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미와 '함께 보는 미술'] 히스테리아: 한국 현대미술의 회화적 진행
[강수미와 '함께 보는 미술'] 히스테리아: 한국 현대미술의 회화적 진행
  • 강수미(미학. 미술비평. 동덕여자대학교 교수)
  • 승인 2023.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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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정, 〈교미〉, 2021
일민미술관 《히스테리아: 동시대 리얼리즘 회화》 전시전경, 2023 photo by 강수미

‘동시대 리얼리즘 회화’라는 답

노골성과 모호함의 합주. 일민미술관의 2023년 상반기 기획전 《히스테리아: 동시대 리얼리즘 회화》(이하 《히스테리아》)에서 큐레이토리얼의 주도 동기leitmotif를 찾는다면 이와 같지 않을까? 전시명에 담은 상징적·규정적 주제부터 미술관 전 공간을 활용해 그림들을 이미지화하고 디스플레이하는 방식까지 두루 비평하자면 그렇다. 여기서 노골성은 ‘히스테리아hysteria’라는 제목이 지시하듯, 기획자가 시도한 전시공학으로써 현대미술에 정신분석이론의 오버랩이다. 그리고 이처럼 미술에 정신분석을 얹어서 참여 작가들의 세대 단층과 그로써 형성된 두 세대 미술의 영향관계를 ‘작용action-지연된 작용deferred action’처럼 전시에 투사한 점이다. 미술관에 따르면, 동시대 “회화의 ‘리얼한’ 경향”으로 말이다. 다음, 모호함이란 앞서 말한 노골성과 반대로 이 기획전이 명확히 해야 할 어떤 내용을 의도든 아니든 흐릿하게 처리했다는 의미다. 단적으로, 신경증의 일종인 히스테리아를 미술/회화 전시에 노골적 표제어로 가져다 쓰면서 정작 증상의 주체(누구? 무엇? 어디?)를 표지하지 않아 미학적 실체를 모호하게 했다. 이는 또한 감상자가 “동시대 리얼리즘 회화”가 누구의 예술인지, 그것이 무엇인지, 왜 그것이 미적으로 히스테릭한지 혹은 뒤집어 말해 왜 히스테릭한 미학인지를 파악하기 어렵게 한다는 점과 연결된다(하지만 실제 전시에서는 개별 작품의 감각 지각적 특성과 세대 차이가 나는 작가들 간의 관계성이 뚜렷이 지각된다. 작품들 자체가 뿜어내는 각각의 기질과 영향의 방향성 덕분일 것이다).

기획 글에는 다음과 같은 전시 목적이 강조되어 있다. 《히스테리아》가 “동시대 작가 13인의 작업을 통해 회화의 ‘리얼’한 경향을 살피고 이를 독자적인 한국 미술의 계보에서 조망”1한다는 것이다. 내가 전시를 잘못 보지 않았다면, 《히스테리아》는 ‘한국[미술가들]의Korean’, ‘현대Contemporary’, ‘회화Painting’ 전시다. “동시대 작가 13인의 작업”으로 모호하게 정의하기에는 창작자의 문화 지리적, 시간적, 장르적 경계가 뚜렷한 기획이고, 그것이 이 기획의 강점이다. 헌데 위에 인용한 문구 등 기획 맥락을 살펴보면 문제의 전시가 한국의 미술가, 특히 회화를 하는 30대-60대 한국 작가들 중심임을 파악하기 쉽지 않다(단적으로 이 전시는 국제 미술전이 아니다). 이는 단지 기획 글의 문장이 어색해서라기보다는 기획 측이 ‘리얼한 경향’을 강조하면서 그것이 마치 ‘한국 미술의 계보’에서 ‘독자성이 있는 이즘’임을 질문에 앞선 답으로 정했기에 벌어진 양상 같다. 부제가 그러한 추측을 더 강화한다. 속칭 ‘답정너’처럼 “동시대 리얼리즘 회화”라는 답이 정해져 있으니 ‘그림들은 전시만 되면 됨’ 같다. 하지만 감상자는 더 자세히 알고 싶다. 헷갈리지 않고 전시장의 그림 각각처럼 선명하게. 요컨대 서구 19세기 구스타프 쿠르베의 리얼리즘이든, 20세기 한국의 민중미술이든, 형상회화figurative painting든 어떤 계보에서 《히스테리아》의 작품들이 리얼리즘의 정통성과 나아가 독자성을 획득하는지? 기획 취지에 밝힌 “회화의 리얼한 경향을” 살피는 일과 리얼리즘 미술/회화의 “계보”를 동시대 한국 작가들의 회화로 새로이 구성하는 일이 같은 뜻인지?

일민미술관 《히스테리아: 동시대 리얼리즘 회화》 전시전경, 2023 photo by 강수미

페인팅에서 픽처스로

핵심은 《히스테리아》가 1990년대부터 2023년 현재까지 대략 30년이라는 짧지도 길지도 않은 ‘한국현대미술Korean Contemporary Art’의 패러다임 이행 속에서 회화적 진행을 탐구한 기획이라는 점이다. 이를테면 이 전시는 해당 기간 동안 뚜렷한 예술적 성과를 일궜고 여전히 두드러진 활동을 하는 전세대와 그런 성과의 혜택은 물론 그로 인한 그늘을 동시에 맛보며 자란 후세대의 회화를 중첩하고 교차하는 전시다. 그런데 정작 그 다르면서 연접하는 주체들의 실체가 전시에서는 흐릿하게 처리되었다. 가령 전시 서막을 빛내는 최진욱의 〈그림의 시작〉, 〈자화상〉, 〈형광등〉, 〈하교길〉은 1990년대 작가의 전성기 작업일 뿐만 아니라 한국 현대미술에서 회화가 지극한 ‘일상성’ 속에서 ‘개념적인 동시에 신체적인’ 예술성을 구현할 수 있음을 보여준 드문 사례다. 헌데 그 그림들 사이에 불현듯 삽입된 함성주의 2023년 작 〈10년의 하루〉는 작은 크기의 비정형 캔버스 세 점에 누군가의 팔과 손만 클로즈업해 다소 거칠게 그린 것이다. 알고 보니 최진욱의 〈자화상〉에 표현된 화가의 팔뚝을 자기 식으로 번역, 해석한 그림들이라 한다. 그런 작업 의도는 감상자 입장에서 이차적으로 인지하는 사실이다. 반면 최진욱의 대작들 사이에 낀 디스플레이 위치 때문에 오히려 그 작고 어두운 팔 그림 세 점은 작가 간 경계선을 흐리는 효과를 발휘한다. 마치 한 화가의 변칙인 양. 하지만 흐린 눈을 하고 봐도 최진욱과 함성주의 회화는 명백히 다르다. 전자가 싫든 좋든 미술의 오리지널리티와 사회역사적 가치를 근간으로 삼아온 세대의 회화painting라면, 후자는 레퍼런스로서의 미술과 이미지로서의 그림pictures을 당연시 하는 세대의 그것이다. 혹은 나의 개념으로 따지자면 창작 이후의 창작, 즉 ‘포스트크리에이터post-creator’의 미술이다. 어느 쪽이 더 높거나 낮다는 평가적 의미가 아니다. 다만 시대/세대의 사회적, 기술적, 감각 지각적 조건과 창작자의 예술관이 서로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그렇다.

최진욱 〈자화상〉, 1992
일민미술관 《히스테리아: 동시대 리얼리즘 회화》 전시전경, 2023 photo by 강수미
함성주 〈10년의 하루〉, 2023
일민미술관 《히스테리아: 동시대 리얼리즘 회화》 전시전경, 2023 photo by 강수미

기획 측이 의도는 모호하게, 그러나 “작가 정보” 지면을 통해 작가 출생연도는 명확히 한 바를 참조하자(그로써 나이로 영향관계를 논하는 비평의 빌미가 마련된다). 《히스테리아》에서 전세대는 한국미술이 제도적으로나 미학적으로나 컨템포러리아트로 이행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한 현재 연령상 40대 말-60대 중반의 회화 작가들이다. 그리고 후세대는 전세대로부터 미술 교육을 받거나 비엔날레, 미디어시티 등 20세기 말부터 이곳에서 전개된 동시대 컨템포러리아트 신을 경험한 30대 초중반의 미술가들이다. 특히 미술대학뿐만 아니라 비슷한 시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경영지원센터, 예술인복지재단, 지자체 문화재단, 대안공간, 레지던시 기관 등에서 본격화한 한국의 창작 지원제도를 통해 성장한 이들이다.

이재석, 〈신체가 있는 부품도〉, 2018
일민미술관 《히스테리아: 동시대 리얼리즘 회화》 전시전경, 2023 photo by 강수미

이렇게 겹친 한국 현대미술 속 두 회화 세대의 단층이 기획에서 특정 조건들의 구성인 것인지, 우연찮은 조합인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다만 그와 같아짐으로써 《히스테리아》는 한국, 현대, 미술의 첫 작용(말 그대로 동시대con-라는 템포tempo의 첫 진행)과 그에 대한 사후작용을 전시장 공간에 대담하게 펼쳐 보일 수 있었다. ‘먼저 해 보이기’와 ‘따라 하기’만이 아니다. 외상과 회상, 일어난 사건과 그 사건의 지연된 작용, 회화의 마스터 담론과 새로운 조건에 따른 재창작이라는 복잡한 디테일을 한 바구니에 담은 것이다. ‘히스테리아’라는 제목이 알아봐주기를 바라듯, 그 바구니는 정신분석이다. 따라서 우리가 인지할 최우선 사항은 반복되지만, 《히스테리아》가 정신분석학의 참조를 통해 노골화하기를 원한 한국 현대미술 세대의 겹 구조다. 또 그 프레임워크에서 본 한국 현대회화의 미학적 속성이다. 그것은 어쩌면 미술관이 부제로 삼은 ‘리얼리즘’과는 다른 것일지 모른다.

조효리, 〈부츠〉, 2020 & 〈굿 이브닝 미스터 저드〉, 2022
일민미술관 《히스테리아: 동시대 리얼리즘 회화》 전시전경, 2023 photo by 강수미

회화의 리얼 경향? 리얼리즘 회화?

19세기 말 히스테리의 다양한 형태와 증상을 연구한 보고서에서 프로이트와 브로이어는 “히스테리 증상자들 대부분은 회상reminiscences으로 인해 고통 받는다.”2고 설명했다. 요컨대 히스테리는 처음 벌어진 사건이 무의식의 외상으로 잠복해 있다가 특정 기제에 의해 촉발되면 놀랍게 생생하고 완전하며 강렬한 기억으로 사후事後에 발현되는 심리적 증상이다. 프로이트와 브로이어에 따르면 그 회상은 “증상자가 어찌할 수 없는 기억”이다. 이 논리를 《히스테리아》, 나아가 한국 현대미술의 회화적 진행에 대입할 경우 어떤 해석이 가능한가? 가령 한국의 젊은 미술가들, 특히 30대 작가들에게 앞선 세대 작가들은 히스테리를 유발하는 한국 현대미술의 외상적traumatic 기억인가? 《히스테리아》 전시에 한정해 보면 그렇다. 앞서 논했듯 1990년생 함성주가 1956년생 최진욱의 〈자화상〉을 자기 식으로 다시 그린 것은 노골적인 예다. 하지만 전시 전체로 봐도 작가들의 애초 작업 의도나 작품 맥락과 별개로 《히스테리아》는 여러 작가 쌍을 생성하고 디스플레이 또한 그림들의 연접, 중첩, 병렬, 선후의 질서로 배치했다. 정수진과 정수정은 전시 공간은 다소 거리가 있어도 페인팅 스타일과 그림의 심리적 내용 면에서 연접성이 뚜렷해 보인다. 1969년생 정수진의 〈뇌해〉가 2000년대 초 국내 회화 지형에 만든 언캐니한 평면성(형상+색채+붓질)은 1990년생 정수정의 〈교미〉, 〈이빨이 있는 정물화〉, 〈수녀〉(2023)의 전사前史로 느껴질 정도다. 이 관계성에 1989년생 이재석의 〈신체가 있는 부품도〉(2018) 같은 그림들도 끼어든다. 그의 회화는 한편으로 한국 구상회화의 주요한 산실 중 하나인 목원대학교에서 김홍주 작가를 사사한 것 같은 기묘한 섬세함과 함께 정수진의 회화가 실현시켜온 탈 서사, 탈 추상의 이지적 형상회화를 환기시키기 때문이다. 여기에 특이하게도 국내가 아닌 서구미술, 보다 정확히는 서양 근현대미술의 작용과 반작용을 참조해 자신만의 지연된 작용 그림을 제시한 1992년생 조효리를 언급할 필요가 있다. 이 작가는 먼저 마르셀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No. 2)〉(1912)를 마치 살바도르 달리의 초현실주의 화풍으로 번역한 듯 한 그림 〈부츠〉(2020)로 이어 달린다. 혹은 후자인 자기 작품으로 20세기 초 유럽 아방가르드미술에 대한 히스테리, 그 미적 외상에 대한 지연된 작용을 표출한다. 또 미국 미니멀리스트 도널드 저드의 〈무제〉(1980; 아마도 런던 테이트미술관이 소장한 작품의 디지털 이미지)를 모방했지만, 내 머리에 뒤샹의 〈큰 유리〉(1915) 구조를 환기시키는 그녀의 〈굿 이브닝 미스터 저드〉(2022)도 꽤 문제적이다. 뒤샹이 〈큰 유리〉의 공간을 신부mariée와 구혼자célibataire로 나눠 자신의 서명(mar+cel)을 대신한 것처럼, 조효리는 그림의 공간을 “GOOD EVENING”과 “MR. JUDD” 상하로 분할했기 때문이다. 역사적 아방가르드주의자 뒤샹은 여성/남성의 생물학적 정체 말고 이데올로기적 경계선을 미술로 들쑤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네오아방가르드주의자 저드는 공산품처럼 주문 제작한 미니멀 조각으로 창작과 아이디어, 작품과 사물 간 미술 인식론의 질서에 외상을 입혔다. 영리하게도 조효리는 이러한 근현대미술의 서사를 참조한다. 그렇게 해서 원본/복제, 창조/참조, 예술이념/비주얼 사이를 정신 분산적으로 넘나드는 동시대 특정 미술 세대의 리얼한 취향과 미술가로서 생존기교를 그림화 한다.

정수진, 〈뇌해 6, 4〉, 2000
일민미술관 《히스테리아: 동시대 리얼리즘 회화》 전시전경, 2023 photo by 강수미

이상과 같은 작가 쌍과 작품들의 실체 및 전시 디스플레이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을 근거로 판단하건대, 나는 이 전시기획이 “동시대 리얼리즘 회화”를 짚었다기보다는 “동시대 회화의 리얼한 경향”을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고 본다. 그 두 테제는 같지 않다. 연구 대상으로도 같지 않고, 분석 층위와 범주로도 간격이 크다. 한국 현대미술의 이행과 그 내적 인자로서 한국 동시대 회화의 진행을 미술사적 계보나 미학적 판단의 인벤토리로 구성하는 일은 어렵다. 객관성뿐만 아니라 다소의 상상력과 자의성을 필요로 하는 중요한 기획과제다. 그런데 그 일은 《히스테리아》처럼 우선 리얼한 경향에 대한 철저한 관심과 접근,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해석과 구성을 거쳐 이뤄질 것이다. 요컨대 일의 절차적 대소 관계, 목적과 대상의 선후 관계, 범주의 상하 관계가 있다. 여기에 첨언하자면 히스테리, 외상, 사후작용 같은 정신분석 개념을 그대로 미술에 적용하는 일은 논리적 비약의 위험이 있다. 그런데 국내외를 막론하고 미술이 조형예술을 넘어 심리적이고 지적인 경향성을 추구한 이후로 가까운 과거의 미술과 현재 진행형의 미술을 정신분석의 논리로 구성하는 시도들이 꾸준하다. 그만큼 컨템포러리아트가 ‘중층결정overdetermination’을 멈추지 않아서겠지만, 현상은 현상대로 봐야 할 주체이자 대상 또한 현재의 미술이다.

정수진, 〈뇌해 6, 4〉, 2000
일민미술관 《히스테리아: 동시대 리얼리즘 회화》 전시전경, 2023 photo by 강수미

 


1 《히스테리아: 동시대 리얼리즘 회화》 리플릿에서 인용.
2 Josef Breuer & Sigmund Freud, “On the physical mechanism of hysterical phenomena: Preliminary communication”, Sigmund Freud, Studies on Hysteria, 1895, p. 6. https://www.sigmundfreud.net/studies-on-hysteria-pdf-ebook.jsp


강수미 미학. 미술평론. 동덕여자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 부교수. 『다공예술』, 『아이스테시스: 발터 벤야민과 사유하는 미학』 등 다수의 저서, 평론, 논문 발표. 주요 연구 분야는 동시대 문화예술 분석, 현대미술 비평, 예술과 인공지능(Art+AI) 이론, 공공예술 프로젝트 기획 및 비평. 현재 한국연구재단 전문위원, 국립현대미술관 운영심의위원, 한국미학예술학회 기획이사, 《쿨투라》 편집위원.

 

 

* 《쿨투라》 2023년 6월호(통권 10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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