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Theme] 90년생 청춘이 본다
[3월 Theme] 90년생 청춘이 본다
  • 박소진, 공혜리, 윤인혁
  • 승인 2020.02.28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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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6청년비평연대 박소진, 공혜리, 윤인혁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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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틀렸다
박소진(문화평론가•광운대 국문과 졸업)

 10·26 박정희 피격 사건이 영화로 만들어졌다. 같은 소재를 영화화한 <그때 그 사람들>이 박정희 정권의 몰락을 블랙코미디로 그려냈다면, 2020년 1월 개봉한 <남산의 부장들>은 느와르 장르의 색을 입히고 인물들의 감정 변화를 드러내는 데 주력했다. 그래서인지 김규평의 감정선을 따라 영화를 감상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영화의 안과 우리가 사는 바깥이 절곡하게 맞물리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특히 군사정권의 폭력적인 반민주성 아래에서 홀로 민주주의 가치를 주장하는 김규평을 지켜볼 때 그렇다.

 10월 26일, 분명한 불합리를 바로잡기 위해 김규평은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총성이 들렸다. 불멸한 것만 같던 18년의 기득권이 단 한 번의 일격으로 산산조각이 났다. 그러나 박통의 피웅덩이 위에서 미끄러져 넘어진 김규평의 표정이 클로즈업될 때, 절대 악인을 물리쳤다는 통쾌함과 홀가분함을 기대했던 관중들은 아빠 잃은 아이 같은 김규평의 얼굴을 마주한다. 분노로 상기된 얼굴 한편이 상실에 대한 두려움을 담고 위태롭게 흔들린다. 그렇지만 나약한 얼굴의 김규평은 분명히 알고 있다, 당신은 틀렸으며, 나는 너를 죽이고서라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그 얼굴은 어째서인지 우리를 닮았고, 그래서 슬프다. 박통을 바라보는 김규평의 얼굴에는 우리가 아버지를 바라보는 얼굴이 있다. 사랑하는 당신께 순응하는 대화가 나와 내 세계를 퇴보하게 할 때, 오답이 분명한 선지를 놓아주지 못하는 무지하고 초라한 당신을 지켜볼 때, 우리는 서글퍼진다.

 <남산의 부장들>의 관람 추이는 30대와 20대가 각각 40%, 33%로 가장 높았다고 한다(네이버 영화, 2020년 2월 15일 기준). 태어나기도 전에 일어났던 일을 소재로 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젊은 세대는 <남산의 부장들>에 기꺼이 호응했다. 김규평이 보여준 ‘불완전한 을의 반란’에 우리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우리가 총구를 겨누어 온 많은 것들이 떠오른다. 산보다 높은 경찰 차벽과 물대포가 준 공포, 무지하지 않은 어른들-예컨대 교수와 같은- 박식하고 존경할 만한 어른들 또한 누군가의 아버지이며 어머니였음을 알게 되던 날의 절망. 모든 것들에 방아쇠를 당기며 건너왔기에, 지금의 청춘들은 불안하고 두렵다. 그러나 분명히 알고 있다. 당신이 틀렸으며, 우리는 사랑하는 당신을 죽이고서라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영화 속 김규평은 박통을 살해하는 순간까지도 혼란스러운 얼굴이었다. 이처럼 청춘이 ‘당신’을 넘어서는 순간도 불완전하게,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혹,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이 ‘당신’이라면, 앞에 선 젊은이의 위태한 표정에 매몰되지 말고 주머니 속 권총 한 자루를 보라. 무력하고 불안한 청춘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방아쇠를 더듬거리고 있다. 그럼 마지막으로, 혹시 아직도 영화를 보지 않은 이들을 위해 끔찍한(?) 스포일러 하나. 영화 속 박통은 김규평 부장에게 총 맞아 죽고, 그의 자리를 차지하는 새로운 빌런, ‘전 장군’이 나타난다!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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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핸들이 향하는 곳은
공혜리(문화평론가•숭실대 경영학과 4학년)

 승객이 원하는 목적지까지 바퀴를 굴리는 사람, 약속한 장소에 도착할 때까지 운전대를 잡는 것이 택시운전사의 일이다. 2017년 개봉한 장훈 감독의 <택시운전사>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다. 적당히 정 있고 적당히 흥 있는 주인공 김만섭은 성실한 아버지이며 직업정신이 투철한 택시운전사다. 제법 쏠쏠한 하루 벌이를 위해 만섭은 기자 힌츠페터를 태우고 광주를 향한다. 광주로 가는 길은 군인들이 통제하고 있고 출입이 허용되지 않아 수를 써서 겨우 들어간다.

 그러나 힘겹게 도착한 광주에서는 군인들이 사람들을 무작위로 탄압하고 있었다. 이를 담으려는 힌츠페터와 혼자 있을 딸 생각에 빨리 돌아가려는 김만섭은 충돌한다. 하지만 동시에 피로 물든 광주의 현장을 보고 이를 세상에 알려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주인공 김만섭은 갈등한다. 지금 여기에서 나는 어디를 향해 삶의 핸들을 돌릴 것인가?

 나를 비롯해 정치에 무관심한 대학생들은 역사적 사건을 자신과는 무관한 이야기로 느낀다. 김만섭 또한 정치에 무관심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는 광주에 들어가게 되면서 자신이 역사의 밖이 아니라 역사의 안에 거주하는 존재임을 알게 된다. 김만섭은 광주 시민들의 견딤과 연대를 몸으로 경험하면서 자신이 광주에 온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한 인물의 역사성은 멀리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과연 역사의 주류와 비주류를 명확히 구분 지을 수 있을까. 지금의 나 또한, 우리 또한, 가장 역사적인 주체일 수 있다는 사실은 이 영화를 보면서 내내 나를 떠나지 않았던 생각이다.

 오늘의 젊은 세대에게 당신은 그저 ‘역사 밖의 존재’가 아니라, 주체적으로 ‘역사 안의 존재’ 가 되어야 한다고 영화는 말하고 있다. <택시운전사>는 지나간 역사의 기억에 머물지 않고, 오늘의 우리가 써야 할 역사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숙제로 남겨준 듯하다. 지금 나의 핸들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이 시대의 우리 청춘들이 돌리는 역사의 핸들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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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다시 한번 그때처럼
윤인혁(문화평론가•한예종 한국예술학과 4학년)

 영화 <1987>의 엔딩 크레딧 뒤 마주한 어머니의 울음은 내게 생소했다. 영화나 소설에 감정이입을 잘 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날 내가 분명히 이해한 점은 ‘우리는 동시에 같은 스크린을 통해 다른 영화를 보고 있었다’는 것 정도다.

 나에게 영화 <1987>은 감정의 과잉이 조금 아쉽긴 하지만 푯값이 아까울 정도는 아니었다. 1996년생인 나는 1987년 6월 민주항쟁과 군부독재정권의 만행은 교과서 혹은 ‘86세대 운동권’인 아버지를 통해서만 들은, 그런 시대가 있었는지 믿기 힘든 역사였다. 그러니 ‘탁치니 억하고’ 같은 장면에서는 그저 어이없어 웃음이 나왔을 뿐이었다. 하지만 85학번인 어머니에겐 그 시대를 몸으로 체험한 사람만의 특별한 감정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 모자에게 <1987>은 전혀 다른 무게였다. 나는 이 무게감을 이해하기 위해 꽤 긴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1987>은 감정적인 영화다. 누군가에게 ‘너는 너무 감정적이야’라고 말한다면 그건 십중팔구 힐난이거나 비판이다. 우린 일상 속에서 감정적 태도는 이성적인 태도에 비해 결코 현명하지 못하다고 여긴다. 그런데, 과연 영화도 그래야만 할까? 그제야 나는 영화 <1987>이 감정적 격정을 의도했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1987>은 놀랍게도 ‘세대를 이어주는 타임머신’으로 변신했다. 나는 30년이란 시간을 간단히 뛰어넘었다. 87년 6월, 두려움과 희망이 교차하는 공간에 서있던 그 시대의 청년들이 무엇을 열망했는지 느꼈기 때문이다.

 <1987>은 분명 말하고 있다. 오늘날 청년들이 사는 현재가 87년 민주 항쟁에 빚을 지고 있으며, 그들 덕분에 우리가 누리는 평화와 안정이 있다는 점을. 영화는 불과 30년 전의 역사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 시절이 얼마나 무서운 시대였는지를 감각하도록 만든다. 1786년 미국에서 일어난 셰이즈 반란을 두고 토머스 제퍼슨은 “자유의 나무는 애국자와 압제자의 피를 먹고 자란다”고 기록했다. 그로부터 약 200년이 지난 1987년, 대한민국은 수많은 민주열사들이 흘린 피와 비명 덕분에 비로소 광명이 찾아오고 있었다. 영화 <1987>은 이점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싶어 했다.

 <1987> 속 청년들은 불의와 독재와 억압에 불처럼 항거하고 있었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떠한가. 그 시절 86세대 당신들의 결의와 열망은 지금 어디로 갔는지 묻고 싶다. 당신들이 그토록 갈망했던 민주주의가 다시 껍질만 남아 불평등과 불공정 앞에서 지금 속절없이 꼬꾸라지고 있는 것이 보이지 않냐고 묻고 싶다. 그러니 당신들의 87년처럼, 다시 한번 그때의 용기를 보여줄 수는 없겠냐고, 우리는, 지금, 당신들에게, 묻고 있다.

 

 

* 《쿨투라》 2020년 3월호(통권 6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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