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문화기행] 신들의 나라, 로맨스가 있는 그리스 기행
[그리스 문화기행] 신들의 나라, 로맨스가 있는 그리스 기행
  • 설재원(본지 에디터)
  • 승인 2019.04.15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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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부터 파리에서 7개월간 공부를 하며 머물게 된 나는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의 빛나는 문화예술들을 찾아보고 싶었다. 지난 2월에는 취재차 베를린국제영화제를 다녀왔지만 이번에는 정말 내가 가보고 싶었던 신들의 나라, 그리스로 로맨틱한 일주일간의 문화기행을 계획했다. 유럽의 동부, 발칸 반도의 끝 부분에 있는 그리스의 면적은 약 13만 2,000㎢로 우리나라보다 조금 더 크다. 세계적으로 보면 작은 나라에 속하는 그리스의 문화가 전 세계에 끼친 영향은 실로 엄청나다. 철학, 역사학은 물론 민주주의 정치, 연극, 조각, 예술 등의 기반을 구축한 것도 모두 고대 그리스인들이다. 또한 그리스 신화에서 최고 신인 제우스를 위한 제례 때 향해졌던 올림피아 경기는 올림픽 대회의 근간이기도 하다. 유적뿐만 아니라 에게 해와 이오니아 해에 떠 있는 아름다운 섬들과 해변들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유홍준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1』 머리말에서 “인간은 아는 만큼 느낄 뿐이며, 느낀 만큼 보인다”고 했다. 이 한 줄의 문장을 읽으며 시작된 나의 문화 유산답사는 ‘문화’라는 것의 가치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절실히 깨닫게 하였다. ‘인간’의 역사가 집약된 공간, 문화유산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그리스로 여행을 떠나보자. 

 

메테오라, 공중에 떠 있는 수도원

 2월 25일 밤, 파리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26일 새벽 아테네공항에 착륙했다. 공항을 빠져나온 나는 아침기차를 타고 5시간을 달려 칼람바카로 이동하였다. 전날까지 날씨가 쌀쌀해서 걱정했는데 칼람바카에 도착하자 날씨가 풀리고 화창했다. 여름 성수기에는 많은 관광객들로 붐빈다고 했는데 지금은 비수기여서인지 오가는 길이 여유로웠다. 한국처럼 춥지 않은 선선한 날씨라 수도원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수도원으로 올라가니 옷깃을 여밀 정도로 꽤나 추웠다. 메테오라는 그리스어로 “매달린 바위”, “하늘 바로 아래”라는 뜻이라고 한다. 뜻 그대로 하늘 바로 아래 공중에 매달린 바위처럼, 바위들 위에 우뚝하니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스의 핀도스 산맥과 페네이오스 강 근처의 테살리아 평야의 북서쪽 끝에 위치한 이러한 바위산의 모습은 약 6천만 년 전에 형성되었고, 이후 풍화작용과 지진으로 현재의 모양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스를 터키가 점령하자 수도사들은 그리스 정교회의 박해를 피할 곳을 찾게 되고, 자연스럽게 이곳 메테오라까지 숨어들어와 종교 활동을 계속하였다. 이 당시에 바위산의 꼭대기까지는 사다리나 도르래를 이용하여 물자들을 운반하였다고 전한다. 1344년 그리스 아토스산의 수도원 공동체에서 수도사 아타나시오스 코이노비티스가 그의 추종자들과 함께 이곳에 왔고, 1372년에 대 메테오라 수도원을 건설하였다고 한다. 1517년에는 테오판네스가 현재도 남아있는 발람수도원Varlaam Monastery을 세웠다. 비잔틴 제국의 그리스 점령으로 그리스 정교에 대한 박해가 심해지자 이곳에 20여 개 이상의 수도원이 세워졌고 현재는 이중에 6개만이 공개되어 있다. 20세기에 만들어진 계단을 통해 올라가면, 좁은 터지만 수도사들에게 필요한 것이 제법 갖춰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물탱크와 개인 기도실, 예배당은 물론, 휴게실, 도서관, 유골당까지 갖춘 곳도 있다. 그곳 내부에는 박물관이 있어 유물을 보관하고 있으며 그 유물을 통해 수도사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수도사들이 사회적, 국가적으로 책임을 다하는 모습과 그리스 정교회의 발전 과정을 알아볼 수 있다.

 성스테판 수도원AgiosStefanos은 16세기에 건설 되었고, 절벽 위라기 보다는 뒤에서 보면 평지에 세워진 느낌이 든다. 이 수도원은 2차 대전 당시 많이 훼손되었다가 복원되었다고 한다. 후에 수녀들에게 넘겨졌는데 메테오라 수도원 중 유일하게 수녀원으로 저 멀리 보이는 평지와 절벽의 조화가 너무 아름다운 곳이다. 195개 계단을 올라 발람 수도원에서 도착하면 장관을 마주하게 된다. 1940년 세워진 핀란드 유일의 동방정교회Orthodoxy 수도원으로 러시아 발람수도원의 수도사들이 이 곳에 정착해 수도원을 세웠다. 핀란드 동부 레이크랜드 지역의 관광명소 중 하나로 동방정교회 유물을 모아놓은 박물관과 와인양조장, 여행자 숙소, 레스토랑 등이 마련되어 있고 오늘날에는 5~6명의 수도사가 머물고 있다. 비교적 낮은 위치에 있는 성 니콜라스 수도원 Agios Nikolaos Anapaphsas을 지나 내려오는 길, 대자연의 경관 앞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이곳 메테오라는 자연이 함께 어우러진 문화경관이라 더욱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2월에는 가장 크고 유명한 대 메테오라 수도원 등을 제외한 일부 수도원만 입장이 가능했다. 현장학습 온 그리스 중학생들이 보일 정도로 내국인에게도 인기 관광지인 이곳은 몇 년 전 <꽃보다 할배> 방영 후 국내에서도 꽤 인기있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꽃보다 할배> 방송을 보면서, 두근두근 가슴 뛰게 했던 ‘메테오라’는 세속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수도사들의 안식처다. 가파른 산 절벽 위에 떨어질 듯 위태롭게 세워져 더욱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메테오라 수도원에서 당시 수도사들의 마음을 한번쯤 느껴보는 것도 의미 있는 기행이 될 것이다. 

 

영원한 신들의 도시, 아테네

 2월 27일 저녁, 기차를 타고 아테네로 이동했다. 그리스의 수도인 아테네는 고대 문명의 발상과 신화의 역사가 집약된 다양한 신전들을 관람할 수 있는 곳이다. 2월 말인데도 아테네는 벌써 꽃이 피어 있었다. 고대 그리스어로는 아테나이Athénai, 현대 그리 스어로는 아티나이Athínai로 불리는 이곳의 이름은 시市의 수호신 아테나 여신과 관계가 있다. 아티카반도 중앙 사로니크만 연안에 있는데 동쪽은 히메토스산, 북동쪽은 펜텔리콘산, 북서쪽은 파르니스산, 서쪽은 아이갈레오스산에 둘러싸인 평야가 사로니크만으로 기우는 지점에 자리잡고 있다. 키피소스강江과 그 지류인 일리소스강 사이에 끼어 있으며, 아크로폴리스(해발고도 156m)를 중심으로 몇 개의 작은 언덕이 있는데, 북동쪽에 있는 리카베토스 언덕이 해발고도 277m로 가장 높다. 아크로폴리스에서 동쪽으로 제우스 신전보다 좀 더 멀리 떨어진 곳에 근대적인 경기장이 있다. 그것은 근대 올림픽의 산실이라 할 수 있는 판아테나이코스Panathenaikos 경기장이다. 이곳은 아테네의 가장 큰 축제라 할 수 있는 판아테나이아 제전이 벌어질 때 운동 경기를 하던 장소였다. 기원전 4세기에 처음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다가 기원후 2세기 때 아크로폴리스의 헤로데스 극장을 건립했던 헤로데스 아티쿠스가 대리석으로 아름답게 재건하였다. 그러나 로마 제국 이후에는 기독교의 영향으로 버려져 있었는데, 1895년 근대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어 1896년에서 1906년에 걸쳐서 새롭게 복원되었다. 제1회 근대 올림픽은 아테네가 개최지로 선정된 이듬해인 1896년에 판아테나이코스 경기장에서 열렸다. 1896년 4월 6일부터 15일까지 약 10일 동안 모두 14개국이 참가하여 경쟁하였다. 당시 판아테 나이코스 경기장에는 약 8만 명 정도 앉을 수 있었는데 6만 명 이상의 관람객들이 들어찼다고 한다. 

 경기장에 들어서자 입구 쪽에 역대 근대 올림픽 우승자 명단과 개최지를 새긴 대리석 석판들이 보인다. 사실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현대적인 경기장에 비하면 너무 아담하다고 할 정도로 작다. 그러나 바로 이곳에서 고대 올림픽의 정신을 이은 근대 올림픽이 열렸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생각하면 감회가 남다르다. 아테네의 제우스 신전은 ‘올림피에이온Olympieion’ 이라고도 한다. 아테네 중심지에 있는 거대한 신전 유적으로 신들의 왕인 제우스에게 바쳐졌던 신전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독재적인 참주僭主가 국가를 지배하던 시기인 기원전 6세기에 아테네의 정치가인 페이시스트라토가 짓기 시작했지만 자금 부족으로 중단되었고 이후 650여 년 후인 기원후 2세기 로마제국 황제 하드리아누스 때에야 완공되었다. 로마시대에는 그리스에서 가장 큰 신전으로 유명했지만 3세기 경에는 이방인들의 침략으로 약탈당했다. 이후 복원되지 못했으며 로마시대가 끝난 후 수 세기 동안 신전 석재가 파내져 아테네 밖의 다른 건물들을 짓는데 사용되었다. 제우스 신전은 84개 돌기둥 가운데 현재 15개만이 남아있는 코린트 양식의 건축물이다. 한때는 그리스 여느 신전들보다 웅장했다고 전해지지만 현재는 과거의 그 융성을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많이 파괴되어 있다. 남서쪽에는 필로파포스·프닉스·아레오파고스 등의 언덕이 있다. 리카비토스 언덕에서 보는 일몰과 야경은 탄성을 자아낼 정도로 너무나 황홀했다. 한때 화려했던 신들의 도시, 아테네를 느릿느릿 걸으며, 현재 흔적만 남아있는 유적(때로는 그저 기둥 뿌리)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사라진 도시의 빈 공간(과거 모습)을 멋진 신화 속 상상으로 채워보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환상적인 시간이었다. 

 

극예술의 탄생지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주변에는 두 개의 극장이 있다. ‘오데온’과 ‘디오니소스’ 극장이다. 우리가 알고있는 개념의 ‘연극’은 고대 아테네에서 시작했으며, 따라서 극예술을 즐기는 이들이라면 이 극장을 반드시 방문해 봐야 할 것이다. 아크로폴리스 언덕 남쪽 기슭에 있는 헤로데스 아트쿠스 오데온은 기원전 161년에 건립된 노천극장으로 그리스 출신 음악가 야니의 아크로폴리스 공연이 열렸던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크로폴리스의 남쪽 절벽에 위치한 디오니소스 극장은 돌로 지은 최초의 극장이었다. 최대 1만 7천 명의 관객이 앉을 수 있었던 이 극장은 아테네에서 가장 중요한 연극 경연 대회였던 ‘디오니시아’를 개최하기에 이상적인 장소였다. 디오니소스는 연극과 포도주를 관장하는 그리스의 신으로 유명하다. 디오니소스 극장에서는 기원 전 5세기의 뛰어난 극작가들,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아리스토파네스 등 오늘날 서양 연극의 창시자라 알려진 희곡 작가들의 작품이 공연되었다. 이 극장은 원형극장으로, 열려 있는 무대는 점점 높아지는 타원형 구역 안에 위치했다. 매우 탁월한 음향 효과를 제공해 주었던 이러한 설계는 고대 그리스 전역에 생겨난 다른 극장의 원형이 되었다. 이처럼 고대 그리스 신화의 이야기가 어려있는 아테네에는 많은 유적과 각종 박물관이 있다. 그리스 각지에서 발굴된 발굴품이 소장 되어 있는 아테네 국립 고고학 박물관은 세계 10대 박물관 중의 하나로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비잔틴 시대에 이르는 수많은 유물과 조각품 및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다.  작품들을 감상하며,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의 발전과 인간의 육체에 대한 구체적인 관찰과 미의 구현을 확인하였고 고대 그리스 문화예술인들에게 한없는 경외감을 느낀다.

 

교통과 문화의 중심지 코린토스

2월 28일 이른 아침, 버스를 타고 당일치기로 코린토스Corinth를 다녀왔다. 코린토스 고고학 박물관은 건축가 스튜어트 톰슨이 1932년 완공한 것으로 세 개의 전시실과 대형 뜰로 구성돼 있다. 코린토스에서 발굴된 조각, 도자기, 선사시대의 유물들은 두 개의 주전시관에 진열되어 있었다. 제3전시실에 소장된 아스클레피온에서 출토된 테라코타는 예약에 의해서만 볼 수 있다고 해서 아쉬웠다. 박물관은 선사시대로부터 헬레니즘을 거쳐 비잔틴시대까지 다양한 유물을 소장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소장품으로는 기원전 6세기경의 <대리석 스핑 크스>,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아들로 추정되는 <젊은이의 대리석 초상>, <디오니소스의 머리가 장식 된 모자이크>, <비잔틴 꽃병> 등이 있다. 유독 목이 잘린 조각들이 많았는데 파괴된 경우도 많고, 황제가 바뀔 때마다 얼굴도 바꾸다보니 아예 교체할 수 있게 만든 것도 많다고 한다. 박물관을 보고 밖으로 나서니, 로마시대 지은 신전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초기 기독교 전파에 큰 기틀을 마련한 사도바울이 선교 여행 중에 1년 반을 머물어 종교적으로 의미있는 곳이기도 하다.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다보니 갈 수 있는 곳이 한정적이고 불규칙한 배차로 인해 기다리면서 시간을 많이 허비한 것이 아쉬웠다. 코린토스 운하로 이동하여 운하를 가로지르는 다리에 올랐다. 코린토스 운하는 코린토스 만과 에게 해의 사로니코스 만을 연결하는 운하로 코린토스 지협을 따라 1881년부터 1893년까지 6.3㎞의 길이로 건설되었다. 운하를 이용할 때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돌아 가는 것보다 700㎞ 정도 운항거리가 줄어들지만, 운하의 폭이 24m, 깊이가 8m로 규모가 작아서 운 하를 이용하는 선박은 대부분 관광용 여객선이다. 다리 위에서 1200년 전, 많은 인간의 희생 끝에 만들어낸 코린토스 운하를 바라본다. 아름다운 풍경에 빠져 멍하니 운하를 바라보니, 사람이 암반을 파내 이 운하를 만들었다는 게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낙소스Naxos 섬

 3월 1일 새벽, 낙소스Naxos로 이동했다. 피레우스 항구에서 페리를 타고 5시간 반 정도 이동하면 낙소스 섬의 상징인 아폴론 신전이 반겨준다. 이 섬은 본래 디아라고 불렸으나 낙소스가 다스린 뒤 부터 그의 이름을 따서 낙소스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키클라데스 제도에서 가장 큰 섬인 낙소스는 디오니소스 섬이라고도 불린다. 숲이 울창하고 땅이 비옥하여 일찍부터 사람들이 마을을 이룬 이 곳은, 포도와 올리브 농사가 잘 되어서 울창한 숲 속에 디오니소스 신이 살고 있을 거라 믿었다. 그래서 이 섬에는 디오니소스 신전이 남아있고, 디오니소스 와 관련된 재미난 신화가 이곳에 얽혀있기도 하다. 그리스 신화에서 아리아드네의 도움을 받아 미노타우르스를 무찌르고 그녀와 함께 크레타 섬을 떠난 테세우스는 아테네로 향하던 길에 잠시 낙소스 에 들른다.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가 잠에 빠진 사이 그녀를 섬에 두고 떠나는데, 마침 숲에서 나와 해변을 거닐던 디오니소스 신이 아리아드네를 발견하고 그대로 첫눈에 반해버린다. 디오니소스의 끈질긴 구애 끝에 아리아드네는 그의 아내가 되었고, 이 때 디오니소스가 그녀에게 선물한 왕관이 북쪽 왕관자리가 되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산토리니나 미토코스에 밀려 현저히 인지도가 낮은 낙소스지만, 이 곳 역시 여름만 되면 관광객으로 가득 차는 유명한 휴양지이다. 지중해에 위치한 여느 섬들과 같이 아름다운 해변을 즐 길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내륙에 우뚝 솟은 산들을 따라 걷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특히 제우스를 뜻하는 자스Zas 산은 키클라데스 제도에서 제일 높은 산으로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인기 트래킹 코스이다. 뿐만 아니라 골목 구석구석이 아기자기하게 아름다운 올드타운과 환상적인 선셋을 볼 수 있는 아폴론 신전 역시 낙소스섬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 포인트이다.

 6박 8일간의 짧은 여행은 그리스가 가진 역사성 과 매력을 모두 느낄 수 없었지만, 책속에서만 보았던 그리스 문화와 유적들을 체험한 시간은 아주 의미있었다. 그리스를 여행하다보니 2015년 나영석PD가 연출한 배낭여행 프로젝트 <꽃보다 할배> 시즌3 ‘그리스편’이 왜 시리즈 중 최고 시청률을 기록할 수 있었는 지 알 수 있었다. 여행을 마친 꽃할배들은 “여행이란 이런 것이구나!”, “존재라는 것은 각자 다 의미를 가지고 있다”라는 철학적인 인터뷰로 시청자들에게 여행의 즐거움, 그 이상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는데 여행하는 내내 그 메시지가 나를 따라다니면서 무릎을 치게 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도 화려한 문명과 아름다운 자연의 매력을 흠뻑 느낄 수 있는 그리스로 여행해볼 것을 권한다.

 

 

* 《쿨투라》 2019년 4월호(통권 5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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