <밀양>은 전도연과 더불어 21세기를 대표하는 한국 최고의 배우로 손꼽히는 송강호가 철저히 여주인공의 그늘 속에 숨어 있었던 유일한 영화라 할 수 있다. 카메라 속에서 전도연의 곁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는 송강호는 카메라 밖에서도 형언할 수 없는 감정에 힘겨워하는 전도연을 다독이는 것이 그의 몫이었다는 후문이다.

해피엔드ⓒCJ엔터테인먼트
하녀ⓒ무비꼴라쥬

어디 이뿐인가. 감독들은 참 고약하게도 멀쩡히 잘 살아 가고 있는 여성을 사지로 내모는 고달픈 연기를 전도연에게 맡기곤 했다. 영화 <하녀>,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해피엔드> 등이다. <하녀>의 은이, <스캔들>의 숙부인 정씨는 평탄한 삶을 살려 한다. 하지만 그런 그녀들은 못된 남자들의 유혹의 대상이 된다. 그 유혹에 넘어간 후 다시 버림 받은 여성의 삶은 어떨까? 복수를 다짐하거나,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한다. 스스로 불륜을 선택한 <해피엔드>의 보라는 다소 결이 다를 수 있지만, 세 영화 속 여성 모두 죽음으로 이야기를 매듭짓는다는 측면에서는 일맥상통한다. 그래서일까. 이 영화들을 보고 난 후에는 좀처럼 후련하지 않다. 아련하다. 가슴에 뭔가 남는다. 혹자는 ‘찝찝하다’고 표현한다. 도무지 털어낼 수 없는, 곱씹어야 할 화두를 던진다. 그게 전도연의 연기다. 그렇다면 유수의 감독들은 왜 전도연에게 이런 연기를 맡길까? ‘전도연이 연기를 잘해서’라는 정도의 분석은 너무 진부하다. 다시 전도연의 필모그래피를 훑어봤다. 그러다 퍼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전도연을 망가뜨리고 싶어서’는 아닐까? 

ⓒ한국영상투자개발

충무로에 전도연의 이름을 처음 아로새긴 작품은 단연 <접속>(1997년)이다. 당시 스물다섯의 풋풋한 여배우가 보여줬던 때 묻지 않은 감성은 참 신선하고 흐뭇했다. <접속>의 모티브가 된 PC통신이 지금 보면 참 유치하고 기술적으로 허술하지만 대중이 ‘그래도 그 때가 좋았어’라고 떠올리는 것처럼, 전도연은 참 좋았던 1990년대의 감성과 사랑법을 <접속> 안에 꾹꾹 눌러 담았다. 이 때까지만 해도 향후 전도연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격정’ ‘파격’과 같은 수식어와 그는 어울리지 않았다. <접속>의 초중반을 장식하는 벨벳 언더 그라운드의 <패일 블루 아이즈(pale blue eyes)>부터 두 남녀가 극장 앞에서 마주서는 마지막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사라 본의 <어 러버스 콘체르토(A Lover’s Concerto)>처럼 아련하지만 결코 어둡거나 우울하지 않은 것이 전도연의 분위기였다.

이듬해 영화 <약속>에서 조폭 연인을 끔찍이 보듬는 여인을 연기했던 전도연은 1999년작인 <내 마음의 풍금>에서 풋풋함의 정점을 보여준다. 17세 늦깎이 초등학교 여학생인 홍연이 산골 마을 시골 학교의 총각 선생님을 향해 품는 연정을 그린 이 작품은 20대 전도연의 연기력을 만끽하고 싶은 관객들에게 꼭 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랬던 전도연이 불과 1년도 되지 않아 1999년, 세기말의 우울함을 가득 담은 <해피엔드>로 돌아 왔으니 영화 관계자뿐만 아니라 관객들도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감독들이 전도연이라는 하얀 도화지에 핏빛 그림을 그리고 싶나 보다’라는 생각이 든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과거 그의 인터뷰를 찾아보면, 전도연은 “<해피엔드>를 통해 ‘아, 나는 배우구나’라는 사실을 스스로 발견하고 인정했다”고 고백한다. 결국 이 영화는 전도연의 심연에 잠자고 있던 무언가를 깨뜨린 작품인 셈이다. 감독들은 그를 망가뜨린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도사리고 있던 괴물을 깨운 것이다. 

내 마음의 풍금ⓒ한국영상투자개발
너는 내 운명ⓒCJ엔터테인먼트

이후에도 전도연은 끊임없이 운동장에 놓인 두 골대 사이를 오가는 행보를 이어갔다. <피도 눈물도 없이>·<카운트다운>·<무뢰한>에서는 소위 말하는 ‘센 언니’였고, <인어 공주>·<멋진 하루>·<집으로 가는 길>·<남과 여>에서는 ‘천생 여자’였다. 그 중 에이즈에 걸린 다방 여종업원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너는 내 운명>의 은하는 참 아이러니한 인물이었다. 이유를 막론하고 ‘몸을 판다’는 행위는 결코 지지를 받을 수 없었지만, 시골 청년과 순수한 사랑을 나누는 그의 모습을 보며 관객 역시 굳게 걸었던 빗장을 풀 수밖에 없다.

‘성녀와 창녀 사이’. 단 한 순간도 ‘고인 물’이 되지 않으려, 머무르려 하지 않는 전도연의 캐릭터 열전을 정리할 수 있는 한 문장이 아닐까. 그리고 또 한 가지, 전도연의 곁에는 항상 최고의 파트너가 있었다. 최민식, 한석규, 송강호, 설경구, 이병헌, 황정민, 하정우. 전도연의 운이 좋은 것일까?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전도연의 곁은 ‘당대 최고’라는 수식어를 거머쥔 남자 배우들에게만 허락된 자리인 셈이다. 2017년 열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밀양>의 GV가 개최됐다. <밀양>의 개봉 1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10년 전 전도연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전도연은 “잘 한다고 등 두드려주고 싶다. 넌 어쩜 이렇게 잘 하니?”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지금 이 순간, 전도연의 팬들이 딱 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일 것이다.

 

 

* 《쿨투라》 2019년 10월호(통권 6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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