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영화 격월평] 상처와 망각 사이에서
[장르 영화 격월평] 상처와 망각 사이에서
  • 양진호(영화평론가)
  • 승인 2020.04.2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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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시마 테츠야의 '온다(来る)'(2018)

  빽빽한 숲을 천천히 부감하는 카메라 쇼트를 젊은 남녀의 따뜻한 대화 신이 천천히 따라붙는다. 택시를 타고 남자의 고향으로 가는 예비부부의 설레는 마음을 그려내는 것 같은 이 장면을 부드러운 클래식 음악이 감싸고 있지만, 이것은 전혀 다른 두 세계를 이어붙인 이야기의 기묘한 시작 지점이다. 남자의 꿈속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여자아이. 그리고 부부 사이에서 곧 태어나게 되는 여자아이. 이 아이들이 가고 싶어 했던 ‘산’. 가족과 직장 동료들의 축하와 격려에도 불구하고 산에 대한 아이들의 끌림은 끝없이 이어지는 숲의 심연과 이어진 듯해서, 불안은 남자의 일상의 밑바닥을 천천히 긁어대기 시작한다.

  사와무라 이치의 장편소설 『보기왕이 온다(ぼぎわんが,來る)』를 영화화한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온다>는 각색된 부분이 많지만 큰 흐름은 원작을 따르고 있다. 산골 마을에서 병든 할아버지와 어린 시절을 보낸 주인공 히데키는 제과 회사 영업사원으로 일하다가 거래처인 대형 마트에서 일하던 카나를 만나 결혼한다. 그런데 어릴 적 자신을 찾아왔던 형체 없는 귀신이 꿈속에서 여자아이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카나가 아이를 낳은 뒤에는 그것과 관계된 것처럼 주변에 끔찍한 사건(회사 후배의 죽음)이 일어난다. 얼마 후에는 엉망진창인 거실을 그대로 두고 공포에 사로잡혀 방에 틀어박힌 카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는 민속학 교수인 고향 친구 다이고(소설에서는 가라쿠사)를 만나 귀신의 정체로 추측되는 ‘보기왕(간코 혹은 가고제)’에 대해 들은 뒤 이 귀신을 물리치기 위해 노자키(오컬트 전문 기자)와 그의 애인인 마코토를 소개 받는다. 마코토는 히데키와 카나의 내면에 생긴 빈틈 때문에 ‘그것’이 찾아오는 것이기 때문에 아내와 딸을 소중히 대하면 귀신을 막을 수 있다고 하지만, 히데키는 마코토의 말을 무시하고 집에 돌아온다. 그러나 노자키와 마코토는 히데키를 설득하여 퇴마 절차를 수행한다. 여러 방법을 시도하며 ‘그것’의 침입을 막아보려 하지만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고, 그 과정에서 히데키는 자신이알지 못하는 어떤 ‘진실’ 때문에 이 사건이 시작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영화와 소설의 가장 큰 차이는 ‘그것’이 찾아오는 원인에 대한 설명이다. 소설에서는 히데키의 할머니인 시즈가 남편인 긴지에게 복수하기 위해 집에 가지고 온 마도부(귀신을 부르는 부적) 때문에 ‘그것’이 찾아온 것이며, 긴지가 죽은 뒤에도 히데키에게까지 ‘그것’이 계속 따라붙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긴지는 가족들에게 시도 때도 없이 폭력을 휘두르다 어린 딸(히데코)과 아들(히사노리)을 죽였지만 시즈는 남편이 무서워 이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고 막내딸 스미에(히데키의 어머니)에게도 비밀을 지켜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분노는 지워버릴 수 없었으므로 시즈는 마도부를 집에 몰래 가져왔고, 긴지는 그때부터 죽는 순간까지 ‘그것’에게 시달려야 했다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카나를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다이고가 히데키에게 준 마도부가 원인이 된다. 이전에도 히데키를 찾아오던 ‘그것’은 다이고의 부적 때문에 더 쉽게 그의 집에 드나들게 되며, 결국 히데키 부부와 딸(치사)의 일상은 처참하게 무너진다. 그런데 영화와 소설에서는 공통적으로 위의 두 가지보다 더 큰 원인으로 다른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앞서 마코토가 히데키에게 경고하기도 했던 ‘마음의 빈틈’이다.

  히데키는 카나에게 ‘아이를 낳아 소중하게 키우자’고 몇 번이나 얘기한다. 그는 자신의 꿈에 찾아오는 여자아이가 무서워서 다른 여자아이를 그 꿈 위에 덮어씌우고 싶었을 것이다. 그의 육아는 강박적일 수밖에 없었고, 육아 블로그에 글 쓰는 일과 육아 카페 동료들과 정보를 교환하는 일은 그의 삶의 전부가 되었다. 그러나 일상의 빈틈은 여기서부터 생기기 시작했다. 그는 육아라는 현실의 ‘고통’을 망각하고 있었다. 아이의 투정을 달래는 일, 아이가 병에 걸리거나 다쳤을 때 가까이에서 자신도 아파하는 일을 모두 카나에게 미뤘다. 현실이 이상과 일치해야 했고, 그것이 무너지면 또다시 꿈속으로 ‘그것’이 찾아올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삶 위에 블로그의 ‘밝은 기운’을 덧칠해야만 했다. 결국 치사가 머리를 다쳐 병원에 가야 했을 때 카나는 히데키에게 울분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고, 히데키는 그런 아내에게 “고작 하나낳았을 뿐인 주제에”라고 음산하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카나는 히데키가 살아 있었을 때에는 육아의 고통을 감내하고 어떻게든 그것과 직면하며 일상을 이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히데키를 잡아먹은 ‘빈틈’은 그가 죽은 뒤 그녀의 내면에도 스며들었다. 원망의 대상이 사라지자 결핍은 점점 ‘그것’과 닮아가기 시작했고, 대형 마트 점원 일을 하며 육아를 감당할 수 없었던 그녀는 곧 남편처럼 육아라는 현실을 망각하게 된다. 그러나 남편이 ‘그것’을 ‘밝은 기운’으로 억지로 막으려고 했던 것과는 반대로, 카나는 ‘그것’의 목소리에 동화되어 일상에서 반쯤은 발을 빼고 다이고의 유혹을 받아들여 화려한 치장을 하고 그를 만나러 간다.

  오컬트 전문 기자 노자키와 호스티스 일을 하는 퇴마사 마코토, 그리고 그녀의 언니 코토코가 ‘그것’에게 끌려간 치사를 데려오기 위해 부부의 아파트로 소환된다. 노자키에게는 아이를 갖지 못하는 현실(소중한 것을 잃는 것에 대한 강박)때문에 예전 여자친구와 이별할 수밖에 없었던 상처가 있고, 마코토에게는 과거의 ‘바보같은 짓거리(복부에 생긴 상처)’ 때문에 아이를 갖지 못한다는 상처가 있으며, 코토코에게는 무녀로서의 숙명이라는 상처가 있다. ‘그것’의 기원을 밝히기 위한 큰 단서로 제공되는 것이 ‘전설(보기왕 전설)’임을 감안했을 때, 이와 같은 설정은 우연이 아니다. 그들은 ‘트릭스터’, 즉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중개하는 인물’이다. 그들은 상처 때문에 일상에서 계속 튕겨져 나온다. 그리고 그 덕분에 두 세계를 오갈 수 있게 된다. 그들은 히데키처럼 상처를 망각하거나 카나처럼 자신을 상처와 동일시 할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부부의 ‘떠도는 빈틈’인 딸 치사를 찾아낼 수 있었고, 그것과 대적할 수 있었다. 그런데 셋 중 가장 강한 코토코는 아이와 관련된 직접적인 상처는 없다. 그녀는 노자키와 마코토보다 더 현실과 단절된 상태이므로, 현실의 ‘증상’으로 나타난 여자아이를 오직 이세계로 밀어내야 하는 위험한 존재로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노자키와 마코토는 아이를 사랑했다. 설령 그것이 처음에는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집착(마코토) 혹은 강박(노자키)이었을지라도, 히데키 부부와 함께 지내며 둘은 인간의 삶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고 그들의 삶에 ‘개입’할 용기를 얻은 것이다. 이 작은 차이에 의해 치사의 운명이 결정된다, 현실의 원리로는 풀 수 없는 질문그 자체인 아이. 세상이 망가지는 것을 막기 위해 대답을 보류하는 것도, 아니면 고통을 감내한 채 자신이 완벽할 수 없다는 ‘공백’의 감정을 끌어안고 질문에 답하는 것도 모두 ‘상처를 간직한 자’의 몫이다 .

  영화 곳곳으로 죽음의 이미지가 흘러다닌다. 붉은색과 군청색 조명들이 희생자와 영웅들의 온몸을 감싸고 있고, 둘이 겹쳐진 보랏빛은 그 사이에서 규정할 수 없는 충동처럼 흘러나온다. 유령이 나오지 않는 영화 <갈증(渇き)>(2014)에서 이미 보았던 색감이 반복되는 것이므로, 감독은 우리의 현실에 생물학적 죽음과는 다른 어떤 죽음의 기운이 상존하고 있음을 이전부터 이야기해온 것이 라고 볼 수 있다. 히데키의 일상은 바로크 시대 화가들의 그림처럼 화사하고 따뜻하다. 그러나 백화점 상품처럼 포장된 일상의 아래에 검고 푸른 물들이 고인다. 포장지가 버티지 못하는 어느 순간에 그것들은 터져 나와 우리중 누군가를 감염시킬 것이다.

 

 

 


원작 소설의 작가인 사와무라 이치가 인용한 『일본영이기(日本霊異記)』(일본에서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설화집. 국내 번역판은 ‘도서출판 씨 아이 알’에서 출간됨)에는 야마토 아스카 지방에 있었던 절인 간고오지(元興寺)에서 고약한 짓을 벌이다 죽어 귀신이 된 어느 하인 이야기가 나오는데(국내판 27~30면) 소설에서는 출몰한 지역과 비슷한 이름을 갖게 된 이 귀신이 전국 각지에서 나타나며 간코 전설이 퍼져나갔다고 언급되고 있다. ‘보기왕’은 영어 ‘부기맨’을 음차한 것으로, 아즈치모모야마시대(1568~1603)에 일본에 들어온 외국인 선교사들이 가져온 설화에 등장하는 형체가 없는 괴물이라고 소설에서언급된다. 그리고 이 부기맨처럼 특정한 형체가 없었던 귀신인 간코(가고제)를 선교사들에게 보기왕 전설에 대해 들었던 사람들이 보기왕으로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소설에서는 보기왕 전설이 히데키 부부가 결혼 전에 찾아갔던 ‘고다카라(子宝)’ 온천과 관계되어 있으며(실제로 존재하는 지명이지만 보기왕 전설은 허구이다), 과거에 이 지역에서 끔찍한 가뭄으로 먹을 것이 없을 때 주민들이 아이들을 산속에 있는 보기왕에게 바쳤다는 전설이 남아 있는 것으로 나와 있다.

나카자와 신이치, 『신화, 인류 최고의 철학』, 김옥희 역, 동아시아, 2002, 170쪽.

하스미 시게히코는 인간의 공포 심리를 주로 다루는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영화 등장인물에 대해 “무엇인가에 감염되는 것으로 ‘누군가’를 의도하지 않고 반복하는 과잉의 인물”이라고 설명한다. 하스미 시게히코, 『영화의 맨살-하스미 시게히코 영화비평선』, 박창학 역, 이모션 북스, 2015, 4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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