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Theme] '미스터 션샤인'이 5프로 부족한 이유
[10월 Theme] '미스터 션샤인'이 5프로 부족한 이유
  • 주찬옥(드라마 작가)
  • 승인 2018.10.1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스터션샤인
ⓒtvN

  김은숙 작가는 로맨틱 코미디를 잘 쓰는 작가다. 게다가 왕성한 에너지도 있어서 지칠 줄 모르고 그 반짝반짝한 사랑이 어울리는 새로운 배경을 찾아나선다. 김은숙 작가는 전작에 만족하지 않고 본인의 드라마를 복제하지도 않는다. 구조는 비슷할지언정 장르나 배경을 끊임없이 다르게 시도해본다. 그 점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좋은 드라마 작가 후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번 <미스터 션사인>에서는 뭔가 5프로 부족해 보인다. 전이라면 중국 등 아시아권에서 이미 반응이 폭발했을텐데 끝내 미지근한 걸 보면 내 짐작이 맞는 것 같다. 그래서 왜 그럴까, 5프로 부족한 뭔가가 뭘까를 짚어보기로 한다.
  우선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본 뼈대라 할 수 있는 중심 스토리 라인이 너무 약하다는 점이다. 예를들면 영화 <암살>의 경우 스토리 라인도 풍부하고 암살작전에 모이는 인물들도 다양하다. 독립투사가 있는가 하면 변절자가 있고 친일파가 있고 돈 때문에 끼어드는 청부살인업자도 있다. 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사연과 소신을 가지고 움직인다. 인물들은 살아있고 긴장감과 몰입도가 최고다.
  <미스터 션사인>은 어떤가.
  스토리 라인이 빈약하고 인물들은 납작하다. 스토리가 시원하게 죽죽 뻗어가지 않고 맴돌기 때문에 공들여 만든 대규모 세트장에다가 야외촬영이 곁들여지는데도 좁은 공간 안에서 오물거리는 것 같이 답답하다. 왜 그럴까.
  배경은 시대물로 잡았지만 공식은 여전히 로코여서 그렇다.
  로코에서 중요한 것은 스토리 라인이나 사건이 아니고 관계다. 남녀 주인공은 처음 만난 순간 사랑에 빠지지만 내심 감추고 콩닥콩닥, 탁구공 오가듯 통통 튀는 대사를 주고 받다가 어느 순간 사랑을 드러내고 확인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연이든 필연이든 자주 만나야 한다.
  그래서 애신과 유진이 자주 만나기 위해 사건들이 동원된다. 스토리가 유장하게 흘러가면서 인물들이 만나고 헤어지는 게 아니라 만나기 위해 사건이 벌어진다. 때문에 스토리는 단편적인 에피소드로 분절된다. 
  애신과 동매, 유진과 쿠도히나, 유진과 희성, 동매도 마찬가지. 그들은 둘씩 혹은 셋씩. 넷씩 라임 맞춘 랩 같은 대사들을 주고 받기 위해 모인다.
  이때 김은숙 표 ‘오글거리는 대사’는 치명적이다.
  인물들의 사연은 안타깝거나 비극적인데 대사들은 날아갈듯 가볍다. 게다가 재치있고 감상적인 대사는 누가 해도 상관없을 정도로 비슷비슷하다. 인물의 캐릭터를 손상시키고 긴박해야 할 사건의 몰입을 방해한다.
  주인공 다섯 명 외의 나머지 인물들도 캐릭터는 사라지고 입장만 보인다. 일본인들은 모두 극악하고 할아버지, 스승, 고종 등등은 입만 열면 국뽕 대사들을 한다. 그 대사들은 실제 역사에서 고종이 저렇게 처신해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희망의 대사이다. 덕분에 시원하긴 하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이 <덕혜옹주>나 <명성황후>가 역사왜곡이라는 타이틀을 단 이유 중 하나였다는 점도 기억하자
  로코의 기본은 ‘모든 제약을 뛰어넘는 사랑’에 있다. 연인들은 어떤 상황에 있든 어떤 지위에 있든 그 난관을 허들처럼 차례 차례 뛰어넘어 사랑을 이룬다. 그러나 이것은 구한말, 의병의 이야기. 엔딩으로 가면서 인물들은 비장하게 희생될 것이다. 사랑도 버리고 목숨도 버리는 이들의 행보에 시청자들은 감동을 느끼게 될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 그동안 김은숙 작가가 추구해왔던 로코의 가치관과 정반대가 된다. 모든 걸 버리고 사랑을 택해야 하는데 다른 가치를 위해서 사랑을 버리는 모습, 그래서 이번 드라마 남자 주인공은 멋이 없다.
  김은숙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들은 늘 신드롬을 일으켰었다. 현빈이 그랬고 이민호, 송중기, 공유가 그랬다. 뿐만 아니라 세컨 남주인공, 김우빈. 진구. 이동욱의 인기도 남주 못지 않았다.
  그러나 이병헌 앓이는 일어나지 않았다. 나이가 많아서? <신사의 품격>에선 장동건과 친구들이 40대로 나오면서도 신드롬을 일으켰는데?
  이번 작업은 모르긴 해도 몹시 힘들었을 것 같다. 작품이 전체적으로 자연스럽지 않고 뻑뻑하다. 공부 및 준비가 덜 된 느낌이다. 
  만약 다음에 또 이런 큰 스케일의 드라마를 쓰고 싶다면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준비해서 들어가라고 조언하고 싶다. 워낙 재능있는 작가니 가능하리라본다.
  역사에서 많이 벗어나고 싶으면 판타지 사극은 어떨까?
  가야가 멸망해갈 때를 배경으로 한다거나 아예 <왕좌의 게임>처럼 가상의 국가, 가상의 역사를 배경으로 쓰면 어때?

 

 

* 《쿨투라》 2018년 10월호(통권 52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