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Theme] 청춘의 얼굴은 조인성에서 김도환으로 흐른다
[3월 Theme] 청춘의 얼굴은 조인성에서 김도환으로 흐른다
  • 김민정(드라마평론가, 중앙대 교수)
  • 승인 2020.02.28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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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수능을 앞둔 십 대 시절, 독서실을 같이 다닌 친구 중에 인터넷에서 드라마 대본을 구해다 읽는 애가 있었다. 드라마는 보고 싶지만 시간을 아껴 공부해야 한다며 출력한 대본을 작은 독서실 의자에 앉아 공부하듯 집중해 읽었다. 이름도 잊어버린 지 오래인 그 친구는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여전히 드라마를 좋아할까. 지금은 ‘에헴’하고 어른 흉내 내고 있을 옛 친구의 재미난 학창 시절을 떠올리면 가슴 한구석이 따뜻해진다. 누구나 순수하던 시절이 있었지, 하는 생각에.

 지난 이십여 년 동안 ‘청춘’ 드라마가 지나간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일은 ‘어쩌다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를 향한 뜨거운 포옹이 되지 않을까 싶다.

 

청춘의 풍경화 – 시트콤 <논스톱>(2000~2005)

 2000년대 초반 1020세대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가 있다. ‘문화대학교’라는 가상의 학교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대학생들의 캠퍼스 라이프를 다룬 청춘 시트콤, 바로 <논스톱>이다. 조인성, 장나라, 박경림, 장근석, 한예슬, 현빈, 이승기, 한효주 등 많은 배우가 <논스톱>을 통해 청춘스타로 자리매김하였다. 특히 조인성과 박경림은 ‘성림커플’이라는 애칭과 함께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극중 조인성은 ‘조인성’으로 뭇 여성들의 관심을 받는 “킹카”였고 박경림 역시 본명 그대로 ‘박경림’인데 수십 개의 알바를 전전하는 “얼굴이 네모난” 고학생이었다. 두 사람의 연애는 현실에선 일어나기 힘든 일이기에 오히려 시청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언제까지 기다릴게”라고 말하는 조인성의 사랑스러운 눈빛 앞에서 무장해제되는 건 비단 ‘네모 공주’ 경림만이 아니었다.

 당시 <논스톱>의 ‘조인성’은 1020세대가 꿈꾸는 멋진 ‘로맨스’인 동시에 청춘의 ‘판타지’였다. 로맨티시스트인 그에게 스펙 쌓기나 학점 관리와 같은 구질구질한 일들은 어울리지 않았다. 다른 인물들도 마찬가지였다. <논스톱> 속 대학생들은 그들만의 슬픔과 아픔이 있지만 모든 고민은 청춘이란 이름으로 아름답게 포장되었다.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수시로 삽입되던 시트콤 특유의 형식도 청춘의 낭만에 한몫했다. 마치 어린아이의 꿈을 지켜주는 어른의 마음으로 드라마 속 청춘의 얼굴은 언제나 밝고 순수했으며 세상은 희망과 재미난 일로 가득했다. 나라를 뒤흔들었던 IMF 외환위기의 그늘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논스톱>을 보고 잔뜩 기대하고 대학에 입학했다가 실망했다는 사람들의 피해사례가 속출했는데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멀리 보아 아름다운 것, 그것이 바로 <논스톱>이 그려낸 ‘청춘의 풍경화’였다.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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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춘의 초상화
– 시즌제 드라마 <청춘시대> (2016~2017)

 쉐어하우스 ‘벨 에포크’에 모여 사는 다섯 명 여대생들의 캠퍼스 라이프를 다룬 드라마 <청춘시대>는 그동안 우리가 외면해왔던 청춘의 민낯을 조심스레 들춰낸다. 훈남 선배와 첫 연애를 시작한 ‘은재’는 상대방의 변심으로 갑작스럽게 ‘첫 실연’을 경험하고, 물심양면으로 헌신적인 사랑을 한 ‘예은’은 전 남친에게 납치·감금되어 데이트 폭력을 당한다.

 낭만적 사랑이 거칠게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지극히 현실적인 얼굴의 사랑이 차지한다. ‘지원’은 대학 학보사 동기 ‘성민’과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계속 맴돌지만 끝내 연인이 되지 못하고, 취업에 성공한 고학생 ‘진명’은 우여곡절 끝에 연인이 된 고졸 쉐프 ‘재완’이 이직 하는 바람에 장거리 연애를 시작한다. 시즌2에 새롭게 등장한 ‘조은’은 지방대 출신에 키 작은 ‘장훈’과 어렵게 마음을 나누지만 그의 군입대로 다시 혼자가 된다.

 다섯 명의 초상화로 자세히 들여다본 <청춘시대> 속 대학생들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다. 사랑이 있는 곳에 이별도 있다. 희망을 품기에는 부담스럽고 절망하기에는 미련이 남는다. 삶이란 매회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시트콤이 아니라 끝날 듯 끝나지 않은 긴 호흡의 시즌제 드라마와 같은 것. “굼벵이는 매미가 되기 위해 사는 걸까.” 굼벵이는 매미가 되어 세상에 나오기 위해 땅속에서 칠 년이란 세월을 인내하는 것이 아니다. 칠 년은 굼벵이에게 일상이고 청춘이며 세상 밖 일주일은 인생의 노년일 뿐이다. “굼벵이 시절이 더 행복할지 모르잖아.” 희망과 절망 사이 평범한 행복, 그것이 <청춘시대>가 그린 ‘청춘의 초상화’다.

 

청춘의 자화상
– 웹드라마 <좀 예민해도 괜찮아> (2018~2019)

 우리가 생각하는 청춘의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건 아닐까. 시즌 통합 누적 조회수 7000만 뷰를 기록한 ‘레전드’ 웹드라마 <좀 예민해도 괜찮아>(이하 <좀 예민해도>)는 총 두 시간 남짓이면 시즌 1을 다 볼 수 있다. 조금 덜 여유롭고 조금 더 각박한 현실 앞에서 청춘들은 이제 따뜻한 위로보다는 현실적인 조언을 갈망한다. 매회 십 분 남짓한 분량의 <좀 예민해도>는 대학 새내기가 겪을 수 있는 젠더 이슈를 다루면서 고민 상담해주듯 실질적인 대처법을 알려준다. 이때 웹드라마 특유의 자막은 큰 몫을 해내는데, 여자 새내기에게 불쾌한 스킨쉽을 시도하는 남자 선배 에에피소드의 경우 “이상하다고 느꼈으면 그건 이상한 사람 맞습니다”라고 촌철살인을 날린다.

 극중 여자주인공 ‘신혜’는 젠더 사건을 겪으며 “올바른 페미니스트”로 성장하는 20살 새내기다. 그 옆에는 그런 그녀를 “완전 멋있어. 사랑해.”라고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남자친구 ‘도환’이 있다. 동기 단톡방의 음담패설을 묵인하던 그는 여자친구와의 여행을 앞두고 “합의하지 않은 관계는 강간”이라며 남자 동기의 잘못된 언행을 지적하는, “인권에 대해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항의”할 줄 아는 ‘페미니스트’로 변화한다.

 <좀 예민해도> 속 대학생들은 스스로 성찰하고 성장하는, 이상적인 청춘의 얼굴을 가진다. 그것은 타인의 도움으로 완성된 것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태도로 직접 그린 ‘청춘의 자화상’이다. “아주 큰 변화도 누군가의 작은 용기로부터 시작된다고. 그러니까 함께 바꿔나가자.” 성희롱을 일삼는 남자 교수에게 계속 당하기만 하다가 하나둘씩 어렵게 뜻을 모아 수업을 거부하며 사회변화를 향한 강력한 의지를 표현하는 드라마 속 대학생들의 모습은 ‘스낵컬쳐’라고 가볍게 여겼지만 다 보고 나서는 묵직한 여운이 남는 웹드라마 <좀 예민해도>와 많이 닮았다.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스스로 변하니까 청춘이다.

 

 

* 《쿨투라》 2020년 3월호(통권 6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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