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탐방] 시대의 삶을 기록하다: 서울 뮤지엄한미삼청
[미술관 탐방] 시대의 삶을 기록하다: 서울 뮤지엄한미삼청
  • 김명해(화가, 객원기자)
  • 승인 2023.04.03 16: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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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정원, 이미지 제공: 뮤지엄한미삼청

사진은 카메라를 사용해 물체의 형상을 감광막 위에 표현해서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게 만든 영상이다. 1826년 프랑스 사진가 조셉 니세포르 니엡스Joseph Nicéphore Niépce(1765-1833)가 찍은 최초의 사진을 시작으로 사진은 200년의 역사를 가진다. 사진기술 또한 많은 선구자들의 연구와 실험으로 급속하게 발전되어 사진은 단순히 실상을 복제하고 기록하는 차원을 넘어 다른 예술 사조에도 영향을 끼쳐 이념의 변혁變革을 주었으며, 오늘날 현대예술의 한 분야로 자리하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1880년대에 사진술이 도입된 이후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때의 기록사진, 전쟁 후 예술사진, 매체사진, 광고사진 시기를 거쳐 현재는 사진을 대량 소비하는 생활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렇듯 우리의 사진을 수집하여 연구하고 기록하고 전시하는 사진전문미술관이 있다. 서울 송파구 방이동에 위치하고 2003년 개관한 《한미사진미술관》이다.

국내 최초의 사진전문미술관인 ‘한미사진미술관’은 사진전시뿐만 아니라 작품수집, 작가지원 사업, 출판 및 교육사업 등을 통해 한국 문화예술 발전과 사진예술의 대중화를 위해 힘써온 미술관이다. 개관 20주년을 맞이하여 미술관을 운영하던 가현문화재단이 종로구 삼청동에 ‘뮤지엄한미삼청’을 신축하여 2022년 12월에 새로이 개관했다.

서울역에서 마을버스 ‘종로11’을 타고 시청역, 광화문역을 지나 경복궁과 북촌 사이로 난 삼청길을 달려 종점인 삼청공원 입구에 하차하면, 골목 안 북악산을 등지고 미술관은 들어서 있다. 새로 지은 미술관건물은 치즈 색 외벽에 다소 심플한 분위기의 2층 건물이다. 하지만 건물 바로 뒤편에 두 개의 크고 작은 건물이 더 있어 중정을 중심으로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전경사진, 이미지 제공: 뮤지엄한미삼청

미술관 내부로 들어서면 안내데스크가 있는 로비는 넓지 않지만 건물 안 중정인 ‘물의 정원’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환하고, 공간의 흐름에 따라 관람객이 순환하게끔 건물과 건물사이는 작은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지상 1층은 3개의 전시실과 수장고, 개방수장고가 자리하고 있으며 지상 2층은 학예실과 연구실, 지하 1층은 멀티홀과 카페 겸 아트스토어 그리고 복도형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신축 개관전으로 한국사진사를 되짚어 보는 《한국사진사 인사이드 아웃 1929-1982》이 진행 중이다. 전시는 1929년 정해창(1907-1968)이 광화문빌딩 2층에서 국내 최초 사진전을 개최한 기점부터 임응식(1912~2001)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회고전을 연 1982년까지 이 두 가지 역사적인 이벤트를 기준 삼아 그간 대외적으로 활동했던 사진가들을 엄선해 조명한 것이다. 특히 1929년은 사진사적으로 굉장히 의미가 있는 시기로, 작가 정해창이 사진을 자신의 미학적 역량을 개인전이라는 근현대적 예술매체로 소개했던 최초의 연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총 42명 작가의 사진 207점과 관련자료 100여 점을 당대의 사진적 조건과 사진가 고유의 성향을 담기 위해 최대한 원본 빈티지 사진으로 전시를 구성했고, 또 필름만 남은 경우에는 당시 사진 인화기법과 사이즈대로 재제작, 디지털 파일만 남은 경우도 최대한 원본을 따랐다고 한다.

배상하 〈수녀수산나〉, 이미지 제공: 뮤지엄한미삼청

1929년에서 1982년에 이르는 50여 년의 한국 사진사 안팎을 샅샅이 살핀다는 취지의 전시는 빈티지 프린트의 부재로 많은 난관을 겪었다. 한국사진사의 몇몇 사진가들은 자신들의 대표작을 전하지 못한 채 작고했고, 소유권과 저작권 문제, 부실한 소장관리로 어려움을 야기했다. 1998년 예술의 전당에서 열렸던 《한국사진역사전》 이후 우리의 사진사를 정립하기 위한 인프라는 퇴보는 아닐지라도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자아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뮤지엄한미는 이번 개관전이 한국사진사 정립을 위한 마지막 기회라는 책임감으로 여러 부족함을 메꾸려 노력했다.1

한국사진이 어떠한 제도적 조건과 역사적 문맥 속에서 역사를 일궈갔는지 살펴보는 이번 전시는 한국사진사를 밝히기 위해 미술관측이 노력하고 고민하고 수고한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천고 높은 전시공간에 16.6×12cm 크기의 작은 흑백사진 속에는 한복 입고 양지바른 곳에 앉아 있는 여인들, 봇짐을 메고 겨울 논을 가로질러 걸어가는 사람, 석양을 등지고 언덕에서 공놀이하는 아이들의 모습 등 어떠한 기교도 없이 당시 사람들 모습과 풍경 사진을 만날 수 있다. 또한 ‘신흥사진’으로 불린 모더니즘 사진과 1930-1940년대 신문사들이 주최한 국내공모전 주요 당선작들도 볼 수 있다. 1930년대부터 실시한 공모전은 반세기 이상 한국사진계를 지배해 왔으며, 공모전 입상은 사진가로서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예술가로서 승인을 확립하여 예술사진가로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계기가 된다.

이형록 〈전원〉, 이미지 제공: 뮤지엄한미삼청

1950년 전후시대는 극단적 이념대결과 전쟁의 혼란 속에서 사진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담고자 한 리얼리즘과 르포르타주Reportage2가 물든 시기다. 6·25전쟁 후 피폐한 한국사회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는 임응식의 〈구직〉(1953)은 한국 현대 사진사를 대표하는 작품이고, 노동자 계층의 삶을 포착하여 노동의 중요성을 강조한 구왕삼 (1909-1977)과 임석제(1918-1994)는 노동현장, 사회 부조리, 농업에서 산업화의 전환, 전쟁과 고단한 삶의 현장을 역동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또 목숨을 걸고 당시 상황에 직접 뛰어들어 기록하고 보도하는 사진을 찍은 사진가들의 작품도 볼 수 있는데, 4·19혁명을 기록하고 보도한 이명동(1920-2019), 한국전쟁 종군사진가로 활동했던 임인식(1920-1998), 여·순사건을 다룬 이경모(1926-2001)의 사진은 전쟁과 혁명의 긴장감과 함께 폐허의 사회현실을 낱낱이 보여주고 있다.

1950~60년대에는 일본·미국·프랑스·영국 등 해외 사진공모전에 도전하는 사진가들이 등장했다. 해외 공모전(제1회 도쿄국제사진살롱)에서 최초로 입상한 임응식의 〈병아리〉(1952)를 비롯해 한영수의 〈닭시장〉(1957), 박영달의 〈풍선〉(1958), 정범태의 〈결정적 순간〉(1961), 이해문의 〈아내〉(1961), 배상하의 〈수녀 수산나〉(1962), 최민식의 〈구걸하는 음악인〉(1965) 등의 대표작품과 관련 출판물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이 시기 사진가들이 해외로 사진을 출품함으로써 전국적인 사진계의 테두리가 잡히고 동시에 해외에 한국사진을 알려 국제적으로 확대되는 등의 뚜렷한 현상이 나타나며, 사회적으로는 사진이 다른 예술과 함께 현대예술로서 한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한 시기가 된다.

전해창, 이미지 제공: 뮤지엄한미삼청

뮤지엄한미삼청이 다른 미술관과는 차별화되는 것이 있는데 바로 2만여 점에 달하는 사진 소장품의 보존을 위해 국내 최초로 세계 최고 수준의 저온 수장고와 냉장 수장고를 구축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수장고의 한쪽 벽을 유리로 만들어 소장품을 공개하는 ‘보이는 수장고’ 형식으로 1929년 이전의 우리나라 초기 사진들도 선보이고 있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사진을 도입한 황철의 1880년대 사진부터 대한제국 황실의 초상(고종·흥선대원군) 사진원본, 서화가 김규진(1868-1933)이 일본에서 사진술을 배우고 돌아와 자신의 집(서울 소공동)에 개업한 ‘천연당사진관’에서 찍은 단체사진,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사진가로 알려진 ‘경성사진관’, 이홍경이 촬영한 여인의 초상, ‘금광당사진관’ 김광배의 여성 3인의 초상사진 등 총 12점의 사진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이렇게 1층 전시장을 한 바퀴 돌아 나오면 다시 로비이고,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전시는 연결된다. 지하1층 전시실은 7m 높이의 전시 벽에 대형 화면으로 사용할 수 있고 콘서트홀에 버금가는 음향설비가 갖춰진 멀티 홀과 복도식 전시공간이 있다. 멀티 홀에는 60-70년대 한국사진의 흐름을 보여주는 사진작품 전시 및 비디오 상영 등 다양한 아카이브 형식을 선보이고 있다.

멀티홀, 이미지 제공: 뮤지엄한미삼청
전시실, 이미지 제공: 뮤지엄한미삼청

1962년 공보부가 개입한 《신인 예술상》과 1963년 동아일보사가 창설한 《동아사진콘테스트》 공모전이 생겨 신진사진가를 발굴하였으며, 1964년에는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 사진부문 가입이 이뤄진 해로 국전가입은 사진이 순수한 예술정신의 산물로 인정받고 서구의 모더니즘이 개척한 사진의 여러 길을 모색한 계기가 되었다. 또한 이 시기는 스냅 사진뿐만 아니라 새로운 비전과 주관적 사진의 파격적 구도와 극적인 명암의 대비를 탐구한 사진단체 ‘싸롱아루스’와 ‘현대사진연구회’가 창립되어 활동하였으며 추상적 사진과 함께 회화적 사진의 새로운 가능성도 조금씩 엿보인 시기다.

멀티 홀과 중정을 둘러싼 복도형 전시실에도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이곳에는 1960년대 이후, 공모전 형식에 벗어나서 독자적인 전시와 출판 등의 개인전 형식을 통해 사진가 개인의 이력을 키워나갔던 작가들의 작품들을 조망하고 있다. 1966년 주명덕의 《홀트씨 고아원》은 포토에세이Photoessay형식을 도입, 1973년 전몽각의 《윤미네 집》은 사진일기의 형식으로 가족의 일상을 기록, 1974년 칠순에 첫 개인전을 연 이해선(1901-1981)의 사진 작품도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982년 《임응식 회고전》은 국립미술관에서의 첫 사진전으로, 사진예술이 순수미술의 한 분야로 인정받고 현대미술 장르로의 도약과 소장 및 수집의 대상이 된 계기가 되었다.

이해문 〈제일보〉, 이미지 제공: 뮤지엄한미삼청

순간의 찰나를 포착하여 평생을 간직할 수 있는 사진은 필름시대에서 디지털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스마트폰의 발명과 보급으로 사진은 누구나 찍을 수 있는 삶의 일부분으로 보편화되어 전문적으로 사진을 전공하거나 공부하지않더라도 스마트폰과 앱application으로 보다 쉽게 사진을 찍어 SNS로 공유하고 소통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사진의 대중화와 일상화로 너무 흔해져 버린 요즘시대에 아날로그적인 감성의 옛 사진전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삶을 엿볼 수 있는 역사기록물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전시였다. 뮤지엄한미삼청의 앞으로의 활동도 기대해 본다.

이홍경(경성사진관), 〈여인의 초상〉, 1926, Gelatin silver print, 8.1x5.3cm, 뮤지엄한미 소장

미술관에서 경복궁 입구까지 삼청동을 산책하듯 걸어본다. 수많은 갤러리와 카페, 상점, 식당들이 도로 주변과 골목까지 즐비하게 들어서있고 완연한 봄 날씨에 구경꺼리가 많은 곳이라 관광객들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다. 오늘도 이곳의 젊은 탐방객들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을 열심히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하여 알리기 작업을 하고 있다. 50년의 시간이 지나 이 젊은이들이 노인이 되었을 때는 더 발달된 사진기술이 생겼을 것이고, 과거를 회상하면서 보는 젊었을 때의 기록물들은 어떤 기분으로 다가올지 궁금하다. 시작은 언제나 “라~떼는 말이야”이겠지.

육명심 〈사별〉, 이미지 제공: 뮤지엄한미삼청

 

 


1 《한국사진사 인사이드 아웃 1929-1982》전시 서문에서 발췌
2 documentary literature. 사실 그대로를 기록


참고자료
뮤지엄한미삼청 https://museumhanmi.or.kr/

 

* 《쿨투라》 2023년 4월호(통권 10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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