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아트] 붓 끝에 맺혀진 검은 이슬 Calligrapher 박지영을 만나다
[K-아트] 붓 끝에 맺혀진 검은 이슬 Calligrapher 박지영을 만나다
  • 김준철(시인, 본지 미주 지사장)
  • 승인 2020.02.06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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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그라피(Calligraphy)는 아름다움을 뜻하는 Kallos와 쓰다는 의미의 Graphe의 합성어로 손으로 그린 그림문자라고 풀이하거나 아름답게 쓰는 글을 나타낸다고 한다.

물론 동양의 서예를 영어로 표현할 때도 쓰이는 말이지만 사실상 그 느낌이나 형태에서는 차이를 보인다고 할 수 있다.

현대에서 와서 캘리그라피는 단순한 글쓰기의 영역이나 예술적인 영역을 넘어서 대상의 의미를 함축하거나 표현하는 기법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보이지 않는 감정이나 생각을 형상화한다는데 의미를 두고 있다. 또한 그 자체를 디자인으로 하여 수많은 상업적 광고로도 이용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도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글씨에 생각을 담아서 보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매혹적인 작업이라고 생각해 왔다.

지난 12월 3일부터 3주간 LA에 위치한 문화원에서 흥미로운 워크숍을 열었다. 그것은 바로 캘리그라피 워크숍이다. 이 행사를 기획한 캘리그라퍼 박지영 작가를 만났다.

그녀는 오랫동안 한국에서 캘리그라퍼로 활동했고 얼마 전까지 목동에서 개인 작업실 겸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리고 2년 전에 제너럴매니저로 LA 문화원에 와서 새로운 삶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문화원 업무에, 이번 행사 준비로 많이 바쁘실 텐데 이렇게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시니 제가 더 감사하죠.

 우선 이번 행사에 대해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제가 개인적으로 미국에 와서 만나고 활동하고 교류하는 분들과의 만남 속에서 영감을 얻게 되었습니다. 다채로운 문화예술들이 섞여서 다름의 새로운 색깔을 가지고 어울리는 것을 보고 또 그 안에서 즐기면서 제가 가진 재주로 이런 것을 우리 한인사회 안에서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렇군요. 저 역시 행사의 작은 부분을 맡게 되어서 굉장히 즐겁고 감사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공연과 음악, 문학, 캘리그라피 등이 어우러져서 상당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은데요. 어떠셨습니까?

 맞습니다. 라이브 공연과 문학과의 만남, 그리고 캘리그라피로 이어지는 순서, 그리고 풍족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간단한 식사와 다과를 제공해 드렸죠. 처음 시작을 제가 좋아하는 박목월 시인의 작품으로 했지요. 외손자인 김준철 선생님의 해설을 들으며 그의 작품 일부를 미국인들과 함께 쓰고 만들어 나간 것이 정말 흐뭇한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의미 있는 자리에 불러주셔서 제가 더욱 감사합니다. 저는 이번 워크숍에서 외국인들에게 한글로 쓰게 하고 또 가르친다는 것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네, 조금 더 자연스럽게 문화와 문화를 이질감 없이 연결하려는 시도였는데 좋았던 것 같아요.

또한 생각보다 참여한 외국 분들이 붓글씨나 한글을 처음 쓰고 접함에도 상당히 잘 써서 놀랐습니다. 일반적으로 젓가락질 하는 것을 보면 상당히 서툴고 어색하게 보이는데, 이번 행사에서 보이는 외국인들의 모습은 의외로 상당히 익숙하고 스스럼없이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 같아 놀라웠습니다.

 맞아요. 저 역시 상당히 놀랐어요. 아마도 그만큼 우리 문화가, 혹은 여러 문화를 대하는 사람들의 의식이 열려져 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또한 평일 저녁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멀리서 참여하러 오는 이들을 보면서 너무 감사하고 놀라웠어요. 특별한 홍보 없이 문화원 인스타그램 공지만으로 5시간 만에 자리가 다 채워졌으니까요.

선생님 말처럼 타인종사이의 문화에 대한 적응력이 어느새 상당히 올라왔다고 볼 수 있겠네요. 또한 캘리그라피라는 분야 자체가 상당히 흥미로운 것 같습니다. 글씨이면서 그림이고 또 그 내용은 문학이고, 여러 예술이 잘 섞여서 누구에게나 쉽게 나가갈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내는 것 같습니다.

 작은 엽서 한 장 만으로도 가장 짧은 시간에 예술적 영감이나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예술은 아마 캘리그라피가 가장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죠.

캘리그라피는 언제 처음 접하시고 또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초등학교 때, 붓글씨를 접했죠. 그때 책에 나온 전통 붓글씨로 ‘부모사랑’이라는 글씨를 접했어요. 그때 선명하게 갈리는 흑백의 조화가 어린 저에게는 상당히 매력적이고 강렬했던 것 같아요.

보통 아이들이라면 화려한 쪽에 더 끌리지 않나요? 간결함이 본능적으로 끌리신 것이라면 역시 캘리그라퍼가 되어야 하는 운명적 만남이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하하하… 그렇게까지 생각할 것은 아니겠지만 결론적으로 지금까지 하고 있는 것을 보면 틀린 말씀은 아닌 것 같네요. 그렇게 관심을 가지게 된 차에 우연히 제 담임선생님이 서예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김정수 서예가님이었는데 그 분을 졸라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사사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럼 전통 서예로 입문을 하신 것 같은데요. 캘리그라피를 쓰시게 된 것은 또 다른 계기가 있을까요?

 글쎄요. 그 이후 쭉 글씨를 써 왔고요, 20살부터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당시 종교와 철학에 깊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 이유로 신학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계기로 선교 여행을 시작하며 외국으로 여행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주로 중서부 유럽을 다녔고 길거리에서 글씨를 쓰고 팔면서 선교와 여행을 병행하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다른 문화를 접하고 경험하며 어느 순간 자연스레 글씨체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나비체, 어른체, 꽃잎체가 만들어졌죠.

아! 그럼 이 3가지 글씨체는 선생님이 만드신 거군요. 그럼 딱히 어떤 계기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캘리그라퍼로 성장을 하신 거네요. 그럼 캘리그라퍼작가로 활동을 제대로 시작한 것은 언제쯤이었죠?

 그렇게 긴 여행으로 방황하던 2000년 초반, 한국에도 캘리그러피라는 개념이 유입되기 시작했어요. 당시 저는 인사동에서 여전히 길거리 작가로 글씨를 쓰고 있었는데 YG엔터테인먼트 아트디렉터로부터 지누션 앨범 커버 제작 의뢰가 들어오게 된 거죠.

그게 제대로 된 상업적 예술로의 제대로 된 첫발이었겠네요.

 네, 그런 것 같아요. 그 이후 서울모터쇼에서 벤츠(Benz)와 콜라보 작업도 했습니다. 그때 주제는 ‘The Best in my life’로, 그것은 참여한 일반인들의 행복한 순간을 듣고 그 한 부분을 제가 글씨로 써주는 행사였는데 굉장히 의미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네요. 말만 들어도 선생님 글씨로 자신들의 행복한 순간을 받아든 사람들의 흐뭇한 기분이 느껴지는 것 같네요. 그럼 이 작업이 가장 인상 깊고 의미 있는 활동이었나요?

 물론, 모든 작업이 나름의 의미와 성취감을 전해주는데요. 특별히 제 활동 자체의 스케일을 넓혀주었던 Tom Bueschemann을 잊을 수 없습니다. Platoon Kunsthalle의 대표이기도 했던 그는 독일, 멕시코, 미국, 한국의 다양한 아티스트들을 모아 행사를 만들었었어요. 다양한 그의 인맥과 수준 높은 안목은 저에게 새로운 시야를 열게 해 준 아주 귀한 만남이었습니다.

예술을 하는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인연을 만나신 것 같네요. 자, 그럼 이제 미국으로 넘어오죠. 어떻게 미국으로 오게 되었죠? 제가 듣기에는 한국에서 그래도 상당히 작가로서도 안정적으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는 시기였던 것 같은데요. 또 어떻게 미국이라는 곳을 선택하게 되었죠?

 일단 한국에서의 삶은 사실 제가 100을 생각하면 100이 이루어지는 삶이었어요. 그렇게 지내다보니 새로운 도전, 시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어느 순간에 침잠해 들어가는 저를 발견하게 된 거죠.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삶의 터전을 옮겨서 다시 제 일을 시작해보고 싶어졌어요. 미국 LA가 캘리그라피의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고요. 또 더 나이 들기 전에 하고 싶었어요.

어찌 보면 생각보다 이미 늦은 나이에 시도하신 것 같은데요.

 하하하...그렇죠. 더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었어요.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용기가 인상적이네요. 그럼 이제 그렇게 2년 남짓의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요. 어떠세요? 하고 싶었던 삶인가요?

 일단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이곳에서의 삶은 100에서 100이 이루어지진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 가늠되지 않는 변수의 매력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미국에서 알게 된 몇몇 소그룹과의 인연으로 정기적으로 다양한 분야의 다국적 아티스트들과 교류하고 영감을 얻고 정보를 교환하고 있습니다. 이 그룹들은 특별하게도 아주 독창적이고 창조적이며 자유롭고 에너지가 넘치는 분들입니다. 그들로 인해 미국에서 버티는 힘을 얻고 새로운 계획을 꿈꾸게 되는 것 같아요. 물론 감사하게도 문화원이라는 특수성이 주는 혜택으로 이곳에서도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는 것도 행운인 것 같습니다.

이제 2020년 경자년 새해입니다. 어떤 계획이 있으십니까?

 2019년 실험적으로 기획한 캘리그라피 워크숍이 참석자들과 함께 진행했던 스탭들로부터 생각보다 훨씬 뜨거운 반응과 긍정적인 피드백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능한 빨리 재정비해서 제 글씨체 하나하나를 가지고 시리즈로 최소 4주 과정으로 길게 진행하려고 합니다.

이 워크숍에 의미를 담는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특별히 거창한 의미를 두려고 하진 않아요. 단지 참여하는 사람들이 재미를 느끼고 그것으로 흥미를 얻고 새로운 문화를 즐길 수 있었으면 합니다.

2020년 새해에 개인적 바람이나 계획이 있으시다면?

 내가 하는 일에 즐거움을 느끼며 계속 하길 바라죠. 또한 2020년 말 정도에는 개인전을 열려고 준비 중입니다.

바쁜 중에 시간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0년에는 더 근사한 행사를 기획해주시길 부탁드리고 또 그 중에 저와도 좋은 작업을 함께 할 수 있기를 기대하겠습니다.

 저도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지영. 그녀는 굉장히 연약하게 보인다. 처음 그녀를 문화원에서 만났을 때의 기억이 난다. 민족시인 기념 시낭송회였던 것 같다. 이리저리 행사 진행을 위해 뛰어다니던 그녀. 그리고 그녀가 캘리그라피 작가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녀의 작업 영상을 보고 또 글씨 쓰는 모습을 직접 보면서 일상에서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카리스마를 느낄 수 있었다.

쉬지 않고 자신의 길을, 뿌리를, 옮기며 발전하고 변형하고 적응하고 계발해내는 박지영 작가의 모습이 왜소한 그녀의 모습과 달리 든든하게 보인다.

그녀의 몸을 따라, 붓을 통해 세상으로 번지는 그녀의 소리가 들린다.

 

 

* 《쿨투라》 2020년 1월호(통권 6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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