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5회 서울독립영화제] 독립영화 50년, 서울대 얄라셩 40주년
[제45회 서울독립영화제] 독립영화 50년, 서울대 얄라셩 40주년
  • 설재원(본지 에디터)
  • 승인 2020.01.01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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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지리멸렬' 등 장단편 119편 상영

한 해 제작된 독립영화를 결산하는 제45회 서울독립영화제가 11월 28일 개막하여 12월 6일까지 CGV 아트하우스압구정과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개최된다. 지난해 수상작인 강상우 감독의 <김군>, 김보라 감독의 <벌새>를 비롯해 김동원 감독의 <송환>, 홍형숙 감독의 <경계도시>, 김일란·이혁상 감독의 <공동정범>, 신동석 감독의 <살아남은 아이> 등 독립영화 걸작들이 이 영화제를 통해 조명받았다.

개막작은 장률 감독의 <후쿠오카>
<벌새> 이을 다양한 독립영화 상영

개막사회로는 올해로 16년째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식에서 호흡을 맞춘 배우 권해효와 류시현이 함께한다. 개막작은 올해 베를린영화제 포럼 부문에 초청된 장률 감독의 <후쿠오카>가 코리아 프리미어로 상영된다. <이리>, <두만강>, <경주>,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등 특정 장소를 제목으로 한 영화들을 연출해온 장률 감독의 새로운 징후를 공간적으로 보여주는 <후쿠오카>는 후쿠오카국제영화제와 홍콩아시아영화제를 거쳐 서울독립영화제를 통해 국내에 처음으로 공개된다. 권해효·윤제문·박소담의 열연과 동북아시아의 역사적 지형도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작품으로 대학시절 연극 동아리의 절친이던 두 남자가 한 여자 때문에 절교한 후, 20여 년 만에 조우하며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한 해의 끝에서 한국영화를 결산하는 영화제답게 서울독립영화제는 그동안 국내 영화제들에서 주목받아온 빼어난 작품들을 선보인다.

1980년대와 1990년대 한국독립영화의 대표작이자 상징적 영화인 <오! 꿈의 나라>와 <닫힌 교문을 열며>가 30년 만에 다시 공개되며, <파업전야>와 <어머니, 당신의 아들>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관객들을 찾아간다.

경쟁부문에는 올해 부산영화제 3관왕을 차지한 김초희 감독의 <찬실이는 복도 많지>와 남녀 배우상 수상작인 <에듀케이션>, 서울독립영화제 대상을 받은 적 있는 박석영 감독의 <바람의 언덕> 등 11편이 상영된다.

경쟁부문 심사위원을 맡은 문소리 배우는 “영화제심사를 하면서 가장 즐거운 점은 올 한해의 주요한 영화들을 한꺼번에 다 볼 수 있는 것”이라며 “서울독립영화제가 독립영화 감독이 멋진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꽃길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면 좋겠다”고 밝혔다.

신인감독의 장편을 대상으로 한 ‘새로운 선택’에는 부산영화제 4관왕인 윤단비 감독의 <남매의 여름밤>과 전주영화제 수상작인 정승오 감독의 <이장>등 7편이 선정됐다. 초청작에는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관객상 수상작인 경순 감독의 <애국자게임2 - 지록위마>, 부산영화제 뉴커런츠 경쟁에 올랐던 임선애 감독의 <69세>, 박정범 감독의 <이 세상에 없는>, 신수원 감독의 <젊은이의 양지>, 부천영화제 관객상 수상작인 <어서오시게스트하우스>, 홍형숙 감독의 <준하의 행성> 등이 포함됐다.

최근 홍콩민주화시위와 맞물려 홍콩영화를 조명하는 특별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프루트 챈 감독의 <메이드 인 홍콩>으로 시작해 캐롤라이 감독의 <유리의 눈물>, 노리스 윙 이람 감독의 <프린스 에드워드역에서 : 내 오랜 남자친구에게> 등 10편이다.

또한 ‘바리터’의 30년을 기념하는 김소영 감독의 <겨울환상> <푸른 진혼곡> <작은 풀에도 이름이 있으니> 등 3편의 영화가 상영되는 것도 특별하다. 이 영화들은 1989년에 시작된 여성영화운동단체 바리터에서 제작된 작품으로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한편 한국영화 100년을 기념한 기획전은 국내 유명 영화인들의 청년시절에 초점을 맞췄다. 강릉국제영화제 김홍준 예술감독이 1976년에 만든 단편영화 <서울 7000>, 서울대 얄라셩 영화연구회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국풍>, 봉준호 감독의 1994년 단편영화 <지리멸렬>은 쉽게 보기 어려운 작품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김동현 집행위원장은 “지난해 독립영화제 상영작 중 김보라 감독의 <벌새>, 이옥섭 감독 <메기>, 한가람 감독 <아워바디>, 유은정 감독 <밤의 문이 열린다> 등이 의미 있는 성과들을 거두고 있는 것은 서울독립영화제가 새로운 가능성과 흐름을 이끌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라며, “한국영화가 100년이 된 올해는 독립영화도 50년을 맞이하고 서울대 얄라셩도 40주년이 된다. 독립영화 아카이브전을 통해 독립영화사를 조망할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

국풍 (얄라셩영화연구회, 1981)

<서울 7000>(1976)과 <국풍>(1981)

이처럼 서울대 얄라셩 40주년을 맞는 올해 서울독립영화제 기간에는 서울대학교 영화동아리 얄라셩의 초기 활동을 엿볼 수 있는 8mm 단편 2편이 디지털화되어 공개된다.

1979년 공과대학 재학생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이 동아리는 1980년에 본부동아리로 등록한 이래 다수의 단편영화를 제작하였고, 특히 이 동아리 출신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한 서울영화집단(1982~1986)은 1980년대 영화운동의 초기 역사를 기술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김홍준과 황주호가 공동연출한 <서울 7000>(1976)은 얄라셩 결성 이전 이들이 개인적으로 만든 작품이지만, 얄라셩의 첫 공식상영회(첫번째 영화마당,1980.11.7~ 8)에서 얄라셩의 첫 공동연출작인 <여럿 그리고 하나>(1980)와 함께 상영되기도 했던 작품이다.

전두환 정권이 기획한 관제행사인 ‘국풍 81’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국풍>(1981)은 서울영화집단의 창립작품인 <판놀이 아리랑>(1982)을 예견케 하는 인터뷰의 이접적(異接的) 활용이 눈에 띄는 작품이다.

<서울 7000>의 엔딩 크레딧에 기재된 정보를 따르자면 이 영화는 코다크롬 40(Kodachrome 40) 필름을 써서 엘모 108(Elmo 108) 8㎜ 카메라로 1976년11월에 서울에서 촬영되었다. “한 프레임씩 촬영되었으며 촬영 속도는 쇼트마다 다르게 조절”되었고,“이 영화의 제목에 붙은 숫자 7000은 타이틀을 제외한 모든 부분의 총 프레임 수”를 나타낸다는 점도 명기되어 있다.

<서울 7000>은 1976년 당시 서울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김홍준과 황주호가 공동으로 연출한 작품(김홍준 감독의 말을 빌리자면 독립영화라기보다는 ‘개인영화’)으로, 제3회 한국청소년영화제(1977년 6월 10일 하루 동안 영화진흥공사 시사실에서 개최)에서 기획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른바 일정한 시간 간격을 두고 프레임 단위로 촬영하는 ‘콤마 촬영’ 방식으로 서울 이곳저곳의 풍경을 기록했다 .

이 작품은, 밴드 시카고(Chicago)의 음악 <The Approaching Storm>이 배경으로 깔리는 가운데, 새벽이 지나 해가 떠오르고 다시 해가 진 뒤 밤이 되기까지의 시간적 추이를 따라 서울의 하루를 재구성한 ‘도시 교향악(city symphony)’의 형식을 띠고 있다 . 1980년대 영화운동의 모태가 된 서울대학교 영화동아리 얄라셩의 초기 멤버들이 이 동아리가 결성(1979년)되기 전에 개인적으로 만든 작품이지만, 1980년 11월 7일과 8일 양일간 진행된 얄라셩의 첫 공식 상영회(‘첫번째 영화마당’)에서 동아리의 첫 공동작품인 <여럿 그리고 하나>(1980)와 함께 상영되기도 했다. 그런데 급속도로 근대화된 서울이라는 도시의 리듬을 포착하는 데 주력하고 있는 <서울 7000>은 얄라셩과 이 동아리 회원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한 서울영화집단(1982~1986)에서 제작된 작품들보다는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에 걸쳐 제작된 몇몇 개인적이고 실험적인 작품들에 보다 가까이 있는 영화처럼 보인다.

이를테면 한국 최초의 실험영화라 할 수 있는 김구림의 <24분의 1초의 의미>(1969)나 이화여대 출신의 여성 영화인들이 결성한 실험영화 제작집단인 카이두 클럽(Kaidu Club)을 이끌었던 한옥희의 <구멍>(1974)과 같은 작품을 감싸고 있는 도회적 감수성은 <서울 7000>에서도 분명히 감지된다 .차이가 있다면 도시의 리듬을 수용하는 한편 굴절시키는 매개자로서의 주체, 즉 권태에 빠져 있거나 소외된 도회적 주체의 형상 - 유현목의 <오발탄>(1961) 이래 한국영화에 깊숙이 스며든 - 이 <서울 7000>에는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 이 작품이 1970년대 중반 서울의 풍경을 담은 생생한 스케치로 남을수 있었던 것은 그 때문이다.

1990년대에 두 편의 장편극영화를 만들었던 김홍준 감독은 21세기 들어 <나의 한국영화> 연작(2002~2006) 및 <가루지기 리덕스>(2008) 등의 개인적인 작품들을 내놓은 바 있는데, 이러한 작품들에서 뚜렷이 엿보이는 에세이적 성향이 그에게 새삼스러운 것이 아님을 <서울 7000>은 깨닫게 한다.

서울 7000 (김홍준& 황주호, 1976)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폭력적으로 진압하고 나서 1년 후, 전두환을 필두로 한 신군부는 ‘전국대학생민속국학큰잔치’라는 주제를 내걸고 대학생과 일반인을 대거 동원한 관제행사인 ‘국풍 81’을 개최한다. 한국신문협회가 주최하고 한국방송공사가 주관한 이 행사는 1981년 5월 28일부터 6월 1일까지 여의도광장에서 진행되었다. 이는 당시 대학가를 중심으로 저항적 대항문화의 일환으로 전개되었던 활동들을 체제 내에 포섭하고자 하는 기획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비판적 관점에서 이 행사를 기록, 재구성한 다큐멘터리 <국풍>은 1979년에 창립되어 올해로 40주년을 맞는 서울대학교 영화동아리 얄라셩의 초기활동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학생들(홍기선, 김동빈 등)에 의해 창립되어 1980년에 정식으로 동아리로 등록해 활동하기 시작한 얄라셩은, 이 동아리 출신 위주로 구성된 서울영화집단(1982~1986)과 더불어 1980년대 독립영화운동에 모델을 제시한 그룹으로 간주되곤 한다. <칠수와 만수>(1988, 박광수), <장미빛 인생>(1994,김홍준), <넘버 3>(1997, 송능한) 등 1980~90년대에 새로운 감수성의 한국영화를 내놓으며 충무로에서데뷔한 감독들이 얄라셩과 서울영화집단에서 활동했다는 것도 잘 알려져 있다 .

<국풍>은 여의도광장에서 5일간 열린 행사의 이모저모를 8mm 카메라로 기록한 영상들을 편집해 만든 작품이다. 하지만 이 작품의 의의는 그간의 공식적인 기록물들과는 상당히 다른 시각으로 ‘국풍81’을 담아낸 희귀한 영상자료라는 데만 있지 않다. <국풍>은 얄라셩과 서울영화집단에서 제작된 영화들의 방법론적 연관을 가늠케 한다는 점에서도 비평가들과 연구자들의 주목을 끌 만하다.

<국풍>의 사운드트랙은 행사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을 인터뷰해 녹음한 자료 및 당대에 인기를 끈 음악들로 구성되어 있다. 서울영화집단의 창립작품에 해당하는 다큐멘터리 <판놀이 아리랑>(1982)은 공연의 준비 및 실행 과정을 담은 영상과 얼마간 거리를 두고있는 사운드트랙(관객들의 소감 및 제작진의 토론)의 활용이 흥미로운 작품으로, <국풍>은 이러한 방법론이 이미 얄라셩 시기부터 실험되고 있었음을 짐작케한다. 제작 여건상 적절한 동시녹음 장비나 녹음실을 활용할 수 없었다는 점이 오히려 창조적으로 대안적 방법론을 모색하게 한 사례라고 할 만하다 .<국풍> 제작 당시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한 인터뷰의 질이 너무 나빠 인터뷰 녹취본을 토대로 얄라셩 회원들의 목소리로 다시 녹음한 것을 활용하기도 했는데, 이것이 윤리적으로 타당한가의 여부를 두고 내부 논쟁도 있었다고 한다.

한편, 송골매의 <세상만사>, 김태곤의 <뱃노래>,그리고 <국풍>을 제작해인 1981년에 잠시 국제적인 인기를 누렸던 프로젝트 메들리 그룹 스타스온45의 <Stars on 45>에서 발췌한 음악은 서울영화집단의 워크숍 작품 가운데 하나인 문원립의 <대결>(1982)에서도 사용되었다. 이는 당대의 문화적 풍경을 가늠케 하는 지표의 기능은 물론 내레이션을 대신한 논평적 기능을 감당하였다고도 볼 수 있다.

 

배우 프로젝트 - 60초 독백 페스티벌

권해효 배우의 제안으로 지난해 처음 시작돼 호평을 받은 배우발굴프로젝트는 올해도 이어진다. 서울독립영화제의 ‘배우 프로젝트 - 60초 독백 페스티벌’을 기획한 배우 권해효는 올해 행사에 대해 “독백 페스티벌을 통해 새롭게 진입하는 배우들을 응원하고 오래 버티고 배우로 살아가는 일에 대해 말하고싶다”고 전하며 “올해부터 조우진 배우가 함께 진행하며, 감독과 배우들이 만날 수 있는 접점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 영화에서 독립영화가 지니는 의미에 대해서도 덧붙였다. 현재 한국영화계에는 여성 영화인 들의 약진이 눈에 띄는데 이러한 변화는 독립영화계에서는 10여 년 전부터 꾸준히 일어나고 있는 변화였으며 이는 독립영화를 통해 한국 영화의 내일을 볼 수 있는 반증이라 말했다. 독백 페스티벌을 시발점 삼아 독립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는 조우진은 “무명이었을 때나 지금이나 배우로서 크게 달라진 것은 없으며 여전히 계속 노력하고 꿈꾸며 길을 가고 있다.”고 말했다.

독립영화계의 신진 배우를 발굴하고 활동을 독려하고자 기획된 ‘배우 프로젝트 - 60초 독백 페스티벌’ 본선 심사는 11월 28일 개막한 제45회 서울독립영화제 기간 중 진행되었다.

배우 권해효와 조우진이 함께하는 ‘배우 프로젝트 -60초 독백 페스티벌’을 비롯하여 한국영상자료원과 공동 주최하는 아카이브 특별전, 홍콩아시안영화제와 공동기획한 해외 프로그램 등 다양한 2019년 한국독립영화의 결과를 만날 수 있는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벌새>를 이을 작품을 한번 기대해보는 것은 어떨까?

 

 

* 《쿨투라》 2019년 12월호(통권 6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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