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영화 월평] 또 다른 '완벽한 타인'을 기다리며
[12월 영화 월평] 또 다른 '완벽한 타인'을 기다리며
  • 윤성은(영화평론가, 본지 편집위원)
  • 승인 2018.12.27 14: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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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배급사나 제작사가 눈길을 주지 않는 ‘괜찮은’ 독립영화의 지원 및 육성은 평론가의 의무다. 만듦새는 좀 허술하더라도 세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담고 있거나 진정성이 엿보이는 독립영화들은 함부로 비판하기 어렵다. 더욱이 눈물 쏙 빼는 십시일반 제작기가 무용담처럼 전해진다면, 그런데도 대다수의 관객들에게 제목조차 알려지지 못한 채 외면당했다면 부족한 점보다 돋보이는 점을 부각시켜 격려해 주는 편이 우리 영화계를 위한 미래지향적 비평이라 믿는다.


상업영화의 경우에는 완성도 면에서 인정을 발휘할 필요는 없겠으나 장시간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들어갔다는 점을 고려할 때, 역시 요새 창궐하는 유튜버들 다수처럼 개인취향을 잣대로 난도질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특히, 돈을 벌고자 거대자본을 끌어온 작품이 손익분기점을 한참 밑도는 결과를 내면 그것이 바로 영화제작진들에게는 어떤 비판보다 깊게 살을 에는 형벌이 될 터다. 요는, 그 원인에 대해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물괴>(9월 12일 개봉)부터 <명당>, <협상>(이상 9월 19일 개봉), <창궐>(10월 25일 개봉)까지 이어진 블록버스터들의 흥행 참패는 그간 대중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소재들을 적당히 짜깁기하면 손해는 보지 않을 거라는 안이한 발상의 대가다.

 

사극만 간단히 비교해 보자. <물괴>와 <명당>, <창궐> 등 5주 사이에 개봉한 세 편의 영화는 각각 총제작비(순제작비와 P&A 비용을 합친 비용)가 125억, 120억, 170억 원에 달하는 대작들이다. 이 작품들 중 두 편은 일명 크리에이쳐 액션 사극이고, 세 편 모두에 공통적으로 왕권을 약화시켜 정권을 장악하려는 악한이 등장한다. 이들 안타고니스트의 존재는 절대악, 즉 <물괴>에서 ‘물괴’나 <창궐>에서 ‘야귀’처럼 나라의 존망을 좌우할 정도로 위험하며, 소통이나 타협이 불가한 광기어린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이경영, 백윤식, 장동건으로 이어지는 천편일률적인 악역 캐릭터 뿐 아니라 이들로부터 백성을 구할 구원자, 프로타고니스트가 모두 궁 밖으로부터 온다는 공통점까지 우연으로 볼 수 있을까. 한국 블록버스터들이 장르적 관습에 의존한 채 시나리오 개발은 뒷전이고, 화려한 프로덕션에만 치중해 있다는 증거는 아닐까. 관객들은 바로 서사의 식상함과 허술함에 등을 돌렸다.


결과적으로 6일 천하에 그친 <창궐>(김성훈)을 박스오피스 1위 자리에서 밀어낸 것은 순제작비가 38억원에 불과한 <완벽한 타인>(이재규)이었다. 총제작비 80억 짜리 <암수살인>이 220억 원이 투입된 <안시성>을 끌어내렸던 것에 이어, 관객들의 부심負心은 제작비와 상관없다는 것을 확인시켜준 사건이다. <암수살인>이 그랬던 것처럼, <완벽한 타인>은 탄탄한 시나리오와 배우들의 찰진 호흡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는 현대적 방식이라는 측면에서 훨씬 강렬한 향신료가 더해진 작품이다. 이탈리아 영화, <퍼펙트 스트레인저스 Perfect Strangers>(2016, 파올로 제네베제)라는 영화의 리메이크작이기는 하지만, 한국적 정서가 잘 가미되어있고, 친한 인물들 사이에서 오가는 대사들도 훌륭하게 각색되어 어색함이 없다.

 

어릴 때부터 한 동네에서 자란 네 명의 친구가 부부/커플 동반으로 한 빌라에 모인다. 결혼 20년차 부부부터 신혼부부까지, 커플들은 크고 작은 갈등을 겪고 있으며, 애인을 두고 혼자 온 이혼남도 말 못할 비밀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친구들과 배우자에게 자신이 ‘숨기는 게’ 없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식사시간 동안 스마트폰으로 오는 모든 문자와 전화, 메일 등을 공유하는 끔찍한 게임을 하기로 동의한다. 이 용감한, 아니 무모한 선택의 결과로 영화는 두 시간 동안 한 사람의 성격과 삶과 취향을 낱낱이 알고 있는 것은 친구도, 배우자도 아닌 스마트폰임을 천명한다. 친구 험담, 시어머니에 대한 불만, 골프 왕따 사건 등이 밝혀지는 것은 귀여운 사고에 불과하지만, 가슴 수술이라든가 사기사건 피해, 딸의 연애 문제와 모녀갈등 등 민망한 사생활과 가정사까지 모두가 알게 되면서 저녁 식사 자리는 점점 위태해지고 불편해진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기혼자들의 외도와 감춰져있던 성정체성까지 까발려지면서 이 게임은, 아니 이들의 가정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세 부부 중 외도 문제에서 자유로운 커플이 없다는 사실은 영화적 과장일까 현실의 반영일까. 40년지기 친구가 게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고 난 친구들의 속내는 놀라움과 배신감 어느 쪽에 가까울까.

영화의 미덕을 뽑으라면 먼저 재치 있는 대사와 그것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소화해낸 7명의 배우들이라 해야겠지만, 좁은 공간에서 다양한 관계와 감정의 흐름을 묘사해낸 촬영도 흥미롭다. 영화는 대부분 고급 빌라 한 공간에서 진행되는데, 빌라의 오밀조밀한 구조가 장면마다 인물들을 분리시켰다가 다시 병합하는 역할을 한다. 조리실과 식당의 유리칸막이가 대표적이다. 조리실 안에 고립되어 있을때, ‘석호’(조진웅)는 ‘태수’(유해진)에게 사기사건에 휘말렸음을 고백하고, ‘수현’(염정아)과 ‘예진’(김지수)도 은밀하게 ‘세경’(송하윤)의 흉을 본다. 이 유리칸막이는 ‘영배’(윤경호)가 응접실에서 운동을 할 때 복도 쪽 각도에서 식당과 응접실 공간을 분할하기도 하는데, 이는 앞으로 있을 영배의 커밍아웃에 대한 복선과도 같다.

 

또 하나, <완벽한 타인>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기본적으로 이 영화가 씁쓸한 뒷맛을 머금고 있음에 도 불구하고 관객들에게 ‘(블랙) 코미디’로 수용된다는 것이다. 완전히 희화화 된 태수와 57살 키티 누님의 외도는 그렇다 치고, 준모가 식당 매니저 및 예진과 맺은 부적절한 관계에 대해서도 극장을 나오는 관객들이 거의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은 연구해봐야 할 문제다. 잘못되었다는 게 아니라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간통죄가 존재했던 나라가 정말 이토록 빨리 개방된 것인가 하는 궁금증 때문이다. 폴리아모리들은 폴리아모리들이고, 아직 우리의 결혼 제도는 배우자에게 충실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가. 물론, 영화의 결말부는 이 게임이 실제로 일어나지는 않은 것으로 처리함으로써 사안의 민감함을 중화시킨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등장인물들의 치부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스마트폰이라는 판도라의 상자에 갇혀 있을 뿐이다. 어쩌면 관객들은 추한 진실을 판도라의 상자에 가둬 둔 그 상태, 눈이 와서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결말에 만족했는지 모른다. 어차피 인간의 악한 본성은 바뀌지 않는 것이므로, 그저 서로 모르고 지나가는 것이 상책이라는데 공감한 것이다. 그렇다면 더더욱 영화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각종 게임, 스트리밍 서비스 등 청년들의 오락거리가 늘고, 인구는 줄어가는 상황에서 영화계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VR 영화를 개발하고, 해외시장으로 지경을 넓히는 사업은 한창 진행중이다. 그러나 평균제작비 이하로 만들 수 있는 시나리오 개발에는 오히려 무심한 것 같다. <신과 함께> 같은 블록버스터도 좋지만, 지금은 <완벽한 타인> 같은 성공사례가 더 많이 필요하다.

 

 

* 《쿨투라》 2018년 12월호(통권 5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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