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탐방] 숲에 들어선 예술정원, 꿈의 낙원: 칠곡 가산수피아미술관
[미술관 탐방] 숲에 들어선 예술정원, 꿈의 낙원: 칠곡 가산수피아미술관
  • 김명해(화가, 본지 객원기자)
  • 승인 2022.12.08 10: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명해

경북 칠곡군 가산면에는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자연생태정원이 있다. 대지 면적이 68만 평인 대규모의 숲에 핑크뮬리 언덕이 입소문을 타면서 하루 1만 명 이상이 찾는 지역 최고 명소로 떠오른 곳이다. 원래 양돈 사육장이 있던 땅을 지역의 한 사업가가 매입해 4년 동안 꽃과 나무를 심어 조성한 정원으로, 벚꽃 길, 솔 숲 황토길, 자연연못, 천연이끼, 돌너덜 등 자연 그대로 의 환경을 보존하고 관리하여 제주 못지않은 풍광을 자랑하고 있다. 이러한 자연환경 속에 자리 잡 은 미술관이 바로 ‘수피아미술관’이다. 2019년 5월에 개관한 미술관의 명칭인 〈수피아〉는 ‘숲’과 유토피아의 ‘피아’를 더하여 만든 말로 ‘숲이야!’의 숲을 풀어서 발음해도 ‘수피아’이다.

정문 입구에 세워진 육중한 사각구조물과 수동 재래식 작두 펌프는 이곳이 신비한 동화나라와 초현실세계가 펼쳐질 꿈의 공간이라는 느낌을 준다. 주차장에서 오랜 왕벚나무 길을 따라 오르다보면 중앙에 자연과 융합된 돌로 지은 미술관건물이 보인다. 자연석을 둥근 성처럼 쌓아 올린 외관부터 눈길을 끄는 미술관은 재생벽돌로 마감하고, 건물 왼편에는 암석정원을, 지붕면은 둥근 하늘정원을 만들어 놓아 견고함과 예술성을 보여주고 있다.

가산수피아가 자리한 이곳은 유학산(해발 839m) 자락이다. 유학산은 한국전쟁 당시 최대 격전지인 '다부동 전투'가 벌어진 곳으로 치열한 고지전으로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낸 산이다. 이곳은 예전부터 돌이 많기로 유명하고 산전체가 돌너덜로 가득하여 미술관을 지을 때 주변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하였으리라 짐작이 된다.

돔 형상의 미술관 건물 출입구 광장에는 파란하늘이 한가득 내려오고, 산 아래 마을과 넓은 들판 풍경이 발아래 펼쳐져 탄성을 지르게 한다. 또한 미술관 입구 양옆으로 세워진 사각 통로는 어두운 공간에서 밝은 빛이 들어와 자연스럽게 시선을 유도하고 있으며, 여기서 바라본 프레임 속 자연은 깨끗함과 선명함을 자랑하고 있다. 이처럼 미술관 입구의 원형 광장은 환하게 개방되어 있다. 하지만 내부전시실은 산 사면을 터널처럼 뚫어 그 안쪽에 공간을 마련하여 들이마시는 공기가 다르고 소리도 울려 마치 고분古墳 속을 거니는 기분이다.

유주희 전시전경
유주희 전시전경
유주희 전시전경. ©김명해
유주희 전시전경. ©김명해

현재 전시는 《반복; 사유의 흔적Repetition; Trace of meditation, 유주희》 전과 《선線으로 만든 선禪의 세계; 차계남》 전이 진행 중이다. 유주희·차계남 작가는 대구를 근거지로 국제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여류작가이다. 1층 1전시실로 들어서면, 대형캔버스를 삼각기둥으로 설치한 유주희Yoo Ju hee(1959- ) 작가의 작품구조물이 눈에 들어온다. 유 작가는 부드러운 붓 대신 강한 콘트라스트contrast1를 표현할 수 있는 스퀴지squeegee2로 색을 밀어내는 과정을 통해 중첩된 흔적을 화면에 표현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무의미한 듯 보이는 반복적 행위는 응집되거나 확산하는 이미지를 나타내게 함으로써 하나의 패턴을 형성한다. 물감의 농도나 호흡의 강약에 의한 스퀴지의 사용은 캔버스 위에서 촉각성과 물질성을 더욱 강조하며, 이러한 행위는 스퀴지 자국을 축적해 흔적을 더욱 극대화해 드러낸다. 결국 제 작품은 행위 자체가 전부예요. 행위의 흔적이 쌓이고 쌓인 결과물인 셈입니다.”라며 작가는 자신의 스퀴지 화법의 특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3.

유주희, 〈Repetition: Trace of meditation〉, 70×70cm, Acrylic on canvar. 2022

청색을 주로 사용해 온 작가는 코로나로 기존에 사용했던 물감의 수입이 어려워져 올해부터 색의 다변화를 시도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현재 전시되어 있는 작품들은 흑과 백의 색 조합으로 구성된 작품들이 주를 이루며, 스퀴지 자국도 과감하고 자유분방하게 표현되어 가득 찼던 화면을 비워내는 등의 변화를 볼 수 있다. ‘반복-사유의 흔적’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반복적인 행위의 결과로 나타난 시각적 이미지는 내적 사유와 철학적인 모든 것을 아우르며 작가 특유의 회화적 기법을 상징하고 있다.

“유주희의 《스퀴지畵》, 새로운 용어가 탄생했다. 동전의 양면과 같은 21세기 동시대 미술에서 이해와 수용의 범위도 비켜나지 않는다. 자아수행이 회화의 과제가 되었듯이, 그리고 자연의 힘이 감각적으로 현시되었듯이, 회화는 존재하지만 볼 수 없는 것을 화면에 가시화 한다는 명제는 지속될 것이다. 국제적 화두가 된 한국의 단색화, 의미의 층이 두터워지는 것은 스퀴지가 회화의 수단이라는 측면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 월간 《퍼블릭아트》 2017. 4월호, 김승호 「스퀴지畵: 단색화의 회화적 전략」 중에서 

유 작가는 화면 전체를 우선 유채색감으로 칠한 후 그 위에 단색의 아크릴 물감을 얹어 스퀴지로 전체 화면을 밀어내기를 반복하는 신체 행위를 통해 의식의 통제를 벗어나 자유롭게 물성의 요구를 받아들이며 의도치 않은 우연의 효과를 수렴한다. 그리하여 그의 작품은 추상화이지만 내적 사유의 흔적과도 같은 아득한 풍경이 화면위에 나타나며, 우연과 순간에 응집된 표면이 조화롭고 부드럽게 다가오는 것이다.

차계남 전시전경
차계남 전시전경

2층 2전시실은 초입부터 긴 통로로 만들어 차계남Cha Kea Nam(1953- ) 작가의 작품을 길게 배치하여 전시하고 있다. “나의 작품주제는 먼-먼 우주 저쪽에 존재하는 대공간과 공간속에 전개되는 영원한 시간 속에서 사멸하거나 생성되는 거대한 소용돌이가 있는 우주의 풍경이다.”는 글귀에서 보듯, 흰 공간에 들어선 검은 숲은 미술관 속의 또 다른 비밀 공간을 연출하여 심연深淵처럼 아득하며 우주블랙홀처럼 광활하여 비밀의 정원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차계남은 대구에서 성장하여 1980년 도일渡日하여 일본 화단에서 먼저 주목을 받은 작가이다. 그의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는 한지와 먹으로, 작가는 한지에 붓글씨를 쓴 후 1cm 폭으로 잘라 한 가닥씩 직조기로 꼬아 지실(종이로 된 실)을 만들어 이것을 화면 위에 겹겹이 쌓아 붙이는 독창적인 방식으로 작업을 하는 원로작가이다.

차계남, 〈Untitled〉, 50호, Korean ink on Korean paper, 2022

먼 거리에서 본 작품의 전체적인 느낌은 겹겹이 보이는 산봉우리 능선, 파도치는 해변 풍경, 한줄기 폭포수, 비 내리는 풍경이 흑백사진처럼 보인다. 그러나 작품 가까이 다가서면 먼저 보았던 풍경은 사라지고 촘촘히 교차 반복된 지실들에 의해 탄생한 무수한 면과 질감을 접하게 된다. 육체적 노력과 고도의 지구력이 수반되는 수행적인 작업 방식을 목도할 수 있다.

한지를 잘라 실로 만드는 작업은 오랜 시간 공을 들여야 완성되는 작가만의 재료로, 그 질감과 부피는 회화와 공예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가 고유의 메타포metaphor로 자리 잡았다. 평면적인 종이를 꼬아 부피감을 만들고 그것을 겹겹이 쌓아 작품으로 구현하여 통상적인 개념의 평면 작품이 아닌 평면 부조浮彫로 재탄생 시킨 것이다4.

필자는 대구미술관에서 실시한 ‘2021다티스트5 《차계남》’전과 지역방송 문화프로그램에서 작가의 작업과정과 인터뷰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 영상을 보면, 한 올 한 올 오랜 시간 공들여 오색 실타래 만들기를 시작하는데 “실을 만들 때는 무념無念이예요. 스스로 그리기에 대한 욕구를 통제하고 무심無心의 상태에서 수행적인 행위 자체에 집중합니다.”고 작가는 말하며, 그가 만든 지실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재료이자 물감이라 한다. 사각 틀 가장자리에 못을 박아 먹으로 염색한 지실을 못에 걸기위해 왔다 갔다 하길 무한 반복하는 모습은 노동이자 고행으로 보인다. 그래서일까 간격과 방향, 교차와 중첩으로 이루어낸 그의 작품은 한 줄의 선도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새로운 사유의 공간이자, 모든 작업과정에서 차곡차곡 쌓아 온 작가의 철학과 성실함이 마음으로 느껴진다.

차계남 전시전경. ©김명해

유주희·차계남 두 작가의 전시를 보고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선 다양한 색 대신 ‘흑과 백’이라는 단색으로 작품화하여 색채를 뛰어넘은 동양의 정신성 즉 ‘자연 순응의 추구’와 추상 속에 한국의 자연풍경이 보인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서양화와 섬유디자인을 전공했지만 작품표현에 있어 동양철학에 입각한 중용中庸에 기반을 두고 작업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공통점은 스퀴지든 지실이든 작품 표현에 있어 끊임없는 반복행위로 종교적 수행과 묵상에 비견되는 육체적 과정을 거치면서 강인한 정신력을 화면에 축적하는 작업을 한다는 점이다. 경이로움과 존경심이 드는 두 작가님께 진심으로 찬사를 보낸다.

미술관 전경. ©김명해
측면에서 바라본 미술관. ©김명해

미술관을 나와 주변을 산책해 본다. 미술관 옆 암석정원에는 백년초선인장이 돌 틈사이 뿌리를 내려 자라고 있으며, 암석들은 미술관 석축과 한 몸인 듯 연결되어 마치 건물에서 흘러내려온 돌인 마냥 자연스럽다. 하늘정원의 작은 창을 가진 돌집은 나지막한 돌담과 이어져 오솔길을 이루고, 군데군데 위치한 크고 작은 자연 연못이 운치를 더하며 돌무더기 사이로 흐르는 물소리도 정겹다. 전시실에서 보았던 두 작가의 작품이 다시 연상되어 겹쳐 보이는 풍경들이다.

실물크기의 브리키오사우루스는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조형물이고, 아이들을 위한 레일썰매와 키즈랜드도 있다. 이처럼 가산수피아는 정원의 구획을 정비하여 핑크뮬리 언덕 뿐만 아니라 계절마다 새로운 테마정원을 꾸며놓고, 자연 그대로의 숲 수목원, 물놀이장, 캠핑장, 빈티지카페까지 사계절 내내 즐길 수 있는 복합테마정원으로 꾸며져 있어 가족단위 탐방객들 행렬의 끝이 보이질 않는다.

 

 

1 미술에서 어떤 요소의 특질을 강조하기 위하여 그와 상반되는 형태나 색채을 나란히 배치하는 일.
2 실크스크린의 인쇄도구로 평평한 목판에 고무로 된 두꺼운 판의 날을 붙인 것.
3 월간 《퍼블릭아트》 2017. 4월호 참고.
4 대구미술관 ‘2021다티스트 《차계남》’ 전시개요 참고.
5 다티스트(DArtist)는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작업을 하는 중견·원로작가를 선정해 개인전과 학술행사 및 아카이브 구축을 추진하는 〈대구미술관〉의 프로젝트임
.


참고자료
가산수피아 http://www.gasansupia.com
월간 퍼블릭아트 www.artinpost.co.kr
대구미술관 https://daeguartmuseum.or.kr

 

 

* 《쿨투라》 2022년 12월호(통권 102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