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탐방] 문인화의 백미白眉, 그림에 사로잡힌 영혼: 이천시립월전미술관 & 장우성 화가
[미술관 탐방] 문인화의 백미白眉, 그림에 사로잡힌 영혼: 이천시립월전미술관 & 장우성 화가
  • 김명해(화가, 본지 객원기자)
  • 승인 2022.07.04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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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실, 1943, 삼성 리움

  ‘이천쌀’과 ‘도자기축제’가 유명하다는 것 외엔 별로 아는 것이 없는 경기도 이천시는 처음 방문하는 곳이다. 〈이천시〉 홈피를 방문하니 이천시는 ‘대한민국 대표 도자문화도시이자 공예 및 민속예술 분야의 유네스코 창의도시’로 문화관광이 발달된 도시였다. T-map에 ‘이천시립월전미술관’을 목적지로 입력하고 고속도로를 달렸다. 「미술관 탐방」을 위해 전국을 오가며 매번 느끼는 점이지만, 오늘날 우리나라는 고속도로가 많이 생겨나 어느 곳을 가도 자동차로 서너 시간이면 당일치기가 가능한 우리의 도로망 체계에 늘 감탄한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푸름이 너무나 왕성하여 초록과 하늘빛의 자연에 눈이 정화되는 듯하다.

  월전月田 장우성張遇聖(1912-2005) 화가는 한국화의 새로운 형식과 방향을 모색하여 우리 화단을 이끈 20세기 대표적인 작가이다. 그는 동양 고유의 정신과 격조를 계승하며 현대적 조형기법으로 승화시켜 현대한국미술의 형성과 발전에 절대적인 역할을 하였다.

  또한, 생전에 한국화단을 위해 사재를 사회에 환원하는 뜻을 세우고 대표 작품과 평생 모은 국내외 고미술품 전부를 재단에 기증하여 1991년 서울시 종로구 팔판동에 ‘월전미술관 한벽원寒碧園’을 개관하였다. 2005년 월전 선생님 서거 후, 미술관 규모와 역량을 확충하고 공익적 성격을 더욱 분명히 하고자 2007년 6월 월전미술관 소장품 1,532점을 기증받아 경기도 이천시 설봉산 자락에 ‘이천시립월전미술관’으로 새롭게 개관하였다고 한다.

  미술관 주변은 학의 날갯짓을 모티브로 상징화한 미술관 진입로와 화가의 아호인 달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원형광장과 5개의 전시실로 이루어진 2층 규모의 미술관, 월전화가 생전의 작업실을 재현한 기념관 등의 시설이 있다.

  현재 전시는 월전 탄생 110주년을 맞아 그의 작품 세계의 핵심에 해당되는 동물 그림 70여 점을 집중 조명하는 ‘월전우화月田寓話’라는 주제로 전시를 시행하고 있다. ‘월전우화’는 월전의 동물화 전모를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1930년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그의 오랜 작품세계의 변화와 특징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붓과 먹 그리고 색을 통해서 탄생한 다양한 동물들을 만날 수 있는 즐거운 시각탐험의 기회이기도 하다.

월전 장우성 작업사진
월전 장우성 작업사진

  필자는 ‘월전 장우성’ 화가를 이당 김은호(1892~1979)의 제자로 스승으로부터 채색 공필화법을 배워 세밀한 필치에 진한 채색의 인물화와 화조화를 주로 그린 화가로 기억하며, 그의 초기작품인 〈승무도〉(1937), 〈푸른 전복〉(1941), 〈화실〉(1943)은 예전 중·고미술교과서에 수록되어 우리나라 근대기 대표적 채색인물화가로 배웠던 기억이 난다.

  최근에는 스승인 김은호, 친구인 운보 김기창(1913-2001)과 함께 친일화가로 알려지면서 난감한 상황에 처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해방이후에 그는 새롭게 문인화의 세계를 지향하면서 수묵담채화를 통해 동양정신의 작품세계를 구축하여 전통 문인화의 높고 깊은 세계를 내·외적으로 일치시킨 경지에 이른 현대 화단의 마지막 문인화가로 평가 받는다.

  문학, 그림, 글씨라는 세 가지 장르를 한 화폭 안에 담아내는 형식, 활달한 선과 여백의 효과를 중시한 점 등에서는 전통을 계승하는 모습이 뚜렷하다. 한편 사실성과 장식성을 강화한 표현방식과 현대사회의 모순이라는 주제를 다룬 점은 과거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것이다. 이처럼 전통미술의 여유로움과 지적인 측면, 현대미술이 시각성과 장식성이 융합된 것이 월전 작품의 독특한 매력이자 특징이다. 이러한 월전의 작품세계에 있어서 현재전시중인 영모翎毛화, 즉 동물그림은 핵심적인 장르로 화가의 필치와 미적 감각, 예술에 임하는 자세와 정신성을 모두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미술관 내부
미술관 내부

  1층 1·2전시실에는 소, 사슴, 양, 침팬지, 고양이, 갈매기, 부엉이 등 각 동물의 특징이 잘 드러나게끔 표현한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다. 열 폭의 화조화가 그려진 병풍 그림 〈화조십곡병花鳥十曲屛〉(1933), 목동이 누렁소와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그린 〈귀목歸牧〉(1935), 두 마리의 갈매기를 사실적으로 그린 〈조춘早春〉(1935), 푸른 초원에 산양 떼를 그린 〈고원高原〉(1975), 사슴무리를 그린 〈군록群綠〉(1978) 등의 작품은 가는 선묘와 채색을 결부한 작품들로 사실성에 근거한 작품으로 보인다.

  작품 〈조춘〉에서 볼 수 있듯, 당시 월전 화가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사실적인 묘사를 위해 몇 차례 동물원에 방문하여 갈매기를 스케치하기도 했다고 한다.

  갈매기는 추운 겨울에도 활동하는 새여서 엄동설한에 스케치하는데도 별 지장이 없었다. …철조망에 붙어 앉아서 갈매기의 모양도 살피고 털 색깔도 눈여겨봤지만, 그보다도 움직이는 모습을 잡느라 무진 애를 썼다. …앉았을 때, 날 때, 먹이를 쫄 때의 모습이 각각 달라 생동감 있게 표현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스케치한 작품은 수백 장에 달했다.
- 장우성, 『화맥인맥』 중에서

귀목, 1935, 국립현대미술관
귀목, 1935, 국립현대미술관

  한편 월전이 그린 동물그림 중에는 푸른 들판에서 한가롭게 노니는 동물모습도 있지만, 대부분은 동물을 의인화하여 사회 풍자적 의미를 내포한 작품도 있다. 강자强者를 피해 도망가는 사슴을 표현한 〈쫓기는 사슴〉(1979), 광우병 걸린 고씨네 누렁이를 그린 〈광우병에 걸린 황소〉(2001), 교활한 여우가 늙어서도 망상에 젖은 모습을 표현한 〈노호老狐〉(2001), 싸우는 개들을 그린 〈개들〉(1998), 고양이를 사회비판적인 시각에서 다룬 〈노묘怒猫〉(1968)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의 탐욕과 비도덕성을 강하게 시사화한 작품들이다.

  명나라 상희는 고양이와 개가 어우러진 그림을 그렸고, 서청등은 잠자는 늙은 고양이 그림을, 청나라 팔대산인은 엎드린 고양이 그림을, 신라산인은 나비를 낚아채는 고양이 그림을, 심전은 여러 마리 고양이가 장난하는 그림을, 우리나라 변상벽은 노는 고양이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성난 고양이를 그린 이는 찾아보기 어렵다. 고양이의 짐승 됨은 사납고 날랜 기상과 도둑질하는 놈을 내쫓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나는 오늘 몽당붓으로 성난 고양이 그림을 시도해 보았다. 변변치는 않지만 벽에 걸었는데 나는 이 고양이가 한번 외쳐대면 아마 세간의 일체의 도둑 쥐 같은 모리배들이 다 물러가리라고 여긴다.
- 장우성, 〈노묘-성난 고양이〉 화제畵題에서 발췌

군록, 1978, 150x375, 종이에 채색, 고려대학교박물관
군록, 1978, 150x375, 종이에 채색, 고려대학교박물관

  그의 그림과 화제는 동물에 빗대어 인간사회의 비열함과 천박함, 온갖 부정부패가 팽배한 서글픈 세태를 통렬하게 비판하는 화가의 의도가 담긴 것으로, 월전의 우화寓話이고 또한 우화寓畵인 것이다.

  2층 3전시실은 ‘학’ 그림들로 모두 채워져 있다. 그만큼 월전이 가장 많이 그린 것이 학이었으니까. 그는 학이 하늘을 날고, 무리를 부르고, 구애를 하고, 울부짖고, 잠자는 모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생태의 학을 화폭에 담아왔다.

  학은 선금仙禽이라 일러왔고 또 장생의 동물이라 한다. …성큼한 다리와 눈빛 같은 몸차림에 선연鮮娟한 단정丹頂이 마음에 든다. 그리고 십리장주十里長洲 갈밭 속에 한가로운 꿈길과 낙락장송落落長松 상상上上 가지에 거침없는 자세로서 그 무심한 듯 유정한 듯 초연한 기품이 한없이 정겹다. 내가 즐겨 이 새를 그리는 이유가 바로 그 고고한 생애를 부러워하는데 있는지도 모른다.
- 장우성, 「내 작품 속의 새」, 『화실수상』 중에서

노묘, 1968, 65x85cm, 종이에 수묵, 이천시립월전미술관
노묘, 1968, 65x85cm, 종이에 수묵, 이천시립월전미술관

  솟아오른 태양과 함께 날아가는 한 무리의 학 그림은 신년 연하장에서 많이 보아왔던 그림들로 실제 원작을 보니 그 감흥이 완연 다르다. 강한 기운이 느껴지는 필선과 자유분방한 선의 흐름으로 그려진 학의 자태는 은은하게 처리한 배경색과 더불어 학의 이미지가 상서롭게 표현되어 오랫동안 수행해온 도승의 득도를 보는 듯하다.

  4전시실은 까마귀, 기러기, 원앙, 백조, 거위, 참새 등의 새 그림이 있다. 이 곳 그림들은 새의 해부학적인 특징이 잘 반영되어있을 뿐만 아니라 간결하면서도 박진감 있게 그려졌다. 즉 붓으로 세밀하고 정교하게 그린 공필화로 얻은 효과가 아니라 먹의 농담으로 점, 선, 면과 그 번짐을 이용하고, 적절히 살린 여백이 분위기를 고조시킨 작품들이다.

  특히 필자는 ‘까마귀’ 그림을 한참 관람하였다. 전체가 완전히 검은 색인 까마귀를 먹의 농담과 굵고 기운찬 필력으로 표현하여 살아 움직이는 까마귀인 마냥 생생하다. 까마귀들이 떼를 지어 울면 그 소리가 음산해서 사람들이 공포를 느끼고 귀신을 보는 새라 하지만 월전은 이 새가 흉한 일을 경계하라고 예고하는 길조라 생각하여 작품소재로 삼았다고 한다.

  월전 화가는 현재 전시중인 영모화 외에도 인물, 산수, 문인화, 추상회화, 서예 등 다양한 소재와 내용으로 작품 활동을 하였다.

  나와 월북화가 김용준이 벌인 수묵화 운동은 일제시대 채색화가 참 우리 그림이 아니라는 자성自省에서 나왔다. 묵선墨線을 살려 깊은 맛을 주는 수묵화는 한국적 동양화의 깊이를 잘 드러내 준다. 요즘 동양화가 보여주는 다양함은 반갑지만, 그림그리기에 앞서 마음 바탕이 먼저 제대로 되어야 한다는 회사후소繪事後素1 정신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장우성, 「회사후소」, 『화실수상』 중에서

노호, 2001, 46x58cm, 종이에 채색, 이천시립월전미술관
노호, 2001, 46x58cm, 종이에 채색, 이천시립월전미술관

  이글을 보면 월전 화가가 채색에서 수묵으로 그림의 방향을 바꾼 이유를 알 수 있다.

  월전은 변화감이 풍부하고 활달한 먹의 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문인화로 담백한 색채와 간결한 선묘로 대상의 핵심을 묘사하고 사실성과 표현성이 조화를 이룬 화면을 구축하였다. 또한 소재와 내용을 다양하게 확대하고, 미적 표현에 있어 현대사회의 병폐와 문제를 비판하는 작품도 과감히 표현하여 현실문제에 대한 진지한 성찰도 보여주었다. 작품 한 면에 시나 화제를 적어 작품의 의미를 극대화하고, 문인화의 이상적 경지로 여겨졌던 시서화의 융합을 추구하며 진정한 한국 미술의 창조를 촉진시키기 위해 노력한 화가였다.

  “요즘은 손끝으로 그림을 그리는 작가들이 많다. 하지만 화가란 기술이 아니라 마음으로 우주를 그리는 사람이다. 교양과 사상이 쌓여 있어야 참그림을 그릴 수 있다.”

  그의 수필과 소묘집인 『월전수상』을 읽으면서 필자도 초심으로 돌아가 마음으로 우주를 그리는 사람이 되고자 다짐해 본다.

 

 


1‘그림 그리는 일은 맑고 깨끗한 정신적 바탕이 있은 이후에 한다’라는 뜻으로, 본질이 있은 연후에 꾸밈이 있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논어論語』의 「팔일八佾」에서 유래하였다.


참고자료
이천시립월전미술관 http://www.iwoljeon.org/
장우성, 『월전수상月隨田想』, 열화당, 2011

 

 

* 《쿨투라》 2022년 7월호(통권 9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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