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Theme] 디지털 시대의 시시포스
[7월 Theme] 디지털 시대의 시시포스
  • 김지윤(게임문화연구자)
  • 승인 2020.07.03 16:4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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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문화에 대한 비평으로서의 게임
<Getting Over It with Bennett Foddy>

  항아리에 낀 남자가 쓰레기 더미로 이루어진 산을 오른다. 한국에서는 ‘항아리 게임’으로 더 많이 알려진 게임 <Getting Over It with Bennett Foddy>(2017)(이하 <Getting Over It>)이다. 플레이어가 마우스를 움직이면 같은 방향으로 남자가 망치를 휘두른다. 게임의 목표는 마우스 조작을 통해 이 항아리 남자를 산 정상으로 이끄는 것이다.

  설명은 단순하지만 체감하는 게임 난이도는 높다. 올라야 하는 잡동사니의 산은 미끄럽고 이 남자가 들고 있는 망치는 등산 장비로서는 적합하지 않다. 플레이어가 노력해 산을 조금 오르더라도 마우스를 삐끗하면 금세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지게 된다. 아무리 높이 올라가더라도 그간의 성취를 보존해주지 않기 때문에 한 순간의 실수로 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수도 있다.

  만일 당신이 <Getting Over It>을 플레이한다면 즐겁고 유쾌한 기분보다는 게임 캐릭터가 내 의도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는 답답함과 짜증의 감정을 더 많이 경험하게 될 것이다. 게임 내 장애물, 조작방식, 음악 등 모든 요소가 플레이어를 좌절시키는데 초점을 맞춰 설계되어있기 때문이다. ‘넘어서기’ 혹은 ‘극복하기’를 뜻하는 제목은 여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Getting Over It>이 인기를 끌게 된 데에는 게임의 이 같은 우스꽝스러운 설정과 불친절한 조작방식이 큰 역할을 했다. 플레이어를 고통스럽게 만들기 위한 게임의 의도적인 설계가 오히려 게이머들의 승부욕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베넷 포디는 왜 이런 게임을 만들었을까? <Getting Over It>의 공식 트레일러에서 그는 특정한 사람들을 “상처 입히기(to hurt them)” 위해 이 게임을 만들었다고 밝힌다. 특히 게임의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은 제작자의 의도를 관철시키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객관적인 태도로 게임에 대해 설명하거나 해야 할 일을 지시하는 대신, 내레이터는 플레이어에게 직접 말을 건네며 그를 도발한다. 플레이어가 높은 곳에서 떨어졌을 때, “안됐다”며 놀리듯 위로하거나 실패에 관한 명언을 읊어주기도 하는 식이다. 물론 게임의 내레이터가 의미 없이 게이머의 신경을 건드리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산의 중턱에서 내레이터는 플레이어에게 게임을 플레이할 때 어디에 동일시하고 있는지를 묻는다. “이 게임에서 당신은 항아리속의 남자-디오게네스인가? 그의 손인가? 아니면 당신이 움직일 수 있는 망치 끝인가?” 이러한 내레이션은 게이머가 게임 세계에 무비판적으로 몰입하는 것을 막고 게임에 대해 성찰해 볼 수 있도록 유도한다.

 

항아리속의 디오게네스 (Jean-Léon Gérôme 作, 1860)

  성격 나쁜 제작자가 단순한 취미로 다른 사람을 열받게 하기 위한 게임을 만든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게임의 내레이션을 통해 포디는 디지털 문화의 많은 것들이 쉽게 만들어진 뒤 쓰레기처럼 버려진다는 것을 지적한다. 오늘날의 인터넷 밈, 합성 사진, 그리고 게임과 같은 디지털 생산물들은 이미 존재하는 리소스와 에셋들을 조립해 만들어지고 사람들은 그를 재빠르게 소비한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한 달만 지나도 유행에 뒤쳐진 것이 되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금세 잊힌다. 포디의 말마따나 “버려지고 잊혀지고 재활용되지 않는 것들의 쓰레기 매립지”, 어쩌면 이것이 오늘날의 디지털 문화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풍경일지도 모른다. 베넷 포디는 잠깐의 즐거움을 제공하는 게임 대신, 플레이어를 고통스러운 상태에 머무르게 하는 게임을 만들었다. 게임의 구성과 더불어 디지털 문화에 대해 비판을 가하는 내레이션의 내용은 <Getting Over It>을 디지털 문화의 일부이면서 그에 대한 비평을 시도하는 게임으로 읽을 수 있게 한다.

  한편 베넷 포디의 시도는 <Getting Over It>이 한국에서 인터넷 게임 방송의 소재가 되면서 아이러니한 상황에 봉착한다. 해당 게임으로 게임 방송을 진행했던 많은 스트리머들은 게임에 집중하는 데 방해된다며 게임의 내레이션을 음소거한 채 게임을 플레이했다. 음소거 된 내레이션의 자리는 인터넷 방송 플랫폼의 ‘도네이션’ 시스템으로 대체되었다. 이는 시청자들이 일정 금액을 지불하여 스트리머의 방송에 영상이나 노래를 재생시킬 수 있는 시스템이다. 시청자는 1000원에서 5000원 사이의 금액을 결제하여 게임 상황을 웃기게 만드는 비장한 노래를 틀거나, 산만한 노래를 틀어 스트리머의 집중력을 흩트렸다. 어떤 시청자들은 김종국의 “제자리 걸음”처럼 산을 오르지 못하는 스트리머의 상황을 비웃는 노래 가사를 재생시키기도 했다.

  이렇게 <Getting Over It>가 게임방송에서 스트리밍 되는 과정에, 포디가 시도했던 디지털 문화에 대한 비평에는 한 가지 레이어가 덧씌워지게 된다. 베넷 포디가 내레이션을 통해 비판했던 ‘일회성 쓰레기와 같은 디지털 문화’, 유튜브 불법 음원들과 조악하고 산만한 합성 영상들이 그의 목소리를 덮어씌우게 된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이야말로 그가 디지털 문화에 가한 비판을 오히려 진정성 있는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역설적 상황을 초래한다. 비판의 목소리가 비판 하고자 했던 바로 그것들에 의해 묻혀버렸으니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그러나 이런 상황을 애석하게만 봐야할 필요는 없다. 적어도 제작자는 자신의 목소리를 음소거해 버린 게이머에게 짜증나는 경험을 안겨주는 데에는 성공했기 때문이다. 디지털 문화를 생동감 넘치는 흥미로운 영역으로 만드는 것은 이런 제작자와 수용자 사이의 끊임없는 힘겨루기 일지도 모른다.

  마치 이 같은 상황을 미리 예견이라도 한 듯, <Getting Over It>의 내레이션은 유튜브나 게임 스트리밍 사이트를 통해 이 게임을 시청하는 사람들에 대해 이렇게 언급한다.

“여러분은 마치 아기 새가 어미에게서 먹이를 받아먹듯, 천만 구독자를 거느린 사람이 대신 플레이해주는 영상을 통해 이 게임을 시청하고 있겠죠. 뭐 그것도 문화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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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아 2020-07-29 19:47:28
이렇게 잼나는 게임글은 첨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