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 에세이] ‘관종’에게 해주고 싶은 말
[사회문화 에세이] ‘관종’에게 해주고 싶은 말
  • 설규주 (경인교대 교수)
  • 승인 2019.03.25 09: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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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빙판길을 걷다가 미끄러지거나, 계단을 오르내리다가 발을 헛디뎌 넘어진 경험이 누구나 한두 번쯤은 있 을 것이다. 그럴 때면 사람들은 대부분 아무 일도 없었 던 것처럼 재빨리 일어난다. 사실은 엉덩이가 욱신거리고 발목이 쑤시지만 그런 아픔 따위야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안 아파서 얼른 일어나는 게 아니라 창피해서, 주목받는 게 싫어서 벌떡 일어나는 것이다. 조금만 늦게 일어나면 지나가는 사람에게서 “괜찮아요?”라는 말이라도 날아올까봐. 나중에 집에 가서 아픈 부분에 파스라도 한 장 붙일지언정, 넘어진 현장에서는 훌훌 털고 원래 가던 길을 간다. 행여 아는 사람이라도 있을까봐 주변을 돌아보지도 않고.

 일상생활에서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우리는 이렇게 누군가의 관심, 특히 불특정 다수의 주목을 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건 불편하고 피곤한 일이다. 나 쁜 일로는 두말할 것도 없고 설사 좋은 일이라도 타인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는 것 자체는 좀 부담스럽다.

 정치인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정치인은 언론에 자신의 이름이 오르내리지 않아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질까봐 두려워한다는 말도 있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언론에 자주 노출되고 싶어 하고, 꼭 기성언론이 아니더라도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과 같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도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 애쓴다.

 그런 정치인이 어디 한둘일까. 그러다 보니 자신을 알리기 위한 경쟁도 만만치 않다. 예를들어, 국정감사나 청문회에서 이른바 ‘사이다 발언’으로 시민의 속을 시원하게 풀어주거나 시민의 일상을 조금이나마 행복하게 해주는 법안 통과를 주도하면서 존재감을 뿜어내는 정치인도 적지 않다.

 그런데 그보다는 ‘막말 배틀battle’, ‘아무말 대잔치’를 통해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는 길을 택하는 정치인이 훨씬 많다. 그런 방법은 참 쉽다.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법안 통과를 위한 준비와 같은 수고를 무릅써야 하는 것도 아니다. 방송 카메라가 돌아갈 때 마이크를 잡고서 반대편 진영에 있는 정치인들을 향해 그저 좀 ‘쎄다’ 싶은 막말 한두마디 던지면 된다. 그것도 어려우면 자신의 소셜 미디어 계정에 몇 줄 남기면 된 다. 단, 혐오나 비하, 조롱 등이 섞인 막말 한두 개쯤은 빼놓지 말아야 한다.

 막말은 언론의 좋은(?) 기삿감이 되곤 한다. 원래도 그랬지만 특히 요즘 언론은 자극적인 소재를 참 좋아한다. 정치인이 내뱉은 막말을 따옴표 처리한 제목에 ‘논 란’이나 ‘파문’이라는 단어를 하나 추가하고서 그 막말에 대한 반응이나 댓글 몇개를 소개하는 정도의 별내용도 없는 인터넷판 기사 수십 개를 뚝딱 생산해 낸다. 그렇게 손쉽게 정치인들은 언론에 자신의 이름을 한 줄 또 올리고 사람들에게 자신을 한 번 더 각인시킨다. 미션 성공! 나쁜 일로라도 일단 대중의 관심을 받고 대중에게 기억되어야 살 수 있는 게 정치인이니까.

 ‘막말 정치인’이라는 딱지가 붙기도 하지만, 그런 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자기 혼자만 막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조금 있으면 더 높은 수위의 막말이 다른 누군가를 통해 튀어나올 것이고, 무엇보다도 대부분의 시민들은 다음 선거가 되면 막말 같은 건 잊어버릴 테니까.

 이런 실정이다 보니 막말로 인한 상처와 부끄러움은 오롯이 시민의 몫으로 남는다. 겨우 막말이나 우격다짐 따위로 대중의 관심을 받아먹고 사는 정치인이 여전히 창궐해 있고, 그런 정치인을 ‘용기’나 ‘소신’ 등의 단어로 포장하고 키워 주며 공생 관계를 유지하는 언론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현실이 참 아프고 창피하다.

 요즘은 학교에서 주최한 토론 대회에 참가한 중학생 들의 입론이나 논박 수준도 얼마나 높은지, 참가자들의 토론을 보고 있노라면 혀를 내두를 정도다. 나라를 대표하고 지역을 대표한다고 자부하며 호통치기 좋아하는 일부 국회의원, 지방의원, 단체장 등의 발언이나 행동 수준은 결코 그 중학생들을 넘지 못한다. 사실 이런 평가는 해당 정치인에 대한 모독이 아니라 오히려 해당 중학생에 대한 모욕이 아닐까 싶어 오히려 조심스럽다.

 요즘 신조어 중에 ‘관종’이라는 말이 있다. ‘관심 종자’의 줄임말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이상하거나 무리한 말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종자’라는 말이 사람의 혈통을 낮춰부르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는 점에서 좋은 표현은 아니지만, 오늘날 사람들이 살아 가는 모습의 한 단면을 표현해 낸다는 점에서는 나름 쓸모가 있다.

 막말 정치인이야말로 ‘관종’의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 크든 작든 타인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다. 정치인이라면 그런 욕구가 보통 사람들보다 압도적으로 클 것이다. 그건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 다만, 그 욕구를 충족하는 방법이 좀 상식적이었으면 좋 겠다. 아주 높은 수준의 합리성이나 정중함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사람들의 눈과 귀를 닫아 버리고 싶 게 만드는 막말이나 호통, 우격다짐 같은 저질 행태만이라도 좀 줄여주면 좋겠다.

 서구에서 많이 인용되는 경구 중에 “유명해지려고 애쓰기보다는 유명해질 만한 가치를 갖도록 노력하라 (Seek to be worth knowing rather than be well known)”라 는 말이 있다. 이 말을 ‘관종’ 정치인들에게 건네주며 한 마디 보태고 싶다. 관심받고 싶어서 안달하다가 무리수를 두는 ‘관심 종자’ 노릇은 이제 그만 하고, 참 정치인이 라면 진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에 ‘관심을 주는 자’가 좀 되어 보라고. 그러면 유명해지려고 애쓰지 않아도 유명함이 따라올 거라고. 시민에게도 아픔과 창피함 대신 편안함과 자랑스러움을 안겨 줄 수 있을 거라고.

 

 

* 《쿨투라》 2019년 2월호(통권 5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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