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Theme] '미스터 션샤인'은 캐스팅의 승리다
[10월 Theme] '미스터 션샤인'은 캐스팅의 승리다
  • 김시무(영화 평론가)
  • 승인 2018.10.1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스터 션샤인
ⓒtvN

  요즘 대하사극 <미스터 션샤인>이 대세다.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190여 개국에 동시 방영되고 중국에 <양광선생陽光先生>이란 제목으로 수출된다고 한다. 이 드라마가 친일미화 및 역사왜곡 논란에도 불구하고 승승장구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터이다. 이 드라마는 우선 무엇보다도 제작가치(production value)가 매우 높은 드라마다. 24부작인데, 제작비만 무려 400억 원이 투입됐다고 한다. 회당 약 16억 원이 들어간 셈이다. 그래서 그런지 세트, 의상, 심지어 소품 하나하나까지 신경을 쓴 흔적이 역력하다. 그만큼 모양새에 공을 들였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 드라마가 외형적인 미장센에만 치중했다면, 과연 흥행신드롬을 불러 일으켰을까?
  나는 이 드라마가 흥행에 성공한 핵심적 요인을 캐스팅의 승리라고 본다. 여기서는 내가 꼽은 이른바 빅 파이브(big 5)만을 선별하여 논하려 한다. 우선무엇보다도 선남선녀善男善女 이병헌과 김태리의 빛나는 케미가 돋보인다. 드라마 초반에 시청자들은 무려 20살의 나이차가 나는 두 사람의 러브라인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서로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가리면서 상대방의 정체를 확인하는 장면에서는 헤어진 부녀상봉이 아니냐는 비아냥거림도 나왔다. 하지만 회차를 거듭하면서 유진초이와 고애신 간의 거리감은 점점 좁혀졌고, 팬들 사이에서 ‘최애’ 커플이라고 불리면서 나이 차는 숫자에 불과한 것임을 천명했다. 중년이 됐어도 여전히 멋있는 이병헌의 풍모와 20대 신예지만 당찬 연기력으로 조금의 꿀림도 없이 상대방을 리드하는 김태리의 미모가 무지개떡 궁합을 이룬 탓이다. 특히 회당 1억 5천만의 개런티를 받은 이병헌의 경우 그만큼의 기여를 했다고 평가하고 싶다. 그의 20여년 연기 내공과 스타성이 맞물리면서 <미스터 션샤인>의 성공을 견인했던 것이다.
  일등공신에 포함되는 또 다른 커플은 유연석과 김민정 커플이다. 물론 드라마에서 두 사람의 관계는 이병헌-김태리 커플만큼 달달하지도 않고, 게다가 공식화된 것도 아니다. 이를테면 구동매(유연석)는 겉보기에 고애신을 연모하는 것처럼 보이고 실제로도 그러하다. 그래서 그는 고애신을 잡아야하는 위치에 있고, 또한 그녀가 의병임을 확인하고도 이런저런 이유로 그녀의 보호막이 되어준다. 백정출신인 그가 결코 넘볼 수 없는 양반가의 규수 간의 애증어린 관계라고 할까? 구동매는 그러나 글로리 호텔 사장인 쿠도 히나의 든든한 뒷배이기도 하다. 쿠도 히나가 그 복잡다단한 국제관계와 혼란스런 국내 정세 속에서도 이중삼중의 밀정노릇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구동매가 음으로 양으로 그녀를 지켜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구동매는 극의 초반에 극악한 친일파라는 비난을 받은 캐릭터였지만, 극이 전개되면서 일본 무신회의 직접적 지배를 차단하는 일종의 완충제로서의 소임을 다하고 있었던 것이다.
  쿠도 히나도 대단히 매력적인 캐릭터다. 일본인 남편을 살해하고 자발적 미망인이 된 그녀는 영어 불어 일어 등 4개 국어에 능통하고, 펜싱도 선수급 실력을 갖고 있는 그야말로 시대를 앞서간 ‘모던 걸(modern girl)’이었다. 친일파 아버지를 둔 덕에 평생 한을 품고 살아가지만, 말투와 행동거지는 신랄하면서도 발랄하기 그지없다. 워낙 개성적인 미모의 소유자인 김민정이 맡았기에 캐릭터에 생동감을 불어넣을 수 있었음은 물론이다.
  이 드라마에서 친일파의 화신인 이완익 역을 맡아 열연하다가 결국 고애신에게 암살을 당한 김의성의 역할도 커다란 볼거리 중의 하나였다. 능글맞고 찰진 함경도 사투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나라 팔아먹는 데 혈안이 됐던 그는 그야말로 피도 눈물도 없는 악역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김의성은 이미 최동훈 감독의 <암살>(2014)에서 친일파 수괴 강인국(이경영)의 집사 역을 맡아서 악랄함의 한 끝자락을 보여주었다. 그가 애신에게 죽임을 당하자 일부 시청자들은 쌤통이라고 하면서도 더 이상 그의 연기세계를 볼 수 없다는 것을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그는 “주말 오후 9시에는 나라를 팔아먹고 11 시에는 나라를 걱정하는 방송인”으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 <미스터 션샤인>에서 그가 맡은 친일파 이완익과 MBC 탐사보도 프로인 <스트레이트>에서 그가 맡은 MC 역 때문에 붙여진 레토릭이었다. 
  이밖에도 거론할 만한 캐릭터들이 많다. 고애신의 정혼자이자 룸펜인 김희성(변요한)의 경우 구동매로부터 “세로로 베일지 가로로 잘리지” 모를 극한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늘 유유자적하는 모습이 매력적이었다. 고종의 캐릭터도 흥미롭다. 풍전등화를 맞은 조선을 구하기 위해서 백방으로 고군분투하는 고종의 모습은 비록 역사적 고증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새로운 해석임에는 틀림없다. 나는 이 팩션 사극이 이처럼 성공리에 시청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던 이유로 19세기 말 “각자의방법으로 격변하고 있는 조선을 지나는” 수많은 인물들을 브라운관에 생생하게 소생시켰기 때문이라고 본다.
 

 

 

* 《쿨투라》 2018년 10월호(통권 52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