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으로 읽는 조용필] 축제처럼, 율동처럼, 간절한 기도처럼
[문학으로 읽는 조용필] 축제처럼, 율동처럼, 간절한 기도처럼
  • 유성호(본지 주간, 한양대 교수)
  • 승인 2018.1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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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없는 삶은 하나의 오류이리라.” (니체)
ⓒYPC프로덕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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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 딜런과 노벨문학상
  
1980년대 내내 ‘밥 딜런’을 상상했다. “미국에서는 밥 딜런이 어쩌구, 한국에서는 김민기가 어쩌구 어쩌구” 하는 구전가요 비슷한 노래가 두 분을 등가적 전설로 호명하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밥 딜런은 저쪽 저항가요의 원점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1960년대 한복판에서 그는 정치적 메시지를 지향하는 곡을 간결하고 함축적인 노랫말에 담아 부름으로써 자신만의 저항적 브랜드를 확연하게 구축해갔다. ‘시인’과 ‘가수’의 경계선을 흔연하게 지워간 캐릭터로 서 말이다. 그는 열 살 무렵부터 시를 썼고, 10대 후
반부터 노래를 했고, 대학 입학 후에도 포크 음악을 하면서 자신을 ‘밥 딜런’이라 스스로 불렀다. 본명은 지머맨(Robert Zimmerman)이었지만, 영국 시인 딜런 토머스(Dylan Thomas)를 따라 이름을 바꾼 것이다. 그는 20대 초반에 세계적 명성을 얻었는데, 특별히 그의 <Blowin' in the Wind>는 당시 흑인 인권운동의 상징으로서 저항가요의 선명한 표지(標識)가 되어주었다. 그야말로 ‘음유시인’으로 자신을 각인하는 순간이었다. 1999년 《타임》은 밥 딜런을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에 선정했고, 그는 2008년에 “놀라운 시적 힘을 가진 서정적 작법으로 특징 지어진 대중음악과 미국 문화에 끼친 심대한 공로”로 퓰리처상 특별상을 받았다. 그리고 “미국 음악의 전통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한 공로로, 시 쓰고 노래하는 가객으로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생명>은 무엇인가
  밥 딜런을 전경(前景)으로 삼은 것은 우리에게 조용필이 있음을 상기하기 위해서이다. 밥 딜런에게 1960년대는 조용필에게 1980년대였다. 물론 조용필은 우리 나라 저항가요의 맥을 잇는 가수가 아니다. 어쩌면 그 줄기는 한대수, 김민기, 정태춘, 양희은, 안치환 등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저항가요 브랜드가 아니면서, 폭 넓은 음역(音域)을 가졌으면서, 1980년대라는 한 시대를 일종의 저항 음악으로 구현한 이가 어쩌면 조용필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우리는 그의 원적이 <고추잠자리>와 <못 찾겠다 꾀꼬리>였음을 이미 강조한 바 있다. 아름다운 세계를 불가능하게 하는 폭력적 현실에 대해, 노래가 어떻게 예술적 저항의 목소리를 드러낼 수 있는지를 그는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고추잠자리/술래잡기’라는 유년 시절의 기억들로 구성된 이 작품들은, 그의 노래가 잃어버린 세계를 탐색해가는 서정적 탈환의 예술이요 가장 아름다웠던 세계를 재현해가는 외롭고 높고 쓸쓸한 ‘시(詩)’였음을 알려준 것이다. 그리고 조용필 4집 앨범에 <못 찾겠다 꾀꼬리>에 이어 두 번째로 실린 <생명>을 들여다보면 이러한 속성은 더 분명한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저 바다 애타는 저 바다
노을 바다 숨죽인 바다
납색의 구름은 얼굴 가렸네
노을이여 노을이여
물새도 날개 접었네

저 바다 숨쉬는 저 바다
검은 바다 유혹의 바다
은색의 구름은 눈부시어라
생명이여 생명이여
물결에 달빛 쏟아지네

애기가 달님 안고 파도를 타네
애기가 별님 안고 물결을 타네
대지여 춤춰라 바다여 웃어라
아 시간이여
아 생명이여
생명이여


  이 작품은 세 마디 구성으로 되어 있다. 첫 마디에서는 ‘애타는 바다’가 나온다. 노을이 지는 바다는 무엇인가 타는 듯하고, 가볍게 출렁이는 바다는 숨죽인 듯이 보일 것이다. 그 위로 얼굴을 가린 “납색의 구름”이 나온다. ‘납’은 무거운 금속원소로서 총알을 만드는 재료이기도 하다. 그 ‘납색’을 호출함으로써 <생명>은, 애를 태우듯이, 숨죽인 듯이, 물새도 날개를 접을 만큼 반(反)생명의 폭력이 편재한 시대를 배경으로 삼는다. 여기서 시적 이미지는 한결같이 ‘숨죽이고’, ‘얼굴 가리고’, ‘날개를 접는’ 수동적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 다음 마디에서 ‘바다’는 비로소 숨쉬기 시작한다. 밤을 맞아 신비와 유혹의 느낌을 가지게 된 바다 위로 “은색의 구름”이 눈부시게 환하다. 여기서 ‘은색’은 ‘납색’과 맞은편에서 생명의 아름다움을 비추어준다. 김현승의 시 「납[鉛]」(1969)에서도 ‘납’은 ‘금/은’과 대조적으로 형상화된 바 있지 않은가. 이제 달빛이 물결에 쏟아지면서 은색의 생명이 주는 환희가 시작된다. 마지막 마디에서 생명의 원형인 ‘애기’가 달님 안고 파도를 타고 별님 안고 물결을 타는 장관이 펼쳐지면서, 이 작품은 대지와 바다를 향해 춤추고 웃으면서 생명에 가 닿기를 호소한다. 춤추고 웃는 대지와 바다는, 숨죽이고 얼굴 가리고 날개 접었던 시간을, 숨쉬고 눈부시고 달빛 쏟아지는 시간으로 바꾸어내는 생명의 제의(祭儀, ritual)를 수행해간다. 그리고 ‘생명’을 부르고 희원하는 구절이 반복되며 노래는 끝이 난다. 그 음색이 얼마나 간절한가.

생명이여
생명이여

  이 절절한 언어와 장엄한 음악은, 노랫말과 노래가 어떻게 혼연일체가 되어 한 시대를 담고 또 넘어설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잔잔한 리듬을 따라 시작된 노래는, 뒤로 갈수록 목소리의 변화를 적절하게 은유하는 물결 소리와 반전(反轉)의 아기 울음소리를 통해 생명의 탄생 과정을 섬세하게 알려준다. 그 생명의 동선을 따라가는 조용필의 보컬이 시대의 정점이자 바닥에 가 닿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조용필의 다음과 같은 증언이 있다. 

  그것은 명백히 광주의 학살에 대한 분노를 담은 곡이다. 나는 체질적으로 정치와 거리가 멀다. 그러나 수감 중에 교도소 개구멍에서 내 노래를 듣고 이놈이 어떤 놈인지 궁금했다는 김지하 씨도 만난 적이 있고, 그런 인연 중에 내가 어머니라고 불렀던 전옥숙 여사와 같이 노래를 만들었다. <생명>은 내 나름대로의 투쟁이었다. 그러나 4집에 실린 그 노래는 몇 번에 걸쳐 수정 지시를 받아 고쳐야 했기 때문에 원본과는 거리가멀었다. (1997년 음악평론가 강헌과의 인터뷰)

  앨범이 나온 1982년은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공론의 장이 형성되지 않았던, 주류 언론에서는 여전히 ‘폭동’이나 ‘사태’로 규정하곤 했던 시절이었다.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암시되듯, 외국인 기자의 진상 취재 필름이 간헐적으로 대학가를 중심으로 돌기도 했고, 비공식적 유인물로 사건의 편린이 전달되곤 하던 때였다. 조용필은 광주의 진실을 전해 듣고는 자신의 음악 안으로 분노를 끌어들여 노래로 불렀다. 노랫말을 쓴 전옥숙과 함께 가사를 다듬으면서 말이다. 당시 공연윤리위원회의 반려로 인해 전옥숙이 가사를 대폭 수정할 수밖에 없었지만, 여전히 <생명>은, 비록 당시에는 뜻을 알기 어려웠지만, 지금 바라보면 너무도 선명한 메시지와 음악적 리듬을 가진 조용필 노래의 놀라운 핵심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던 셈이다. <못 찾겠다 꾀꼬리>에 이어지는 <생명>은, 그렇게 유년 시절의 잃어버린 동화(童話)에서, 숨죽인 묵시록으로 이어졌다가, 다시 생명 탄생의 환희를 열어젖히는 힘을 담고 있었다.

  그녀의 다른 노래 <1987 서울>
  
전옥숙(全玉淑, 1929~2015)은 영화 제작자였다. 영화감독 홍상수의 어머니로도 유명한 그녀는 출판계, 영화계, 방송계 등 걸친 광폭의 활동으로 대중문화계 전설로 불리었다. 대학 시절 연극을 했고, 1960년 《주간영화》 발행인으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1963년 우리 나라 첫 영화 제작 스튜디오인 ‘은세계영화제작소’를 차렸고, 첫 영화 <부부 전쟁>(1964)에 이어 소록도에서 생활하며 남편의 한센병을 완치시킨 김숙향의 실화를 그린 <그대 옆에 가련다>(1966)를 제작하여 남성 중심이던 영화계에서 여성 영화인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1984년 우리 나라 최초로 외주 제작사 ‘시네텔서울’을 설립하여 <베스트셀러극장>등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했으며, 1991년 한국방송아카데미를 열어 방송인 양성에도 힘썼다. 2000년대 이후에는 대중에 노출된 적이 거의 없던 그녀는 최근 타계하였다.
  그녀가 조용필에게 준 노랫말이 또 하나 있는데, 그것이 <서울 1987>이다. 1988년 5월에 나온 조용필 10집에 실린 발라드 곡이다. 작년에 상영된 영화 <1987>은 민주화운동이 정점을 이룬 1987년 6월 항쟁을 전후하여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해나갔는가를 보여준 탁월한 작품이었는데, 조용필은 이미 30년 전에 그 ‘1987’을 다음과 같이 너무도 분명하게 호명한 것이다. 

바람이여 분다
혼들의 함성이 울렸네
사람들아
산고의 고통 우리 알았네
비바람 몰려오는구나
먹구름 안고
검푸른 바다 노도에 우네
싹들은 소리 내
그 꽃을 재촉을 하구나
계절은 그녀의 가슴을
앓게 했네
하늘도 울고 땅도 울고
우리 우네
비야 비야 멈추어다오
바람이여 멈추어다오

바람이여 분다
혼들의 합창이 들린다
사람들아
산고의 고통 씻겨 나가네
비바람 불어오는구나
희망을 싣고
영원의 바다 눈앞에 있네
잎들은 푸르러
그 꽃은 색깔을 품었네
수줍은 그녀의 가슴이
설레인다
달님도 웃고 별님도 웃고
우리 웃네
비야 비야 멈추어다오
바람이여 멈추어다오

비가 내려 대지는 숨쉬고
바람이 불어 꽃씨는 뿌려졌네

비가 내려 대지는 숨쉬고
바람이 불어 꽃씨는 뿌려졌네

  시상의 전개는 <생명>과 그대로 닮았다. “애타는 저 바다”나 “납색의 구름” 같은, ‘비바람’과 ‘먹구름’, ‘검푸른 파다’의 울음이 “산고의 고통”처럼 다가온다. “혼들의 함성”이 울리고 싹들은 소리 내어 꽃을 재촉하고 하늘도 땅도 우리도 모두 울음의 식솔이 된다. 이러한 고통과 울음의 근원인 비와 바람더러 멈추어달라는 희구가 간절하다. 그러다가 “혼들의 함성”은 “혼들의 합창”이 되어 들려오고 “산고의 고통”은 씻겨 나간다. 그때 불어오는 ‘비바람’은 이제 고통만을 담지 않고 “희망을 싣고/영원의 바다 눈 앞에” 그리게 하는 약동의 힘을 새롭게 가진다. 이제 잎들은 푸르고 꽃은 색깔을 품는다. 사람들의 앓던 가슴도 새롭게 설레고, 달님도 별님도 우리도 모두 웃음의 가계(家系)를 이루어간다. 여기서 “달님/별님”은, <생명>에서도, 새로운 물결을 타며 생명 탄생을 가능케 했던 샤먼(shaman)이 아닌가. 여기서도 달님과 별님의 웃음으로 우리는 “비가 내려 대지는 숨쉬고/바람이 불어 꽃씨는 뿌려”진 세상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우주와 인간이 서로 통하고 대지와 꽃들이 화창(和唱)하는 ‘서울 1987’이 보여준 ‘숨쉼’의 순간을, 조용필은 정확한 가사 전달력에 얹어 자신만의 리듬과 선율로 재현한 것이다. 애기가 ‘달님’과 ‘별님’ 안고 물결을 타던 <생명>과, 비와 바람이 새로운 꽃씨를 탄생시키던 <서울 1987>은, 이렇게 전옥숙의 손에서 비롯하였다. 1980과 1987, 항쟁과 항쟁의 순간을 이어붙인 장대한 저항의 노래들이었다. 말할 것도 없이 노래의 최종 텍스트는, 작곡자이자 가수인 조용필 자신이었다. 

ⓒYPC프로덕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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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극으로서의 노래, 조용필의 노래
  
밥 딜런으로 돌아가 본다. 이들을 생각할 때, 우리는 노래의 음악적 요소를 제거한 채 노랫말만을 분석하는 독법(讀法)이 금세 한계를 드러낸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된다. 그들은 끊임없이 장르와 창법을 바꾸어가며 노래를 불러왔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들의 노랫말만을 보더라도 우리는 “노래=시”임을 투명하게 알 수 있다. 우리는 그들의 노래를 통해, 시의 감수성과 음악의 감수성이 하나가 되는 놀라운 장면을
목도하니까 말이다. 그리고 “음악은 고통 받는 개별적인 것들을 구원할 뿐 아니라 삶이 자기 자신을 구원하는 방식이기까지 하다.”(니체, 『비극의 탄생』)라는 한 철학자의 말을 거듭 되새기게 된다. 조용필의 두 작품은 음악의 정신이 곧 디오니소스의 원리에 의해 구현되고 도취 속에서 아폴론적 한계선을 넘도록 유혹한다는 이 철학자의 정언을 충족하면서도, “음악 없는 삶은 하나의 오류(Ohne Musik wäre das Leben ein Irrtum)”라는 점을 분명히 알려주지않는가.
  우리는 상징적이고도 심미적인 시대극으로서의 노래를 조용필의 중요한 핵심으로 이토록 선명하게 만나게 된다. 조용필 노래를 통해 그렇게 어두웠던한 시대를 축제처럼, 율동처럼, 간절한 기도처럼, 통과해올 수 있었던 것이다.

유성호
1964년 경기 여주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국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서울신문》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으로 등단하여 한국 문단의 주요한 비평가로 활동해왔다. 저서로 『상징의 숲을 가로질러』 『침묵의 파문』 『정격과 역진의 정형 미학』 등이 있다. 김달진문학상, 편운문학상, 팔봉비평문학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대중서사학회 회장을 지냈다. 현재 본지 주간으로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이다

 

 

* 《쿨투라》 2018년 11월호(통권 5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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