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 이무영 시나리오] 미스테리오소 6회(마지막 회)
[박찬욱 · 이무영 시나리오] 미스테리오소 6회(마지막 회)
  • 박찬욱(각본) · 이무영(각본, 감독)
  • 승인 2019.02.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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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호텔 뒷문
  멀리 바다가 보이고, 이훈과 수영이 회전문을 열고 들어온다. 라운지쪽에서 여가수가 부르는 <Swing Low, Sweet Chariot>이 구슬프게 들린다.


수영
…옷 좀 갈아입고 올게요.

  미소 지으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사라지는 수영. 라운지 바로 향하는 이훈.

122. 라운지
  여가수의 노래 <Swing Low, Sweet Chariot>이 계속 흐른다. 몽구와 수영이 노피아니스트를 만났던 곳과 동일하다. 이훈, 편안한 소파를 발견하고 가서 앉는다.

123. 8층 복도
  엘리베이터 열리고 수영 내린다.

124. 라운지
  잠시 생각에 잠기는 이훈, 윗주머니에서 반지케이스를 꺼내 열어본다.

125. 객실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은 수영.

126. 라운지
  웨이트리스, 다가온다.

웨이트리스
(메뉴를 내밀며)
안녕하세요.

127. 객실
  수영, 블라우스 단추를 다 채운 후 나가려다가 문득 창가를 본다. 열린 문틈 사이로 불어드는 바닷바람으로 인해 커튼이 휘날린다. 생각에 잠기는 수영.
  회상 인서트 -
  예전에 함께 여행 왔던 몽구가 물끄러미 바다를 내려다보는 뒷모습. 여전히 열린 문틈 사이로 불어드는 바닷바람으로 인해 커튼이 휘날린다. 뒤를 돌아보며 수영을 향해 환하게 웃는 몽구. 추억의 감흥에 서글픈 미소를 짓는 수영, 나가려 하는데 휴대폰 벨이 울린다. 이훈임을 확인하고 빙그레 미소 짓는 수영, 휴대폰을 귀에 가져다 댄다. 

수영
(귀엽게)
금방 내려가요.

이훈
(소리)
뭐 마실래요?

  잠시 고민하는 수영.

128. 라운지
  앉은 채 전화기를 높이 쳐들어 수영 목소리를 웨이트리스에게 들려주고 있는 이훈.

수영
(소리)
…잭 다니엘! 잔 말구 병으로 시키세요!
기절할 때까지 마셔보게요!

이훈
(웃으며 웨이트리스에게)
들었죠?


  환하게 웃는 웨이트리스, 목례하고 사라진다.


이훈
그래요. 빨리 내려와요.
(웃다가 갑자기 무언가를 발견한 듯 떨리는 소리로)
…수영 씨, 여기 좀 어수선한데 어디 딴 데 가서 마시죠.
아니, 내 방에서 마실까요?

수영
(소리)
그래요, 그럼.
방에선 바다도 더 잘 보이니까, 올라오세요.

이훈
예!
(일어서려다 멈추며 굳은 표정으로)
아니… 수영씨, 그냥 여기서 마시죠.

수영
(소리, 농담조로)
아니, 왜 자꾸 이랬다저랬다 그래요?

이훈
(둘러대며)
…그게, 그러니까… 노래 부르는 여자가 눈부시게 예뻐서요. 

  농담과 달리 여전히 굳은 표정의 이훈, 계속 한곳을 뚫어지게 본다.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여인, 자세히 보면 수영의 전시회에 나타났던 치렁대는 곱슬머리의 여인이다. 드레스를 입은 모습, 역시 눈 부시게 예쁘다. 그녀의 옆에서 선글라스를 낀 피아니스트가 편안한 느낌으로 연주중이다. 몽구다.

129. 객실
  방을 나가려 가방을 챙기는 수영.

수영
(웃으며)
아니, 이제 그런 썰렁한 농담도 할 줄 아세요?

130. 라운지
  휴대폰은 귀에 댄 채 씁쓸하게 웃는 이훈, 어두운 표정이다. 여인이 노래를 끝내자 몽구가 멋지게 연주를 마무리한다. 여인이 손님들에게 인사한다.

여인
(환환 표정으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한 밤 되세요!

  손님들이 다시 박수를 친다. 환한 표정으로 인사를 마치는 여인, 몽구에게 다가가 팔짱을 낀다. 여인의 부축을 받으며 움직이기 시작하는 몽구,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아 시각 장애인임을 알 수 있다. 몽구, 밝은 의상에 나비넥타이 차림인데, 가슴에 검은 리본을 달고 있다. 멀리서 지켜보는 이훈, 자기 방향으로 여인과 함께 다가오는 몽구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수영의 소리가 휴대폰 송수화기를 통해 들린다. 

수영
(소리만)
그렇게 예쁘면, 그 여자랑 마셔요.
(웃다가)
…지금 내려가고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요.

이훈
(수영이 전화를 끊으려하자 다급하게)
저기… 끊지 말아요, 수영씨!
…끊지 마요.
(몽구가 자신 곁으로 지나가려하자, 전화기를 귀에 댄 채 담담하게)
…몽구 씨, 오랜만이에요.


  이훈의 목소리에 몽구가 당황한 듯 잠시 얼어붙는다.

131. 8층 복도
  전화기를 귀에 댄 채 문을 열고 나오다가 얼어붙은 수영.
 

몽구
(소리, 반갑게)
…안녕하세요, 이 선생님.
정말 오랜만이네요.

132. 라운지
  몽구, 손으로 더듬어 위치를 확인한 후 맞은편에 앉는다. 여인이 뒤따라 앉는다. 잘 들리게끔 휴대폰을 몽구 쪽으로 슬며시 미는 이훈

이훈
연주 잘 들었어요.

몽구
…고맙습니다.
(레이 찰스처럼 환히 웃으며)
…요즘은 제 피아노 솜씨가 진짜 만족스러워요.
(여인에게)
최선생님, 인사하세요!
(몽구의 말에 놀라 경악하는 이훈을 향해)
기억 안 나세요, 수영이 각막이식 수술해 주신 분?

  여인이 가발을 벗으면 수영의 안과의사이며 몽구에게 노래를 배웠던 최선생임이 드러난다.

여인/안과의사
(가발을 벗으며 이훈을 향해)
안녕하세요!
전시회에서 뵀어요. 여전히 멋있으시던데요!
…가발을 써서 못 알아보셨나 보다!
수영 씨도 몰라보더라고요!

이훈
(떨리는 소리로)
…어찌된 일이죠?

133. 8층 엘리베이터 앞
  엘리베이터가 더디게 작동한다. 발을 동동 구르는 상기된 얼굴의 수영, 여전히 휴대폰을 귀에 대고 있다. 

몽구
(소리만)
…최선생님은 저한테 노랠 배우던 제자였어요.
순진한 의사선생님을 제가 이 일에 끌어들인 거죠.

여인/안과의사
(소리만)
몽크님이 각막을 수영 씨한테 주겠다고 했을 때 미쳤다고 생각했어요.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도 산 채로 각막 두 개를 다 준다는 건, 아
직까지 한 번도 사례가 없는 일이거든요.
그래서…

134. 라운지
  몽구와 이훈, 여인이 대화 중이다.

여인/안과의사
…의사로서 욕심에 한 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어서 일을 꾸몄지요.
근데 결국 몽구씨가 이렇게 된 걸 보면 정말 죄책감이…

몽구
(여인의 말을 막으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럴 필요 없다니까요!
…지금까지 저한테 해주신 게 얼만데…

여인/안과의사
(이훈을 향해)
…그래서 조금이라도 죄책감을 덜려고, 몽크님 후원자가 된 거죠.

135. 엘리베이터 안
  엘리베이터가 8층에 서자 수영이 서둘러 탄다. 닫히는 문.

여인/안과의사
(소리만)
…서울 병원 다 정리하고 여기 시골에 안과를 차렸어요.
(밝게 웃으며)
…밤에는 여기서 노래하고 있고요.

이훈
(소리만, 몽구를 향해)
부동액 마셨잖아요? 근데 살아있다고요?

몽구
(소리만)
역시 이 선생님은 순진하다니까!
입에서 거품 나오니까 속아 넘어가신 거죠.
(껄껄 웃은 후)
…그거 부동액이 아니라 빵 만들 때 쓰는 베이킹파우더예요.


  몽구가 껄껄 웃는 소리가 들린다.

136. 라운지
  셋이 대화 중이다.

몽구
(소리만)
이번에 수영이가 전체적으로 어둔 색을 많이 썼던데,
제 생각엔 옛날처럼 밝은 색을 많이 썼으면 좋겠어요.


  몽구, 마치 자신이 그림을 보고 있기라도 한 듯 흥분된 모습이다.

137. 엘리베이터 앞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사람들 속에서 수영이 빠져 나온다. 여전이 휴대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들으며 서둘러 움직이는 수영.

몽구
(소리만, 웃으며)
근데 그 바닷가에 달랑 신발 두 짝 있는 그림,
…그거 꽤나 감동적이었던 거 같아요.

  수영의 눈에서 한 줄기 눈물이 흐른다.

138. 라운지
  셋이 대화 중이다. 웨이트리스가 술과 잔들을 놓고 있다.

이훈
…같이 왔어요. 만나볼래요?

몽구
(미소 지으며)
그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그러지 않는 게 좋을 거 같네요.
(뭔가 생각난 듯)
수영이한텐 뭐라고 하셨어요?

이훈
(잠시 생각하다가)
…시신기증자에게서 받았다고 말했어요.

몽구
(소리만)
고마워요.
그래요. 걔는 단순해서 남이 하는 말 다 믿어요.

몽구
…근데 여기 온 걸 보니, 혹시 결혼하시는 건 아닌가요?
그렇다면 축하드려요.

이훈
(테이블 위에 놓인 케이스 속의 반지를 슬쩍 보며)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저를 그냥 수영 씨 후견인 정도로만 생각해 달라고…
(피식 웃는 몽구를 향해)
…만나봐요.
그러고 싶잖아요?

몽구
(고개를 저으며)
아뇨.
만나면 폼이 안 날 거 같네요.

  몽구가 일어서면 에스메랄다, 부축한다. 측면에서 다가오는 수영이 보인다. 몽구와 여인 모두 수영의 모습을 보지 못한다. 서서히 다가오는 수영,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참으려하나 하염없이 눈물이 떨어진다.

몽구
…부탁이 있어요.
(나지막이)
…날 만났다고 말하지 마세요.
…걘 바보라서 제가 이렇게 된 거 알면 평생 괴로워 할 거예요.
(잠시 생각하다가)
…내일 아침 일어나시는 대로 떠나세요. 그리고 다신 오지 마세요.
어렵게 구한 일자린데, 잃고 싶지 않거든요. 그럼…
(말없이 목례한 후)
…가십시다, 최선생님!

이훈
…몽구 씨!

  침통한 표정의 이훈. 이미 테이블 옆에 와있는 수영, 테이블에서 물러나는 두 사람과 스친다. 여전히 여인은 수영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한다. 멀어지는 몽구의 뒷모습을 보며 애써 울음을 참던 수영이 소리를 내며 흐느낀다.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잠시 머뭇거리다 계속 발걸음을 옮기는 몽구, 여인의 부축을 받으며 멀어진다.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멍하니 있는 이훈. 회전문을 통과한 후 사라지는 몽구를 바라보는 수영, 더욱 큰 소리로 운다. 서서히 페이드아웃.

139. 호텔현관 앞
  버스 문이 열리면 몽구와 여인이 맨앞에, 그리고 뒤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여인
(버스에 오르는 몽구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내일 봐요!

  미소를 지으며 버스에 오르는 몽구. 이어서 다른 사람들이 탄다. 멀어지는 여인.

운전기사
(미소 지으며)
…늦었네.
저녁은 먹었는가?

몽구
(맨 지팡이로 바닥을 살피며)
…집에 가서 라면 끓여 먹을라구요.

  운전기사 어깨 너머로 보이는 몽구, 타는 승객들의 몸에 가려보였다 안 보였다 한다. 움직이기 시작하는 버스. 

140. 버스 안
  휴양지야경 속을 달리는 버스. 상념에 잠긴 몽구의 고개가 창가에 머문다. 문득 옆 좌석으로 고개를 돌리는 몽구의 시선을 따라 카메라가 이동하면, 수영이 앉아있다. 수영, 한동안 말없이 몽구를 뚫어지게 본다.

수영
(나지막이)
..자기 전에 라면 먹지 마라.
살찐다.

몽구
(일부러 퉁명스럽게)
너나 조심해라!

수영
(놀라 얼어붙는 몽구를 보며)
…어디 아픈 데는 없어?
(얼굴을 만지며)
…괜찮아?

몽구
(멍하니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대답 대신)
…잘 보이니?

  감정이 복받쳐 올라 몽구가 시각 장애인인 것을 잊은 채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수영, 곧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몽구의 손을 자신의 뺨에 댄 후 고개를 강하게 끄덕인다. 몽구의 선글라스 밑으로 한 줄기 눈물이 흐른다.

수영
(또 한참 말이 없다가)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몽구
나, 피아노 실력 많이 늘었다.
앞이 안 보이니까 더 잘 집중되더라고!
(손으로 수영의 뺨을 어루만지다가 화장품 냄새를 맡으며)
…냄새 좋은데!
근데, 너 원래 화장같은 거 거의 안 했잖아.

수영
…그래, 나 많이 변했어.
(한참 말 없다가)
…보고 싶었어.

몽구
(역시 한참 말이 없다가)
…그럼 나도 똑같이 보고싶었다고 말해야 되는 건가?

수영
(울컥 감정이 복받쳐)
…난 니 신발 두 짝 보고, 정말 물에 빠져 죽은 줄 알았어.

몽구
(빙그레 미소 지으며)
…그렇게 해야 니가 날 포기하고 파리 갈 거 아냐!
그래서 그런 거야!

수영
(계속 울먹이며)
…니 장례식 때 내 심정이 어땠는지 알아?
죽고 싶었어, 정말.

몽구
…그래두 파리는 갔드만?

수영
(어이가 없다는 듯 발끈해서)
니가 죽은 줄 알았으니까 갔지!

몽구
잘 했어!
…내가 왜 그랬겠니? 다 너 잘 되라고 그런 거지!
(잠시 생각하다가)
…나도 너, 보고싶었어! 근데, 안 보이잖아!
(자기 말이 웃기지 않느냐는 듯 싹 웃은 후)
…내 가방 좀 열어봐봐!
몽구의 말에 수영이 천천히 몽구의 가방 지퍼를 연다. 그 안에 뗄로
녀스 몽크의 58년 LP앨범 <Misterioso>가 들어있다. 감격하는 수영.

수영
(울컥해서)
다시 만나면 주려고 사 놓은 거야?

몽구
(투정부리듯)
다시 구입하는 데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니?
…한 번만 더 박살내면 다신 안 사준다!


  수영, 말을 잇지 못한 채 그저 몽구의 얼굴을 어루만질 뿐이다.


수영
(끌어안으며)
…고마워, 살아 있어줘서!

몽구
(한참 있다가 나지막이)
…근데, 나 아직도 개털이다.

수영
(눈물을 흘리며)
괜찮아!
…이제 내가 부자니까!


몽구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부비는 수영. 버스, 점차 멀어지다가
거의 점으로 보인다. 서서히 페이드아웃.


몽구
(암전 상태로 소리만, 수영에게 다정하게)
…우리 집에 가서 라면 끓여 먹자!


암전 상태에서 파도 소리가 들리며 자막이 오르기 시작한다.

141. 동해안(에필로그)
  서서히 페이드인. 파도가 밀려오는 평화로운 풍경. 자막이 계속 오른다. (끝)

 

 

* 《쿨투라》 2019년 2월호(통권 5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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