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월평] 암울한 시대를 반영한 재난영화, 그 얄팍한 고민의 깊이: 〈싱크홀〉
[영화 월평] 암울한 시대를 반영한 재난영화, 그 얄팍한 고민의 깊이: 〈싱크홀〉
  • 라이너 (영화 유튜버, 영화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9.04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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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박스

  영화는 시대를 반영한다. 한국 영화는 다양한 이야기를 그려내면서 그 안에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인간군상을 녹여냈다. 영화 속에서 우리가 울고, 웃으며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안에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름 아닌, 우리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러한 ‘공감’을 자아내기 위해서 필요한 건 이 시대에 대한, 그리고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 대한 또렷하고 날카로운 시각이다. 영화 〈싱크홀〉은 그런 의미에서 작금의 시대를 반영하고자 한다. 〈싱크홀〉은 서민, 계급의 문제를 ‘집’으로 풀어낸다. LH 사태에 국민이 그렇게 분노한 것도, 코인이니 주식이니 하는 투자의 세계에 너도나도 뛰어든 것도 모두 부동산의 문제에서 기인한 것이다. 아파트를 가진 자는 부자가 되고, 가지지 못한 자는 소외되는 이 기현상에 상처입은 사람들은 어떻게든 그 아픔을 달래고자 했다. 그 애처로운 시도가 자칫 더 큰 위험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출구는 있을까? 영화 〈싱크홀〉은 바로 그 문제를, 낙하하는 집으로 은유한 작품이다.

  시대의 문제를 ‘재난’으로 은유하는 작품의 좋은 예시는 2019년에 개봉한 〈엑시트〉일 것이다. 〈엑시트〉는 청년세대의 문제를 영화적으로 풀어낸 영화였다. 두 주인공 용남(조정석 분)과 의주(임윤아 분)는 각기 청년세대의 고용불안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인물로 제시된다. 정규직이 되지 못해 안달하고, 직장에서는 성희롱도 당하는 등, 청년을 향한 착취가 어떤 식으로 전개되는지 그 두 인물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영화의 재난인 ‘독가스’는 그 자체로 청년세대의 목을 죄어오는 재난 그 자체였다. 청년세대는 현재, 정체를 알 수 없는, 희끄무레한 연기와도 같은 것에 의해 숨이 막히는 상태다.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다. 영화는 그런 청년들의 발버둥을 보여준다. 쉬지 않고 달리는 이들. 달리지 않으면 도태되어 독가스에 중독되어 쓰러지듯 무너져버려야 하는 비참한 현실이 바로 청년세대의 실태라고, 영화는 힘주어 말하고 있었다. 이 영화가 성공했던 것은 이 영화의 코미디 때문도, ‘붉은 여왕의 역설’ 때문도, 흥행 공식 때문도 아니었다. 청년의 삶과 애환을 한바탕 재난 코미디에 녹여낸 것이 관객들의 공감을 얻어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싱크홀〉은 〈엑시트〉의 전철을 밟을 수 있을까?

'싱크홀' 스틸컷<br>
ⓒ쇼박스

  영화는 동원(김성균 분)의 입장에서 시작한다. 동원은 중소기업의 과장으로, 11년 동안 열심히 일하고 아낀 돈으로 마침내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룬 중년 가장이다. 그는 고생하며 모은 돈은 물론이고 대출까지 최대한 끌어와 서울시 마포구의 한 빌라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꿈을 이룬 달콤함은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그는 어떻게든 이 행복을 극대화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눈앞에 보이는 어두운 전조들에는 필사적으로 외면하려 하지만 좀처럼 쉽지 않다.

  비록 집은 가졌지만, 하필 아파트가 아니라 빌라인 탓에 집값이 잘 오르지 않는다. 회사 부하는 단기간에 아파트 가격이 2억이 올랐다고 좋아하는데 배가 아프다. 게다가 빌라도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다. 동원은 빌라의 현실을 조금씩 눈치챈다. 우선 이웃들이 예사롭지 않다. 히키코모리 아들을 부양하느라 투잡, 쓰리잡을 뛰는 만수(차승원 분)는 사사건건 부딪치는 통에 불편하기만 하다. 노모를 부양하며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에, 집에 어린아이를 두고 배달 일을 하러 가는 여성도 있다. 모두가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어딘지 모르게 이 빌라에는 하자도 많은 것 같다. 거실 바닥에 놓아둔 구슬이 저절로 굴러가고, 신축 빌라라는데 여기저기 균열이 생겼다. 보수 공사도 쉽게 할 수 없다. 소문이 나서 집값이 떨어질까 무서워 주민들은 제대로 된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해 보수 공사를 진행할 수 없는 것이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그리고 일은 별안간 벌어진다.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아닐 수 없다. 마침 단수 때문에 대부분의 주민들이 집에 있지 않았지만, 동원을 비롯해서 마침 집들이를 왔다가 잠든 김대리(이광수 분)와 은주(김해준 분)는 그 사건에 휘말린다. 바로 거대한 싱크홀이 발생해, 빌라 건물이 통째로 500미터 지하로 추락해버린 사건 말이다.

'싱크홀' 스틸컷<br>
ⓒ쇼박스

  영화는 이 싱크홀에서 사람들이 서로 연대하며, 힘을 모아 재난을 극복하고 살아남는 이야기를 그리려고 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하나의 상징으로 읽을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었다. 치솟는 부동산 가격이, 고소득층의 상징처럼 된 ‘초고층 아파트’의 하늘을 뚫을 듯한 기세라면, 동원과 같은 중산층, 혹은 서민들의 현실은 싱크홀로, 바닥으로 꺼지는 암울한 재난 상황과 같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밑바닥에서, 그들은 서로 의지하며 어떻게든 올라가려 한다. 대지에 발을 붙이고 산다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다. 동원은 가까스로 얻은 이빌라에 모든 것을 건 사람이고, 김대리는 집도 없고 차도 없어서 라이벌에게 좋아하는 여자를 빼앗기고도 아무 의지도 보이지 못하는 서글픈 청년이다. 은주는 안양의 원룸에 살면서 열심히 일하지만 명절 선물 명단에서도 배제되는 인턴 사원에 불과하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아가며, 빌라의 문제에 큰 관심을 보이는 주민 만수는, 사실 3천에 85짜리 월세를 사는 남자였다. 영화는 구구절절한 그들의 사연을 통해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여주려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설정과 싱크홀이라는 소재의 참신함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원하던 것을 얻어내지는 못한다. 우선 영화의 설득력이 문제다. 빌라 건물 전체가 추락하면서도 그 형체를 온전히 유지한다는 건 선뜻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빌라 자체가 이 영화의 주요 소재이자 공간이니만큼 그 공간을 유지한다는 건 이해되지만, 이 신비로운 현상에 대한 아무런 설명이 없기 때문에 몰입하기가 쉽지 않다. 또 빌라 내부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에 지나치게 ‘웃음’을 넣으려고 하는 시도도 선뜻 와닿지 않는다. 지하로 파묻힌 절망적인 상황. 당장 어떻게 생존해야 할지 막막한 상황에서도 영화는 계속해서 유머러스한 태도를 유지하려 한다. 정작 빌라 밖의 가족들은 발을 동동 구르고, 구슬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데 빌라 내의 사람들은 낙천적이기만 하다. 이러한 불협화음 역시 이 영화의 잘못된 선택을 여실히 보여준다.

'싱크홀' 스틸컷<br>
ⓒ쇼박스

  특히 후반부에서는 영화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마저 모호해지는 아쉬운 장면들이 속출한다. 뒤늦게 아들이 건물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동원이 가장 낮은 곳을 찾아간다. 그 안에는 약자들이 있다. 이들은 구조조차 포기하고 죽음을 받아들인다. 김지훈 감독의 세계에서 진짜 약자들에게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문제는 결말이다. 결말에서 영화는 하나의 선택을 보여주는데, 그 선택이야말로 이 영화의 메시지를 흐리게 만드는 결정적인 패착이다. 현실적으로 ‘내집 마련’을 포기해야만 하는 청년세대에게, 그냥 집은 포기하고 오늘만 바라보고 살라는 식의 결론에는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그 어두운 싱크홀을 기어올라와서 얻은 결론이, 오늘만 즐기자는 식의 즉흥적인 대안밖에 없단 말인가? 영화의 고민이 얼마나 얕았는지를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영화 〈싱크홀〉은 전반적으로 부족한 작품이다. 부실한 CG, 과장된 상황, 어색한 대사, 뜬금없는 상황들까지 좋은 영화라 볼 수 있는 요소가 없다. 특히 그나마 좋을 수 있었던 재난 영화의 상징과 메타포를, 메시지를 송두리째 날려버린 결말에는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 그저 몸을 사리지 않고 열연을 펼친 배우들, 쉽지 않은 환경에서 고생했을 사람들에게 위로의 인사를 보내고 싶다는 말만이 입안에 씁쓸하게 맴돌 뿐이다.

 

 


 

* 《쿨투라》 2021년 9월호(통권 8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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