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Theme] '실미도'에서 '기생충'까지, 천만 영화의 어제와 오늘
[10월 Theme] '실미도'에서 '기생충'까지, 천만 영화의 어제와 오늘
  • 김시균(매일경제 문화부 기자)
  • 승인 2019.10.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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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천만 영화 시대의 기원

한국 천만 영화 시대는 한국형 블록버스터 시대의 개막과 궤를 같이 한다. 그러므로 블록버스터 시대를 먼저 열어젖힌 미국 할리우드부터 짚어봐야 한다. 작금의 한국 영화계 블록버스터 현상이란 할리우드 벤치마킹의 산물이자 그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이다. ‘대형 폭탄’으로 직역되는 블록버스터는 1970년대 할리우드에서 비롯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죠스>(1975)가 효시였다면, 2년 후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 에피소드 4- 새로운 희망>(1977)(이하 스타워즈)이 개봉해 할리우드 대작 붐을 일으킨다. 이른바 ‘3고 시대’(고위험, 고비용, 고기술)의 시작이다.

‘3고 시대’는 당시 대두된 위기의식의 발로였다. 유럽에선 할리우드 영화의 지배 현상을 우려해 수입 쿼터 제한이 강화됐고, 1950년대엔 TV라는 경쟁 매체의 등장으로 관객 이탈이 가속화한다. 1960년대엔 스튜디오 시스템마저 와해됨으로써 할리우드 경영난마저 심화되는데, 1966년 석유 재벌 걸프 앤 웨스턴의 파라마운트 매입이 분기점이다. 이 가운데 <죠스>는 할리우드 영화산업을 대작 위주로 탈바꿈한 촉매제가 된다. 주역은 제작사 유니버셜이었다. 이 회사가 선보인 <죠스>의 마케팅 전략은 실로 전설적이었는데, 이른바 ‘히트 앤 런’과 ‘끼워팔기’ ‘몰아치기’라는 3대 전략이 그것이었다. 개봉 전 상당량의 TV 광고를 퍼붓고, 향후 ‘굿즈’(티셔츠, 영화 책자, 사운드 트랙 앨범 등)로 명명될 영화 관련 기념품을 쏟아내는 등 천문학적 마케팅 비용을 감수한 것이다. 실제로 개봉일 전국 464개 스크린에서 동시 개봉한 <죠스>는 전례 없는 대흥행을 거두며 <스타워즈>와 함께 할리우드 영화 산업 지형도를 뒤흔든다.

 

<쉬리>가 몰고온 한국형 블록버스터 바람

한국형 블록버스터 시대는 이로부터 20여 년이 지나서야 도래했다. 1998년 박광춘 감독의 <퇴마록>이 분기점이다. ‘98년 8월, 한국형 블록버스터가 온다’ 라는 과장된 수사를 내건 포스터가 이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데, 정작 흥행에는 실패하고 만다. 심령과 주술 따위를 결합한 비(非)주류 장르물로서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퇴마록>이 희미한 미광에 그쳤다면, 이듬해 <쉬리>(감독 강제규·1999)는 한국형 블록버스터 바람을 몰고온 적자로 거명된다. <타이타닉>(1998) 성적을 누른 580만여 명을 모아 ‘한국도 할리우드 못지 않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은 것이다. 실제로 30억 원 제작비에 멜로드라마 문법에 가까웠던 <쉬리>는 할리우드에 비근한 스펙터클 연출에 성공한 예였다. 예컨대 대규모 관중이 모여든 잠실운동장에서 남북 한첩보원들이 벌이는 추격전,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발발한 집단 총격전이 그것이다. 기존에 할리우드나 홍콩 액션물에서나 볼 수 있던 광경이 한국 영화에서도 가능함을 보여준 경우다. <쉬리>가 등장한 20세기 끝은 천만영화 씨앗이 처음 뿌려진 시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씨앗은 584만 명을 모은 <공동경비구역 JSA>(감독 박찬욱·2000)를 지나 <실미도>(감독 강우석·2003)에서 마침내 첫 싹을 틔운다.

<실미도>는 1971년 박정희 군부정권 아래 발발한 ‘실미도 사건’을 극화한 영화였다. 총제작비가 110억 원이었으므로 본격적인 100억 원대 한국형 블록버스터라 해도 무방하다. 이듬해 두 번째 천만영화로 기록되는 <태극기 휘날리며>(감독 강제규·2004) 또한 당대 초유의 제작비 190억 원(순제작비에 마케팅 비용을 포함한 것)을 들였으니, 100억원대 한국 블록버스터 제작은 이미 이때부터 보편화했다고 볼 수 있다(물론 이들은 물리적으로 할리우드에 비할 바는 못 된다. 제작비는 10분의 1에 미달하며, 세계 시장이 아닌 내수 시장을 노린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 모두 남북 분단  소재화한 천만 영화였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전자가 강렬한 스펙터클을 좇으되, 해피엔딩 공식에 반하는 반(反)영웅담으로 모종의 변주를 감행한다면, 후자는 반공 이데올로기가 점유한 기성 전쟁물들과 얼마간 선을 긋는다. 애국주의에 바탕한 피아 이분법을 흐려 형제애와 가족주의에로 초점을 옮긴 것이다. 완성도 유무를 떠나 저마다 한국적인 블록버스터를 지향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부여할 수 있다.

ⓒ쇼박스

19편의 천만 영화, 이제는 세계로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로 천만 영화 시대가 개막한 이래 지금껏 총 19편의 한국 영화가 천만 관객을 만났다. <실미도>(2003) <태극기 휘날리며>(2004)에 이어 <왕의 남자>(2005) <괴물>(2006) <해운대>(2009) <도둑들>(2012)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7번방의 선물>(2013) <변호인>(2013) <명량>(2014) <국제시장>(2014) <베테랑>(2015) <암살> (2015) <부산행>(2016) <택시운전사>(2017) <신과함께1>(2017) <신과함께2>(2018) <극한직업>(2019) <기생충>(2019)까지다. 감독으로는 봉준호(2번), 윤제균 (2번), 최동훈(2번), 김용화(2번), 류승완(1번), 양우석(1번), 연상호(1번), 장훈(1번), 이병헌(1번), 추창민(1번), 이준익(1번), 김한민(1번), 이환경(1번), 강우석(1번), 강제규(1번)가 있다.

주목할 것은 천만 영화 거개가 당대 한국 사회의 표면과 조응했다는 사실이다. 영화가 텍스트 바깥을 이루는 콘텍스트와 접합할 때라야 대중은 폭발적 흥행세로 보답했다. 이를 테면 주한 미군이 불법으로 방류한 독극물이 현실 속 괴물을 배태한 <괴물>은 괴수의 특수효과를 일임한 미국 테크놀로지에서나 영화 내 괴수의 형상 자체에서나 미국적인 것의 징후를 직시케 했다. <변호인>이 죽은 노무현을 불러들여 민주주의 퇴행과 정의에의 가치를 부르짖었다면, 충무공 이순신을 소환해낸 <명량>은 진정한 권력자의 초상을 우리에게 다시금 물었다. <택시운전사>가 현재진행중인 5·18 광주 항쟁을 다루었고, <해운대>와 <부산행>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일상화한 재난적 풍광을 해일과 좀비떼 형상으로 구현해낸 것도 그러하다. 1대 99라는 ‘불평등 사회’의 초상을 권선징악극으로 풀어 속 시원한 쾌감을 유발했던 <베테랑>, 지상과 반지하·지하라는 세 층위로 계급 사회 부조리를 풀어낸 <기생충> 또한 마찬가지다(그 점에서 <신과함께 1·2>와 <극한직업> 등은 이러한 사회·정치·역사물에 대한 대중적 피로감을 순전한 장르 오락물로서 풀어준 경우라 하겠다.).

비교적 최근까지도 이들 중 상당수가 내수 시장에 머물렀다는 점도 눈여겨볼 일이다. 조선시대를 비롯한 한국 근현대사나 한국적 정치·사회 풍토를 소재화한 게 상당수였던 탓이다. 그러던 것이 차츰 해외 시장으로도 범위를 넓히는데, 계기는 좀비 블록버스터 <부산행>이었다. 2016년 칸영화제 비경쟁 부문(미드나잇 스크리닝 세션)에 초청된 이 영화는 당시 156개국으로 선판매되며, 이후 한국 영화의 모범적 수출 사례로 평가받는다. 이듬해 저승 판타지 소재 <신과함께 1·2> 역시 1·2편 동시 제작과 함께 103개국으로 선판매되면서, 베트남을 위시한 동남아 등지로 한국형 블록버스터 붐을 주도한다. 그리고 올해, 영화 <기생충>이 전 세계 192개국에 수출되면서 역다 최다 선판매 기록을 경신하게 된다.

 

이제는 ‘크기 집착’에서 벗어나야

이 같은 천만 영화 20년사(史)와 더불어 한국 영화 시장은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어냈다. 지난해 미국영화협회(MPAA)에 따르면 한국 영화 시장은 미국(북미·캐나다), 중국, 일본, 영국에 이어 5위다. 영화 본산지 프랑스보다 한 단계 더 높다. 영화진흥 위원회 집계 기준 지난해 누적 관객수는 2억 1639만 명을 기록했으며, 한국 영화 점유율은 50.9%로 과반, 매출액은 1조 8140억 원에 이른다. 한국 영화가 더는 제3세계 영화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물을 차례다. 한국 영화 100주 년을 맞은 올해, 여전히 천만 영화라는 ‘대물 집착’은 필요한가. 지금까지 천만 영화는 전적으로 대중에게 사랑받은 작품들의 집합인 것인가. 다시 말해, 개별 관객의 주체적 선택에 따른 결과물인가. 멀티플렉스 관람 문화가 보편화한 지금, 매해 1~2편 꼴로 나오는 천만 영화는 과거와 달리 어딘가 좀 미심쩍다. 비근한 예로 <기생충>이 있다. 이 영화는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에 이어 천만 관객까지 모은 전무후무한 경우다. 대중성과 작품성 모두 인정받은 한국 영화사(史) 기념비적인 작품이며 세계 영화사적으로도 전례가 없는 사례다. 그러나 이 영화 국내 개봉만을 염두에 둘 때, 얼마간 석연찮은 구석 또한 감지된다. 천만 돌파 과정이 자발적 수요의 산물로만은 보이지 않아서다. 흥행세 감소로 하루 관객 1만명을 밑돌 때조차 충분한 스크린을 긴 기간 확보할 수 있었던 건, 이 영화 배급·상영권을 쥔 대자본(CJ CGV와 CJ ENM 등)의 전사적 지원 없이는 설명하기 힘들다.

요컨대 1990년대 말 할리우드 모방 의지가 낳은 한국의 천만 영화 현상은 다분히 기형적이다. 시장 자체가 역(逆)피라미드 꼴에 가까워진 탓이다. 큰 영화는 많고, 작은 영화는 적어진 것인데, 실제로 지난해 한국 독립·예술영화 관객은 전년 대비 47.9%가 줄었다. 관객수로는 한국 영화 전체 관객의 12.8%인 110만 명이 전부였다(영화진흥위원회 2018 한국영화 결산 자료). 때문에 한국 영화 제작의 주체가 천만 영화에 대한 집착부터 내려놓는 것이 이제는 급선무인 것처럼 보인다. 중소규모 영화로도 얼마든 이윤을 낼 수 있는 산업 모델을 지향해야 한다는 소리다. 멀리 내다볼 것도 없을 것이다. 인구 구조상 국내 관객은 점점 더 줄어들 전망이고, 시장의 확장 가능성 또한 그만큼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앞으로의 한국 영화 100년을 내다본다면, 이것이 선택 아닌 필수여야 하는 이유다.

 

 

* 《쿨투라》 2019년 10월호(통권 6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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