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Theme] '비포 시리즈', 봉인된 시간을 다시금 불러들인다는 것
[3월 Theme] '비포 시리즈', 봉인된 시간을 다시금 불러들인다는 것
  • 김시균(매일경제 기자)
  • 승인 2020.02.28 16: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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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 무엇보다 시간에 대해 모른다."
-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청춘靑春, 만물이 소생하는 봄. 유한한 생의 호시절을 빗대 우리는 청춘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솔로몬 반지에 씌어 있었다는 문구처럼 “모든 것은 지나가”는 법. 청춘은 한철이고, 시간은 흘러간다. 그것도 유구히.

 타르코프스키는 이 같은 현실에 의문을 제기한 감독이었다. 그는 시간이 선형적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뻗어가는 것만이 시간의 본질인지를 일평생 질문한 이유다. 이에 대한 그의 답은 물론 “아니다”였고, 총 일곱 편에 이르는 영화를 빚어내는 것으로 그는 시간성의 실체를 재사유한다. 과거에서 현재로, 미래로 나아가는 영화 속 시간을 뒤집고 섞고 정제하면서 ‘시간의 조각’들을 가시화可視化한 것이다. 이른바 ‘봉인된 시간’이다.

 <이반의 어린 시절>(1962)과 관련해 그는 이처럼 쓴 바 있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고들 말한다. 이 주장을 ‘과거를 되돌릴 수는 없다’라는 의미로 본다면 옳다. 그러나 이 ‘과거’란 정확히 무엇인가? 지나간 것이란 과연 무엇인가? … (중략)… 어떤 의미에서 볼 때 과거는 현재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고, 최소한 훨씬 더 견고하고 훨씬 더 지속적이다.”

 살다 보면 지나가버린 시간들이 불현듯 감지되는 순간이 있다. 한바탕 섬광이 일듯, 뇌리로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그것은 마치 이제 더는 돌아갈 수 없는 생의 한철이 나에게도 있었다는, 때늦은 자각 같은 것이다. 그래서 아련하고, 그래서 더 그립다. 특히나 그것이 청춘의 어느 한 순간에 관한 것이었다면 더욱이.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영화는 이 정복할 수 없는 시간을 정복한다. 그러나 타르코프스키와는 엄연히 다른 방식이다. 그는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있는 그대로 내버려둔다. 현재가 과거로, 과거가 현재로 넘나드는 초超시간적 실험은 없다. 환영과 환각, 시공간적 전치 또한 나타나지 않는다. 그저 선형적으로, 앞으로 쭉 나아가는 시간만이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이것이 진부하지 않은 것은 영화 속 시간과 현실 속 시간이 최대한 동기화同期化되기 때문이다. 그럴 때 그의 영화는 비로소 비범해진다.

ⓒ(주)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주)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이 모두 <비포> 시리즈 이야기다. 9년이라는 시간적 간극을 두고 만들어진 이 3부작은 <보이 후드>(2014)와 함께 링클레이터 영화의 어떤 정수로 손꼽힌다. 나이 스물 셋(<비포 선라이즈>(1995)의 푸릇하던 제시(에단 호크)와 셀린(줄리 델피)은 30대 초반(<비포 선셋>(2004))을 지나 40대(<비포 미드나잇>(2013)) 중년에 이르는 시간의 터널을 나란히 관통해 간다.

 세 편에서 마주하는 건, 그리하여 각자의 캐릭터와 함께 늙어가는 두 배우의 존재 자체다. 18년 세월의 흔적이라 할 ‘늙어감’이 인물의 표면 곳곳으로 오롯이 아로 새겨진다.

 <비포 선셋>의 첫 신은 파리의 한 책방. 제시의 도서 출간 기념회가 끝난 직후 그와 셀린은 드디어 해후邂逅한다. 셀린이 제시의 출간 소식을 듣고 먼저 찾아온 것이다. 어언 9년 만으로, 여기서 확인되는 건 ‘6개월 후’ 같은 날 같은 장소(비엔나 기차역)에서 만나자던 약속이 미처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제시는 약속을 지켰으나 셀린은 그러질 못했다. 그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녀 고백에 따르면 할머니 장례식과 약속 날짜가 겹쳤던 탓이다. 모쪼록, 둘은 그렇게 9년 전 그날처럼 파리의 골목을 거닐다 어느 한 카페로 들어간다. 대화가 이어진다.

ⓒTHE픽쳐스
ⓒTHE픽쳐스

 “비엔나에서 만난 게 9년 전이야.”(제시) “9년이나? 벌써?”(셀린) “두어 달 전 같지? 94년이었어.”(제시) “나 좀 변했어? 변했지?”(셀린) “벗은 몸을 봐야 알지.”(제시) “뭐라고?”(셀린) “미안, 머리 스타일이 달라졌네. 풀어봐.”(제시) “그땐 풀었었지. 자, 어때? 말해봐, 많이 변했어?”(셀린) “얼굴이 좀 마른 것 같아.”(제시) “전엔 나, 살쪘었어?”(셀린) “아니.”(제시) “전엔 살쪘다고 생각했구나? 날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어?”(셀린) “아니야, 자긴 언제나 아름다워… 난 변했어?”(제시) “아니, 전혀. 주름은 좀 있네….”(셀린)

 타르코프스키는 있는 그대로의 시간을 피사체로 드러내는 데 진력한 감독이었다. 색감이 변해가는 나뭇잎, 철문 구석구석 번져가는 불그스름한 녹, 낡은 건물 벽면으로 스민 얼룩과 떼…. 이렇듯 변해가는 물질적 상태를 그는 지루하다 싶을 만큼 오래 응시했는데, 그래야 시간의 ‘조각’(본질)이 제 모습을 드러낸다고 본 것이었다. 이것은 벤야민이 보를레르에 관한 시론에서 쓴 다음 대목과도 그대로 공명한다.

 “시간이 물화物化된다. 1분 1분이 눈송이처럼 사람을 덮는다.”

 링클레이터 또한 타르코프스키처럼 1분 1분이 눈송이처럼 사람을 덮어가는 사태를 실험한다. 하지만 전략은 상이하다. 시간의 변화를 배우들 육체에 그대로 새김으로써 명징히 감각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육화肉化된 시간’이다.

 앞선 신으로 돌아가자. 숏-리버스숏으로 담은 이들의 얼굴 구석구석을 관찰해보자(<비포 선라이즈>를 보지 않고 <비포 선셋>을 봤다라면 영화 첫 시퀀스를 상기하면 될 것이다. 제시가 책방에서 제 과거를 회고하는 플래시백에서 <비포 선라이즈>의 몇몇 숏이 재생된다).

 매끈하던 제시의 이마 곳곳엔 움푹한 주름이 일직선으로 패어져 있다. 피부는 보다 거칠어졌고, 붉은색을 띄던 수염(9년 전 셀린이 반한 바로 그 수염)은 갈색에 조금 더 가까워졌다. 셀린은 한층 더 야위어진 기색이다. 볼살은 들어갔고 미간 사이 주름도 은근히 엿보인다.

ⓒTHE픽쳐스
ⓒTHE픽쳐스

 두 남녀의 ‘늙어감’은 <비포 미드나잇>에 이르면 한층 더 뚜렷해진다. 서로를 향한 사랑을 재확인한 <비포 선셋>의 예의 그 가슴 설레는 마지막 신을 지난 9년 후, 이제 둘은 40대 중년이 되어 있다. 처음 만났을 때의 푸르름은 어느새 온데간데없다. 30대 특유의 멋도, 긍지도 얼마간 바래어졌다.

 이렇듯 배우의 몸으로 육화한 시간들을 영화로써 감각한다는 것은 매우 희귀한 경험이다. 링클레이터는 이와 동시에, 저마다의 가슴 한 켠으로 어떤 말 못할 파문 하나씩을 만들어 놓는다. 이것은 아련함일수도 있고, 그리움일 수도 있고, 슬픔일 수도, 그 무엇일 수도 있다.

 <비포> 시리즈는 시간을 다루지만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진 않는 영화다. 그저 순응할 뿐이다. 일출(선라이즈)에서 황혼(선셋)으로, 황혼에서 자정(미드나잇)으로, 총 3부 287분에 걸쳐 앞으로 쭉 나아간다. 하지만 이 모두를 본 우리는 은연중 바랄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된다. <박하사탕>(2000)의 영호가 외치듯 “나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까멜리아이엔티
ⓒ㈜까멜리아이엔티

 왜일까? 그립기 때문이다. 아름답던 그 시절이 그리워서다. 무구했던 그 순간이 그립고, 온 세상 무지갯빛 같던 그 시간이 그리워져서다. 그러나 한 번 빠져나간 모래알은 다시금 손아귀로 움켜쥘 수 없는 것이다. 시간의 순리란 그런 것이다.

 그런데, 기적이 빚어진다. 마치 마술을 부린듯, 빛바랜 이미지들이 점점 더 선명해진다. 희미해진 시간의 조각들이 진정한 상狀이 되어 하나 둘 떠오르기 시작한다.

 1994년 여름, 달리는 기차, 소란스럽던 부부, 각자가 읽던 책, 최초의 마주침, 어색한 대화, 비엔나, 철교, 철교에서 만난 연극배우들, 전차와 진실게임, LP가게와 박물관, 묘지, 저물녘, 첫 키스와 포옹, 손금 봐주던 점쟁이, 강변의 시인, 춤추는 여인과 선상 카페, 돌계단, 공짜로 얻은 와인 한 병, 풀밭에서의 섹스, 하프시코드 연주, 눈으로 찍는 사진, 잊지 않겠다는 다짐, 그러려는 안간힘. 그리고 기차역, 6개월 후라는 약속, 이별….

 링클레이터는 이처럼 시간에 대한 기민한 감각을 자꾸만 건드린다. ‘늙어감’을 감각하게 하고, 지나간 시간을 줄곧 되새기게 만든다. 그럴수록 뚜렷해지는 것은 각자의 과거이고, 처음 만난 당신이고, 사랑이고, 너이고, 우리이고, 그립고 그리운 청춘 그 자체다.

타르코프스키는 “우리가 살아온 시간은 바로 그 시간 속에 놓인 경험으로서 우리의 영혼 속에 굳건히 자리 잡”게 해준다고 썼다. <비포> 시리즈가 고전이라면 아마도 그래서일 것이다.

 

 

* 《쿨투라》 2020년 3월호(통권 6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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