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형욱 작가의 와인 인문학] 뽀이약, 위대한 와인 동네
[고형욱 작가의 와인 인문학] 뽀이약, 위대한 와인 동네
  • 고형욱(와인 평론가)
  • 승인 2019.03.27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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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자천하지대본’이라 했지만, 우리나라의 농촌 현실을 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은 듯하다. 전통적인 1차 생산물에 의존하기 때문에 농가의 경제적인 여건이 풍요롭지가 않다. 자연재해로 인해 특정 곡물이나 채소가 가끔 금값이 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일시적인 현상으로 그치며, 농산물 가격 역시 그다지 비싼 편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농촌 사정이 좋아질 일이 없다. 이에 비하면 프랑스 농민들은 먹고 살기가 좋은 편이다.

자국 농산물에 대한 선호도가 높고 품질이 좋은 만큼 가격으로 인정을 해준다. 그 중에서도 포도의 가공품인 와인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산업이다. 포도 자체의 가격은 뻔하지만 와인으로 만들면 부가가치가 높아진다. 품질을 높이고 명성을 얻으면 그야말로 ‘황금 알을 낳는 거위’가 된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와인 산지는 보르도다. 그 중에서 가장 최고급 와인들이 가장 많이 생산되는 마을이 바로 뽀이약Pauillac이다. 인구는 한때 6천 명이 넘을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5천 명이 채 되지 않는다. 전체 면적은 24㎢가 조금 넘는 정도인데 그 중 12㎢ 이상이 포도밭이다. 이런 작은 마을에서 61개의 보르도 그랑 크뤼 중 거의 1/3에 가까운 18개의 그랑 크뤼가 생산된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1등급 그랑 크뤼 다섯 개 중 세 개가 뽀이약 와인이라는 점이다. 샤토 라피트 로칠드Lafite Rothschild, 라투르Latour, 무똥 로칠드Mouton Rothschild가 별 중의 별처럼 빛나는 뽀이약의 대표작들이다.

 뽀이약은 보르도의 중심을 관통하는 지롱드 강 하구에 자리를 잡고 있다. 자그마한 포구가 있는 마을 중심가를 제외하면 강을 따라서 포도원들이 늘어서있다. 강을 따라 흘러 내려온 자갈이 많은 게 이 동네의 특징이다. 작은 자갈들이 많은 포도밭은 어느 지역보다도 배수가 잘 된다. 그러다 보니 포도나무 뿌리들이 물을 찾아 땅속 깊숙이 파고들어간다.

대지의 다양한 성분들을 흡수하면서 복합적인 맛이 풍부한 와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뽀이약 와인들은 흔히 강건함의 대명사로 불린다. 풀바디의 묵직함, 중후한 느낌, 강력한 향기가 두루 어우러진다. 카베르네 소비뇽 품종의 특징과 장점들을 한꺼번에 드러낸다. 그래서 보르도 와인은 장기 숙성을 시킬 수 있는 잠재력이 뛰어나며 오랫동안 보관하다 마셨을 때 훨씬 더 아름다운 풍모를 보여준다.

 포도밭이 늘어선 뽀이약의 전원 사이에 바쥬Bages 라는 작은 동네가 있다. 여기에는 자그마한 카페와 식당, 식료품 가게들이 들어선 예쁜 타운도 조성되어 있다. 동네 이름을 붙인 샤토 린쉬 바주Lynch Bages, 크루아제 바주Croizet Bages 같은 그랑 크뤼 와인들이 생산되며, 부티크 호텔과 미슐랭 원 스타 레스토랑을 겸하고 있는 코르데이앙 바주Cordeillan Bages도 동네 명소이다.

 린쉬 바주의 소유주인 장 미셸 카즈와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있다. 세상의 모든 와인 생산자들은 자기 와인에 대한 칭찬이라면 입을 멈출 줄 모른다. 더군다나 린쉬 바주는 등급에 비하면 최고의 퀄리티를 보장하는 뽀이약의 대표 와인이다. 소믈리에는 장 미셸 카즈가 들고 온 올드 빈티지 린쉬 바주를 준비해 두었다. 그는 메인 디시로 양고기 스테이크를 권유했다. 확실히 양고기는 강건한 와인과 잘 어울리는 음식이다. 그런데 이유가 더 있었다.

 흔히 해풍을 맞은 곳의 나물이 맛있다고 한다. 와인과 더불어 뽀이약을 대표하는 게 양고기다. 해마다 뽀이약에서는 양 축제도 열린다. 대서양의 바람을 맞은 풀을 먹고 자란 뽀이약 양은 프랑스에서도 진미로 알려져 있다. 묵직한 와인과 듬직하고 기름진 양고기 스테이크는 최고의 마리아주로 친다. 지롱드 강 하구를 바라보며 한가한 마을에 앉아 즐기는 저녁식사. 아마도 여유와 풍요를 동시에 즐기는 행복한 여행이 될 것이다.

 

 

* 《쿨투라》 2019년 4월호(통권 5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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