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어둡고 작은 청춘의 방
[청춘] 어둡고 작은 청춘의 방
  • 차성환(시인, 연극평론가)
  • 승인 2020.02.28 16: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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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노래방 가서… 얘기 좀 할까?'

 우리 시대에 청춘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곳은 어디일까. 어둡고 작은 방에 모여서 저마다 가슴 속에 품은 노래를 꺼내 부르던 노래방도 그 속에 들어가지 않을까. 노래방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가장 대중적이면서 친밀한 놀이 장소이다. 풋풋한 우정과 사랑이 시작되기도 하고 시간이 흘러서는 그 청춘의 한 페이지를 꺼내보면서 상념에 젖기도 한다. 청춘은 지나간 다음에야 그 아름다움을 알 수 있으니까. 우리는 뒤늦게 추억한다. 그 청춘의 한 시절이 그리워 노래방을 찾기도 한다.

 <우리 노래방 가서… 얘기 좀 할까?>(민준호 작·연출, 극단 ‘공연배달서비스 간다’, 2020.2.8.-3.8, 대학로 서경대학교 스콘 1관)는 노래방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우리 삶의 진솔한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들려준다. 무대 중앙에는 팔각형의 노래방 부스가 있고 뒤편에는 그네와 구름다리, 시소가, 오른쪽 끝에는 카운터가 위치한다. 극은 노래방 주인이 놀이터가 화장실이라는 설정을 밝히면서 시작한다. 그런 연출이 유치하고 이상하다며 관객에게 건네는 방백傍白은 친근하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노래방 주인은 극중에서 일종의 내비게이터navigator 역할로, 다섯 개의 에피소드 사이에 등장해 사건에 대한 자기 나름의 논평을 덧붙이면서 극의 긴장을 완화시키고 조율한다.

공연 내내 연출과 갈등을 빚는 설정으로 웃음을 불러일으킨다. 인물들이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할 때마다 노래방 부스를 회전시키는, 노동 아닌 노동을 하는 장면도 웃음 포인트이다. 놀이터(화장실)는 말 그대로 해우소解憂所로 인물들이 근심을 풀거나 감정을 갈무리하는 장소로 사용된다. 노래방 부스의 인물이 마음을 담은 노래를 부를 때 놀이터는 배경화면처럼 활용된다. 진지한 노래에 맞춰 놀이터에서 고난의 행군을 하는 인물이 반복적으로 나오는 웃음 코드는 다소 낡은 느낌을 주지만 슬퍼하거나 쓸쓸해하는 인물의 정서를 표현할 때는 무난한 느낌을 준다.

ⓒ공연배달서비스 간다

 대구에서 올라온 민재(아버지)는 희준(대학생 아들)을 서울의 한 노래방에서 만난다. 민재는 자신의 재혼 소식을 알리기 위함인데 좀처럼 이야기를 꺼내기가 어렵다. 일찍 이혼을 해서 혼자 아들을 키운 아버지와 어렸을 때부터 엄마 없이 자란 아들 사이에 놓인 갈등의 골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희준은 민정(여자 친구)이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다는 의심을 하고 있다. 길거리에서 다투던 희준은 노래방에 가서 얘기 좀 하자며 민정을 잡아끈다. 노래반주를 틀어놓고 랩처럼 쏟아내는 말들은 서로의 감정을 격하게 만들고 그 와중에 희준의 의심은 오해로 판명난다. 민정은 희준의 잘못된 집착을 견디지 못해 이별을 통보한다.

남자 친구와 헤어진 민정은 친구들(은혜, 정연)과 노래방에 간다. 민정을 위로하기 위한 자리이지만 은혜와 정연은 서로 다른 의견 때문에 자기들끼리 싸우게 된다. 민재는 재혼할 상대인 보경과 함께 노래방에서 데이트를 한다. 수줍고 조심스러운 핑크빛 기류는 행복한 결합을 예상하게 하는데 보경은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노래 한 곡에 마음이 흔들리고 재혼을 포기한다. 보경은 친구들(유정, 유연)과 만나 노래방을 찾는다. 보경이 재혼을 포기한 이유는 재혼을 결심한 순간 사별한 남편이 생전에 자신에게 청혼할 때 부른 노래가 나왔기 때문이다. 자리에 합류한 딸 민정이 부르는 노래를 듣던 보경은 눈물을 흘리게 되고 엄마와 딸은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딸 민정과 친구들의 응원에 용기를 얻은 보경은 다시 민재를 만나기 위해 노래방을 나선다.

ⓒ공연배달서비스 간다

 <우노얘>는 노래방이란 공간을 영리하게 잘 활용하고 있다. 노래방은 가족이나 친구 사이의 갈등이 점화되고 불화가 심화되는 곳이지만 곧 소통과 화해의 가능성으로 활짝 열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민재를 만나러 가는 보경의 이야기 뒤에 어떤 극적인 화해가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우리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우노얘>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세 번째, 다섯 번째 에피소드에 나오는 세 여자들이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대사들의 향연이다. 가히 ‘걸 크러쉬girl crush’라 할 만하다. 극에서 ‘노래방’이라는 배경 설정과 가장 잘 들어맞을 뿐만 아니라 관객에게 큰 웃음을 주는 부분이다.

딸 민정의 친구들이 나누는 연애에 대한 현실적인 대화들이나 엄마 보경의 친구들이 중년 여성이 겪는 문제에 대해 유쾌하게 풀어내는 대화들은 몰입도가 높고 연기의 합을 넘어 말맛이 주는 황홀함을 준다. 딸 민정의 친구들이 신나는 걸 그룹 노래를 안무에 맞춰 부르는 장면은 이후 엄마 보경의 친구들이 오랜만에 학창시절 추억속의 걸 그룹 노래를 부르며 안무의 합을 맞춰보는 장면과 오버랩 된다. 흡사 딸 민정의 친구들이 나중에 커서 엄마 보경의 친구들이 되는 설정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고 보면 오랜만에 만난 중년 여성들이 노래방에서 그들이 겪었던 청춘의 사랑과 우정을 현실과 과거를 오가면서 후일담처럼 풀어놓는 구성도 괜찮을 듯싶다.

 <우노얘>는 친근하고 대중적인 작품이다. 노래방을 중심으로 가족, 청춘, 우정, 사랑에 대한 이야기와 그에 따른 감정선을 안정적으로 풀어놓는다. 에피소드마다 사연이 들어있는 노래를 멋지게 소화하는 배우들의 솜씨도 한 몫 한다. 무엇보다도 우리 각자의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어둡고 작은 청춘의 방에서 부르던 노래를 일깨워준다. <우노얘>의 주제곡 ‘you light up my life’처럼, 청춘은 누군가에 대한 사랑과 우정으로 채워져 있다. 우리는 지금도 어둡고 작은 방에서 노래를 부른다. 청춘의 한 페이지를 되새기면서.

 

 

* 《쿨투라》 2020년 3월호(통권 6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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